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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마게(ちょんまげ) 보다 상투가 훨씬 났다

작성자마초|작성시간24.08.19|조회수227 목록 댓글 12

케이블,
방송이 채택되고부터는 텔레비전 채널이 훨씬 다양해져 일본 시대극을 볼 기회가 종종 있어, 
당시 성인 남자의 전통 헤어스타일을 보면 무척이나 특이하다.앞머리를 빡빡 밀고 주변머리
는 남겨 뒤로 상투를 틀어 올린 독특한 모양이다 이런 머리 행태를 존마게 (ちょんまげ)라 하
고 무인이 통치하던 에도시대(江戶時代)의 무사들 헤어스타일이었다 우리나라 상투는 속알
머리는 백호로 밀고 주변머리를 빗어 틀어 올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골골거리며 죽기 전, 불안하여 다이묘를 불러놓고 어린 아들히데요리를 부탁한다
고 눈물 징징 짤 때 너구리 같은 도쿠가와는 과감하게 존마게(ちょんまげ) 를 잘라 충성을 보
이니 다른 다이묘들도 충성경쟁으로 존마게(ちょんまげ) 를 잘라 방바닥에는 우습꽝스럽게도
온통 잘린 상투가 수북하게 쌓이고 나중에는 도쿠가와로 하여금 오사카성이 떨어질 때 히데
요시 애첩 요도기미와 히데요리는 자결하고 만다.

천하를,
탈취하는데 존마게 (ちょんまげ) 잘라 충성한 것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서양의 문화를 따라잡기 위한 첫 걸음으로 단발령을 내렸고 양복을 입도록 강요
하여 전통을 중시하던 일본사회로서는 대 변혁이 아닐 수 없다 무사가 존마게(ちょんまげ) 를
자른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체면 손상이 아닐 수 없다 메이지 일황은 스스로 단발의 모범을 보
이면서 국민들에게 압력을 가했으나,

노인층에서는 일본 남자의 심벌처럼 여기는 존마게 (ちょんまげ)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
고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았다 메이지시절이와쿠라는 사절단을 이끌고 전권
대사로 미국에 갈 때 단발한 대신들과는 달리 일본상투에 대한 고집이 강해 일본 복장을 하고
상투머리로 간 것이다 총각 때는 댕기머리차림으로 다니다가 나이차서 관례를 치루고 결혼을
하면 상투를 틀었고 상투를 틀면 이제부터는 어른 이란 신분을 표시하는 것으로 표시된다.

어린시절,
시골에 한학에 일가견이 있는 연세 많은 삼종숙(9촌아제)은 늘 상투 차림이었다 촘촘한 얼레
빗을 물에 적셔 머리털을 고르고 상투 틀고 동곳 꽂으면 상투가 완성되고 그 위에 망건을 쓰
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상투 틀 때는 퍽 요란하고 손질도 많이 하고 한번 튼 상투는 풀어지
지 않고 며칠을 간다.

머리를 전부,
기르고 상투 틀면 상투가 주먹보다 클 것이나 정수리부분은 백호로 빡빡 밀고 주변머리를 촘
촘한 빗으로 잘 빗어서 적당한 크기로 감아서 동곳을 지른다 존마게 (ちょんまげ) 한 머리에
싸움에  나갈  때는 투구를 쓰지만 평상에는 머리에 쓰는 도구가 없는 반면 한국 상투는 망건
(網巾)쓰고 풍잠 붙이고 그 위에 갓을 썼으니 훨씬 예의 바르고 멋을 부린 것으로 일본 상투
존마게(ちょんまげ) 보다 한국 상투가 훨씬 세련되고 품위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단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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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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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희은이 | 작성시간 24.08.19 상투와 존마개 그 나라의 오래된 문화를 이 글로서 많이 배웁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19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마중 고맙습니다
  • 작성자윤슬. | 작성시간 24.08.19
    지금도 머리에 상투를
    틀고 살아간다면
    진짜로 머리가 이가
    있을 것 같긴 하네요
    바리깡이 잘 들어왔지
    머리감기도 힘들고
    샴푸값도 마니 들고..
    ㅋㅋㅋ
  • 작성자오개 | 작성시간 24.08.20 좃마게가 일본 상투엿군요
    많이 배웁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8.20 선배님 여여 하시죠?
    귀한걸음 따봉입니다 ㅎ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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