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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란 말이 쑥스러웠는데....

작성자아우라|작성시간24.06.17|조회수114 목록 댓글 14

폰 울리는 소리에 받아보니 새 거래처였다.

"네, 어르신"했더니

"어르신이 뭐여, 오빠라 불러야지."

70대 후반으로 보이던데 웃음이 나왔지만

"네, 오라버니" 대답하니

"아, 너무 길어. 간단허니 오빠라 부르랑께."

그날부터 새로운 오빠가 생겼다.

 

대엿새 후 걸려온 전화에

"네, 오빠아~" 톤을 높였더니

"그 다음 말을 붙여야지."

"예??" 어리둥절 헤매는데

"오빠, 사랑해요."라고.

크크크~ 한참을 웃었다.

 

하루는 차에 짐을 다 싣고는

"어제보다 더 예뻐졌네"또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언제는 안 예뻤수광?"투덜거리듯 대꾸했더니

"아따... 우리 영감이 복지관에서도 인기 짱이랑께."

옆에서 나물 다듬던 할머니가 키득거리며 거든다.

참 선량한 夫唱婦随다

하긴, 육지에서 오신 어르신이라 이런 농담도 하지

척박한 제주섬에서 일만 하다가 늙어버린 할으방들은 이런 여유가 없다.

아니, 할 줄을 모른다.

새벽 네시에 나와 작업을 하는 어르신들께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다보니

나도 점점 능구렁이가 됐다.

 

어렸을 때, 수업이 끝나고 동네 친구들과

집으로 오는 길은 늘 왁자지껄했다.

저만치서 어멍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지짐년들, 재게재게 왕 물 질어오곡

저녁밥 촐려사주 뭣들 햄서."

그 시절, 우리 또래는 허벅 지고 우물에 가서 물 길어와 밥 해야하는 일꾼이었지 사랑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랑이란 말은 소설속에서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다.

 

손주들에게도 "사랑해"란 말보다

"이쁜 강아지이~~"가 휠씬 부드럽다.

 

오늘도 나는 남의 할으방한테

"오빠아, 사랑해요."를 남발한다.

서방한테는 한 번도 못한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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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18 제주도 여자들은 말 대신에
    행동으로 합니다.
    서방 밥상엔 고기반찬 올리고
    술도 한 잔 따르고.....ㅎ
  • 작성자신화여 | 작성시간 24.06.18 사랑한단 말은 장난으로라도 그져 많이 하고 살다보면 그게요 삶의 질을 높여
    준댑디다 그랑께 그져 기회가 있을때 마다 사랑한단 말을 자주 하며 사시길요
  • 답댓글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18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어도
    물속에선 쉼없이 발을 움직이듯
    무뚝뚝한 사람도 사랑의 무게는 가늠이
    안 될 겁니다.
    저도 가슴이 뜨거운 할망입니다.ㅎ
  • 작성자피 터 | 작성시간 24.06.18 ㅎ 이젠 자연스럽게 나오시나 봅니다 ㅎ
  • 작성자아우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6.18 말 대신
    손 잡아 주고
    안아주고
    맛있는 거 같이 먹고
    이웃과 먹을거리 나눠 먹고
    거래처에도 냉커피, 빵 자주 사 가고.
    주둥이 대신 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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