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만든다는 선배의 말을 예사로 듣고 넘겼다. 워낙 손재주가 좋아 과일주도 손수 담갔으니, 이번에도 취미생활이라 여겼다. 연구년을 맞아 전남 강진에서 야생찻잎을 직접 따 차를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경남 양산의 천성산을 답사하기 위해 전날 선배의 아파트로 들어갔을 때, 방에 가득 놓인 차들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다. 아기 다루듯 조심조심 펴 말렸다가 모으고 다시 펴 말리기를 반복해야 차맛이 제대로 난다고 했다.
이규보와 김시습과 정약용을 넘나들며 차를 아낀 영혼들에 대한 장광설이 시작됐다. 현재의 차뿐만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즐겨 마시던 차를 궁구하고, 차를 아낀 이들의 일화를 수북이 모아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전남 구례에 차밭까지 빌려뒀다 하니, 머지않아 찻잎을 따러 새벽잠을 설쳐야 할 판이었다.
차차 하면 된단 충고를 나 역시 종종 하지만, 위로가 전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멀리 답사를 나섰을 때가 그렇다. 개천을 건너고 계곡을 따라서 가파른 비탈을 올라 자연 동굴에 머물며 옛 정취를 만끽하는 것이 목표였다. 신라 고승 원효가 수행했노라 전해지는 곳이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가로질러도 빗방울이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굵어졌다. 미련이 남아 등산화 끈을 고쳐 묶곤 오르막길로 접어들었지만, 반쯤 오르다가 걸음을 돌렸다. 나뭇잎 깔린 바닥이 질퍽질퍽 미끄럽고 비는 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그래도 차차 나아질까 싶어 내원사 마당에 앉아 기다렸다.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대나무꽃이 무더기로 피었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훗날을 기약하며 절을 빠져나왔다. 입산할 때 즐겨 들었던 몽골과 중국의 노래도 끄고, 침묵의 길을 따랐다.
차차차 곡조가 귀에 쏙 들어왔다. 비 내린 다음날 아침부터 경남 남해군 미조항에선 ‘보물섬 해산물축제’가 한창이었다. 노래 사이사이로 튀어 오르는 웃음소리가 싱그러웠다.
오후부터 시작한 남해도서관 강연엔 모처럼 남성 독자들이 많이 모였다. 이순신 장군과 전쟁, 김만중 선생과 유배! 이렇게만 떠올려도 피비린내가 돌지만, 전쟁 시기나 유배 중이라도 괴롭고 힘겨운 것만은 아니다. 큰 슬픔을 이기기 위해선 큰 기쁨이 필요하지 않으며, 일상 속 작은 기쁨들로도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했던가.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그 작은 기쁨의 매우 구체적인 표현이다.
차차차차 하기로 마음먹으며 숨부터 고른다. 경상도 지역 답사와 강연을 마치고 전남 곡성으로 돌아오니 할 일이 산더미다. 텃밭에 자라난 풀들을 뽑고, 책방에 들어온 신간들을 진열한다. 개들을 데리고 강둑으로 산책도 다녀온다. 뭉게구름을 따라 눈을 비비고 농수로의 물소리를 따라 귀를 씻으면서, 일상의 리듬을 서서히 찾는다. 차차차차 내 숨으로 되뇌는 것만으로도 차분하게 맡은 일을 해나가니, 동학 가사에 거듭 등장하는 의태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탁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