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하는 이들은 조심하라, 자기 설교에 도취된 목사, 3개월 안식월을 가지면서 / 박영돈 목사
신학하는 이들은 조심하라
주님의 은혜로 인간이 되지 않고 신학 공부하는 이는 더 몹쓸 인간이 될 수 있다. 그 신학이 정통보수일수록 독선과 아집과 교만에 사로잡혀 남을 정죄하고 자신을 진리의 수호자로 드높이는 흉물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내린 부패한 욕망이 십자가의 은혜로 처리되지 않은 사람에게 신학지식은 그 욕망과 야심의 도구로 이용된다. 그 지식이 자신을 멋지게 포장하여 자기 이름을 내고 사람을 끄는 명예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회칠한 무덤처럼 내면의 온갖 추함과 더러움이 현란한 신학지식과 웅변으로 얄팍하게 덮여 위장된다. 그런 사람은 대단한 학자라도 되는 듯이 사람들에게 추앙받을지 모르나 그의 인격은 바닥이다.
인간을 더욱 겸손하고 아름답게 해야 할 신학이 인간을 더 교만하고 추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신학이 인간의 영달을 위한 배도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신학 하는 것은 가장 숭고한 일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일이다. 신학으로 인해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더 몹쓸 지옥의 자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보다 자신을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가. 이는 그동안 내 안에서 본 모순과 거짓에 대한 참회록이다.
<박영돈 목사>
자기 설교에 도취된 목사
내가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설교를 시작했을 무렵이다. 그 당시 설교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던 나는 내 설교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안달했던 것 같다. 하루는 차를 운전하면서 옆에 앉았던 고 이정석 교수에게 내 설교 실력을 뽐내고 싶어 내 설교 테이프를 틀어주었다. 원래 과묵한 이 교수는 아무 말 없이 인고의 시간을 버텨주었다.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강직한 성품을 가졌던 이 교수가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며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요즘 그 때를 돌아보면 내가 거의 정신병적인 자기도취에 빠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내 설교가 참 듣기 힘들다. 간혹 내 설교가 어디서 흘러나오면 빨리 꺼버린다. 자기도 듣기 힘든 설교를 해대니 교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들어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우리 교회 뿐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내 설교를 되도록 인터넷에 올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은 현장을 떠나 인터넷상에 떠도는 설교는 오용되기 쉽다고 생각해서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내 설교를 듣는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것도 젊은 날과는 대조가 되는 자기 집착증의 한 양상인 것 같다. 내 안에 병든 자의식이 너무 강한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이런 자의식에서도 자유하게 될텐데, 언제나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자신의 설교를 자랑스럽게 인터넷 매체에 올리는 분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그러나 이 정석 교수가 나에게 보여준 모범을 잊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박영돈 목사>
3개월 안식월을 가지면서...
올해 8월 3일부터 3개월간 안식월을 갖게 되었다.지금 시무하는 교회에 부임한지 아직 5년이 채 안 되었으니 안식월을 가지긴 많이 이른 시점이다.내가 목회 사역을 시작한 지 26년만에 처음 가져보는 안식월이고,지금 시무하는 이 교회는 64년 역사에서 목회자의 안식월이란 걸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목회자의 탈진’이란 것이 다른 목회자들만의 특수한 얘기인줄 알았다.그런데 2년 반 전부터 나에게도 탈진 증상이 시작되었었다.압박감,무력감,좌절감,두려움,막연한 슬픔과 낙심 등...처음엔 그냥 남자에게도 갱년기 증상이 있다 하니까 그런 줄로 생각했었다.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갱년기 증상과 다른,목회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탈진 증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탈진 진단 질문지로 평가해보니 거의 70%가 해당되는 걸로 나왔다.물론 설교조차도 못할 정도의 아주 심한 탈진에 비하면 그리 강도가 높진 않지만,그래서 주위 사람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내 내부적으로는 탈진의 여러 가지 증상들은 골고루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탈진에는 잠시 일하는 현장을 떠나 쉬는 것 외엔 치료책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아직 안식월을 시도할 만한 시기도 안 되었고,교회 형편도 어렵고,한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이라 교회적인 인식 공유도 안 되어 있는 등,여러가지 난제들이 있어서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작년 말부터는 심각하게 교회에 얘기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도해왔고, 결국 올해 5월에 당회에서 얘기를 꺼내면서 이제 8월부터 3개월의 쉼을 갖게 되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작년 말 정도에 쉬어주었으면 훨씬 더 나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쉬이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일이었기에, 몇달을 고민하며 기도만 했었는데,조금은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3개월만이라도 쉼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도 감사하고,힘든 결정을 내려준 교회에도 감사하다.
앞으로 3개월간 교회 현장을 떠나,맡은 일을 잠시 멈추고,사역에 브레이크를 걸어서,휴식을 갖고,재충전을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안식을 갖고 나서 다시금 사역의 힘찬 출발을 했듯이,나에게도 3개월의 시간이 로뎀 나무 그늘과 같은 회복의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그래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정신을 일깨워서,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의 고지를 향해 새롭게 달려나가기를 소망한다.
-박영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