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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작성자 은도깨비 작성시간 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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