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대검찰청 귀하.
최근 518과 관련하여 상당히 신뢰할만한 자료가 있기에 제보하오니 검토하시어 진실이라 판단되시면 널리 전파하시어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단 한사람의 국민이라도 억울한 법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또한 만약 허위사실이라 판단되시면 첨부사진의 인물(속칭 1번광수)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주시어 다시는 헛된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첨부 : [518은 전두환과 김대중이 합작해 적과 내통해 일으킨 반란이었나?]
어쩌면 우리 국민들은 정치적 야망으로 똘똘뭉친 두 인간과 거기에 얽힌 두집안(혹은 한집안?)에 의해 너무나 철저히 농락당해 국민감정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갈갈이 찢어지고 갈라져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불행에 처할 수도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A%B7%9C%EA%B4%91#cite_note-autogenerated1-1
그동안 현대사의 비밀에 대해 어느정도 맥을잡고 있다고 생각했던건 참으로 어리석은 오만이었던 것같다.
10.26과 함께 우리 현대사의 가장 불행했던 5.18의 두 주역, 나란히 서로가 한번씩 사형선고를 받고 그후 사면도 한번씩 받은 김대중과 전두환은 결코 멀지않은, 양쪽의 처가쪽으로 계산하면 상당히 가까운 인척관계였다. 친가쪽 인맥이 별볼일 없던(?) 두사람에게 이런 처가쪽 인맥은 적극적으로 매달려 움켜 잡아야 할 금맥이었을 것이다.
전두환의 부인인 이순자여사의 삼촌인 이규광을 중심으로 보면 관계가 명확해지고 서로 상당히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이순자여사의 삼촌인 이규광의 장인과 김대중 전처인 차용애(김홍일, 김홍업의 친모)의 모친은 친남매지간인 것이다. 집안에 애경사등의 행사가 있을때는 항상 같이 모이는 관계이며 친가쪽 인맥이 별볼일 없던 두사람은 어쩌면 명절때도 자연스럽게 처가쪽으로 모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과 국가의 크나큰 불행인 10.26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H신문사에서는 5공전사를 인용해 12.12는 10.26이 일어난지 불과 1주일후에 계획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5공세력들 스스로 발간한 5공전사에 그렇게 나와있으니까 아마도 정확한 듯하다.
그 말인즉 군을 장악하기 위해 하극상의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상관들을 제압하겠다는 계획을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1주일만에 세웠다는 말이다. 어떤 방법으로 지휘계통을 마비시켜 자신들이 가로채고, 어느부대를 동원하여 언제 어떻게 어디로 이동하여 누가 어떤방법으로 자신의 상관들을 체포하는 등의 모든 계획이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1주일만에 완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10.26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대통령 시해움직임을 알고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혹시 인간의 능력을 훨씬 초월한 천재라도 그들중에 있었던 것일까? 계획은 그렇다고 해도 적재적소에 적절한 인원의 배치까지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그렇다면 혹시 5.18에 대한 계획도 그당시 이미 마련했던것은 아닐까? 하극상 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일당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규하와 그 내각이 아무 이의도 없이 고스란히 정권을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 대한 대비책도 세웠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518계획은 아닐까? 이미 518단체가 유네스코에 등재한 자료에 의해 명백히 밝혀졌지만 518당시 600명의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와서 시위를 주도했다는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없는 사실이다. 북한과 모의하여 병력을 지원받는 일을 협조하는 일도 하루이틀에 끝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작성한 5공전사도 무시하고 아주 냉정하게 생각해 전두환일당을 옹호하는 자들의 주장대로 12.12가 1026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정승화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가정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하극상의 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일당을 최규하 내각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지켜볼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했을 것이다. 그당시 최규하대통령은 나름대로 완전한 정권장악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서울의 봄]이라 일컫는 민주화 추진계획발표, 자신이 유신헌법에 의해 6년의 임기가 보장이 되어 있다고 해도 임기를 마치지 않고 임기전에 조기개헌을 하고 새로운 헌법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새로운 내각에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발표등 나름대로 시시각각 전두환의 목줄을 죄어가는 조치들을 취하고 있었다.
이런 사태 속에서 그대로 시간이 지나 개헌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군사반란죄로 사형이 명확한 사위를 그대로 지켜볼 처가쪽이 아니었다. 군사적 위기를 일으키고 이를 성공적으로 진압해 국민들로 하여금 건국이래 가장 큰 변란의 시기에 부적합한 나약한 이미지의 최규하내각보다는 새로운 반공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강력한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도, 또한 권력을 이양한 이후에라도 절대적인 안전이 보장되는 그런 계뢱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518이었을 것이다.
518을 통해 전두환은 강력한 반공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해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고, 김대중은 민주화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민주화투사의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어 결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또한 애초의 계획대로 정권이 끝난 후에도 여러가지 말들은 많았지만 여전히 어느쪽도 다치지 않고 무탈하게 잘 지내고 계시지 않는가? 비록 주머니에 들어있는것은 29만원이 전부지만 여전히 측근들과 모여서 골프도 치고 서민들은 생각도 못하는 한끼 20만원에 달하는 식사도 즐기시면서...그럴듯한 자서전도 내고...
또다른 주역인 김대중은 일부지역에서 여기저기 동상과 기념관도 세우고 신처럼 떠받들고 있지 않은가?
* 대검찰청의 상징인 천칭의 이미지처럼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엄격한 법치로 국가와 민족의 기강을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 이규동( 1911년 11월 7일 ~ 2001년 9월 11일)
전두환의 부인인 이순자의 부친. 1911년 11월 7일에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생하였고 경상북도 성주에서 성장하였다. 봉천군관학교를 4기로 졸업하고 만주에서 육군 경리관으로 일했다. 해방 후에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하였 이후59년에 육군본부 경리감에 보임되었고 이듬해인 1960년 육군 준장으로 전역하였다. 그는 성주에서 이봉년과 결혼하여 만주국으로 가서 슬하에 1남 6녀를 두었으나 딸 셋은 요절하였다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는 그의 차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