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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자 여자

작성자벽창호|작성시간24.05.15|조회수291 목록 댓글 29

 

 여자 여자 여자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무뚝뚝하기 짝이 없던

마누라가

 

뜬금없이

내게

"여보! 어제 저녁 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신이 없으면 나 혼자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당신이 없으면 무서워 못 살 것 같아

반드시 나보다 당신이 더 오래 살아야 해 알았지!"

 

감동했다.

나이 어린 마누라

그 말 한마디 철석같이 믿고

별의별 치사한 꼴 다 견디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평생

돈 벌어 바쳤다.

 

그리고 오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맘껏 자유를 누리며

삼식이 노릇에 막 재미를 붙이려는 

어느 날이었다.

 

마누라가 갑자기 내게 말한다.

"당신 꿈이 자연에 사는 거잖아

당신은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

전원주택이라도 마련해서 내려가고

그럼 내가 한 달에 한 번만 내려가서

서로 만나고 오는 게 어때?"

 

삼식이 된지 몇달 만이었고

자기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응석부리던

마누라 입술에

침이 채 마르기도 전이었다.

 

마누라와 나는 

아들 용돈에 대해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직접 돈을 버는 나는

좀 부족한 듯 주자는 의견이었고

 

돈 쓰기만 하는 마누라는

아들이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는 편이었다.

 

해서 내가 악역 담당이 되어

늘 쫀쫀하고 인색한 잔소리 꾼

아버지로 낙인찍혔고

 

마누라는 아들에게

다 퍼주는 통 큰 물주가 되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들은

직장이 서울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용인이었음에도

 

주말이면

번질나게 집을 들락거리며

마누라 곁을 떠나지 않고

얹혀서 살았다.

 

그 둘은 마치 껌딱지처럼

붙어 살았다.

그렇다고

나도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마누라 잔소리를 피해

모처럼 아래층 아들 빈 방에 들어가면

기타라던가 만화책 모자 사진 등

아들이 학창 시절에 사용하던 갖가지

소품들을 보면

가슴 뭉쿨하고

 

드문 드문  집에 오는

아들이 그립고

 

그 아들이 지금부터 또 오랜 동안

처자식을 위해

샐러리맨으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마음 아프다.

 

좀 더 곁에서

못다한 아비의 사랑을 받고

내 곁을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전셋집을 전전하던

그런 아들이 평택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집들이한다고

연락이 왔다.

 

해서 아들 사진이라도

가지고 가려고 아들방에 들어갔더니

어느새 아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거울처럼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다.

 

마누라가

아들짐은 모두 묶어 택배로

평택 아들 새집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하는 말이

"주말마다 찾아오는 통에

귀찮아 죽을 번 했네

모두 보내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

이제는 자주 안 오겠지!"

 

신선한 건 모두 아들에게

시들은 건 모두 영감에게 멕이며

아들 면전에서 애정을 과시하던

마누라였다.

 

이런 마누라 이중플레이에

아들도 속고

나도 속았다.

 

글/ 벽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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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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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오개 | 작성시간 24.05.16 글 참 잘 쓰시네요.부러울 정도 입니다
    이 글감옥에 푹 빠져있다 간신히 헤쳐 나왓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리릭. | 작성시간 24.05.16 벽창호 님의 팬(fan)이 많답니다요~~
    누구냐고 궁금해 하며
    얼굴 보자는 분들이(여성,남성)넘 많아
    (성화를 해서) 얼굴사진 올린적 있었지여ㅎㅎ(귓속말)
  • 답댓글 작성자벽창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6 오개님 그리 생각해주시니
    신이나네요
    감사해요^^
  • 작성자복매 | 작성시간 24.05.16 기발 하게 표현 해 주시네요 잼있게 읽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벽창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5.16 감사해요 복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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