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식 [형과 나] 2008
종이에 연필 ㅣ 55×7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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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 은사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잘 쓴 글이란, 수려한 문체나 수사적 기교를 잘 부린 글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글이다.” 글을 직접 쓰거나, 혹은 남이 쓴 글을 편집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지금, 종종 뇌리에 스치는 말이다. 그렇다면 ‘잘 그린 그림’은 무엇일까? 무릇 글이나 그림, 둘 다 마찬가지 아닐까? 화려한 색채나 신기한 재료를 쓰는 그림이 아니라, 정말로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성식의 그림들은 참 잘 그린 것 같다. 문성식의 그림은 실물처럼 보이기 위한 회화적 기교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원근법이나 일루전 등 오랜 세월 동안 회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요소에 문성식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에 문성식의 그림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최소한의 간결한 표현, 효과적인 의미 전달

먼저 문성식의 연필 드로잉 작품 [형과 나]를 보자. 연필로 박박 그은 검정색 원이 화면의 8할 이상을 차지한다. 이 그림은 작가 문성식이 친형과 함께 낚시하던 풍경을 그린 것인데, 가운데 있는 저수지에 비해 주변에 둥그렇게 둘러쳐진 나무들과 한 켠에 서 있는 인물은 매우 왜소해 보인다. 분명 추상화는 아니지만 사실적 표현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낚시터에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기다림의 연속일 뿐 도대체 언제나 물고기가 잡힐 지 막막하기만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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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낚시하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다. 물 속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수지의 존재는 더더욱 거대하게 느껴진다. 연필로 시커멓게 칠한 저수지는 마치 블랙홀처럼 빠져들 것만 같다. 단지 연필로만 그린 그림인데도, 또 비율과 모양도 제멋대로인데도 저수지에서 형과 낚시를 했던 당시에 작가의 마음만은 잘 드러난다. 또 다른 작품 [굴과 아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간결하게 표현한 그림이지만 어두운 터널이 굴다리에서 느껴지는 끝없이 펼쳐진 듯한 캄캄함 앞에 선 두려움이 전해져 온다. 수많은 미술사학자나 미술평론가가 언급했듯,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의 목표는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대개 풍경화라 하면, 화가가 이젤과 화구를 들고 나가서 풍경을 보고 그 자리에서 모두 그리거나, 혹은 스케치만 하고 채색은 들어와서 천천히 완성하는 걸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성식의 풍경화는 과거의 경험을 그리는 것으로, 기억을 더듬어 그리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문성식의 풍경화는 심리적 풍경화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연작 [노인의 집 1]과 [노인의 집 2]는 바라보는 시점이 뒤섞여 있다. 그림의 아랫부분은 정면에서 똑바로 집을 바라봤을 때의 모습이 그려진 반면, 윗부분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본 옥상 혹은 지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집은 실재하는 것이지만, 이 그림의 구도는 실재하지 않는다. 역시 이번에도 사실과 다른 그림이다. 전개도를 펼쳐 놓은 듯한 이 그림에 대해 물었더니, 작가는 집의 정면만큼 옥상의 바닥이나 기와로 된 지붕도 재밌어 보여서 이렇게 그렸다고 한다. 결국 작가 ‘마음대로’ 그린 것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그렸다고 해서 절대로 쉽게 그렸다는 말은 아니다. 연필로 그린 그림은 물론, 유화나 아크릴화로 그린 그림까지 나뭇잎 한 장, 풀 한 포기 어느 곳 하나 쉬이 넘어가지 않고 세세하게 그려나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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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과 아이] 2002년 종이에 연필, 53cm×38c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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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묘사로 담아낸 일상적 풍경, 현대인의 초상

문성식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시골 풍경이나 그곳의 사람들이다. 동네 잔치, 숲 속에서의 사냥, 교미하는 개들 등등. 대부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다. 문성식은 김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여전히 김천에서 살고 계신다. 쉽게 말해 문성식의 그림은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의 향수가 묻어나는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골 풍경을 그린다고 해서, 무조건 따뜻하고 정겨운 시골의 정경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어쩌면 시골에 대해 지나치게 미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성식은 자신의 작품 [청춘을 돌려다오]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마지막에 고속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고 나서 그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시골 잔칫집에서 흥에 겨워 노래하고 춤추는 노인의 모습은 마냥 즐거워만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각자 고통스러움과 슬픔이 웃음 뒤에 감춰져 있을 것이다. 마치 김혜자가 아들을 위해 살인을 하고도 그것을 잊기 위해 춤을 췄듯이 말이다. | |

[무심한 교차] 2008-2010년
장지에 아크릴릭, 76cm×43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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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교차]는 고향에 내려갈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 개발 중의 공사장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이다. 이리저리 제 속살을 드러내며 파헤쳐진 땅 틈으로 강한 생명력을 보이며 뿌리 내린 작은 꽃나무와 잡초, 그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와 이 와중에 교미하는 동물까지…. 황폐화된 도시 개발의 모습이 어쩌면 오늘날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고, 그곳에서 버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현대인의 ‘초상’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특히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듯 그린 이 작품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마치 초상화에서 사람의 피부를 그리는 것처럼 땅의 표면을 스캔하듯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문성식은 지난 2011년에 개최한 개인전의 제목을 [풍경의 초상]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 전시를 열면서 다음과 같은 노트를 적었다.
“세상은 말이 없다. 세상엔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개수만큼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빛은 그것들의 모습을 만들며 그것들은 내 안에서 풍경이 된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절실함과 동시에 무심하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일부이며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내 그림이 된 것들은 그런 것들이다. 그림은 나에게 다른 이들과의 대화이며 일기이다. 동시에 잡을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생명으로서 시간을 붙잡는 불완전한 하나의 방법이다.”
최연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
 문성식은 소년과 영감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다. 큐레이터 이은주의 ‘소년의 감수성을 지닌 채, 불편한 삶의 진실을 바라보고 있는 어른스러운 관찰자로서의 시선’이라는 언급이 문성식의 작품에 대한 적확한 해석이다. 문성식은 평범하고 심지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잔혹과 비극을 찾아낸다. 반면 2002년에 그린 [봄날은 간다 간다 간다]처럼 어린 시절 집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모습처럼 가족의 소소한 즐거움을 전하기도 한다. 생사가 반복되는 대자연의 순환과 그 면면의 감성까지 세심하게 표현하는 문성식의 손끝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그린 [노인]이나, 교미 중인 개를 그린 [어미와 아들] 등에서 더욱 노련하게 움직인다. 특히 그의 초기 작업 [런치 타임], [말을 걸어오는 나무] 등에서 등장하는 향나무의 묘사는 재현,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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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걸어오는 나무 2] 2006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cm×8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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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걸어오는 나무 2] 디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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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에서는 된장 맛이 난다. 단순히 문성식이 시골 그림을 곧잘 그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문성식은 마치 도 닦는 사람처럼, 고행하듯 그림과 정면으로 맞서는 화가다. 한동안 문성식을 따라다녔던 꼬리표는 ‘최연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였다. 그는 2005년 개최됐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당시 대학원생 신분으로 참여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그 즈음이 미술시장이 한참 무르익어 가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화랑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성식의 개인전을 기다리는 관객도 많았다. 그러나 문성식은 2006년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고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서야 두 번째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고 모두 화가가 아니다. 진정한 화가란 그림 자체가 당면한 문제의식, 동시대 미술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현재적 위치를 숙고하며 붓을 드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성식은 확실히 화가다. 요즘 젊은 작가의 경우 뭐든지 많이, 그리고 빨리 해치우라는 요구를 받고, 그리고 그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하지만 화가 문성식의 그림은 된장처럼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다. 문성식의 새로운 그림이 궁금하지만,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보자. 그는 ‘더 잘 그린 그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 |
문성식
김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및 전문사 과정 졸업. 2006년 키이아트에서 첫 번째 개인전 <바람없는 풍경>, 2011년 국제 갤러리에서 두 번째 <풍경의 초상>을 개최했다. 몽인아트스페이스 아티스트 스튜디오, 창동미술창작 스튜디오의 입주 작가였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Secret beyond the door’, 2007년 소마미술관 <잘 긋기>, 2010년 프라하 비엔날레, 2011년 몬차지오바니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