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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서대문 형무소를 찿아서

작성자마초|작성시간24.03.05|조회수310 목록 댓글 7

조국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며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애국선열의 넋을 찾아 서대문구 현

저동에 자리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보러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길거리에,

작열하는 바람은 숨을 막히게 하고 스쳐가는 바람으로 초봄을 를 재촉한다 독립

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수많은 역사의 굴곡과 아픔을 간직한 서대문 형무소

를 찾아간 날은 뜨거운 바람으로 귓불을 스치는 주말이었다.


지은 죄가 없어도 형무소란 단어가 어색하게 들리며 공연히 몸이 움츠려 드는 것

을 보니 형무소가 체질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은 모양이다.

구름조각,

깔린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쪽빛 바닷물보다 고왔다 오래된 적벽돌 건물은

으스스한 감옥이 아니라 미술관처럼 포근하다.


대한제국 말에 일제의 강압으로 감옥이 지어져 80년 동안 격동기의 수난과 한이
서려있는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었다.


일제 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서대문형무소는 고난의 장소이며 민족의 수난과 저항

이 집약된 이곳에서 마초 킴 선친 께서도 모진 고문을 받았던 것이다 민족독

립을 위해 일제의 강권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

았던 강인한 독립투사의 얼을 우리는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서대문형무소는,

통곡의 장이나 만행의 장소가 아니라 독립정신을 일깨워주고 민족생존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의 교육장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꽃다운 젊음을 펴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곳 지하옥사에 발길이 멈춘

다 뼈아픈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된 형무소 곳곳에서 부는 서늘한 느

낌은 마치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많은 애국지사들의 원혼이 내뿜는

숨결 같기도 하다.

옥사에 재현한 피비린내 나는 듯한 고문 도구들을 보면서 참혹한 심정을 감출 수

가 없었다 조국독립의 한을 품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저간 선열들의 넋이 서려

있는 조그마한 목조건물 사형장 입구에 오래된 미루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 있었

다.


사형수가,

처형 직전 이 미루나무를 부여잡고 통곡했다고 통곡의 미루나무란다 옥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형장 가는 길을 아주 천천히 1시간이 넘게 걸어도 이승과 마지

막 이별하는 그날은 교도관도 그다지 독촉하지 않는 모양이다.


사형을 집행할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바로 그 위에 고를 맨 밧줄이 매달려 

있다 저 밧줄에 목 매인 숱한 순국선열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부끄러운 지난날

의 역사를 극복하고 이제는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서도 손색없을 만큼 이렇게 

도약한 것이다.


사형장,

뒤에는 녹 쓴 시구문이 열려있고 터널처럼 침침하고 컴컴한 그곳에서 살려달라

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귀신의 잔상이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듯하다.


사형을 집행한 시신은 비밀 시구문을 통해서 형무소 밖 공동묘지에 몰래 버렸던

것이다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할 망루는 텅 비어있고 을씨년스럽게 차00거운

바람만 불고 있다 별 모양의 연두색 잎파리가 너무 예뻐서 몇 장 주워서 갈피

속에 찔러 넣었다.

서대문 형무소 고문실

옥사 내부 및 사형집행실 모습.

통곡의 사형장

사형장 내부의 모습

이건 취사장의 가마솥인데, 배식 때는 노동 강도에 따라 밥 양을 정해서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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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수리산 | 작성시간 24.03.05 저도 얼마전에 다녀왔는데 대충 둘러만 보고
    왔는데 마초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보니 직접
    다못본것이 아쉬웟는데 대리만족을 하게 됩니다
    독립유공자이신 선친과 국가유공자이신 마초님
    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ㅉㅉㅉ
  • 작성자삿가스. | 작성시간 24.03.07 서대문 형무소하면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 분들의 고난에 숙연한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 못지않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분들도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흑역사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2개 분기로 나뉘어집니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출발하여 1945년까지
    37년간 일제 강점기.
    1945부터 1987년까지 42년간 우리시대입니다.

    일제시대야 더 말할나위 없이 잔혹했지만
    해방 후, 우리 시대 서대문 형무소에서도
    우리 손으로 우리 사람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어두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 작성자삿가스. | 작성시간 24.03.07 이승만 정부에서 농립부장관을 지내고
    국회부의장 까지 지냈던 조봉암이
    1956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여
    이승만 후보의 턱밑까지 득표하여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차기 대선에서 위협을 느낀 이승만대통령은
    조봉암을 간첩혐의로 체포하여
    서대문형무소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 사건은 2011년 재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 했습니다.

    엄혹했던 유신시절.
    박정희대통령의 유신통치에 반대하던 대구지역 인사들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75년 4월 8일 도예종 등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확정된 18시간만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을 집행했습니다.

    이 사건의 재판장은 민복기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이완용과 함께
    경술국적(庚戌國賊)의 한 사람인 민병석입니다.

    이 사건은 아프리카 야만국에서도 있을 수 없는
    <사법살인>이라고 전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2007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당시 하루에 8명의 목을 걸었던
    올가미 실제 사진입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박희정 | 작성시간 24.03.05 오랜만에 선배 님의 글을 접합니다.
    무거운 글 속에 담긴 애환과 변화 하는 지금을 잘 조명한 사진과 글입니다
    일제 시대에 의한 글
    그리고 해방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댓글도 가슴 서늘 하게 하네요
    좋을 글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오개 | 작성시간 24.03.06 독립유공자의 후손께 경의를 표합니다.목숨걸고 투쟁했던 선조들의 피의 역사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지요.제가 조봉암선생의 후손 입니다.
    10년전쯤
    카페회원이 서대문형무소 담당공무원이라 따라서 가본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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