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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부동산계 큰손 할머니.

작성자아우라|작성시간24.03.13|조회수169 목록 댓글 4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오는데 1층에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지라
"추운데 어디 갔다왐수광?"
"약국에 갔다왐주."
하얀 비닐 속에 약봉지가 보였다.
할머니는 4층에서 내렸다.

그날도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데 할머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는데
할머니는
"고맙게시리...."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오지랖 넒은 나는 또
"어디 갔다왐수광?"
"응, 드림타워에서 茶 마시고 왐주.
도두에 땅 나온 게 있어서 손님들이랑 상담해신디
잘되면 수수료만 10억이라.

경헌디 중국 애들은 믿을수가 없어서..."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요새 제주도 땅값은 어떵햄수광?"
"팡팡 내렴주. 이녁도 땅 팔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여."
할머니는 명함 하나를 꺼내 주셨다.
집에 와 명함을 들여다보자 좀 혼란스러웠다.
할머니 행색을 보면 큰손 같아 보이지는 않고 명함을 보면 몇 십년 부동산소개업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제주 부동산계의 숨은 고수일지도 모르겠고....
고급 승용차가 할머니를 태우고 가는 것도 몇 번 봤던지라 고개를 갸웃하며 명함을 서랍에 넣었다.

거래처에서 받은 미니리를
위, 아래층 어르신들께 나눠드리고 4층 할머니께도 드렸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나와
"고맙다."며 받으셨다.
돌아서 나오는데 왠지
"내가 잘못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불편한데 미나리 반찬을 만들수는 있을까?
그냥 무침이라도 만들어 갖다 드릴 걸....

한동안 할머니가 보이지 않길래 관리실 여직원에게 물어봤다.
"할머니 이사갔수다.
민원도 막 들어오고예."
"무슨 민원?"
"할머니가 쓰레기통을 뒤져
뭔지 막 주워가고 주위도 어지럽히고예.

아들이 모셔간 것 같수다."
예전에 앞집 동생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의자를 분리수거하려고 내놓고 스티커를 붙이려 가 봤더니 의자가 사라졌더라고.
나중에 알고보니 할머니가 가져갔더라며 치매기

있는 어머니를 모시지 않는 아들도 문제라고 궁시렁거렸었다.
척박한 섬에서 조냥정신(절약정신)으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쓸만한 물건 보이면 무조건 챙기는
습관이 문제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몇 달 뒤,
앞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이삿짐을 옮기는 사람들 소리에 문 열어보니 할머니가 보였다.
언젠가 할머니가 하소연 했었다.
'나는 마당 있는 집에 살고싶은데 아들은 교통 편리하고 병원 가까운 데가
좋다고 해서 여기서 살지.'
할수없이 할머니는 또 이 아파트에 오셨다.
어제는 인사가 늦었다며 바나나와 고구마 한 팩을
들고 찾아오셨다.

할머니가 진짜로 큰 건 하나 잡아서 10억을 받았으면 좋겠다.
'어쩜 나한테도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혼자 실없이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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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오개 | 작성시간 24.03.14 제주도 고유의 말 잘 배웁니다
    제주도말도 우리의 고유유산입니다
    수수료가 10억이면 물건이 5,000억정도 하는 모양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14 할머니의 건풍(?)인가 생각했었는데
    돈을 많이 번 건 확실하더라구요.
    밀감 밭과 특작하는 땅도 많고.
    복도에 밀감 20여 상자 늘어놓고
    주소를 붙이는데 글씨가 달필이라 놀랬습니다.
  • 작성자짱이 | 작성시간 24.03.14 병원 가까운곳이 좋기는 해요
    제주도 사람들도 늙기는 늙나봅니다 좋은환경 살면 덜늙을까 햇더만 ㅎㅎ
  •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3.14 뭐니뭐니해도 병원이 가까워야죠.
    버스 정류장도 가깝고
    사우나도 가까우면 좋지요.
    제주도 할망들이 좀 장수하는 건 맞는 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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