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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정원] 감정에 귀 기울이는 아버지들

작성자글길_김지성|작성시간26.06.19|조회수12 목록 댓글 0

“아빠, 자스민이 왕이 되면 알라딘은 관식이가 되는 거야?” 객석을 나서는 3∼4학년 돼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가 묻는다. 아빠의 답은 들리지 않았으나 딸 손을 꼭 잡고 인파를 헤쳐 나가는 뒷모습이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아이유 분)이 아빠 관식(박해준 분)이 같다.

서울에서 6개월째 상연 중인 뮤지컬 ‘알라딘’은 천애고아 알라딘이 술탄의 딸 자스민과 만나 램프의 요정 지니의 도움으로 사랑을 이룬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서사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디즈니 스타일의 환영 같은 무대예술과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블록버스터 공연이다. 알라딘(김준수·서경수·박강현 분)의 기계체조 같은 독무와 군무, 풍부한 성량의 대표 넘버곡 ‘A Whole New World(어 홀 뉴 월드·새로운 세계)’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브로드웨이 공연의 한국 초연으로 호평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 지난해 11월 첫 공연 때는 반응이 엇갈렸다. 자스민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수동적인 공주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수정해가면서 자스민(이성경·민경아·최지혜 분)은 더 능동적인 캐릭터로 거듭났다. 딸 바보 아버지 술탄의 지원에 힘입어 자파의 계략을 유연하게 빠져나가고 고백할 용기를 잃은 알라딘을 포용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아버지 관식의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로 부모 세대의 아픔과 위기를 품고 일과 사랑도 성취한 금명의 아랍 버전 같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연극 ‘헤다 가블러’는 이와 정반대이다. 헨리크 입센의 명작 ‘헤다 가블러’(1890년)는 유럽 상류사회의 폐쇄성에 갇힌 장군의 딸 헤다가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좌절하는 과정을 담았다. 한류스타 이영애의 첫 대극장 연극인 LG아트센터 ‘헤다 가블러’와 한국 최초 ‘헤다 가블러’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았던 이혜영이 13년 만에 재연하는 명동예술극장 ‘헤다 가블러’가 동시에 상연되며 관객몰이 중이다. 이영애의 헤다는 섬세한 파격으로, 이혜영의 헤다는 명징하고 심오하게 틀 안에서 몸부림치는 자아를 표현한다. 서사적으로는 남성 중심 질서에서 목소리를 낼 언어와 도구를 갖지 못한 채 자신을 놓아버리지만 무대미학은 틀을 깨부수고(이영애), 영원한 삶을 꿈꾸는(이혜영) 것으로 대리만족을 준다. 시대에 걸맞은 인식의 변화를 반영한 해석이다. 지금 19세기 틀 안에서 잠식해간 여성의 삶을 그린 ‘헤다 가블러’가 동시 상연 중인 건 헤다야말로 세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의 위치이기 때문일까?

요즘 공연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금명이 아빠 관식이’ 같은 ‘젊은 아빠들’처럼 세상은 정서 공감형 아버지들에 의해 조금씩 변해가는 중이다. 19세기 유럽보다 더욱 강압적이었던 고대 아랍 배경인 뮤지컬 ‘알라딘’의 자스민과 민주화운동기를 겪어낸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처럼 세상을 바꾸는 딸들의 에너지원은 감정에 귀 기울이는 아버지들이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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