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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다시 보기 (퍼온 글)

작성자다니엘|작성시간00.10.29|조회수976 목록 댓글 0
* 웹진 [씨네버스]에서 일본영화 소식 코너를 맡고 계시는 문주선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일본영화에 관심있는 식구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일본영화 키타노 다케시의 <하나-비>가 한국의 문호를 연지 햇수로 3년째다. 지금까지 <하나-비> <카게무샤> <우나기> <나라야마부시코> <러브레터> <사무라이픽션> <쉘 위 댄스> 등이 개봉되었다. 일본영화 개방에 대한 초반의 기대와는 달리 초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하였다. 이는 첫 번째, 너무 예술적이었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고, 두 번째 시대적 감각이 떨어지는 영화들뿐이었으며, 일본영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거부감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러브레터>와 <사무라이 픽션> 그리고 <쉘 위 댄스>의 개봉 이후 지금까지 일본영화에 대한 분석과 흥행부진에 대한 '핑계'는 볼 필요 없는 정크메일일 뿐이다. 왜냐하면 <러브레터>와 <쉘 위 댄스>는 ①'예술적'과는 거리가 먼 엄연한 상업영화이고 ②95년 또는 97년 영화로서 현재 일본에서 최고 인기를 구사하는 야쿠쇼 쿠지,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사카이 미키, 다카하바라 타카시 등이 출연한 가장 최근작들이었으며 ③불법 복제 테입 30만개(<러브레터>의 경우)라는 엄청난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을 만큼 일본 영화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지금이야말로 일본 영화에 대한 좀 더 철저한 데이터적 접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수입업자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던 <러브레터>와 <쉘 위 댄스>마저 개봉했으니. 그렇다면 일본영화의 데이터베이스는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봐야 할 일이다. 이런 시점에서 본 글은 시작한다. 1.90년대 흥행영화분석 90년대 들어서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95년 이후의 영화들의 흥행성적이 거대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일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와 한국도 마찬가지로 매년 흥행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것은 영화 자체 파워의 증폭이 아니라 물가의 상승과 여가 인구의 증가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런 이유는 별도로 하고 영화자체에 관한 얘기부터 해보자. (1)애니메이션 천하 90년대 후반의 일본영화계는 애니메이션 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해 애니메이션이 벌어들이는 극장수익은 극영화를 훨씬 상회한다. <타이타닉>의 기록에 가장 근접한 영화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이다. 그리고 <도라에몽> <포켓몬스터> <김전일소년 사건부> <명탐정 코난> <짱구는 못말려>의 시리즈물들이 매해 흥행성적 베스트 10에 들고 있다. 이는 <남자는 괴로워>시리즈가 일본인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처럼 일본특색의 시리즈물 유행이 극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옮아간 것이 아닌가 한다.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아동용으로 취급당하는 괴수영화들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고지라> <가메라> 그리고 <고지라>에서 독립성장한 <모스라> 등이 좋은 예이다. (2)공포물의 유행 90년대가 세기말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서인지 일본영화의 90년대 후반은 애니메이션 이외에 공포영화가 제법 유행하였다. 물론 공포영화가 90년대 급작스럽게 나타난 신종장르는 아니지만 <학교 괴담>이나 <링>이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OV용 공포영화의 양산을 가져왔다. 90년대 일본영화의 특징중의 하나로 공포를 손꼽으며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영화와도 조금은 연결선을 긋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학교의 무서운 이야기를 소재로 <여고괴담>이 만들어졌으며 일본 <링>을 그대로 베껴 만든 <링 바이러스>는 그 원전보다 한국영화가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부분은 아닌 듯 싶다. 그리고 조금은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고지라>의 원형을 복사한 <용가리> 역시 일본 괴수공포영화의 뒤를 잇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들을 통틀어 볼 때 할리우드의 틴에이져 호러무비의 부활(<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로부터 시작한 세기말 증후군은 일본 공포영화계를 거쳐 한국 땅에 상륙했다고 볼 수 있다. (3)세대교체 시대 이른바 일본 3대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의 이름을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특색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오구리 너헤이나 키타노 다케시, 이마무라 쇼헤이 등도 흥행전선에선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99년 오시마 나기사가 <고핫토>로 돌아오긴 했으나 작업당시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어 앞으로의 작품활동은 그리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더 이상 일본영화를 만들 수 없으며 80년대와 90년대 날카로운 사회비판으로 사랑을 받았던 이타미 주조 감독도 몇 해 전 스캔들을 견디지 못해 자살할 바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일본영화의 대명사처럼 돼버린 <남자는 괴로워>도 주인공의 사망으로 인해 더 이상 제작이 어려운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영상세대 주자로 떠오른 구로자와 기요시(<큐어>), 츠카모토 신야(<쌍생아>), 이와이 슈운지(<러브레터>, 카와세 나오미(<수자쿠>) 등에 기대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주목할 만한 일본영화감독 (1)키타노 다케시(北野 武) 역시 한국 개방의 테이프를 끊은 그답게 키타노 다케시는 90년대 일본 영화의 중심이다. 출신이 어떠하든 먼길을 돌고 돌아 현재는 일본 영화판의 중심에 서 있다. 그것에 관한 근거로 <하나-비>의 국제 영화제 수상을 들 수 있지만 그의 90년대의 행적은 과히 거장 감독에 맞먹는 수준이다. 90년 <3-48×10月>은 물론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91) <소나티네>(93) <모두 하고 있나?>(95) <키즈 리턴>(96)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해 왔고, 그 결과 98년 <하나-비>를 대성공시켰다. 그는 이 영화로 '세계의 다케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90년대를 마무리하는 99년 <키쿠지로의 여름> 역시 칸느에서 연일 화제였으며 일본 자국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어 '코미디언' 키타노 영화에 대한 세간의 삐딱한 시선은 어느 정도 사라졌음이 확인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키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지금까지의 데이터는 물론 앞으로의 행보 또한 더욱 기대를 하게 한다. (2)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 그의 이름을 한국에 알린 것은 일본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한 <실락원>이다. 와타나베 쥰이치(渡邊淳一 )의 초베스트셀러라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실락원 현상'을 일으킬만큼 영화 <실락원>은 영화자체로도 대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가치는 '히트감독'이라는 명함보다 '변신의 귀재'라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80년대 아이돌 영화 <보이스 앤 걸스>와 로망 포르노 <엄청난 소문의 스트립퍼> 그리고 홈드라마 <가족 게임> 그리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베스트 셀러 <키친>까지. 한번도 비슷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는 점이 그의 데이터뱅크를 풍부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더욱 그를 주목하게 만드는 90년대의 영화들이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쥬'라 평가받는 <맛있는 결혼>(91)과 환타지 영화 <미래의 상상 라스트크리스마스>로 90년대를 시작하였다. 매년 한 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던 그가 급작스럽게 영화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4년간의 공백 끝에 다시 영화판에 돌아온 그가 선보인 영화는 컴퓨터 통신 연애 드라마 <하루>(96)(<접속>의 표절시비로 문제가 된 바로 그 영화)였다. 그리고 메가 히트 <실락원>(97). 지난해에는 법정 스릴러 <형법 제39조>를 선보이는 등 아직도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3)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그의 경우 한국영화 잡지에는 그리 '크게'보도된 적은 없으나 90년대 후반, 가장 일본적인 즉 가장 일본의 현실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인디언 써머>(79)의 데뷔작부터 89년의 <건헤드>까지 '사회적 반발'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내왔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 비디오용 영화(OV)의 제작으로 눈을 돌려 <터프>시리즈(90년~ 92년)를 제작했다. 그후 그는 이들의 후일담을 그린 <페인던트 디저트>로 다시 극장용 영화로 돌아왔다. 그 때부터 일본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하라다 마사토는 95년부터 일본사회의 현실을 담기 시작했다. <카미카제 택시>(95) <바운스 코갸루>(97) 그리고 <금융부식열도(주박)>(99)가 그의 대표적인 90년대 후반의 작품이다. 일본인과 외국인의 갈등을 다룬 야쿠쇼 코지 주연의 <카미카제 택시>와 세계인이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고생의 원조교제에 관한 게릴라식 영상버전 <바운스 코갸루>, 그리고 후지은행과 다이이치칸교 은행의 합병, 스미토모와 사쿠라 은행의 합병 등 세계 최대규모의 은행과 부실은행의 이중선상에 서 있는 일본 금융업계의 비리와 부조리를 다룬 <금융부식열도>까지, 그의 영화적 공통점은 일본 현상에 대한 제3자적 입장(미국에서 공부했고 미국적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을 취하고 있었다는 점과 일본 최고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와 자주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등이 그가 관심을 받는 이유이다. (4)그 밖에 90년대 일본 영화계를 가로지르고 있는 감독도 수없이 많지만 단발성이 아닌 계속해서 좋은 영화, 화제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감독도 많다. <러브레터>와 <스왈로우 테일>로 일약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화감독이 되어 버린 이와이 슈운지. 한국 씨네마떼크의 필견영화 중의 하나인 <비밀의 화원>의 야구치 시노부, 일본영화광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철남>의 츠카모토 신야(그의 99년 신작 <쌍생아>는 부산영화제에서 관객상수상), 일본, 미국에서 모두 흥행에 성공해 일본 영화의 이미지를 한 차원 높인 <쉘 위 댄스>의 슈오 마사유키, <최면>(97) 등 심리 스릴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구로자와 기요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로 한국에는 재일동포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사이 요우이치(한국 이름 최양일), 천재와 가장 주목받는 신세대 감독과 영화도 아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아주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사부, 우리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영화 <링>의 나카다 히데오(그의 99년 신작 <가라스의 뇌>는 도쿄 국제영화제 출품),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그 유명한 안노 히데야키(단 극영화로는 <러브 앤 팝>뿐이라는 게 가장 큰 약점) 등이 주목받는 일본의 90년대 감독군이다. 3.일본영화산업에 관한 분석 (1)TV방송국과 영화 1955년에 창당되었던 자민당이 94년까지 무려 40년 동안이나 1당 여권 체제를 유지해왔던 일본답게 영화계 역시 몇 개의 메이저급 영화사들에 의해 움직여왔다. 그 중에서 토에이(東映), 토호(東拱), 쇼치쿠(松竹), 그리고 닛카츠(日活)는 일본의 4대 메이저 영화사로 불려왔다. 그러나 자민당이 집권에 실패하고 사회당에 넘겨주었다가 다시 자유당과 공명당과 연합해 '자자공'을 만들려고 했던 것처럼 일본의 4대 메이저 영화사도 해처모였다가 다시 해체하기를 거듭했다. 그 결과 현재는 토에이, 토호, 쇼치쿠만이 메이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닛카츠는 '로망 포르노의 명가'라는 수식어만 남긴 채 메이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물론 토에이도 영화쪽에서는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애니메이션과 배급사업에 더욱 열중이다. 그리고 쇼치쿠 역시 방화관 시스템을 포기하고 외화수입에 주력하고 있다. 그래서 90년대 일본 영화계에서 이들 메이저 영화사보다 더 관객동원력을 가진 곳이 바로 TV방송국이다. 즉 메이저 영화사들은 자체의 제작 영화 보다 TV드라마를 영화화하거나 방송국과 손을 잡고 공동제작에 참여하거나 방송국 제작 영화를 보유하고 있는 극장망을 통해 배급하는 형식으로 체중유지를 하고 있다. 일본의 TV 방송국으로는 NHK, 니혼(日本)텔레비전, TBS, 후지 텔레비전, 아사히 텔레비전, TV-TOKYO(관동지방 중심)가 있는데, 이들 중에서 특히 영화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곳은 후지 텔레비전과 니혼텔레비전이다. 산케이 신문계열인 후지텔레비전은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를 비롯, 일본 역대 흥행기록 3위를 기록한 <춤추는 대수사선>, 일본의 유명 시사만화를 영화화한 <나니와 금융도3> 등을 제작했다. 특히 후지 텔레비전은 '포니캐넌'을 영화사업 또는 미디어 사업의 첨병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요미우리 신문계열인 니혼 텔레비전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판권을 갖고 있으며, <쉘 위 댄스>의 제작에 참여했다. 즉, 90년대 일본 영화계에 있어서 흥행 작품의 뒷편에 TV방송국이 서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렇게 공중파 방송국이 영화제작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영화가 가져다주는 파생효과 때문이다. 드라마의 인기를 통해 제작비를 마련하는데 조금 수월하고(광고, 협찬, 섭외), TV방영에 대한 기득권이 있으며 비디오 판매의 수익까지도 짭짤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영화배우가 TV 탤런트를 겸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캐스팅의 열쇠를 방송국이 잡고 있기 때문에 섭외의 용이성을 때문이라도 방송국의 영화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2)극장 시스템 일본의 극장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도 다시 한번 메이저 영화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일본 영화사와 극장이 결합되어 있는 특이한 시스템을 몇 십년 동안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토에이, 토호, 쇼치쿠 영화사 경우, 독자적으로 극장을 소유, 운영하고 있다. 토에이 경우는 직영, 준직영 극장 약 70관으로 전국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토호 역시 120여개관의 극장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실, 우리처럼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각각 자국영화상영을 위한 방화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방화관과 외화관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만큼 일본영화의 제작수나 흥행영화의 형편이 좋지 않다는 점을 시사하는 바이며, 또하나 '씨네마 콤플렉스' 또는 '멀티플렉스'의 등장이 가져다 준 일본 영화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워너 브라더스와 일본의 마이칼 그룹이 합작해 만든 '워너 마이칼'과 AMC, UCI 등의 멀티플렉스들이 극장문화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도쿄중심지역까지는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아직 수치적인 측면에서는 미비하지만, 만약 시부야나 신주쿠 지역에 멀티플렉스가 설치될 경우 일본의 극장 문화 또는 제작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메이저 영화사들도 자신들의 극장을 통한 배급망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제작편수가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가 일본에서 인기상종가를 달리는 이유는 영화를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쾌적한 상영공간, 편리한 교통, 다양한 프로그램 선택 등 우리나라에서 CGV가 성공한 이유와 같다. 사실 기존의 일본 영화관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앞에 큰 사람이 앉으면 보이지 않는다'거나 '소리가 찌그러진다'거나 '의자가 불편하다'거나 '예약 시스템이 불편하다' 등의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티플렉스의 탄생은 영화티켓의 전산처리, 사운드 시스템의 보강, 실내구조의 변화 등을 가져왔으며, TV 방송국과 함께 일본의 영화산업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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