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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2)

작성자벽창호|작성시간24.08.13|조회수177 목록 댓글 16

 

    해후(2)

 

  농사 일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늘 말없이

인자한 미소로 동생들을

보살피시던

큰 누님이

 

기거하시던 사랑방

문설주에 

 

십자수 자화상만

덩그렀게 걸어 놓고

 

작년 가을 
신작로 흙먼지 날리며

 

도라꾸 타고
시집가신 지
 
일 년 만에 친정에 다니려

온다는 

 

우편엽서를 받고 

마중 나간다.

 

대문을 열고 나와

미루나무 길게 늘어선  
신작로 십리 오솔길을

고무신 신고 타박타박 
걸어가노라면

장마당을 지나고
우체국을 지나고
면사무소를 지나

한 참을 

따가운 가을 햇살 속을 

걸어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쳐갈 
즈음

저 멀리

코스모스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자그만 함석지붕

간이역이 보인다.
 
이윽고 서늘한 역사에 도착
빈 의자에 앉아 
기다리노라면

금테 모자 눌러쓴 
역무원이 플랫폼에 나가 

적. 청색 깃발을 
멋지게 흔들면

기적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기차가 달려온다.

개찰구에 나가 목을 길게 빼고
한 사람 

두 사람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음에도

설레며 기다리던 누님 모습  
보이질 않아

못내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막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등 뒤에서
 "야야! 야야! 니 우예 잘 있었노?"

그립고 다정스러운 목소리에 
뒤 돌아보면
 
한 손으론 머리에 보따리이고
한 손으론 기다란 옷고름으로 
눈망울을 훔치며

정든 누님이
서 있다.

나도 모르게
핑그르르 
눈앞이 흐려진다.

 

글/벽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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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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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벽창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13 한동안 참 허전하더라구요 ^^
  • 작성자리릭. | 작성시간 24.08.13 단편의 소설속에
    애틋한 장면을 보는듯 합니다
    지금 그 누님은 많이 연로하셨겠지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자주 예서 뵙기를요ㅎ
  • 답댓글 작성자벽창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14 그 누님은
    2년 전에 별세하셨습니다.
    감사해요
    리릭님
  • 작성자복매 | 작성시간 24.08.14 꼭 보타리를 이고 다니셨던 분들이었죠 ~
    역 앞에 저도 서 있는듯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벽창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14 당시에는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게
    일상인 시절이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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