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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처녀와 총각이ㅡ탑을 돌다가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되다

작성자임진강|작성시간26.06.14|조회수57 목록 댓글 2

경주 황성공원

김유신 장군 동상

동리 김시종 선생의 문학동산

 

황성공원에는 세계적인 문인의 반열에 오른 박목월, 김동리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념한

 

목월의 송아지 노래비, 동리 김시종 선생의 문학동산 기념 현대문학 표징이 자리하고 있다.

 

이 밖에 목양 오세재 선생 문학비, 이경록 시비 등이 있다 

1960년대의 안압지(월지)에 있었던 호림정

 

앞에 보이는 정자는 신라 때의 임해전이 아니라 1920년경 경주 유림들에 의해 

 

 임의로 세워진 건물로 현재 황성공원으로 옮기고 호림정(虎林亭)이라 한다

호림정

동궁 월지(안압지)에서 옮겨온 호림정

 

옛날 신라 서울의 주변은 무성한 숲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서쪽에는 남정숲이 있었고,남쪽에는 흥륜사로 유명한 천경림이 있었다.

 

동쪽에는 남천왕사로 이름난 신유림이 있었고, 북쪽에는 호원사로 이름난 논호림(지금 고성숲)과

 

유림숲이 무성하게 울을 치고 있었다. 논호림과 유림 숲은 특히 울창하여 새들과 짐승들이 많이 서식했으므로

 

임금과 귀족들은 이 숲에서 사냥을 즐기는 일이 많았다

경주 황성공원은 신라시대 때는 왕들의 사냥터이자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궁도장이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전(傳) 호원사지

 

삼국유사 권 제 5의 효선(孝善)편에 실린 김현과 호랑이 김현감호조(金現感虎條)

 

신라 원성왕 때에 매년 2월이 되면 8일부터 15일까지 연8일 동안 남녀가 모여 복을 빌기 위하여 흥륜사의

 

전탑을 도는 복회가 있었다. 이때, 김현이 복회에 참석했다가 염불을 하며 따라도는 한 처녀를 만났다

 

,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정을 통한 뒤 처녀의 집으로 갔다. 그 처녀집 주인노파는 김현을 보고

 

삼호가 해칠 것을 염려하여 김현을 숨겨두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 호랑이 세 마리가 나타나 사람 냄새를 맡고 어흥거리며 김현을 찾았다.

 

이때,, 하늘에서 삼호가 즐겨 사람의 생명을 많이 해치므로 한 마리를 죽여

 

징계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삼호가 매우 근심하자 처녀는 자기가 대신 하늘의 벌을 받겠다고

 

하니 삼호는 즐거워하며 모두 달아나버렸다. 그 뒤 처녀는 김현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비록 그대와 유가

 

다르지만 이미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이제 내가 한 집안의 재앙을 막기위하여 대신 죽고자 하는데,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그대의 칼에 죽어 은덕을 보답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김현설화>는 호랑이가 처녀로 변신하여 김현과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 자기의 세 형을 살리고

 

국가의 어지러움을 없애며, 김현을 출세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살신성인을 그 주제로 하고 있다.  

호랑이에서 인간으로 변신한 여인은 스스로 목숨을 던져서 성 안에 들어온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막는다. 김현은 그 아름다운 마음에 감화를 받아 절을 짓고 좋은 업보를 이어 나간다. 이 설화를

 

<삼국유사>에 옮긴 것은 승려 일연이었다. 자비로운 마음가짐으로 부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불교적인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불교의 교리에서 벗어나 인간 자체의 아름다운

 

인연과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탑과 절에 쓰였던 석재들이 흩어져 있고  일부 석재가 공원 내 민가의 장독대로 쓰이고 있다

해월 최시형

 

경주를 찿는 여행객들은 뜻밖의 곳에서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 동상을

 

이곳에 만나게 된다면 의아해 할 것이다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가 경주 현곡 사람이라면 2대교주 해월 최시형 또한  경주 황오동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알고 있는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교육과 계몽운동에 큰 기여를 한 소파 방정환이

 

3대교주 손병희의 사위였다

전(傳) 경주 간묘

(경상북도 기념물 제 31호) 경주 간묘

 

<삼국사기 열전 김후직전(金厚稷傳)>

 

김후직은 26대 진평왕 때의 사람으로 22대 지증왕의 종손이니 진평왕과는 가까운 7촌 숙으로 진지왕이 정치를

 

잘못하여 왕위에 있었는지 4년 만에 왕위에서  추방되자 그 뒤를 이은 진평왕으로서는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

 

백성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데 진평왕이 사냥을 너무 좋아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자

 

당시 병부령(국방부장관)이였던 김후직은 사냥을 누차 만류했으나 왕이 듣지 않자 병으로 죽을 무렵

 

세 아들에게 신하로서 왕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죽게 되니

 

왕이 사냥 다니는 길가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왕은 많은 사냥꾼을 거느리고, 노호수(황성공원)의

 

서쪽에 있는 상림원이란 수렵장으로 사냥을 떠났다.  이때 바람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지마소서

 

가지마소서 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물어보니 김후직의 묘에서 나는 소리다고 한다

 

이에 진평왕은 크게 뉘우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다시는 사냥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그리하여 이 묘를 간묘(諫墓)라고 명명되었다

 

<간묘 즉 김후직묘는 황성공원 건너편에 있으나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황성공원 안에 포함 시켰습니다>

현재 묘 앞의 비는 숙종1710년 경주 부윤 남치훈이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묘제는 횡혈식석실분이다

 

김후직의 묘를 현재의 장소로 비정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 이 일대의

 

숲인 고양수와 관련이 있다 즉 당시 경주 사람들은 이곳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진평왕의 사냥터와 김후직에 관한 전설이 서린 곳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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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영 | 작성시간 26.06.15 경주 여행가면 도움이 많이 되겠어요
    역사 문화 해설을 읽으면서 보았어요
  • 답댓글 작성자임진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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