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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행적

121 요 11:1-44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작성자박성룡|작성시간23.05.22|조회수96 목록 댓글 0

121 요 11:1-44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찬송: 292, 417장

 

1. 배경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이 이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한두 달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한 본문 다음 구절인 요 11:45-54의 기록과 연결된다.

요한복음 11장은 참으로 특이하다. 죽은 자를 살려준 이적이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죽이기로 결의한 사건으로 촉발되었음을 고발하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이 이 세상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세상은 이 생명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주시는 분을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에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로 생명을 싫어하던 내가 바로 그 생명을 받았으며, 이 생명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의 인치심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본문의 이적 사건과 요한복음 11장 전체를 보아야 할 것이다.

2. 본문 설명

본문에 나오는 베다니는 에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가신 요단 강 동편의 베다니(요 1:28)와는 다른 지역으로, 예루살렘 남동쪽 약 3.2km 정도 떨어진 유다 지역에 속한 곳이며, 이때 예수님께서는 요단 강 동편 베레아 지역에 계셨는데, 이곳은 베다니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하루를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2절에서 향유를 부은 마리아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날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에 유하실 때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나중의 사건으로 요한복음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미리 알려준 이유는 마르다보다 마리아가 더 초대교회에서 알려졌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쨌든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다는 것을 미리 기록한 이유는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통해 이 사건이 그녀의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제 사건의 본론으로 들어와서 보면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에 한 사람을 예수님에게 보낸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수소문을 했을 것이고, 베레아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하루 길이의 거리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했을 것이고, 저녁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만나 나사로의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틀을 더 유하시다가 베레아를 떠나셨다. 그러니까 나흘째가 되어서야 베레아를 출발하셨고, 그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었을 때였다. 따라서 나사로는 이 사람이 출발한 첫 날에 이미 죽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늦게 출발하셨을까? 그것은 4절과 15절을 보면 알 수 있다.

4절에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15절에서는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것을 의도하셨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에 말씀하신 것에 해답이 있다.

42절을 보면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핵심 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오신 것을 믿게 하고자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결국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사역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며, 이 살리는 역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임을 믿게 하려는 의도로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질문을 하신 것이다. 그러자 마르다는 27절에서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을 했다.

이것은 마르다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죽은 자를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신 것이다. 즉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 사건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마리아를 향유를 부은 여인으로 미리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향유 사건은 12장에 가면 나오지만, 사도 요한은 미리 여기에서 예수님의 장사지냄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당신 자신이 죽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자들과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리고 많은 무리들에게 이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해 지금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야 오신 것이다.

3. 적용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과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예수님께 배운 믿음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어떤 이적을 일으키실 때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아무런 목적이 없이 예수님께서 이적을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결과를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며, 이 십자가를 위해 당신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알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과 여기에서 함께 있지 않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이적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이적을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는데, 이것의 목적은 그 사건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께서 과연 어떤 예수님인가, 즉 어떤 메시야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마치 마르다와 마리아가 그들의 선조를 통해 배운 부활신앙을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이적을 통해서 어떤 예수님인가를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신앙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신앙을 충동적인 감정으로 고백하게 되면 그것은 신앙의 푯대를 세우는 데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신앙의 감정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앙은 지적 요소를 요구한다. 지적으로 깨닫는 것은 우리의 감정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이 확고한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되어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 신앙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는 결단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의지적 요소인 것이다. 이 의지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마르다가 27절에서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이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이 고백이 얼마나 더욱 확고하게 설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 고백과 함께 이적 사건을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예수님을 신뢰함이 그 마음에 가득하고, 이로 인해 더욱 예수님을 따르리라는 결심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마리아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날에 그 집에 머물 때에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은 그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 가운데에서 부활할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신앙은 이적 사건을 통해 믿음의 지적 요소를 갖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적을 통해 우리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 아니면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이 이렇게 이적을 경험했으니까 나도 똑같은 이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고백은 오늘 예수님께서 의도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적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적 사건을 배우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믿음에는 감정적인 요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 요소도 있고, 의지적 요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귀한 신앙의 내용들을 바로 깨닫고 더욱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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