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반속요(返俗謠)> / 설요(薛瑤)
구름같이 무심해지니 생각이 맑아지는데
적막한 경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구나.
아름다운 꽃향기에 마음이 설레는데
어찌 할거나 꽃다운 이내 청춘을!
化雲心兮思淑貞,
洞寂滅兮不見人.
瑤草芳兮思芬蒕,
將奈何兮靑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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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7세기 신라의 여승 설요(?-693)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신라의 동명국(東明國) 사람으로서, 당(唐)나라 고종 때 당나라에 건너가서 좌무장군이 된 설승충(薛承沖)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15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게 되자 곧장 삭발을 하고 세속을 떠나 승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를 따라 중국에 살았던 설요는 아버지를 여의고 승려가 되어 세상의 무상함을 극복해 보고자 하였으나, 꽃다운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해탈의 경지에는 이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6년간의 수행을 거쳤지만 21세가 되는 어느 날, 그녀는 사람 구경하기도 힘든 적막한 산골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향기를 발하며 흐드러진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며 설레는 자신의 마음도 가눌 길 없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여승 설요는 승복을 벗고 환속을 결심하게 되지요. 꽃다운 젊음을 가눌 길 없어 사랑의 짝을 찾아 나서는 여승 설요에게서 우리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색즉시공의 세계라고나 할까요?
위의 시는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을 만큼 유명한 한국 고전시이면서도 동시에 고대 한국 여성의 한시(漢詩)라는 점에서도 괄목할만한 시입니다. 『전당시(全唐詩)』에는 신라인의 시가 9수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여성의 작품으로는 진덕(眞德)여왕이 당나라 고종에게 당의 창업과 치세를 기리는 시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과 설요의 <반속요(返俗謠)> 두 편이 있지요.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 한시 작품으로 앞서 보았던, <공후인(箜篌引)> 다음 작품으로 신라시대의 여성 한시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지요. 당에서 이름난 시인 진자앙(陳子昻, 661-702)이 그녀의 묘비명을 지었을 정도이고 보면, 당대에 설요가 시인으로서의 진가도 얼마나 높았던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시 본문이 여러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지만, 대체로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순수하게 여승 설요의 환속에 초점을 두고 청춘의 설렘을 노래한 것으로 본다면, 다른 하나는 환속에 초점을 두면서도 본문 자체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입니다. 그 어느 것으로도 해석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시적 상징성이 농후한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본문 첫 행에 대하여 이가원 선생의 경우에는 "욕심이 없어지니 생각이 맑아지고, 그윽한 경지에 이르니 사람도 뵈지 않누나."라고 표현한데 비해, 어떤 학자는 "번뇌를 끊으려고 정숙함을 생각하여, 적멸의 이치 통찰하려하나 보살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식이지요. 문제는 '화운심(化雲心)'에 대하여, 구름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을 '번뇌를 끊으려는 마음'으로 해석한다든지, '통적멸(洞寂滅)'을 '적멸의 이치를 통찰하려는 것'으로 봄으로써,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불견인(不見人)'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가 아니라, '보살이 보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지요.
시인 고은 선생에 따르면, 설요의 시는 <초사(楚辭)>투 이지만, 단순함은 <시경(詩經)>의 국풍(國風) 쪽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국풍은 <시경> 중에서도 아름다운 꽃에 해당하며, 중국 고대문학의 최고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민중들의 소박한 노동과 생활을 그린 것이라든지, 전쟁과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다운 생활을 그려내는 현실주의적 기풍을 보여주는 현대시의 원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현실 생활에 낙담한 나머지 이상적 세계를 꿈꾸고 승려가 되었던 설요가 적막한 산골에서 불도(佛道)를 닦지만, 아름다운 꽃향기에 문득 반하듯이, 피 끓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하고는 환속을 다짐하고야마는 역설의 노래입니다. 셋째 행에서 보여주는 '요초방혜(瑤草芳兮)'를 노래 할 때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두고 노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이름과 같은 '요(瑤)'자를 사용함으로써, 은근히 자신의 꽃다움을 비추어 노래한 대목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설요는 그 맑은 마음씨만큼의 순진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속세의 시인 곽원진(郭元振)의 첩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만, 문제는 청춘입니다. "어찌 할거나, 꽃다운 이내 청춘을!" 설요처럼 마음이라도 청춘이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