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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어둠 밖으로 쏟아졌다 / 최윤정

작성자글길_김지성|작성시간26.06.10|조회수6 목록 댓글 0

별들이 어둠 밖으로 쏟아졌다 / 최윤정

 

 

산달이 다가와 몸이 무겁다. 주인 여자는 내가 애처로운지 자꾸 먹을 것을 가져다준다. 이제 낳을 때가 된 것 같다고 양옆으로 불룩한 배를 함부로 쓰다듬기도 한다. 병원에 간 적이 없어 나도 정확한 예정일을 모른다. 다만 그날 밤으로부터 하루, 이틀, 사흘…. 아침에 눈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어제보다 힘들어진 것을 느끼며 출산이 임박했음을 짐작할 뿐이다.

나는 그를 블랙이라 부른다. 근육질의 어깨가 떡 벌어져 수컷의 냄새가 풀풀 난다. 해가 지면 내 방으로 찾아와 먹을 것을 축내고 잠만 잔다. 비좁은 방에서 대자로 뻗어 자는 블랙의 등과 벽 사이에 모로 눕는다. 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살얼음 같은 하루하루를 살지만, 그의 체온에 기대면 나의 불안은 녹아내린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언니가 있었다. 신경이 예민하고 경계심이 많은 나와 달리 언니는 늡늡하고 매사 태평이었다. 낯선 사람을 봐도 의심할 줄 몰랐다. 손 내밀면 다가갔다. 몸을 비비고 정을 주었다. 그녀가 얻어온 것들을 나눠 먹으면서도 조심성 없는 행동거지를 자주 나무랐다. 만사 다 아는 양 훈계를 늘어놓던 난 그야말로 겁쟁이에 갓똑똑이였을 뿐이다. 미련해 보였던 언니는 누구보다 용감했던 암컷, 내 잔소리를 발톱 위에 올려놓고 웃던 언니가 그립다.

길에서 태어난 우리를 거둬준 주인 여자는 가게 비닐하우스 안에 상자를 두고 헌 옷가지를 깔아 지낼 곳을 만들어 줬다. 여자가 담아 둔 모래 냄새를 맡으면 어쩐지 용변이 마려웠고, 뒤처리는 배운 적 없어도 잘했다. 방석 한 장 크기의 집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잠들던 그때, 참 행복했었다. 하우스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언니는 무사했을까. 틈새로 들어온 들쥐를 잡으려다 주인 여자가 아끼는 화분을 깨뜨렸고, 상한 겹 발톱을 갈다 하우스 비닐을 찢었다. 우리의 단칸방은 가볍게 들려 하우스 밖으로 밀려났다.

내쳐진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잠자리를 바꿨을 뿐 여전히 아침이면 사료를 주고 물그릇을 씻어 깨끗한 물을 받아주었다. 장사하며 분주한 틈에도 우리가 눈에 띄면 일부러 몇 걸음 다가와 쓰다듬어 주었다. 퇴근할 때는 꼭 간식을 줬는데 여자가 쥐고 흔드는 육포 냄새는 언니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산 아래라서 뱀과 들쥐 지네가 많았다. 우리는 밥값을 했다. 언니가 잡은 뱀을 보고 여자가 까무러칠 뻔한 뒤로 굳이 사냥한 것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는 왜 이런 외진 곳, 산기슭 아래 꽃집을 차린 걸까. 가게 근처엔 공장 몇 개와 교회가 있을 뿐 사람이 살지 않았다. 여자의 가게는 언니와 나를 거둬주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앞발을 나란히 모으고 총총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볼 때면 그런 생각에 더없는 확신이 들었다.

이곳에서 지낸 지 반년 정도 지나 발정, 교미, 중성화 이런 이야기가 들렸다. 우리는 인간의 허락으로만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죄짓는 일인 걸까.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2~3년 안팎이라지만 아직 죄짓지 않은 우리는 길과 집 사이에 걸쳐있으니 10년은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족제비, 오소리 때로는 쥐약 먹은 생쥐도 만나니까 목숨을 아홉 개로 나눠놓고 서로를 핥아주며 잠이 들었다.

기척에 선잠이 깼다. 언니의 코 고는 소리 아래에 다른 발걸음 소리가 점점이 찍혔다. 흑단같이 검은 안광이 번득이는 순간 나는 상자를 뛰쳐나가 도망쳤다. 별들이 어둠 밖으로 쏟아졌다. 살려주세요! 헉헉 질주하던 길 멀리 붉은 십자가가 보였다.

교회에 그가 있었다. 윤기 잃은 검은 털은 거칠고 한쪽 눈이 없었다. 블랙의 상자에서 블랙의 사료를 얻어먹고 며칠을 보냈다. 블랙과 함께 가게로 왔을 때 언니는 없었다. 마당 풀숲 군데군데 털 뭉치가 붙어 있고 상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주인 여자가 손을 내밀며 다가와 나는 다시 도망쳤다. 입구가 좁은 집엔 절대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나를 위해 여자는 사선으로 들이칠 비도 막을 수 있게 삿갓 모양의 지붕을 얹고 삼면이 뚫린 집을 만들었다. 검은 눈동자에 한동안 갇혀있던 내가 새로 만들어 준 상자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배가 불러오고 몸이 무거워지면서 행동반경이 줄었다. 없던 호기심이 솔솔 생긴다 해도 여자의 마당을 벗어날 체력이 안 된다. 지금은 블랙이 찾아와 함께 밤을 보낸다. 몸을 풀고 젖먹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사냥하는 것보다 사냥당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 블랙을 닮아 힘이 세고 기골이 튼튼한 새끼로 태어나주길 바랄 뿐이다. 블랙은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그의 몸에 내 몸 한 부분이 닿아 있다. 그날 밤 등 뒤를 쫓아와 내 뒷다리를 움켜쥐던 언니의 울음소리도 잠결 속으로 가라앉아 희미해진다. 생과 사가 스쳐 간 아픔이 밤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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