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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소평-책ㅁ

임보, <청산무> (도사출판움, 2020)

작성자여국현|작성시간20.06.29|조회수132 목록 댓글 0

임보, <청산무> (도사출판움, 2020)

출판기념회 겸 낭송회.
먼저 임보 시인의 시집을 펼친다.

모든 부분에서 어느 경지에 이르면 가벼워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수는 경직되고 고수는 부드럽다.
시 쓰는 일도 그리 되는가보다.

"한평생 시와 부대끼다보니 이젠 시와 겨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내 시는 흥청거린다고나 할까? 자유분방, 아니 건방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시에서 흥겨움을 느낄 수 있다면 함께 춤을 춰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임보, 머리의 말)


모든 시들이 그러하지만 그런 시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시가 있다. 표제작 "청산무靑山舞"다.


푸른 산 속 개울가 큰 너럭바위 위에
휘청거리며 움직이는 한 사람이 있네

짚신에 누더기 걸친 백발의 늙은이
한 손엔 청려장 또 한 손엔 호리병

불그레한 얼굴에 들썩이는 어깨
흔들리는 품새로 보아 춤을 추나 보네

앞으로 몇 걸음 다시 뒤로 몇 걸음
좌로 몇 발짝 우로 또 몇 발짝

넘어질 듯 일어서고 쓰러질 듯 살아나고
호리병에 매달렸다 지팡이에 의지했다

밀고 당기며 끊어질 둣 이어지는
느리게 뒤뚱대는 게으름뱅이 춤사위

청려장의 장무杖舞요 호리병의 병무瓶舞로세
근심 떨친 무애무요 불로장생 선무로다

개울물의 현금소리 딱따구리 비파소리
청설모도 들썩이고 청노루도 껑충이고

흰구름도 너울너울 청솔가지도 휘청휘청
얼씨구나, 온 청산이 신명난 춤판일세.

--시는 청려장(명아줏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호리병을 든 채 한 잔 술을 걸치고 덩기덩기 춤을 추는 '백발의 늙은이'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푸른 산 개울가 커다란 너럭바위 위라니, 그냥 그대로 신선 아닌가. 무슨 춤인들 어떤가. 지팡이 흔드니 장무요, 호리병 돌리면 병무라. 근심 걱정 다 버린 그 춤, 신선무 아니고 무엇일까. 게으름이란 세속의 잣대는 유유자적을 짐짓 달리 부르는 이름일 뿐.

시가 시인의 욕망의 표현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울 바 없는 일. 시인 임보의 욕망이 낳은 춤추는 노인은 그의 욕망의 실현일 터.

욕망은 강렬함과 함께 아픔을 수반한다. 이루어지지 못할 욕망이라면 더욱 고통스러운 일. 그래서 가끔 욕망의 시는 원하나 이루어지지 못할 고통으로 아프다. 욕망과 좌절의 명암이 담겨있는 까닭. 하지만 이 시의 화자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고통보다는 희열이 넘친다. 자신을 노인과 동일시 하는 느낌이 가득하다. 노인의 세계가 곧 바라보는 그의 세계다. 욕망과 현실의 하나됨. 그게 가능한 일일까.

똑같이 춤추는 같은 노인이 떠오른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호숫가의 워즈워스 또한 저리 춤추었다. 하늘을 떠도는 한 조각 구름처럼, 호숫가에서 춤추는 수선화처럼. 하지만 그는 수선화 곁으로 가서 춤추지 않았다. 그에게 수선화가 있고 없고 중요하지 않다. 그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수선화만 있으면 된다. 자연과 하나되어 추는 춤이긴 하나 자연은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상상 속에 존재한다. 그는 자연을 자신의 상상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것으로 품었다. 상상의 힘은 강하나 자연은 그의 상상 속에서 역설적으로 사라진다. 객관적 대상에서 주관적 상상 속 무존재로 사라진다. 프로스트는 절대 머물 수 없는 자연은 워즈워스의 상상 속에서 무화된다. 그 둘에게 자연과 인간은 언제나 따로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다.

시인 임보의 자연이 그들과 다른 지점이다. 시의 마지막 두 연에서 땅과 하늘의 자연 대상들과 청산마저 노인의 춤판에 하나될 때 화자 또한 그 춤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화자는 시 속 늙은이와 하나 되고, 자연은 그들과 하나 되어 있다. 시인 임보의 욕망은 자연을 자신의 주관 속으로 끌어들여 품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자연 속으로 걸어들어가 자연이 된다. 그러나 그도 자연도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무화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은 따로 또 같이 하나인 것이다. 시인 임보, 그가 꿈꾸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긴 걸음의 끝에 그가 가고 있는 세상, 거기서 우리는 청산과 함께 춤추는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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