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일까 / 변종호
“해석은 곧 바라보는 자의 시선이고 그 시선에서 세계관이 보인다.”라는 어느 수필가의 말이다,
중복이라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다. 운동 삼아 가경천을 걷다 걸음을 멈춰야 했다. 벤치에 소복하게 쏟아놓은 건빵과 빈 소주병에 종이컵 하나, 그 옆에 건빵 봉지가 얌전하게 놓여있다. 오죽하면 염천에 퍼석거리는 건빵을 안주 삼아 쓴 소주를 마셔야 했을까. 누구인지 모르나 연민이 느껴진다. 남긴 건빵이나 소주병을 보면 자리를 뜬지 오래되지 않았음이다.
아마도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꺼질 듯 축 처진 어깨, 시큼한 땀 냄새가 밴 옷을 걸치고 짙은 다크서클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모두 떠안은 듯한 눈빛을 가졌을 법하다. 문득, 소주 한 병으로 아픈 속을 달래며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원망하더라도 나쁜 마음이나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걷는 내내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오늘 자 채용 발표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구직자일까, 긴 병구완에 지친 가장일까. 아니면, 날이 갈수록 임대료 내기도 버거운 자영업자일까, 궁핍한 살림살이에 지친 아내가 집을 나섰을까, 어느 것 하나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이다. 남긴 건빵으로 봐서 절대 노숙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장한 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넘기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하고 싶었던 고개를 서너 번 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랴. 나 역시 호된 성장통을 치렀다. 안온한 가족의 보호막이 절실했던 시기에 세상의 거센 바람을 홀로 맞아야 했었다. 따뜻한 잠자리는 언감생심, 폭풍 성장기에 배불리 먹어본 기억조차 없어 그 시절은 떠올리기조차 싫다.
가장의 역할을 내려놓은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돌볼 마음조차 없었던 나이 차 많았던 피붙이가 어찌 원망스럽지 않았겠나. 하여, 수 없이 새겼던 참을 인이지만, 너무 견디기 힘겨울 때는 두 길이 넘는 강가나, 아파트 옥상에 잠시 서 있기도 했었다. 그런 순간마다 자식 사랑은 넘쳤으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무력한 노모가 떠올랐고 그로 인해 번번이 모진 마음을 접어야 했었다.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견뎌낸 3년간의 혹독한 고난은 알게 모르게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운명을 탓하기보다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어떤 난관도 이겨내고 말겠다는 다짐에서 길든 습관으로 성실하다는 평을 받게 되었다. 하여, 지금은 그 어느 것도 부족함 없이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럴만한 사정이야 분명 있겠지만, 안쓰럽다. 대낮에 소주 한 병을 마셨던 그 사람도 가족이 있지 않겠나.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세상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걷는 것처럼 힘들겠지만, 남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힘차게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 아픈 속을 잠시 달래려는 술로 인해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질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간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4년도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이 14,439명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또한 취업을 준비하는 고학력자 청년이 6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수많은 자영업자가 빛을 떠안은 채 폐업하고 고통 속에 방황한다. 우리 아파트 앞 대형마트 부근의 번성했던 상가도 듬성듬성 비어 있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라고 느끼는 순간, 누구든 희망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하여,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긴 나머지 극단의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적이 잦은 폭염의 대낮에 도로 옆 벤치에서 소주를 들이켤 용기가 있다면 방향 전환을 위해 다시 일어설 수도 있음이다.
예전의 이웃은 소소한 것도 서로 나누며 소통했기에 정이 쌓였고 관계는 촘촘하고 따뜻했었다. 하지만, 현대는 불신不信, 불감不感, 불만不滿의 시대다. 게다가 정치권의 선동으로 양분된 사회는 좀처럼 화합이 불가할 정도다. 이런 정서이니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을 바라보던 측은지심도 사라지고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아예 관심을 가지려 하지도 않는다.
사노라면 때론 흔들려야 하고 고비도 넘겨야 했었다. 이제야 알겠다.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야생화 탐사를 하다 보니 고산지대의 열악한 환경에서 처절하게 살아낸 야생화가 색감도 곱고 향기도 진했으며 예쁘기까지 했다.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삶이란 그저 견뎌내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