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에 한국의 보수 우파·중도는 없다
리 소테츠 일본 류코쿠대 교수 입력 2018.11.01 03:11
北, 월남자·해외 도주자 가족 등 '동요 계층' 규정하고 철저한 감시
정책 반대하면 '종파 분자'로 처단
북한이 즐겨 쓰는 '우리 민족끼리'는 한민족 모두를 지칭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배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북한 사회안전부(현 안전성)가 만든 '주민등록
사업 참고서'를 보면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주민을 출신 가정에 따라 25개의 성분(신분)으로 분류하고, 수령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3계층으로 나눈다.
요즘도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종에 종사하고 출세하려면 우선 성분이 좋아야 한다.
북한 당국이 만든 주민 분류 매뉴얼에 의하면,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김정일 동지를 위하여 몸 바쳐 싸워 왔으며 앞으로도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에 따라 끝까지 싸워나갈
사람들'을 '기본 군중에 속하는 계층(핵심 계층)'으로 규정한다. 이 사람들이 북한에서 '우리끼리'를 형성하고
누구를 끼워 주고 배제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문제들이 있는 사람들'은 '복잡한 군중에 속하는 계층' 또는 동요 계층으로 규정하고
감시·관리한다. '반동 단체 가담자' '의거 입북자' '월남자 가족'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오지 않은 자의 가족'
'기업가 가족' '해외 도주자 가족' 등 31개 부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북한 정권 수립 전에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의 후손' 즉 '지주 자본가 등 착취 계급의 잔여 분자'
와 수령과 노동당의 영도를 따르려 하지 않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적대 계층으로 분류해 격리
구역이나 강제수용소에 가둬 놓고 고립시킨다. 같은 민족이라도 정치 성향이 다르면 '우리 민족끼리'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당의 정책이나 수령에 반대하는 사람 또는 파벌을 만드는 사람은 '종파 분자'로 지목해 처단한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그랬고,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수령의 권위에 도전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독살됐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하는 나라에서는 민족이나 친족보다 '이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말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의 노선·이념을 비판하거나 반대한다고 의심되는
지식인 간부 약 60만명을 우파 보수로 몰아 감금하고 처형했다. 마오쩌둥은 이런 운동을 계급투쟁
으로 규정하고 "계급투쟁은 해마다 해야 하고 날마다 해야 하며 시시각각 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중국이 했던 계급투쟁을 70년 동안 계속해왔다. 북한 당국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름으로
한국 국민도 북한식으로 단결해야 할 사람과 궤멸시켜야 할 사람들로 가르고 있다.
올해 10월 10일 자 노동신문에 실린 논평 '시대의 흐름에 밀려난 자들의 발악'은 자유한국당에
속하는 사람들을 민족을 등진 '반역의 무리'로 지목하며 "민족을 등진 반역 무리들이 아무리
쏠라닥질하며 대결 책동에 열을 올려도 남조선 각계의 지향과 의지는 막을 수 없다. 반역 무리의
파멸은 필연이다"고 했다.
북한 지배층의 가치관으로 보면 한국의 보수 우파는 궤멸돼야 하는 '적대 계층'이며, 중도 계층은
'동요 또는 복잡 계층'이 된다. 북한이 말하는 '우리 민족끼리'에 이런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북한의 정책과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북한이 자주 즐겨 쓰는 개념들을 정확히
해석해야 한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비핵화 문제는 북한이 갖고 있거나 가지려 하는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북한 정권 담당자들은 '북한 비핵화'라고 말하지 않고 '조선 반도
(한반도) 비핵화'라고 말한다.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제시한 '체제 안전 보장'은 더욱 애매하다. 체제 안전은 김정은의 안전인데,
어느 정도의 어떤 담보를 제공해야 안전하다고 여길지는 전적으로 김정은의 판단에 달려 있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해도 김정은은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일본에도 미군이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군이 아시아에서 철군해도, 김정은은 안전이 담보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핵을 버리지 않는 한, 북한은 안전하지 않으므로 핵을 버릴 수 없다고 버틸 수 있다.
북한은 한국과 같은 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생각도 비슷하고 협력에도 문제없다고 한다면
큰 착각이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리 소테츠(60) 교수는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나 도쿄 조치(上智)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저서 ‘김정일 전기’를 냈고 일본 주요 매체 북한 전문 분석·패널리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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