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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정(破程)-(1) in traces of my life

작성자제이서|작성시간24.04.27|조회수148 목록 댓글 11

 

 

 

 

 

 

파정(破程)-(1) in traces of my life

2024년 4월 26일 (금) 오전 6:38

파(破-깨트릴 파)

정(程-헤아릴 정)

파정(破程)-헤아림을, 앞 뒤 상 하를 재는 것 깨트린다. 정상 상식을 깨트린다.

 

 

 

"가 상병."

뒤따라오던 정 병장이 헐레벌떡 긴 숨을 내시며 옆에 와서는 나를 불렀다.

 

"예. 말씀하십시오."

나도 M60을 메고 산 중턱을 오르느라 숨이 찼다.

 

"내 총 방아쇠 뭉치가 없어졌어."

"예! 무슨 소립니까? M60 방아쇠 뭉치 가요? 어디에서요."

 

사실 그는 매사의 동작이 좀 느긋하였다. 그런 그가 산악훈련 중 어디에선가 방아쇠 뭉치를 잃어버렸다. 그게 그렇게 저절로 쉽게 빠지지 않게 되어있다. 이어 소대장에게 보고되고 일차로 전 소대원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행적 따라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하고 중대장과 대대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었다. 그야말로 대대장 이하 중대장 소대장까지 놀람과 두려움으로 허둥대었다. 자칫 강등되고 군법에 회부되어 육군 교도소행이 될 터이다.

 

M60은 그 당시에 전 량이 월남 전쟁에서 사용된 무시무시한 자동총이었다. 이 총은 구경이 7.62mm이고 총열의 길이는 50.8cm이며 강선은 4조 우선으로 되어 있고 강선율은 12인치/1회전이다. 발사속도는 500∼650발/분이고 유효사거리는 1.100m‚ 최대사거리는 3.725m이고 총구 속도는 863m/s이다. by wiki.

하여튼 나는 이미 다른 특별 부대에서 4개월 동안 스나이퍼 팀원으로 PRI에서부터 각종 실전 훈련을 받았기에 M60 사격에서도 최고였고 주간 야간 중에 M60을 분해하고 조립하는데도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최고였다.

 

소대장 선임 중사가 정 병장을 급히 훈련에서 제외하고 3일간 휴가를 주어 집에 보냈다. 그러나 이틀 만에 그는 듣기로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은 덕적도 섬인 걸로 기억한다. 덕적도에서 노모만 살고 있다 하였다.

소대장은 소대장 중사의 동기가 근무하는 병기창에서 돈을 주고 사게 되면 적어도 그 당시 120만 원 정도 필요하여 정 병장을 보냈는데... 그 부품은 선임 중사 소대장에 따르면, 병기창에 있다고 하였다.

 

그가 돌아온 그다음 날, 대대장으로부터 우리 사단과 인접해 있는 x 사단 노고산 부대의 RCT 훈련 참가로 무기고를 지키는 소대 파견을 요청해 왔다고 하였다. 그 소대 파견을 우리 소대가 담당할 수 있느냐 고 물어왔다고 하였다. 그 당시 군대에서는 부하의 의견을 묻는 체재(system)는 없었다. 그건 곧 너거 소대가 가서 이 절체절명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ㅈ으로 밤송이 까라' 면 까야 했다. 사색이 되어 나를 불렀다. 내가 생각해도 이야기 상대는 나밖에 없었다. 나도 초 긴장되어 소대장 실로 갔다.

 

"가 상병. 우리가 파견되어 가는 부대는 x 사단 소속이다. 니가 우리를 살려주어야겠다. 대대장 명령이다. 5일 주겠다. 필요한 놈들과 물자를 말해라. 지원해 주겠다. 단, 잘못되면 다 죽는다. 알았나?"

 

우리 사단이라도 다 죽을 텐데, 옆 동네 X 사단이라니. 잘못되면, 내 인생은 끝장이다. 영창->군법회부->군 형무소->전과자. 내 꿈은? 나는 그때 명령에 죽고 사는 순진한 육군 상병이었다. 아직 전쟁 중이 아닌데도...

실은, 나는 그 옆 동네 X 사단에서 8개월간 정보 요원(008)으로 근무하다 상록수 작전으로 사단 간 이동하여 이 전투 사단으로 왔다 (병이 사단 간을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 '상록수 작전'을 제외하고. 언젠가는 왜 정보요원에서 전투사단 수색대로 옮겼는지 말할 기회가 올 것이다.). 이틀 후 우리 소대만 훈련에서 배제되어 군용 트럭을 타고 경기도의 노고산 중턱에 있는 중화기 중대로 갔다.

 

그 중대에는 외곽을 지키는 병사들과 곧 제대할 병장들을 포함한 1개 소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소대장에게 고급 양주와 담배와 적당히 큰 붓과 방아쇠 뭉치를 담을 흰색 천 가방을 요구하였고, 유 x 준(서울대 문리대 원자력 학 재학) 내 부사수 그리고 제1탄약 수 전 x 수 일병과 제2탄약 수 성 x 경 이병에게 함께 할 것을 한참 설득 후 약속받았다. 그들은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책임은 내가 다 지기로 하였다.

체재( 滯在)하며 며칠 동안 낮에는 축구하고 밤에는 돼지고기 사서 술과 함께 먹었다. 눈은 계속 왔다.

 

토요일 D-day 날 낮에는 축구하고 저녁은 양 소대원 전부 회식하였다. 나는 그날 밤 9시 30분에 침투하기로 하였다.

열쇠는 큰 것이었지만, 한국산 2개이었다. 이미 연습한 대로 쉽게 열고 잠입하였다. 시나리오 대로 탄약수 두 명은 언덕에 있는 초소로 음료수와 돼지고기와 말보로 담배를 가지고 올라갔고 나는 때가 되어 흰색 스키복을 입고 주변을 살피며 접근하였다. 내가 무기 창고에 침투하자 유 일병은 창고 앞을 지나다니며 발자국을 더 만들었다. 유 상병은 정확히 10분 후 이상 없으면 가볍게 문을 두드릴 것이었다.

 

컴컴한 창고에 들어가 엎드려 잠시 있었다. 시야가 안정이 되자 눈앞에 10정의 M60이 나란히 누워있었고 그 옆에 바주카포도 있었고 M16도 몇 자루도 있었다. 드럼통도 여러 개 있었다. 총기 창고 다웠다. 지금 이 행위가 무엇을 위하고 무슨 가치가 있는가에 대하여는 이미 결정한 상태이다. 파정(破程)을 시작한 것이다. 주어진 이 임무를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훈련과정을 망라해서 내가 할 것을 찾아내 긴장한 채 중간쯤에 누워있는 M60의 방아쇠 뭉치를 눈을 감고 분해했다. 이건 내 전공이었다. 사달 내에서 M60, M16, Colt. 리벌버 권총 그리고 아까보( Automatic Kalashnikov-쏘련제 자동소총) 소총 분해는 가장 빠른 분 내에 하는 병사이었다. 내 손에 의하여 이탈된 방아쇠 뭉치는 가져간 흰색 가방에 넣고 붓으로 그 주변을 모두 조심스럽게 잘 휘저어 흔적을 지웠다.

M60 Machine Gun
M60 Machine Gun Trigger Bundle

 

그리고 잠시 대기. 스르륵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즉시 가방을 메고 소리 없이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찦차에서 기다리던 소대장에게 정확히 15분 후에 그 흰색 가방을 전해 주었다. 그는 차를 운전해 정문을 빠져나갔다. 본대로 갈 것이었다.

 

그다음 날 점심시간 전에 훈련 마친 중대가 복귀하는 것을 보고 병들은 군용트럭을 타고 그 부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잊고 훈련받던 중 헬기 하강 중 착지 시 링크가 깨어져 오른 손바닥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등촌동 국군 수도 통합병원으로 이송되어 갔다. 그리고 3개월이 3일 전, 다시 부산 국군 통합병원으로 전송되었다. 파정(破程) 속의 전우들과는 소식이 끊겼다.

 

또 그리고 3개월이 3일 지나자 손바닥에 생고무 줄이 연결된 운동용 가죽 골무를 손가락에 끼고 퇴원하여 또 특별한 부대로 이동하였다. 그곳이 태릉 불암산 아래에 있는 88 훈련단이었다. 85%가 장교였으며 사병은 1개 소대도 되지 않았다. 며칠 후 훈련단 단장 소장에게 불려가 병장 계급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후 고락을 같이 했던 자대 전우들 없이 전우들의 전송 없이 88 훈련단에서 쓸쓸하게 전역을 하였다.

 

몇 년 후 유 병장을 만났다. 방아쇠 뭉치 분실한 그 부대는 발칵 뒤집어졌고 결국은 중대장 월급으로 병기창에서 구입하여 해결하였고 그 후 전역하여 모른다고 하였다. 끝.

 

Epilogue

*선임중사 소대장은 고향이 화순이라는 것만 기억난다,

*정 병장은 흥국생명에 근무하는 것까지 소식 들었다.

*유 일병은 대전 과학기술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것까지 안다.

*두 탄약수 들은 부산과 기장이 고향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태능 88 훈련단은 그 몇 년후 해체되어 없어졌다 고 들었다.

*내 삶 속에 몇 개의 파정(破程)이 더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있으며 이 글을 쓴다. 그래서 그것들이 운명을 믿게 하고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제서야 왜 이런 삶의 한 부분이 된 일을 긁어내어 글을 쓰는가는, 사실 나도 뚜렸한 이유나 목적이 없다. 믿거나 말거나 해도 좋은 내 삶의 흔적이라 생각하며 쓰 놓고 그냥 흘러간다. 그래도 내 속은 한개도 안 쉬원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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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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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제이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9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짜하라 작성시간 24.04.28 재미와 관심으로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제이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9 감사합니다. 즐거운 새로운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박희정 작성시간 24.04.29 지난날을 풀어 놓으신 글
    추억이 있기에 오늘의 삶을
    행복으로 가꿔 갈 수가 있는 것 같아요
    아찔했던 날들이 있었기에 용기와 만용을 구분 할 수가 있었고
    명령체제에 승복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가 있었죠
    글을 읽으며 저역시 수색대 출신이라서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선배님^^
  • 답댓글 작성자제이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29 이제는 기억이라는 것이 건강의 상태에 따라 좋아졌다 나빠졌다 합디다.
    마침 어떤 계기가 되어 막 생각나길래 적었습니다. 지금까지 속에 두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서 끄집어 내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수색대. 제대로 군대생활 하셨겠군요. 그때의 생각들이 사회생활에서도 큰 도움이 됩디다.
    멋진 새로운 한 주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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