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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 가면

작성자도반(道伴)|작성시간24.04.22|조회수153 목록 댓글 14

 

(백제금동대향로)

 

    부여에 가면

 

부여에 가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저 위쪽 부여국에서 내려오다가

비류수 언저리에 한 짐 풀어놓고

아리수 아래 또 한 짐 풀어놓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가 곰나루에 또 한 짐 풀어놓고

부소산 기슭에 터 잡았다 스러져갔다는

그 터 어드메인지 감감해 눈물이 난다.

 

허약한 국세로도 왜국을, 당나라를 경영했다니

그건 완력이 아닌 정신문화의 위력이었던 셈인데

낙화암에 서보면 또 눈물이 난다.

 

패자의 눈물 속에 삼천궁녀를 쑤셔 넣은

승자의 무지막지에 속울음이 나는 것이다

강물에도 뛰어내리지 못한 질긴 목숨들은

왜국의 미야자끼 까지 쫓겨 갔다니

무심한 객이 활보하는 부여의 거리를 걷노라면

또 눈물이 난다.

 

궁남지 연꽃 밭에서 화사한 웃음을 짓다가도

계백장군 동상 옆을 지나노라면 또 눈물이 난다

저 용맹이 처자식 단칼로 베어버리고

출전할 때의 결기려니

나는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래도 능산리 고분군에서 나온 금동 대향로를 보노라면

어느새 눈물은 마르고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고구려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그거야 고분벽화의 용맹스러운 기상을 들기도 할 테지만

신라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그거야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화려한 금관들을 들기도 할 테지만

백제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금동용봉봉래산대향로를 든다

그걸 국보 287호로 등록해 백제대향로라 이르지만

이승의 영화나 세력 다툼이 아닌

선계(仙界)를 바라보는 마음의 고향을

거기에 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제든 신라든 고구려든 어디에도

모진 풍상 견뎌내며 서있는 석조 입상이야

잔잔한 그 미소 매양 한 가지니

나는 모두 자랑스런 내 조국이라 해본다.

 

     용솟음치듯

     휘감아 돌고

     한 아름 품어 타오르다

      

     어둠에 묻혀

     잊혀진 세월

     염원은 변치 않아 예 그대로

      

     굽이굽이 마다

     삼천 대천의 꿈 얹어놓고

     그늘 그늘마다 지킴이는 깃들어

      

     봉황 품에 서기(瑞氣)로 틀어 앉아

     선계(仙界)로 비상할 날

     그날을 고대하는가. / 졸 시 ‘백제대향로’ 전문 

 

신라의 금관은 호화의 극치다.

그러나 백제의 금동대향로는 그와 차원이 다른

정신세계의 지향점이다.

 

백제의 문화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華而不侈) 고 했는데

그걸 출토된 유물로 증명한 게 백제금동대향로이다.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군 일대를 발굴하던 중 출토된 것으로

출토 당시 완전성, 예술성, 정신성 등이 높게 평가되어

국보 287호로 등록되었다.

 

거기엔 불교사상과 도교사상 등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내세관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나는 그 미니어처를 머리맡에 두고 지낸다.

 

그러면 연꽃 한 송이 용트림하듯 피어오르고

그 안에 향을 피워 넣으면

마치 삼신산 계곡마다에서 서기가 피어오르며

신선과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축원한다.

 

그렇듯 봉황이 화답해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모습인데

부글부글 끓어오를지도 모를 잡념들도

모두 향기로 타올라 선경에 드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금관과 대향로 중 어느 것을 취하겠느냐고 물어오면

나는 둘 다라고 말하겠다.

그건 신라와 백제의 예술혼을 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가 만약 둘 중 하나를 누구에게 줄 것이면

어느 것을 주겠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금관이라 말하겠다.

그건 이승에서의 영화는 이만큼 맛봤으니

내세의 평안을 꿈꾸기 때문이다.

 

누가 나에게 신라인인지 백제인인지 고구려인인지 물어온다면

나는 대한국인이라 말하겠다.

그건 나는 광대뼈가 불거진 북방계열의 후손이요

신라 김유신장군의 67대손이요

백제의 고토 마한 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렇게 답할 뿐이다.

 

삶의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눈다면

고립과 군림과 섬김으로 나눌 수도 있는데

나는 천성 상 군림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제 꾀하지 않아도 점점 고립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으니

내 영혼이나 섬기며 살 수밖에 없는 터다.

그래서도 나는 백제금동대향로의 상징성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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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도반(道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3 네에, 중국에 박산향로가 있었다 하지요.
    하지만 백제대향로가 정교함에서 훨씬 났지요.
  • 작성자별꽃 | 작성시간 24.04.24 부여문화답사기를 꼼꼼하게 아름답게 쓰셨네요.
    이 봄 부여에 가보고싶어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도반(道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4 좋지요.
    하긴 안 좋은데가 없지요.ㅎ
  • 작성자오개 | 작성시간 24.04.24 댓글 다는것조차 조심스러운 선생님의 글 잘 보고 배웁니다
    늘 건필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도반(道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4 아이구우 별말씀이네요.
    못난글 부끄럽기도 한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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