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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기선

작성자남태평양|작성시간09.12.03|조회수594 목록 댓글 0

19세기의 기선

 

  인간이 기계를 써서 배를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은 18세기 후기에 증기기관이 실용화되고, 19세기 초엽에 그것을 선박에 장치한 동력선을 개발하고 나서부터이다. 사실 동력선의 개발은 선박사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가장 빛나는 업적중의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의 기선은 매우 유치한 것이어서 범선을 제쳐놓고 확고한 기반을 잡기까지에는 많은 기술혁신을 거쳐야 했다. 기선이 범선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된 것은 겨우 19세기 후기에 들어서였다. 더욱 그 무렵에는 철선과 강선도 차례로 등장하여 목선시대는 마감하게 되었다. 이처럼 19세기는 전기에 기선이 개발되어 외륜기선이 점차로 퍼져 나가고, 1850년대부터 프로펠러 추진기를 장비한 철선이 크게 진출하며, 19세기 말엽에는 목선과 철선이 쇠퇴하고 강선이 급증하는 등 선박이 눈부시게 발달한 시대이다.

동력선의 탄생

  18세기 후기에 뉴코맨, 사베리, 제임스 와트 등에 의해 증기기관이 실용화되자 여러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배에 이용하여 동력선을 개발해 보려고 나섰다. 그와 같은 움직임은 1780년대부터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서 거의 때를 같이하여 일어났다. 프랑스의 귀족 주프로와는 1776년 소형증기선을 만들어 다우브 강에서 실험했다. 그는 다시 1783년에 피로스카프 호를 제작하여 리용 근방 세느 강에서 시험한 결과 15분간을 추진하는 데 성공했다. 피로스카프호는 패들휠(paddle wheel) 로 추진되었다.

주프로와의 피로스카프호의 모형(1783)

  미국 코네티컷의 피치는 1786년 동력선의 개발에 착안하여 독특한 증기선을 제작하고 시운전에 성공했다. 그 배는 물갈퀴가 달린 긴 노 12개를 양현의 전후좌우에 4군으로 나누어 세워서 달고, 체인으로 서로 연결하여 증기기관으로 움직이게 했다. 마치 카누를 젓는 것과 같은 추진방식이다.


피치의 증기 기관선
(1787)

  영국의 증기기관 기술자였던 사이밍턴은 1801년 포스 클라이드 운하를 통과하는 짐배를 끄는 동력예선의 주문을 받아 증기선 샤롯 단다스 호를 만들었다. 그것은 길이 56피트, 폭 18피트, 깊이 8피트의 아담한 배이고 그 안에 증기기관과 패들휠이 장치되어 있었다. 패들휠은 외현에 나오지 않도록 선체 안에 두었다.


사이밍턴의 샤롯 단다스호(1801)

  1780년대부터 여러 사람에 의해 계속 시도된 기선의 개발은 드디어 1807년 로버트 풀턴의 클레몬트 호가 시운전에 성공함으로써 결실되었다. 클레몬트 호는 길이 133피트 (시운전 성공후 149피트로 연장됨), 깊이 7피트로 갑판이 없고 선저가 평탄한 전형적인 하천용 배였다. 선체 중앙에 기관과 보일러를 설치하고 그 앞쪽 양현에 패들휠을 두며, 선수, 선미에는 간단한 범장도 한 선형이고 주기관의 출력은 24마력이었다.

  클레몬트 호는 1807년 8월 9일 허드슨 강에서 시운전을 마치고 8월 17일에는 뉴욕-올바니 간을 왕복하는 정식 운항에 들어갔다. 그 결과 뉴욕에서 올바니까지 150마일을 평균 4.8노트의 속도로 주파하였다. 이에 따라 뉴욕-올바니간의 정기항로가 개설되었는데 허드슨 강은 증기선의 항로로서 적합한 곳이었다. 그 강에 임해있는 두 대도시 뉴욕과 올바니간의 교통은 아주 불편하였는데 강의 양안이 높이 솟아 육로는 불편하고 바람의 방향도 이상하여 범선의 항행도 어려웠다. 그러나 수심은 깊고 위험한 수로도 없어 증기선의 항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와 같은 지리적 잇점과 뉴욕 주정부로부터 기선 개발과 항행에 관한 특권 때문에 클레몬트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동력선이 되고 풀턴은 증기선의 개발자로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풀턴의 클러몬트호(1807)


외륜기선(外輪汽船)


벨의 코메트호(1812)

  클레몬트호가 1807년 시운전을 거쳐 뉴욕-올바니 간의 정기선으로 성공을 거두자 증기기관선은 세계 도처에 번져 나갔다. 1912년 영국의 클라이드 강에서는 유럽 최초의 상업용 기선인 코메트 호가 진수되고 글라스고우와 그리노크 간의 정기항로선으로 취항했다. 코메트 호는 날씬한 선형으로서 6∼7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이 배의 건조자 벨도 일찍부터 기선 개척에 힘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한동안 주로 내륙수로에 이용되어온 기선은 곧 바다에 진출하게 되었다. 1816년 길이 63피트, 배수량 70톤, 기관 10마력인 소형 기선 엘리제 호는 뉴헤이븐을 출항하여 난항 끝에 17시간을 항해하여 프랑스의 르아브르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영불해협을 횡단한 기선이 되었다.

  1818년 8월 뉴욕에서 진수된 사반나 호는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기선이다. 이 배는 원래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취항할 범선으로 계획되었으나 건조 도중 선주가 바뀌면서 증기기관을 설치한 기선으로 완공되었다. 따라서 사반나 호는 3개 마스트의 범장을 완비하고 있고, 선체 중앙에 설치된 외륜은 쓰지 않을 경우 접어서 갑판 위에 끌어 올려놓도록 조립식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배의 길이는 98.5피트, 총톤수 320톤, 기관출력 90마력이고 외륜의 직경은 15.25피트였다. 선체는 카벨 이음으로 건조되고 32개의 선객용 침대가 설비되어 있었다. 이 배는 1819년 5월 24일 미국 죠지아주의 사반나항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여 6월 17일 아일랜드 남단 코크에 일단 닻을 내리고 6월 20일에는 영국 리버풀에 무사히 입항했다. 사반나항-리버풀 사이를 27일 11시간을 들여 대서양을 횡단했는데 평균 속력은 6노트이지만, 그 간에 외륜으로 항주한 시간은 85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범주한 것이었다. 사반나 호는 비록 대서양을 처음으로 횡단한 기선이라는 영예는 얻었으나 상업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했다. 기선으로서는 범장이 너무 많고 대양항행선으로서는 기관출력과 외륜이 약하고 연료창고도 작았다.

  사반나 호는 1920년 경매에 붙여져 팔린 후 기관을 철거하고 순수한 범선으로 개장되어 뉴욕-사반나항 간의 우편선으로 변신했으나 1821년 롱아일랜드에서 좌초하여 일생을 마쳤다. 그 후 범선들의 독무대였던 대서양을 횡단하는 기선은 점점 늘어났으나 석탄의 공급과 가격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남아있었고, 더욱이 이 시기에는 보다 속력이 빠른 클리퍼 범선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기선은 대서양 횡단선으로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기선 사반나호(1818)
 
스크류 프로펠러 철선

  세계 최초의 증기동력 군함은 로버트 풀턴이 설계, 건조한 미국 해군의 군함 풀턴 호이다. 풀턴은 1807년 처음으로 기선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군용 기선도 설계하였다. 1812년 영국과 미국간에 전쟁이 벌어지자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미국 동부를 봉쇄하는 작전으로 나왔다. 미국은 그 봉쇄를 뚫고자 풀턴에게 증기 군함의 제작을 의뢰했다. 이에 따라 설계, 건조된 것이 풀턴호인데. 풀턴호는 선체 둘을 연결한 카타마란(쌍동선) 선형이고 중간에 외륜이 설치되어 있다. 선체는 길이 150피트, 폭 56피트, 깊이 20피트이고 배수량은 2,475톤이며, 외륜의 치수는 직경 16피트, 폭 14피트이다. 속력은 5노트를 낼 수 있었다.

  풀턴 호의 무장은 현측과 선수미에 배치한 32파운드 포 30문과 별도로 선수에 설치한 100파운드 포 2문이었다. 이 배는 1814년 준공되었으나 그전에 전쟁이 끝났으므로 한 번도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처음에 배 이름을 디모로고스라 했으나 1815년 풀턴이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여 풀턴호로 개명되었다. 풀턴 호는 잠시동안 군함으로 쓰여진 뒤 뉴욕 브루클린 해군공창에 계선되어 창고로 쓰이다가 화약 폭발로 파괴되고 말았다. 외륜기선은 상선으로서는 급속히 발전해 나갔으나 군함으로서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다.


최초의 군용 기선 풀턴호
(1814년)

  외륜기선은 군함으로서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양현측에 노출되는 외륜은 적의 포탄에 대단히 약하고 거대한 외륜의 덮개는 선체 중앙에서 넓은 자리를 차지하여 함포를 설치할 자리가 감소되어 전력이 약화되기 마련이다. 풀턴 호처럼 외륜을 선체 내에 수용할 수도 있으나 조종성능이 아주 좋지 않았다. 당시의 해전은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입증되었듯이 대량의 포탄을 현측에서 일제히 사격하는 방식인데 포문의 감소는 군함으로서 부적격이었다.

  클레몬트호 이후 기선의 추진기로 쓰여진 외륜(paddle wheel)은 대형 상선에 쓰여지게 되었으나 여러 가지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둥근 바퀴에 방사상으로 고정시켜 놓은 물갈퀴는 날개가 물에 들어갈 때 수면을 치고 물에서 빠져 나올 때 물을 차올려서 효율이 좋지 않았다. 이 결점을 시정하기 위해 여러 방법이 강구되고 피더식 외륜이 등장했다. 이것은 그림에 나타나 있듯이 주변 날개를 움직일 수 있게 하여 날개가 물에 들어갈 때 수면에 수직방향으로 들어가서 물을 차고, 나올 때도 수면에 수직방향으로 빠져 나오도록 개량한 것이다. 이 방식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널리 보급되었다.


피더식 외륜

  둘째로 외륜이 물에 잠기는 심도가 문제였다. 외륜은 그 지름의 5분의 1 가량이 물에 잠겨서 작동하는 것이 이상적인데 화물의 적하(積荷)에 따라 물에 잠기는 심도가 달라질 뿐 아니라 파도에 따라서도 물에 잠기는 심도가 순간적으로 달라진다. 그러므로 외륜은 파도가 세면 고르게 작동하지 못하고 화물의 적하 상태에 따라서도 무리가 가게 된다. 셋째로 외륜은 구조상으로도 파도에 대해 약해서 거센 파도가 치면 손상되기 쉬웠다. 끝으로 외륜을 군함에 장비하면 선현에 크게 노출되어 적의 포격으로 쉽게 기능을 상실해버릴 염려가 있고, 선체 중앙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여 포의 수가 줄어들고 화력이 약화되는 치명적인 결함도 있었다. 외륜의 이와 같은 결함은 쉽게 해결될 수 없으므로 원리적으로 다른 여러 가지 추진방법이 일찍부터 꾸준히 연구되어 왔다. 그 중에서 점차로 각광을 받게된 것이 스크류 프로펠러이다.

  풀턴과 기선 개발을 경쟁한 미국의 스티븐스는 1804년 이미 25피트 길이의 작은 배에 증기기관과 스크류 프로펠러를 직결하여 허드슨 강에서 시험하였다. 그는 풍차형 날개 4개를 가진 프로펠러를 만들어, 날개의 폭과 피치(날개의 비틀림)를 여러 모양으로 변화시키면서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그도 외륜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스티븐스의 프로펠러

  스크류 프로펠러가 실제로 배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830년대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영국의 스미드와 스웨덴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약한 에릭슨이다. 스미드는 1836년 6톤 짜리 소형 기선을 스크류 프로펠러로 추진하는 데 성공하고 뒤이어 1839년 그의 특허 프로펠러를 써서 길이 106피트, 총톤수 240톤, 기관출력 45마력의 아르키메데스 호를 만들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아르키메데스 호는 최초의 프로펠러 선으로 공인되고 있는 배이다. 에릭슨은 1836년 영국에서 스미드와 때를 같이하여 프로펠러의 특허를 얻었으나 스웨덴 출신인 그는 영국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843년까지 41척의 스크류 프로펠러 상선을 건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또한 1843년 프로펠러 군함 프린스턴 호의 기관과 프로펠러를 설계했다. 길이 164피트, 폭 30.5피트, 배수량 673톤인 프린스턴 호는 세계 최초의 프로펠러 군함이다.

  영국도 1843년부터 1845년에 걸쳐 프로펠러 선 래틀러 호를 만들었다. 아르키메데스 호 때에도 그랬지만 래틀러 호를 만들 때도 여러 가지 모양의 프로펠러를 실선(實船)에 달고 시험했다. 래틀러호에 대해서 영국 해군은 선박추진기로서 외륜과 스크류 프로펠러 중 어느 쪽이 나은가를 판가름하기 위해 두 배로 줄다리기를 한 바 있다.


아르케메데스호의
프로펠러


래틀러호로 시험한
각종 프로펠러


스크류 프로펠러선과 외륜기선의 힘겨루기
(1843년)

  888톤, 200마력의 스크류 프로펠러 선 래틀러 호의 적수로 선정된 배는 800톤, 200마력의 외륜기선 알렉토 호였다. 1843년 4월 파도가 잔잔한 날을 택해 템즈 강과 동해안에서 두 배는 서로 선미를 로프로 연결하고 처음에 래틀러 호의 기관을 멈추고 알렉토 호가 전력으로 끌고 달렸다. 다음에 알렉토 호의 기관을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래틀러 호가 끌기 시작했다. 두 배가 서로 전력으로 끌어당긴 결과 래틀러 호가 2.5노트로 알렉토 호를 끌고 갈 수 있었다. 스크류 프로펠러의 완전한 승리였다. 이처럼 스크류 프로펠러는 외륜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되어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외륜선은 쇠퇴하기 시작하고 스크류 프로펠러 선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철재가 조선용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영국의 헨리 코드가 1783년 새로운 제철법을 개발함으로써 철재가 싼 값으로 공급되고서부터이다, 1822년 영국에서 최초의 철제 기선인 길이 36.6m, 폭 5.18m, 30마력의 아론맨비 호가 건조되었는데 이 배는 프랑스 선주에게 인도되어 세느강에서 객선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 배는 돛은 일체 달지 않고 동력만으로 운항했다.


그레이트 브리튼호(1845)

  18세기말부터 철선은 계속 건조되고 그 크기와 기능이 확대되어오다가 1843년에는 최초의 대양항해용 철선 그레이트 브리튼 호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레이트 브리튼 호는 대서양 정기항로에 투입된 최초의 철선이자 최초의 스크류 프로펠러 선이다. 그레이트 웨스턴사가 건조한 이 배는 6개의 마스트를 가진 스쿠너 범장을 한 프로펠러 선으로 선체는 6개의 수밀격벽으로 구획되고 외판은 폭 3피트, 길이 6.5∼7피트, 두께 0.38∼0.69인치의 철판을 리벳으로 이어 나갔는데 이것은 당시에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철판이었다. 용골은 두께 0.88인치, 폭 20인치이고 가로보는 6인치×3.5인치×0.5인치 형재(앵글)이며, 2개의 갑판도 모두 철판으로 만들었는데 철재 총중량은 1,500톤에 달했다. 원래 외륜을 장치할 예정이었으나 때마침 성공을 거둔 이르키메데스 호에 자극을 받아 스크류 프로펠러 추진방식으로 변경하고 여러 가지 실험 끝에 직경 15.5피트, 피치 25피트, 날개수 6개인 조립식의 프로펠러를 채택하여 1,000마력의 주기관에 연결하여 11노트의 시운전 속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레이트 브리튼호는 1845년 7월 26일 리버풀항을 출항하여 처녀항해 길에 오르고 평균 9.3노트의 속력으로 14일 21시간만에 뉴욕에 도착하여 대서양 항해선으로 무난한 성적을 올렸다. 다음해 9월 아일랜드 연안에서 좌초하여 모처럼 등장한 철선의 운명도 다하는 듯 했지만 그래도 이 배의 선체는 끄떡없이 견디어내고 11개월만에 끌어내려 바다에 띄웠을 때 별로 손상된 곳이 없어 철선 선체가 얼마나 강인한가를 보여주었다. 이 배는 여러 가지 면에서 획기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나 무엇보다도 철선시대의 문을 열어 놓았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그레이트 브리튼호가 대서양 횡단 정기선으로 성공을 거두자 1850년대부터 대형 철선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스크류 프로펠러 선이었다. 19세기 전반은 목조 외륜기선의 시대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크기는 2,000톤, 속력은 10노트가 한도이고 해운의 중심세력은 여전히 대형 범선이었다. 사실 외륜선은 연료만 더 들고 신뢰성도 충분치 못하여 기관을 설치하고 외륜을 장비한다 해도 그것은 범장의 보조적 역할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외륜기선은 '보조기선(補助汽船, auxiliary steamer)' 이라고 불려졌다.


최초의 철제기선
아론 맨비호(1822)

  이와는 달리 19세기 후반은 프로펠러 철선의 시대이다. 이때의 프로펠러 철선은 크기가 3,000톤 내지 5,000톤으로 커지고 속력도 처음에는 13노트 정도였으나 점차로 15-16노트까지 확실히 낼 수 있게 되어 종래의 목조 범선이나, 기선에 대항하기 위해 19세기 중엽에 탄생한 쾌속 클리퍼 범선은 점차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철선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이 시기에는 철재보다 더 우수한 강재(鋼材)가 널리 공급되기 시작하고, 1880년대부터는 대형 강선이 등장하여 철선은 쇠퇴하고 만다. 1858년 벳세마가 새로운 제강법을 개발하고 1862년 시멘즈가 평로제강법을 고안한 이래로 강재가 구조용재로서 널리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강선이 나타나게 되었다.

  1862년 최초의 대양항해용 강선인 325톤의 반시 호가 건조되었다. 영국 리버풀에서 건조된 이 배는 미국에 건너가 남북전쟁에 참가했다. 1877년경에는 상선에도 일반적으로 강재가 쓰이게 되었다. 1880년대부터 대형 강선이 출현하기 시작하고 건조 톤수도 날로 급증하여 드디어 19세기 말에는 강선시대의 문이 열리게 된다. 19세기 말엽은 목선, 철선, 강선이 병존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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