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교실이다. 1년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비바람이 부나 숲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인천대 부설 숲유치원은 6,7세 어린이들이 ‘숲에서’ 수업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논다.’ 숲유치원은 2009년 3월 녹색교육 활성화를 위해 북부지방산림청과 인천대학교가 업무협약을 맺고 문을 열었다. 숲유치원은 인천대공원반과 청량산반으로 두 군데다.
지난 4월 인천대공원, 벚꽃잎이 흩날리고 살구꽃이 활짝 피었을 때 숲유치원의 하루를 엿보았다(본보 4월 24일자 <우리는 날마다 ‘으스스숲’에서 놀아요>). 그러고 반 년이 좀 지난 13일(수), 겨울을 앞둔 쌀쌀한 날에 어린이들이 추운 곳에서 어떻게 수업하는지 또 들여다보았다.
아침 8시 50분. 인천대공원 쪽문 가까이에 있는 물레방아 옆에는 은행잎이 바람에 풀풀 날리고 있었다.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요즘은 날이 추워서 9시가 거의 다 돼서야 어린이들이 모인다. 인천대학교 부설 유아교육연구소 숲유치원 어린이들이 수업을 받기 위해 이곳에 모인다. 선생님 두 분이 큰 배낭을 짊어지고 가장 먼저 도착하고, 곧이어 어린이들이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모이기 시작한다. 일반유치원 같으면 아파트 곳곳에 유치원차가 도착하고, 엄마 아빠가 태워주는 광경일 것이다.
반 년 새 아이들은 부쩍 자라 있었다. 한눈에 봐도 키가 반 뼘씩은 큰 것 같았다. 엄마 아빠와 인사를 마친 어린이들은 “숲유치원으로 출발!”을 외치고 선생님을 따라 움직인다. 공원을 찾는 일반인과 서로 불편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수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길을 가면서 아이들은 궁금한 게 정말 많다. 두리번두리번 보이는 모든 것에 관심을 쏟는다.
길가에 있는 맥문동 위로 서리가 내렸다. 간간이 맥문동 열매가 보인다. “눈 왔어요, 눈!” 아이들은 맥문동 이파리 위에 있는 눈을 만져 본다. “열매도 있어요!” 길바닥에 뒹구는 낙엽을 슥슥 차며 걷는다. 이슬에 젖은 낙엽 밟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아이들은 연신 선생님을 부른다. “선생님, 이파리가 얼었어요.” “선생님, 눈 보세요.” “선생님, 겨울이 오나봐요.” 선생님 배낭에 묶인 노란 밧줄을 풀어 뱀놀이도 한다. “뱀 이름을 ‘은행’이라고 할래요.” 한 어린이가 밧줄 끄트머리를 잡고 기자의 손을 간지른다. “이건 뱀이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뱀 머리는 내가 잡아줘야 해요. 이제 겨울이 찾아와서 힘이 없거든요. 조심해서 걸으세요. 뱀을 밟으면 안 돼요.” 노란 뱀이 낙엽 사이를 스스스 소리를 내며 따라온다.
백범광장 맞은편, 운동기구가 있는 옆 쪽으로 가면 이들이 수업 받는 비밀장소(?) 유아숲체험원이 있다. 이곳은 평일에는 인천대공원으로 접수한 어린이들이 수업을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봄에 왔을 때는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살구꽃과 벚꽃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반년이 지난 오늘은 어떤 수업을 할까.
인천대공원이 어느 때인들 멋지지 않으랴만, 가을 풍경도 멋졌다. 비밀장소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은행잎이 몇 겹으로 쌓인 나무 숲으로 우르르 달려간다. 누가 하라는 말을 할 것도 없이 낙엽싸움이 시작됐다. 아침햇살 아래 은행잎이 반짝거리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높이 올라간다. 다른 한편에서는, 데크처럼 만들어놓은 나무 다리에 서리가 수북하게 내려 앉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장갑으로 쭈욱 훑은 서리를 입으로 가져간다. “앗, 이 눈은 먹으면 안 돼요. 먼지가 많을지도 몰라요.” 선생님 말씀에 아이가 얼른 입에서 손을 뗀다. 여기저기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와 깔깔대는 웃음소리, 나뭇잎 날리는 소리로 숲이 쩌렁쩌렁 울린다.
아이들이 맘껏 노는 동안 수업 담당 선생님들은 수업 준비를 한다. 무엇을 열심히 줍고 있을까. 낙엽을 걷어내며 뭔가를 찾고 있다.
아이들은 끼리끼리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슬몃 어제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들한테 하지 않는 얘기를 자기네들끼리 잘 해요. 어제도 산에 올라갔다가, 올해 들어온 친구가 길을 못 찾으니까 “기다려! 그곳에 가만히 있어?” 소리치고 달려가 도와주더라구요. 신나게 놀 때 친구들이 귀찮게 하면 짜증날 법도 한데 아이들이 안 그래요. 어른들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죠. 우리 애들은 야외에서 뛰어놀아 스트레스가 없어서인지 여유도 많고 배려할 줄도 알아요.”
“차근차근 말해 보세요.” 수업이 시작될 즈음, 한편에서는 서너명 남짓한 아이들이 선생님과 모여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 의견이 서로 안 맞는 일이 생긴 모양이다. 아이들은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다가 선생님이 말했다. “아하, 너희 둘이 다투니까 친구가 싸우지 말라고 규칙을 만들어 주었구나. 근데, 싸우던 친구들은 규칙이 생기니까 싫은 거구나. 그럼, 싸우지 않고 놀겠다고 하니까 규칙을 없애면 될 것 같아. 규칙을 만든 사람이 규칙을 없애면 일이 해결될 것 같은데, 어때?” 선생님 말을 듣던, 규칙을 만든 아이가 말했다. “네, 없어도 되겠어요.” 그 소리에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됐네.”
숲유치원 선생님은 여러 명이다. 인천대학교 숲유치원에서 나온 선생님 2명, 인천대공원 수목원에서 나온 선생님 1명, 인천대학교 유아교육학과 4학년 선생님 1명이다. 또 숲유아교육연구소 소장 이명환 교수님도 참석했다. 선생님들이 많으니까 아이들 눈높이대로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은 좋을 것 같다. 기자가 간 다음 날인 14일은 인천대학교 유아교육학과 학생 20명이 나와 아이들과 신나게 놀 거라고 했다. 학생 선생님들이 나온다는 말에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한 분한테 이제 날이 쌀쌀해질 텐데 수업은 언제까지 계속되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수업은 2월 중순까지 한다. 눈 오고 바람 불어도 숲에서 한다. 눈 오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지금부터 눈 오는 날을 기다린다. 사실, 지금 어른들은 어려서 늘 이렇게 놀았다. 항상 동네에서 고드름 따고 놀았다. 뒷동산이 다 마당이고 길이 마당이고 모든 게 놀이기구였다.”
아이들은 노는 데 일가견이 있다. 낑낑 대고 해먹을 가져다 설치해서 밀어주고, 추운데 화살을 만들어 논다. 수업할 때까지 서로 ‘밀치지 않고 기다릴 줄’ 알며 놀았다. ‘낙엽’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이 이야기수업 받을 준비를 한다. 알록달록 예쁘기도 하죠. 알록달록 예쁜 낙엽….
“낙엽 말고 나무에서 또 볼 수 있는 게 뭐죠?” “나뭇가지, 나뭇잎, 나뭇잎 떨어지는 것, 도토리, 메타세쿼이어….” “많아요. 우리가 하늘을 올려봤을 때 나뭇잎도 볼 수 있지만 열매도 볼 수 있어요. 오늘은 ‘동극의 숲’으로 가서 알아볼까요?”
“동그라미 만들자, 동그라미 만들어 보자, 동그라미 만들자.” 동극의 숲으로 움직인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선생님 말에 아이들이 귀 기울인다. 선생님은 연신 “어떤 느낌일까?” 하면서 느끼고 만지라고 주문했다. “선생님이 여러분한테 ‘보물’을 주면 손으로만 느껴볼 거예요. 눈을 꼭 감고 느껴보세요. 뭔지 알아도 말하지 마세요.” 선생님들이 뒷짐진 아이들 작은 손에 ‘보물’을 쥐어준다. 아이들은 만지면서 대답한다. “열매!” “열매!” “느낌으로 말해 봅시다.” “맨질맨질하고 물방울 모양일 것 같아요.” “맨질맨질하고 동그래요.” “울퉁불퉁해요.” “울퉁불퉁해요. 그러면서 부드러워요.” “구멍 난 것 같고 울퉁불퉁해요.” “부드러워요.” “딱딱하고 동그랗고, 거칠거칠해요.”
“이번에는 나하고 같은 느낌인 짝꿍을 찾아봅시다. 친구랑 등을 맞대고 친구 걸 눈으로 보지 않고 찾아봐요.” “짝꿍을 찾았으면 손을 잡고 서 보세요.” 아이들은 자기와 똑같은 열매를 갖고 있는 친구를 신기하게도 ‘금세’ ‘잘’ 찾았다. 그러고는 짝꿍 손을 잡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떤 열매인지 아는 친구!”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차례대로 열매를 갖고 나와 이름을 맞췄다. “솔방울, 칠엽수, 메타세쿼이어, 찔레, 자작나무, 플라타너스, 도토리.” “도토리는 누가 좋아하나요?” “사람이요!” “맞아, 사람 말고 또 누구?” “다람쥐요!” “자작나무 열매는 우리가 이따 가면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잘 보면 열매가 보여요.” “메타세쿼이어 나무는 어디에 있지요?” “여기요, 우리가 있는 데요!”
간식시간. 아이들과 선생님은 빙 둘러앉아 각자 싸온 밥과 과일을 꺼내놓고 먹기 시작한다. 이명환 숲유아교육연구소 소장(인천대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교수)은 “자연에서 놀다보면 아이들 언어 어휘수가 늘어난다. ‘인간의 한계가 언어의 한계’라고 했는데, 여기서 우리 아이들은 맘껏 놀아서인지 알고 있는 낱말이 많다. 언어 발달도 우리 아이들의 특징이다. 끈기도 대단하다. 야외라 집중이 안 될 것 같은데, 오히려 일반유치원 실내보다 더 집중한다. 초등학교 가서 적응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끈기와 집중력으로 결정된다. 여기 친구들은 자연에서 놀아 활동적이어서 그런지 뭘 할 때는 다른 생각을 안 한다. 직관교육과도 연결된다”면서 “청량산 숲유치원은 4년째이고, 인천대공원은 2년째다. 지난 봄에 청량산에 독일 어린이가 6주 동안 다녀갔다. 외국 사람들 말로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더 창의적이고 잘 논다고 한다. 싸이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면서 아이들은 무조건 자연에서 뛰어놀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간식을 먹고 나서 아이들은 한참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놀았다. 선생님한테 손뜨개질을 배우기도 하고, 한 어린이는 너구리 모자를 쓰고 겨울잠을 자기도 하고, 서로 밀어주며 해먹 타는 친구들도 있고, 소꿉놀이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좀 더 활동적인 남자 어린이들은 도둑놀이를 하는 데 온 신경을 다 쏟았다. “선생님이 뜨개질 한 강아지 목줄, 저 주세요.” “아니요.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줄게요.” 손으로 하는 뜨개질을 알려주는 선생님 주변으로 너댓명이 모여 앉아 실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어느새 각자 제자리에 앉아 강아지 목줄을 뜨고 있었다.
이명환 소장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일반 장난감은 나오는 대로 그대로 써야 한다. 코끼리도 기차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막대기 하나로 피리를 불 수 있고, 두 개를 이어서 바이올린을 켤 수 있고, 긴 막대기는 마녀할멈이 쓰는 빗자루로도 쓸 수 있다. 모든 사물에 자신의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붙이면 못 만드는 물건이 없다. 요즘 교육에서는 ‘인성’과 ‘창의성’을 중요시 여긴다. 숲에서 노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과연 ‘숲이 교육의 원천’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요즘 ‘자연결핍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아무리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해도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보고 느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이랑 너무 떨어져 산다. 자연과 사람은 서로 상생하고 공생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는 또 “여기 아이들은 표정이 밝다. 아이들의 존재란 ‘움직이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우리 숲유치원이 내건 모토가 ‘아이들의 웃음이 피어나는 숲’이다. 찰리 채플린은 ‘하루에 한 번도 웃을 수 없다면 웃지 않은 그 하루는 헛된 하루’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지내야 하는데 요즘은 너무 성과 위주라 아이 때부터 힘들다”며 “아이들이 놀이에 바빠야 하는데, 일상이 바쁘다. 날마다 놀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딜 가나 공부, 공부 하는 게 문제다. 우리 숲유치원 아이들 표정이 늘 밝고 씩씩해서 좋다”고 덧붙였다.
나무기둥에 붙어 있는 온도계를 보니 영상 8도다. 네 시간 넘게 밖에 있으면 제법 추운 날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땀이 난다. 하루 수업을 마무리하기 전에 인천대학교 유아교육과 4학년에 다니는 젊은 선생님이 <다 콩이야> 그림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몇 번 되풀이되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까르르 웃어제낀다. 끝으로 평가시간.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선생님이 물었다. 재미있었던 놀이와 아쉬운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어린이가 말했다. “더 놀려고 했는데 끝났어요. 놀 시간이 부족해요.”
놀아도 놀아도 모자란다는 말. 아이들은 아무리 놀아도 더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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