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간다, 그곳에 새로운 삶이 있다 - 문명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한 도시인들에 관한 책, 월든, 소로우, 마스다 미리, 여우숲 생태학교, 차페크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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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다, 그곳에 새로운 삶이 있다
- 문명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한 도시인들에 관한 책
그림 1. 숲으로 난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름의 도시는 불쾌지수가 높은 공간입니다. 건물내부에선 에어콘 덕분에 그나마 시원하지만 거리는 차와 건물에서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지글지글 끓고 있는 가마솥과 다를 게 없습니다. 도시의 열을 식히기에 가로수나 공원의 나무들로는 힘이 부칩니다. 가까운 산을 찾아가 숲 속으로 한 발 들여놓는 순간, 온도 차가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맑은 공기 속에서 머리는 상쾌해지고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이마에 솟아오른 땀이 식으며 시원해집니다. 숲을 밀어내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싸인 도시를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살기 편해지고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꽤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도시의 삶에 지쳤을 때, 경쟁에 밀리고 점점 거세지는 자본의 위력에 눌리고, 진심을 나눌 시간이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인간관계에 실망했을 때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꿈꿉니다. 자연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은 결국 귀농을 포기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나, 여러 가지 불편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도시로 돌아온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숲으로 간 사람들은 문명사회와 거리두기를 하면서 어떤 성찰을 얻었을까요? 묵묵하게 비바람과 뜨겁고 추운 계절의 변화를 이겨내며 다른 생명들을 보듬어 안는 숲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위안을 얻었을까요?
1. 월든 - 21세기에 더욱 환영받는 소로우의 문명 탈출기
그림 2.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이미지 클릭 시 디브러리 소장정보 연결)
월든은 미국 매서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호수입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 아름다운 호수 근처에 집을 짓고 2년 2개월여를 혼자 살았습니다. 그는 하루의 몇 시간만 생활에 꼭 필요한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월든 호수와 숲 속을 산책하고 독서와 글쓰기로 보냈습니다. 가까운 이웃과도 1마일(1.6km)떨어진 외딴 집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배제한 가볍고 단순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림 3. 헨리 데이빗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초상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림 4. 월든 호수 근처에 세워진 소로우의 글귀가 적힌 푯말
도시에서 살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돈을 버는데 씁니다. 그렇게 번 돈은 갖고 싶은 물건을 사고 노후의 안정을 위해 저축합니다. 그러나 갖고 싶은 물건이란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이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필요하게 된 것들입니다. 넓은 평수의 집, 비싼 차, 명품 옷과 가방, 유행을 따르는 온갖 소비재들, 즉 사람들에게 멋지고 근사하게 보이기 위한 장식품들인 거죠. 60이 넘은 뒤의 편안한 삶을 위해 현재의 대부분을 인간적인 만족이나 여유를 포기하고 돈 버는 기계와 다름없이 산다면 그건 또 얼마나 모순일까요?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 당시 내가 생활했던 것처럼 소박하게 산다면 절도나 강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일부 사람들이 충분한 정도 이상의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데 반하여 다른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도 갖지 못한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할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것들을 사 모으느라 현재의 삶을 삭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틈없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도시의 삶이 사람들에게서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한번 궤도를 벗어나면 경쟁에서 도태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각을 방해합니다.
그림 5. 월든 호숫가에 세워진 소로우의 동상과 똑같이 만들어 놓은 소로우의 집
소로우가 월든 숲 속으로 들어갔던 시기는 미국이 한창 상업으로 부를 얻고 자본을 형성해가던 시기였습니다. 화려한 물질적 성장의 뒷면에는 흑인 노예를 억압하고 전쟁을 벌여 멕시코 땅을 뺏어버리는 야만성이 숨어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살 결심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득권의 삶을 포기하고 숲속 생활을 선택한 29살의 청년 소로우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것도 그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틈틈이 숲 속 생활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강연을 했고, 직접 만나 들려주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책을 썼습니다. 사람들은 소로우처럼 숲 속 생활을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그의 시도에서 얻은 성찰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문명에 걸림돌이 되고 쓸모 없게만 여겨지던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월든>은 소로우와 동시대 사람들보다 현대의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사람들이 19세기의 미국인보다 훨씬 물질이 지배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한 삶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가져도 물질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문명의 풍요와 편리함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텅 빈 것의 여유로움, 가진 것 없는 자유로움 속에서 삶의 만족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림 6.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작아서 놀란다는 월든 호수.
“밭에서 김을 매거나 글을 읽거나 쓰는 것으로 오전을 보낸 나는 다시 호숫물 속에 몸을 담그기가 일쑤였다. 운동 삼아 호수의 작은 만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헤엄쳐 건너면서 노동의 먼지를 몸에서 말끔히 씻어내고, 공부하면서 생긴 주름살을 모두 펴놓았다. 그런 다음 오후에는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소로우는 월든 숲 속 생활 중 가끔 마실을 나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듣곤 했습니다. 구둣방에 맡긴 구두를 찾으러 마을로 왔던 소로우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흑인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대한 항의로 세금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결국 소로우 몰래 친척이 세금을 대납해 줘서 풀려 나오기는 하지만 소로우는 국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를 시민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시민의 불복종>이란 책을 썼습니다. <월든>과 함께 19세기를 대표하는 저작이 된 이 책은 개인의 자유와 국가 권력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를 바꾼 책으로도 꼽힙니다.
2. 주말엔 숲으로 - 숲으로 간 프리랜서, 도시 친구들의 아지트를 만들다
그림 7.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자연을 가까이 하기 위해 통째로 삶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 속 주인공인 하야카와는 번역을 하는 30대 자유직 여성입니다. 하야카와가 전원생활을 결심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잡지에서 하는 독자 엽서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덜컥 하이브리드 승용차를 얻게 된 것입니다. 도쿄의 살인적인 물가로 프리랜서인 하야카와는 주차비용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된 상황에서 하야카와는 골칫덩어리 차를 물리기보다 땅값이 싼 시골로 집을 옮기기로 합니다. 매일 출근할 직장이 없고 혼자 몸인 하야카와니까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만화는 시골 생활을 시작한 하야카와와 그녀의 집으로 주말이면 놀러 오는 도시 친구들 두 명의 생활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출판사 경리인 마유미와 여행사 직원인 세이코입니다.
그림 8. 만화책에 나오는 장면처럼 실제로 호수에서 카누 타기를 하는 일본 여성들
하야카와는 시골에서 살지만 돈은 도시의 출판사와 연결된 번역일과 문화센터에서 기모노 입기 강의 등을 해서 법니다. 처음에 농사는 커녕 텃밭도 가꾸지 않던 그녀는 이웃 농부가 아이의 공부를 봐 주는 대신 텃밭을 만들어 주고 채소 심기와 기르는 법을 가르쳐 주자 조금씩 배워갑니다.
하야카와가 전원생활에서 얻는 즐거움과 깨달음은 주말 모임을 통해 도시에 사는 마유미와 세이코에게 전달됩니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겪는 갈등을 좀 더 쉽게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이죠. 도시의 친구들은 하야카와가 그리워하는 달콤한 케익과 초콜렛, 과자 등을 선물로 가져가고 하야카와는 친구들에게 편안한 하룻밤과 텃밭에서 기른 채소와 숲 속 산책, 호수에서 카누 타기 등의 경험을 선물합니다. 관계를 통해 우리가 이제 어느 한쪽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자연과 문명의 좋은 점들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 9. 마스다 미리의 그림체와 특징이 한 눈에 보이는 다른 작품의 표지
제목은 ‘평범하고 헐렁한 나의 작가생활’ 정도로 번역된다.
선으로 슥슥 그린 것 같은 가벼운 만화체와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는 술술 넘어가면서도 재미있습니다. 도시의 풍요로움이나 편리함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도 조금씩 자연 속에서 만족을 얻어가는 모습은 감동적이기도 하고요. 지금부터 당장 ‘주말엔 숲으로’를 실천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하야카와처럼 시골로 이사 간 친구가 없으시다고요? 꼭 친구집이 아니라도 찾아보면 주말 농장 프로그램이나 주말 산행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3. 숲에서 온 편지 – 여우 숲에 여우가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림 10. 『숲에서 온 편지』 김용규
(이미지 클릭 시 디브러리 소장정보 연결)
한 남자가 평화가 가득한 숲에서 삭막하고 어지러운 세상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그도 숲 밖의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본 경험이 있기에 사람들에게 뭔가 힘이 될 말을 해 주고 싶어서입니다.
“특별히 나의 편지는 받는 사람이 불안과 절망, 상처와 통증을 껴안고 살아가는 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나 역시 한때 겨울을 견디는 나무처럼 살아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봄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고 긴 그리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숲 생활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황토 흙으로 된 집을 직접 짓고 ‘백오산방’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선물 받은 한 쌍의 개에 산과 바다란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둘 사이에서 새끼를 낳아 바람소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개 세 마리와 함께 숲 속에 살며 그는 감나무, 토종 꿀 농사를 짓고, 숲의 생태에 대한 강의를 하러 다니고,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40이 넘어 시작한 새로운 삶은 경제적으로는 혹독한 시련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는 조금의 후회도 없이 그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이제 집 한쪽에 ‘자자산방’이란 손님방을 새로 짓고, 기금 후원과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우숲 생태학교를 꾸려갈 정도로 여유가 생겼고 숲 속 생활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숲에서 온 편지’는 숲으로 들어와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그가 숲 밖 세상에 내미는 친절한 배려이자 당당한 초대이기도 합니다.
그림 11. 여우 숲을 상징하는 표식.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가 귀엽다.
숲 속으로 들어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숲의 생태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를 하는 모습은 월든의 저자 소로우를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소개할 때 ‘한국의 월든’ 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는 벌써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첫 번째 책 <숲에게 길을 묻다>는 숲의 생태를 관찰하고 얻은 가르침을 썼습니다. 두 번째 책 <숲에서 온 편지>에는 숲 속 생활의 쉽지 않은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한 겨울 눈으로 길이 끊기고 기름이 떨어져 지게를 지고 먼 길을 걸어야 하는 생활의 불편함과 가족을 도시에 두고 온 외로움, 오래 살게 되면서 농촌도 도시와 다를 것 없는 사람 사는 곳이라는 깨달음 등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숲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에는 겨울이라는 시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여서 우리 삶에도 종종 겨울이라는 시간이 찾아 들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겨울이 찾아온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겨울을 맞았는데도 자신의 삶에 꽃이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고통이 거기에 있어요. 겨울을 맞아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고, 겨울이 온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나온 봄날처럼 여전히 꽃피기를 바라는데 우리의 불행이 있습니다.”
그림 12. 여우숲 생태학교와 백오산방의 배치도
그는 숲 밖 사람들이 놓치고 살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힘들어서 귀 막고 외면하려는 사실들을요. 도시의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자본과 권력의 논리를 그곳에서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벤처기업 CEO의 자리에서 촌부로 돌아가 증명해 보입니다.
충북 괴산 칠성면 사은리, 그가 만든 숲생태학교가 있는 여우숲에는 여우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우는 1960년대에 멸종했기 때문입니다. 여우 숲이란 이름을 지은 사람은 숲 학교의 교장이자 숲에서 편지를 띄운 김용규씨입니다. 여우숲은 ‘여우를 기다리는 숲’의 준말입니다. 오래 전 숲에서 살던 여우가 돌아오는 미래의 그날을 꿈꾸며 ‘숲 학교 오래된 미래’는 수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4. 초록 숲 정원에서 온 편지 - SF적 상상력이 엿보이는 정원의 열두 달
그림 13.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카렐 차페크
(이미지 클릭 시 디브러리 소장정보 연결)
카렐 차페크는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사람은 드물지만 우리나라에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입니다. 바로 처음 ‘로봇’이란 말을 그의 희곡 <R.U.R(인조인간)>에 등장시킨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SF소설과 영화를 소개할 때 마다 부록처럼 딸려 나오는 것이 바로 ‘로봇’이란 말의 어원입니다. 자기가 만든 말이 사전에 등재되고 후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주 쓰이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면 작가로서 참 감격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림 14. 카렐 차페크 (Karel Čapek, 1890~1938)의 초상
차페크는 상당히 다재 다능했던 모양입니다. 극작가로서 성공하고 프라하 시립극장의 문예부장을 지내면서 연출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개를 키우고 곤충 채집과 유충 사육을 하고, 정원 가꾸기에도 몰두했으니까요. 곤충채집, 유충사육, 정원 가꾸기는 뭔가 동떨어진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로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원을 가꾸다 보면 흙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와 식물의 수정을 돕고 잎과 줄기에 숨어 사는 곤충을 수업이 보게 됩니다. 그의 작품 중에 최근에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번역되어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곤충 극장>(1921)이 있습니다. <R.U.R(인조인간)>과 <곤충 극장>은 자본주의와 군국주의에 의해 건설된 물질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출간되었을 때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림 15. 차페크의 『곤충 극장』의 표지
이 책은 일 년을 열두 달로 나눠 매달 자연의 변화에 따른 정원사의 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직업적인 정원사가 아니라 취미로 정원 가꾸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체코는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온화한 편이지만 1월은 땅도 얼고 식물도 어는 날씨라 정원사가 딱히 할 일이 없는 달입니다. 하지만 차페크는 예민한 정원사의 눈으로 1월의 식물을 찾아냅니다.
“1월의 식물이라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창유리에 피는 얼음 꽃이 있다. 물론 얼음꽃이 피려면 실내 공기에 사람의 입김이 얼마간이라도 섞여 있어야 한다. 공기가 건조한 상태에서 유리창은 얼음 꽃은커녕 바늘 한 개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문에 약간의 빈틈이 있어야 한다. 열린 틈새로 샛바람이 들어오면 그 방향으로 얼음 꽃이 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음 꽃은 부잣집보다 가난한 집에서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부잣집의 창문에는 거의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차페크는 정원을 잘 가꾸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좋은 흙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원사는 식물을 가꾸는 게 아니라 식물이 잘 자라는데 최적의 환경인 양질의 흙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책 내내 지겹게 말하고 있는 부분이 흙의 중요성입니다.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던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원사의 즐거움은 더욱 심오한 대지의 태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정원사가 죽어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아마 꽃 향기에 취하는 나비가 되는 대신 십중팔구는 질소를 포함한 온갖 향내가 진동하는 검은 대지의 진미를 찾아서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지렁이로 태어날 것이다.”
화창하게 정원이 피어나는 봄과 여름에는 정원사의 기운이 솟아 올랐다가 가을이 되면 겨울 준비를 위해 분주해지고, 겨울에는 다음해 봄에 키울 새로운 종을 찾느라 원예잡지 카탈로그를 뒤적이며 바쁩니다. 차페크가 묘사하는 정원사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기보다 희귀 종을 찾아 다니며 정원 일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괴팍한 사람입니다. 책을 읽고 저는 그의 정원이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가득할 거라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흙 속에 지렁이가 가득하고, 공상과학영화나 공포영화에 나올 특이한 식물들로 어지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림 16. 책의 삽화는 카렐 차페크의 형인 요셉 차페크가 그린 것이다.
차페크는 숲으로 찾아가진 않았지만 자신의 정원에 작은 숲을 만들고 일 년 열두 달을 자연의 흐름에 맞춰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숲으로 갈 수 없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숲을 옮겨 오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정원사의 꿈을 꿀 수는 없더라도 차페크가 보여주는 정원생활과 흙 속과 식물의 성장에 대해서 새로운 이미지의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자료 출처 -
『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2011
『주말엔 숲으로』 / 마스다 미리, 이봄, 2013
『숲에서 온 편지』 / 김용규, 그책, 2012
『초록 숲 정원에서 온 편지』 / 카렐 차페크, 다른생각, 2005
- 이미지 출처 -
그림 1. Woods Forest Wallpapers, Layoutspaks http://www.layoutsparks.com/pictures/woods-forest-0
그림 2.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2011
그림 3.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초상, 위키피디아 http://me2.do/5XSWeY11
그림 4. On Walden Pond, puritansprogress http://puritansprogress.wordpress.com/2008/05/22/on-walden-pond/
그림 5. 월든 호숫가에 세워진 소로우의 동상과 집, Wikimedia http://me2.do/5xYmwAAw
그림 6. Meet Henry David Thoreau, syracuseguru http://syracuseguru.com/night/henry-david-thoreau/
그림 7. 『주말엔 숲으로』 / 마스다 미리, 이봄, 2012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9878
그림 8. 『週末、森で』 著者:益田ミリ, yaplog http://yaplog.jp/sirakabako/archive/206
그림 9. ふつうな私のゆるゆる作家生活, kinokuniya http://www.kinokuniya.co.jp/f/dsg-01-9784163711805
그림 10. 『숲에서 온 편지』 / 김용규, 그책, 2012
그림 11. 주요시설, 여우숲 홈페이지 http://www.foxforest.kr/01_ff_about04_5.htm
그림 12. 한눈에 보는 여우숲, 여우숲 홈페이지 http://www.foxforest.kr/index.htm
그림 13. 『초록 숲 정원에서 온 편지』 / 카렐 차페크, 다른세상, 200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660629
그림 14. Karel Čapek , svornost http://me2.do/F7pu1zgB
그림 15. 『곤충 극장』 / 카렐 차페크, 열린책들, 2012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12041
그림 16. from The Gardener's Year, drawing by Josef Čapek, cartoon simple http://me2.do/FnRrXcX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