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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두 편 - 액트 오브 킬링 / 침묵의 시선

작성자여국현|작성시간18.05.06|조회수358 목록 댓글 0

맹목의 이데올로기 아래 무자비하게 자행된 폭력. 그 앞에 민낯으로 마주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스스로를, 서로를, 그리고 폭력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

아무런 후회도 죄책감도 없이 낄낄거리며 무수한 사람들을 살해한 자신의 폭력을 자랑하듯 재현하며 여전히 사회적 지배자로 군림하는 가해자들, 과거에 대한 진실과 폭력 행위에 대한 진정어린 한마디의 사과와 후회의 기색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가해자들을 찾아가지만 지난 일을 굳이 들춰서 뭐하려고 하느냐며 면전에서 뻔뻔하게 협박까지 하는 너무도 당당한 가해자들 앞에서 여전히 자신을 숨겨야만 하는 희생자의 가족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연작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 [침묵의 시선]은 그렇게 폭력을 매개로 서로 마주보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통해 인간 내면의 끔찍한 폭력성과 이데올로기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무자비한 학살의 역사를 현재로 끌어온다.

1965년 인도네시아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독재 정권의 비호와 지휘 아래 “프리맨”이라는 민간 무장세력들이 공산당이라는 딱지를 붙여 100만 명 가까운 반체제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학살한다.

[액트 오브 킬링]은 그 일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오펜하이머 감독의 제안에 따라 자신들의 당시 행위를 영상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당시의 실제 현장에서 끔찍한 학살 장면을 자랑스럽게 재현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영웅적인 일이었다고 주장하는 그들에게서는 어떤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며 이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행위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재현 장면을 담은 자신들의 연기를 아니 당신의 상황을 비디오로 확인하면서 어느 순간 더이상 계속 할 수 없다고 외면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가해자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여전히 그들은 완벽한 고증까지 해가며 자신들의 무자비한 고문과 학살을 후손들이 기억해야 하는 영웅적인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인도네시아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존재하는 학살행위의 가해자들과 그런 그들의 민낯을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과 하나된 감독의 앵글, 그 속에서 “학살행위”는 과거의행위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상황으로 생생하다.

[침묵의 시선]은 그 당시 학살 과정이 유일하게 목격된 피해자 람리의 동생인 안경사 아디가 형 람리를 살해한 이들을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담고 있다. 형을 살해한 자들이 자랑스러운 영웅담을 이야기 하듯 현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동작까지 취해가며 재현하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말없이 지켜보는 아디. 그는 형의 학살에 가담한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만나지만 누구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쓸데 없이 과거를 끄집어내 분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어디를 비난하며 드러내놓고 위협까지 하는 그들.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상류계층이자 정치적 실권자로 군림하는 그들 앞에서 부당한 학살의 피해자인 아디와 가족들이 신분을 숨기고 숨어야 하는 현실.

2015년 8월 내한한 오펜하이머 감독은 피해자인 아디가 가해자를 직접 대면하는 것에 대해 아디의 신변이 매우 위험해질 것을 우려하여 반대했으나, 주인공인 아디는 자신이 직접 찍은 장면, 아디의 아버지가 본인의 집에서 여기가 어디냐며 공포에 빠지는 장면과 함께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화해해야한다"며 오히려 오펜하이머 감독을 설득했다고 한다.

직접 가해 당사자였던 아버지는 죽고 아들 둘과 어머니만 지내는 학살 당사자의 가정은 오펜하이머 감독과 3달 간 함께 지냈는데, 아버지가 생존 당시 학살에 관해 집필한 책을 바탕으로 오펜하이머 감독에게 극을 꾸며보자고 할 정도로 당시 학살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나오듯 피해자인 아디가 방문했을때는 전혀 모른다는 태도로 돌변하여 오펜하이머 감독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 학살자의 아들은 경찰을 불러 아디와 촬영진은 급하게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오펜하이머 감독은 이에 대해 "피해자인 아디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게 되면 그들이 살해한 그의 형도 자연스레 하나의 인격체였음을 깨닫게되어 자신들의 과거를 포장해온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라 밝혔다.([다음] 영화정보에서 인용).

영화 상영을 두고 정부의 엄청난 방해가 있었지만 결국 대통령까지 관람하면서 1965년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되었던 비극적 학살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인도네시아 학교에서 현대사 과목의 보조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침묵의 시선]은 전작 [액크 오브 킬링]과 함께 이데올로기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고 현재까지 존재하는 집단적이고 무자비한 맹목적 폭력에 대한 현재의 냉철한 시선을 담고 있다.

4.3 제주항쟁을 포함하여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도 않고 가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적 폭력의 과거를 지닌 우리에게 이 두 다큐멘터리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속 실제 가해자 앙와르 콩고와 피해자 아디는 지금 여기에도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여전히 건재한 채 자서전을 통해 뻔뻔한 주장을 하고 있는 전두환, 가슴아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민주화 운동의 주체들과 그 가족들.

곧 다시 5.18이다. 관련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도 5월 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억은 중요하다. 정당하고 확실한 청산과 처벌은 더 중요하다. 끔찍한 폭력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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