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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파(後期印象派) 고흐전을 관람하고

작성자마초|작성시간24.09.29|조회수173 목록 댓글 11

오래전.

예술의 전당에서 반고흐 작품전(作品展)을 마누라와 함께 감상했다 후기인

상파(後期印象派) 고흐전에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흐르는 물결처럼 느리게

감상한다 눈빛이 이글거리는 다양한 자화상(自畵像)이 눈을 사로잡는다.

 

37세,

권총으로 자살하기까지 가난하게 살았던 고흐의 작품이 사후에 크게 빛났다.

전시회에서 고흐 정신세계 (精神世界)의 열정을 자세히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감동을 준 작품 가운데 “탕귀영감” 초상에 발길이 머문다.  

 

일본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키면서 조선의 도공들을 무수히 잡아갔다. 일본이

조선으로 부터 도자기(陶瓷器)기술을 얻고 나서부터 유럽에 도자기(陶瓷器)

를 수출 하는데 도자기 (陶瓷器) 는 서로 부딪치면 깨지니까 종이로 도자기를

포장을 했다.

 

그때,

포장했던 종이가 일본의 다색판화(多色版畵)를 찍어낸 종이였다. 색체가 곱

고 아름다운 우키요에 그림을 보고 서양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유럽에서 우

키요에 그림이 도자기 (陶瓷器)보다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상술에,

도가 트인 일본사람이 나중에 도자기(陶瓷器) 값 외에 포장지 값을 별도로

챙겼다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우키요에를 보고 고흐를 비롯해서 마네 모네

같은 인상파 (印象派)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고흐는,

많은 우키요에를 수집하고 우키요에 대해 애정이 있었다. 무채색(無彩色)의

어두운 그림을 그리던 그가 화려한 색감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탕귀

영감의 초상의 뒤 배경에는 총 7점의 우키요에가 등장하고 있다.

 

~단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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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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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마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29 new 겸손(謙遜)이 지나치시는군요
    예술이란 분명 기교 이전에...
    자신의 심연에서 길어 올리는 짙은
    감동의 샘이라고.
    지금 님이 가져오신 글재에서 그
    감동을 길어 올렸습니다
    감사드리며 오늘도 굿럭으로요
  • 작성자작주 | 작성시간 24.09.29 new ㅎㅎ
    귀짤린 이유는 편지를 주고 받은 동생 테오 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네요
    고흐의 귀 짤린 이유 마초님의 기발한 생각 그럴듯 해요
    짤린 귀를 동네 '레이첼' 이라는 매춘부 에게 주었다는 얘기 있지요

  • 답댓글 작성자마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29 new 아항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ㅎㅎ
    마초의 기발한 생각이 아니고 미천한
    소인배(小人輩)의 헛소리라 생각 하십시오 ㅎㅎ
    그래서 오늘도 선배님 덕택으로
    격조(格調) 높은 고견(高見)을 얻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단결~!
  • 작성자희은이 | 작성시간 24.09.29 new 가슴을 울리는 화가 반 고흐 스토리
    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서 글을 필독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 못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저는 고흐가 이렇게 기초 데생을 열심히 하고
    기초가 튼튼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반 고흐의 비극적안 죽음은 어쩌면 반대로
    예술은 고독하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멋진 예술작품 즐감하고 갑니다
    마초님 항상 건 행하십시오~^^

  • 답댓글 작성자마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9.29 new 그래요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아쉽지만 반 고흐는
    생전에 84달러어치밖에자신의 그림을 팔지 못했다니,
    그 궁핍함은 뻔한 사실.고흐의 열정이 새삼스레
    생각나지요 고흐의 불같은 정열의 감성 자연을 무척
    사랑했으며 그 열정은 참으로 대단하지요 그런 고집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예술인들의 그를 사랑하지 않았겠지요
    실감이 나는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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