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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피서법

작성자미션|작성시간23.08.19|조회수128 목록 댓글 0

👑 왕의 피서법… 성종은 '찬물에 밥', 연산군은 '얼음 에어컨'


[ #뉴스속의한국사 140 ]

#한국사 #조선왕조

조선시대 피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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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안병현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가 많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옛날 조상들은 도대체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요? '오뉴월(양력 6~8월) 더위에 염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옛날 더위도 대단했답니다. 오늘은 #조선시대#피서법 을 알아보기로 해요.


임금도 부채질과 수박으로 더위 이겼대요

먼저 '왕의 피서법'부터 살펴보죠. 조선시대 왕들은 아무리 더운 날씨에도 궁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경복궁의 경회루나 창덕궁 후원처럼 궁궐 안에서 그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대요. 임금의 침전은 처마가 길어 햇빛을 가리기엔 좋았지만, 습기가 찼기 때문에 여름철에 갑자기 뱀이 나타나는 소동도 종종 일어났다고 해요. 신명호 부경대 교수는 "연못이 있는 경복궁 경회루, 자연 산수와 계곡으로 둘러싸인 #창덕궁 #후원 은 피서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뭘 했느냐고요?

#단오선 (단오를 기념해 나눠준 부채)을 부치며 얼음물에 담가 놓은 수박과 참외를 먹는 것으로 더위를 이겨냈다네요.

9대 임금 성종은 어린 시절 더위를 먹어 기절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더위 때문에 고생했어요. 그의 여름 대책은 ' #수반 (水飯)'을 먹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임금이 먹었다고 하니 뭔가 대단한 음식 같지만, 그냥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것이었어요.

21대 영조는 신하들의 권유로 가을보리로 만든 '특식'을 여름 건강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뭘까요? 고소한 맛이 나는 ' #미숫가루 '였습니다. 영조의 손자인 22대 정조의 피서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정조 임금의 말을 잠깐 들어보죠. "더위를 피해 자꾸 서늘한 곳만 찾아다니다 보면 과연 만족할 때가 있겠는가? 지금 있는 장소에 지족(知足·만족할 줄 앎)하고 참고 견디면 여기가 서늘한 곳이니라." 결국 '그냥 참는다'는 것입니다.

왕들의 피서법이 의외로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죠? 여름 피서용으로 호화로운 궁전이나 별장을 지었던 중국·러시아의 황제들과 달리, 조선 왕들은 피서에 지나친 사치를 자제했습니다. 그러나 500년 역사에 예외는 있는 법. 사치와 폭정으로 유명한 10대 연산군은 과연 남달랐습니다. 여름에 잔치가 열렸을 때 1000근(약 600㎏) 무게의 대형 놋쇠 쟁반을 4개 만들고 그 위에 얼음을 가득 깔아 동서남북에 하나씩 두고 에어컨처럼 썼대요.


얼음은 왕실에서 나눠주던 귀한 물품이었죠

그런데 냉장고도 없던 시절, 한여름에 어디서 얼음이 나왔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무더위를 대비해 겨울에 강 등에서 얼음을 채취해 미리 얼음 창고인 #빙고 (氷庫)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썼어요. 아주 귀한 물품이었던 얼음을 다루는 창고는 나라에서 운영했는데, 한양에는 종묘 제사를 위한 동빙고, 신하와 어려운 백성을 위한 서빙고, 왕실 전용 얼음을 위한 내빙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임금은 #서빙고 얼음을 여름 내내 신하들에게 하사해 더위를 함께 이겨내자고 독려했다고 해요.

가난한 백성을 위해 얼음을 나눠준 일도 있어요. 1434년(세종 16년) 무더위 때문에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던 활인원에 #열병 환자들이 몰려들었어요. 4대 임금 세종대왕은 예조(관청의 일종)의 건의에 따라 더위에 고생하던 환자들에게 부순 얼음을 내려줍니다.

조선 시대 법전인 ' #경국대전 '에는 해마다 여름의 마지막인 음력 6월에 신하들은 물론 #활인서 (활인원의 후신)의 환자들과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얼음을 주라는 규정이 나오죠. 냉장고만 열면 얼음이 쏟아지는 지금은 정말 행복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정신까지 시원해지는 '탁족' 즐긴 선비들

얼음이라곤 구경도 못 했을 대다수 백성들은 그저 부채질을 하고 통풍이 잘되는 #모시 옷을 입거나 잠잘 땐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 을 옆에 놓아 더위를 견뎠죠. 바닷가를 찾아 바캉스를 즐기는 것은 근대 이후에 생겨난 풍습이었고, 조선시대엔 대개 시원한 계곡을 찾았어요. 아이들은 윗도리를 벗고 등목을 하거나 물에 풍덩 뛰어들기도 했지만, 어른 양반들은 체면상 그럴 수 없었어요.

이때 이들이 즐긴 피서법이 #탁족 (濯足)이었습니다. 차고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가 온몸이 시원해지도록 하는 방법이었죠. 탁족은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 이 그린 ' #고사탁족도 ' 같은 여러 회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선비들의 정신 수양 방법으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한양에 사는 양반들은 당일치기 여행으로 북한산 같은 근교 계곡에 다녀오는 ' #탁족모임 '을 만들곤 했답니다. 지금도 계곡에 가면 물에 발만 담그고 '청산~리 벽계~수야'라며 시조를 읊는 어르신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정약용의 '소서팔사']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 (1762~1836) 은 63세가 되던 1824년(순조 24년) ' #소서팔사 (消暑八事·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일)'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 내용이 뭔지 한번 볼까요?

①송단호시(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②괴음추천(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③허각투호(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④청점혁기(시원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⑤서지상하(서쪽 연못에 핀 연꽃 감상하기)

⑥동림청선(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⑦우일사운(비오는 날에 시 암송하기)

⑧월야탁족(달밤에 물에 발 담그기)이라고 했습니다.

시 마지막 부분에서 다산은

"낮은 처마 아래 근심 털어내며 석양을 보내나니/ 하얀 달빛이 낚시터 물에 흘러 서늘하구나"라고 읊습니다.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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