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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도낙서 河圖洛書 [강 하/그림 도/물 락/글 서]
☞「주역」의 팔괘와 「서경」중 홍범구주[洪範九疇]의 바탕이 되었다는 상형도/구하기 힘든 어려운 옛 도서
[출전]『書經』
[내용]하도(河圖)는 복희(伏羲)가 황하(黃河)의 용마의 등에서 얻은 그림으로, 이것에 의해 복희는 역(易)의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하며, 낙서(洛書)는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의 거북의 등에서 얻은 글로, 이것에 의해 우(禹)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으로서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위서(緯書)에 있는 하도낙서는 칠경(七經)의 위서와 함께 전한(前漢) 말에서 후한(後漢)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 하도제람희(河圖帝覽嬉) 용어하도(龍魚河圖) 낙서영준청(洛書靈準聽) 낙서견요도(洛書甄曜度)등 많은 종류가 있다. 칠경의 위서와 함께 참위설(讖緯說)의 주요자료로 많은 일문(逸文)을 남기고 있다. <하단에 자세한 설명 추가>
■ 하로동선 夏爐冬扇 [여름 하/화로 로/겨울 동/부채 선]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시기를 놓쳐 쓸모없는 사물/일이 격에 맞지 않음
[출전]왕충(王充)의 《논형(論衡)》 〈봉우편(逢遇篇)〉
[원문]作無益之能 納無補之說 (작무익지능 납무보지설) 獨如以夏進爐以冬奏扇 亦徒耳(독여이하진로이동주선 역도이)
[내용]이로울 것이 없는 재능을 바치고 보탬이 되지 않는 의견을 내는 것은, 여름에 화로를 바치고 겨울에 부채를 드리는 것과 같다
[참고1]왕충은 후한(後漢)의 학자이자 사상가로, 독창성이 넘치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지녀, 선비적 사상이나 속된 신앙, 유교적인 권위를 비판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논형(論衡)》은 당시의 전통적인 정치와 학문을 비판한 내용의 저술이다. 왕충은 이 글에서 '벼슬길에 나아감에 있어서의 운명'이라는 것을 의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학문이 높고 재능이 있는데도 연이 닿지 않아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하로동선'처럼 취급하여 너무 쉽게 말하며 비난하는 것을 비웃고 있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연이 닿지 않으면 유익한 진언을 해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반대로 군주의 부덕을 지적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복을 받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여름의 화로라 해도 그것으로 젖은 것을 말릴 수도 있고, 겨울의 부채라 해도 그것으로 불씨를 일으키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물건은 사용하기에 따라 유용하기 마련'으로 무용지물은 없다는 것이다. 즉, 주군의 마음속은 신하가 헤아릴 수 없으므로, 학문과 재능의 유무보다는 군주의 취향에 맞느냐의 여부로 신하의 운명은 결정된다고 본다. 여기서 '하로동선'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철에 맞지 않는 물건이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참고2]부채란‘부치는 채’라는 말인데, 한자 선(扇)은 새의 깃털(羽)로 집(戶)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다. 부채는 고대부터 더위를 식히거나 공기를 순환시키거나 의식을 거행할 때 쓰이던 물건
[반]하갈동구[夏葛冬구]여름에는 베옷 겨울에는 가죽옷 --일이 격에 맞음
■ 하마평 下馬評 [내릴 하/말 마/평할 평]
☞임관될 후보자에 관하여 민간에 떠돌아 다니는 풍설..
[내용]하마평(下馬評)이란 말의 유래는 옛날 가마 또는 말의 상류층 사람들이 이용하던 대표적 교통 수단이었는데, 교통 표지는 그때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마비(下馬碑)이다. 하마비에는‘모두 말에서 내리시오.(大小人員皆下馬)’라고 적혀 있었다. 가마나 말에서 내린 주인이 볼일을 보러 가고 없는 동안 가마꾼이나 마부는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끼리 잡담을 나누게 되었고 별의별 애기가 다 나왔다. 그들의 주인은 고급 관리가 대부분인지라 이야기의 중심도 자연히 출세 진급 따위의‘자리’에 관계된 것이 많았다.[예문]이번 8·7개각을 앞두고서도 언론에서는 언제나처럼 하마평이 무성했습니다. 하마평의 대상이 된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론의 ‘지상발령’에 그쳐 ‘좋았다 말았을’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다행히 ‘낙점’으로 이어져 입각의 기쁨을 누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마평이란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언론을 통한 사전검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누구는 개혁성은 뛰어난데 조정능력은 미지수라거나 누구는 반대로 개혁성은 뒤지지만 팀워크 능력은 기대된다, 또는 누구는 전문성은 점수를 줄 만하지만 참신성이 뒤처지고, 다른 누구는 참신한 얼굴이긴 하지만 부처장악 능력이 미지수라거나 하는 식들입니다. <한겨레21>에서 ■ 하석상대 下石上臺 [아래 하/돌 석/위 상/집 대]
☞아랫 돌 빼서 윗돌 괴기-임시변통으로 둘러맞춤
[동]상석하대[上石下臺]/상하탱석[上下撑石]/고식지계[姑息之計]/미봉책[彌縫策]
[속담]언 발에 오줌누기[동족방뇨 凍足放尿] ■ 하옥 瑕玉 [흠 하/옥 옥]
☞티가 있는 구슬, 즉 옥의 티라는 말로, 공연한 짓을 하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출전『회남자』 세림훈(說林訓)
[내용]"쥐구멍이 있다고 하여 그것을 뜯어고치려고 한다면 동네 대문을 부수게 되고, 여드름을 짜다 보면 뾰루지나 종기가 된다. 이것은 흠이 있는 진주와 티가 있는 구슬을 그대로 두면 온전할 것인데, 흠과 티를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이지러뜨리고 깨뜨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것은 구슬의 티를 제거하기 위해 서투른 솜씨로 나섰다가는 도리어 망가뜨려 전혀 가치가 없는 물건으로 만들고 만다는 말이다.
또 이런 글도 보인다. "표범의 털가죽이라도 복잡하면 여우 털가죽의 순수함만 못하다. 흰 구슬이 티가 있으면 보배로 만들지 못한다. 이것은 순수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옥의 티'라고 하면 완벽한 것에 조그만 한 흠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어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쓰이고 있다.
■ 학경불가단 鶴脛不可斷 [학학/종아리경/아니불/옳을가/자를단]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
![]() [출전]『莊子』 [내용]오리 다리가 짧다고 늘이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줄이지 말라 ☞ 사물에는 각자 자연히 갖추어진 개성이 있으므로 사람이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좋지 않음/사물에는 각각 주어진 성질이 있으므로 과부족이 없음/사물에는 각각 적절한 면이 있으므로 함부로 손익(損益)해서는 안됨 [원문] 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 부경수단 속지즉우 학경수장 단지즉비 **鳧 오리 부 ■ 학수고대 鶴首苦待 [학 학/머리 수/괴로울 고/기다릴 대]
☞학이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기다림. 몹시 기다림.
[동]연경거종(延頸擧踪) 목을 길게 늘이고 발뒤꿈치를 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오는 것을 몹시 기다린다는 말./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 하루가 삼 년 같다는 뜻으로, 몹시 애태우며 기다림의 비유.
[예문]스페인의 하비에르 클레멘테 감독은 14일 나이지리아와의 첫 경기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비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고 백. 클레멘테 감독은 "뜨거운 날씨에는 아무래도 우리보다 나이지리아가 익숙한 것이 사실"이라며 "비가 내려 운동장의 열을 식혀주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설명.<연합통신 98> ■ 학철부어 학轍부魚 [마를 학/수레바퀴 철/붕어 부/물고기 어]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
[출전]『莊子』
[내용]장주(莊周:장자)는 집이 가난하였다. 그래서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그러나 감하후가 말하기를, "장차 내 봉읍(封邑)에서 사금을 받아들이려 하는데, 그것을 받아서 삼백 금쯤 꾸어 주겠다" 하였다. 이에 장주가 화를 내며 안색을 고치고 말하였다. 내 어제 이리로 올 때, 도중에 누가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 속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다. 내가 그놈을 보고, "붕어야, 왜 그러느냐" 하자, 붕어가 말하기를, "저는 동해의 파신(波臣)입니다. 어디서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저를 살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좋다. 나는 지금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가서 시장강[西江]의 물을 터놓아 너를 맞아가게 하겠다. 그래도 되겠느냐?" 하였다. 그러자 붕어가 화를 내고 안색을 고치며 말하기를, "저는 제가 있어야 할 물을 잃어, 지금 있을 곳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찌감치 건어물(乾魚物) 가게로 가셔서 저를 찾으십시오"라고 하였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와의 대화를 빌려, 부질없는 의문에 관심을 두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의(第一義)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먼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에 대한 비유이다. 이 말은 철부지급(轍 )라고도 한다. <두산백과>■ 한단지몽 邯鄲之夢 [땅이름 한/나라이름 단/어조사 지/꿈 몽]
☞한단의 꿈. 부귀와 공명이 꿈처럼 덧없다.**한단--조나라 수도
[동]盧生之夢(노생지몽). /邯鄲之枕(한단지침). /黃梁一炊之夢(황량일취지몽) : 노생이 잠들기 전에 짓던 기장밥이 꿈에서 깨어보니 아직 익 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음. [유]南柯一夢(남가일몽) /一場春夢/白日夢[속담] 인생은 풀 끝 이슬이다.
[출전]『枕中記』[내용]唐나라 현종(玄宗) 때 도사(道士) 여옹(呂翁)이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여관 앞에서 쉬고 있을 때, 노생(盧生)이라는 청년을 만나 담소하다가 노생이 자신의 비천함을 한탄했다. 여옹이 그에게 소원을 묻고 청자(靑磁)로 만든 베개를 주니, 그것을 베고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노생이 꿈 속에서 청하의 최씨딸과 결혼하고 진사갑과에 급제하여 여러 번 옮겨서 중서시랑 겸 중서문하평장사에 임관되었다. 30여 년 조정을 출입하다 보니 높고 성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늙어 벼슬에서 물러나려고 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벼슬을 마치고 하품과 기지개를 켜다가 잠에서 깨어났다.여옹이“인생이란 모두 이것과 같다네.”노생이“이것을 경험한 것은 선생께서 제 욕심을 막아 주신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라 하고 공손히 절한 뒤 길을 떠났다. [원문]生이 于寢中에 娶淸河崔氏女하고 擧進士登甲科하여 累遷하여 拜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하다. 三十餘年出入中外하니 崇盛無比라. 老乞骸骨하니 不許하다. 卒于官하고 欠伸而寤하다.** 枕(베개 침) 梁(기장 량) 炊(불땔 취) 寢(잠잘 침) 娶(장가갈 취) 欠(하품 흠) 寤(잠깰 오) [예문]소유는 본디 하남땅 베옷 임은 선비라 성천자 은혜를 입어 벼슬이 장상에 이르고 제낭자 서로 좇아 은정이 백 년이 하루 같으니 만일 전생 숙연으로 모두 인연이 진하면 각각 돌아감은 천지에 떳떳한 일이라. 우리 백년 후 높은 대 무너지고 굽은 못이 이미 메이고 가무하던 땅이 이미 변하여 거친 뫼와 쇠한 풀이 되었는데 초부와 목동이 오르내리며 탄식하여 가로되,‘이것이 양승상의 제낭자로 더불어 놀던 곳이라. 승상의 부귀풍류와 옥용화태 이제 어디 갔나뇨.’하리니 어이 인생이 덧없지 아니리요.[김만중(金萬重),『구운몽』 (九雲夢)] ☞자기의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면 양쪽 다 잃게 된다
[동]한단학보[邯鄲學步][유]追二兎不得二兎
[출전]『장자』秋水篇(추수편) [출전]且子獨不聞 夫壽陵餘子之學行于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匍而歸耳 今子不法 將忘子之故 失子之業 公孫龍口 而不合 舌擧而不下 乃逸而走.
[내용]장자의 선배인 위모와 명가인 공손용과의 문답형식으로 된 이야기 가운데 위모가 공손용을 보고 이렇 게 말했다. 「또한 당신은 수릉의 젊은 사람이 조나라 서울 한단으로 배우러 갔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그 젊은 사람은 아직 조나라 걸음걸이를 다 배우기도 전에 원래 걷고 있던 걸음걸이 마저 잊고 설설기며 겨우 고향으로 돌아갔다지 않는가? 당장 그대가 가지 않는다면 장차 그대의 방법을 잃고 그대의 본분을 잃어버릴 것일세." 공손룡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혀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아, 곧 달려서 도망쳐 갔다」 조나라는 큰나라, 연나라는 작은 나라 다. 한단은 대도시, 수릉은 시골도시다. 그 시골 도시 청연이 대도시를 동경한 나머지 격에 맞지 않는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자기가 걷던 걸음 걸이 마저 잊고 엉금엉금 기는 시늉을 하며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 한발 旱魃 [가물 한/ 가물귀신 발]
☞가뭄을 몰고 오는 신화 속의 여신.
[출전]『三黃五帝』
[내용]삼황(三皇)이란,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를 말한다. 특히 황제 헌원씨 때에는 사람이 움집이 아닌 집을 만들고 삼베로 옷짜는 것을 고안했다. 약초를 조사하고 의료술을 개발하는 등의 업적을 쌓은 황제가 산동성의 태산으로 행차한 적이 있었다. 큰 코끼리가 이끄는 보차(寶車)를 타고 온갖 신들을 거느린 이 행렬을 못마땅히 여긴 것은 호랑이와 이리떼를 대동한 치우(蚩尤)였다. 그는 바람이 신(風伯)과 비의 신(雨師)을 거느린 괴이한 난폭자였다. 치우는 자기와 같은 몸집을 한 괴신(怪神) 72명과 힘을 합쳐 불평을 일삼던 풍백· 우사를 불러 반기를 들었다.
황제(黃帝)는 치우의 모반 소식을 듣고 판천에서 맞서 기세를 꺾은 다음 탁록에서 두 번째 결전을 벌였다. 황제의 군사는 사방의 신들을 무장으로 삼아, 곰·큰곰·호랑이 등을 훈련시켜 치우의 군대를 대적케 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치우의 군대는 풍백과 우사의 활동으로 큰 바람을 일으켜 폭우를 뿌렸다. 짙은 안개를 흩트려 놓고 동(銅)머리에 쇠 이마를 지닌 괴인 군과 도깨비, 허깨비, 요괴 군들이 안개 속을 헤집으며 신출귀몰하여 날뛰었다.
황제 헌원은 그들과 8전8패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헌원은 안개 속을 헤집으며 적을 공격하는 지남차를 발견하여 적과 맞섰으며, 천상에 있는 딸 발(魃)이라는 여신을 불러내 풍백·우사가 일으킨 풍우와 농무를 흩뜨려 버렸다. 결국 치우는 힘이 소진되어 황제 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발이라는 여신은 용모도 추했지만 대머리였다. 싸움이 끝나자 온 힘을 다해 치우의 군대와 맞섰기 때문에 힘이 빠져 하늘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땅 위에 있자 가뭄이 찾아왔다. 그녀가 있는 곳엔 비 한 방울이 내리지 않는 메마른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한발(旱魃)이란 부르며 원망하게 되었다. ■ 한우충동 汗牛充棟 [땀 한/소 우/가득찰 충/마룻대 동]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뻘뻘 흘리고 방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을 만큼 책이 많다.
![]() [동]옹서만권(擁書萬卷)*낄 옹/오거지서(五車之書)
[출전]柳宗元 『陸文通先生墓表』 [내용]공자(孔子)께서 춘추(春秋)를 짓고서 1500년이 지났다.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이 다섯 있는데, 지금 그 셋을 쓴다. 죽간(竹簡)을 잡고 생각을 초조하게 하여 써 읽고 주석(註釋)을 지은 자가 백천(百千)이나 되는 학자가 있다.
그들은 성품이 뒤틀리고 굽은 사람들로, 말로써 서로 공격하고 숨은 일을 들추어 내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지은 책들은 집에 두면 '창고에 가득 차고', 옆으로 옮기려면 '소와 말이 땀을 흘릴' 정도였다. 공자(孔子)의 뜻에 맞는 책이 숨겨지고, 혹은 어긋나는 책이 세 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후세의 학자들은 늙은을 다하고 기운을 다하여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돌아보아도 그 근본을 얻지 못한다. 그 배우는 것에 전념하여, 서로 다른 바를 비방하고, 마른 대나무의 무리가 되며, 썩은 뼈를 지키어 부자 (父子)가 서로 상대를 상처내고, 임금과 신하가 배반하기에 이르는 자가 전 세 상에는 많이 있었다. 심하도다. 성인(聖人) 孔子의 뜻을 알기가 어렵도다.
[원문]孔子作春秋 千五百年 以名爲傳者五家 今用其三焉乘?牘 焦思慮以爲讀注疏說者 百千人矣 攻??怒 以辭氣相擊排冒沒者 其爲書 處則充棟宇出則汗牛馬 或合而 隱 或乖而顯 後之學者 窮老盡氣 左視右顧 莫得其本 則專其所學以?其所異 黨 枯竹 護朽骨 以至於父子傷夷 君臣?悖者 前世多有之 甚矣 聖人之難知也. ■ 할계언용우도 割鷄焉用牛刀 [가를할/닭계/어찌언/쓸용/소우/칼도]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작은 일에 어울리지 않게 큰 대책을 씀
[출전]『논어(論語)』양화(陽貨) 편 [동]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보고 칼빼기
[내용]공자(孔子)의 제자 자유(子由)는 노나라의 작은 읍 무성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공자에게서 받은 예악(禮樂)에 의해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힘을 다했다. 하루는 공자가 두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자유를 찾아왔다. 그때 마을 곳곳에서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리오?"
자유가 대답했다. "이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조금 아까 한 말은 농담으로 한 것일 뿐이다."
사실 공자가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라고 한 것은 자유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재인데도 이런 작은 읍에서 성실하게 하는 것이 보기 좋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요즘 이 말은 공자의 본 뜻과는의미가 바뀌어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큰 인물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비유한다.
☞공복을 채우기 위해 제 허벅살을 뜯어먹는다
[동]割股充腹
한 때의 곤란만 면하려는 어리석은 잔꾀/눈앞의 이익만을 꾀하다가 신세를 망침
■ 함흥차사 咸興差使 [다 함/일어날 흥/어긋날 차.사신 사]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더디 오다. 감감 무소식.**함흥-지명/차사--사신
[동]終無消息(종무소식) /강원도포수-강원도에는 산이 많고 또 겹겹이 험하기 때문에 포수가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니 밖에 나갔다가 오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함안차사 (咸安差使)
[내용] 태조 이성계가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 후 형제를 무참히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차지한 태종의 행위에 분노한 태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그 차사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은 데서 유래한 말. [참고1]差使員(차사원) : 조선시대 때 각종 특수 임무의 수행을 위하여 임시로 차출, 임명된 관리.‘差’는‘시키다’‘파견하다’‘심부름하다’‘使’는‘명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차사란 일정한 용무를 주어 딴곳으로 파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참고2]함안차사 (咸安差使) --확실한 연대와 인물은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의 일인 듯 짐작된다.그 당시 한 사람이 대역죄를 지었는데 조정에서 안핵사까지 내려 보내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 죄인에게는 노아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천하 절색일뿐만 아니라 가무며 학문이 능하고 구변이 청산유수이어서 한번 본 남자는 그녀의 치마폭에 놀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노아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의 생명을 구하고자 스스로 기적에 입적하여 관리들을 홀려 그들의 약점을 이용, 아버지를 벌주지 못하게 하였다. 안핵사로 내려올 때마다 지방 관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핑계로든 잔치를 베풀게 하였고 그 자리에는 반드시 그녀가 참석하여 미색과 가무, 그리고 모든 아양을 떨어 그때마다 수청을 자청하여 안핵사로 하여금 본분의 일을 잊고 주색에 빠지게 하여 차일피일 하다가 돌아가거나 봉고 파직케 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성품이 강직, 청렴하고 과단성이 있는 젊은 관원을 뽑아 안핵사의 임명하여 그 죄상을 낱낱이 밝히도록 하였다.이에 신임 안핵사는 호언장담하기를"이제 기생을 가까이 아니하고 술을 멀리하여 관리들을 희롱한 노아부터 처벌한 다음 그의 아비를 다스릴 것이다."라며 안핵길에 올랐다.한편 노아는 밀정을 풀어 신임 안핵사의 일거일동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는 계획을 마련, 안핵사가 칠원현 웃개나루에 당도하여 객주집에 들러 점심을 들게 하였다. 노아는 계획이 적중함을 기뻐하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지점에서 소복단장으로 구경꾼 속에 끼어 들랑 달랑 하며 안핵사의 시선을 끌기에 노력하였다.안핵사의 낯선 고장의 산천경개와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노독을 풀던 중 무심코 구경꾼들을 쳐다보니 멀게 가깝게 아른거리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는데, 천상의 선녀가 하계하여 노니는 듯, 백학이 알을 품고 구름 속에서 춤을 추듯, 벌 나비가 꽃밭에서 춘광을 희롱하듯 하여 정신이 아득하고 눈앞이 삼삼하여 황홀경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이곳은 타고을이라 잠시 방심한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하룻밤 유숙하기를 명하고 주인을 불러 넌즈시 소복여인에 대해 물었다. 주인은 한숨만 쉬면서 말이 없더니 '그 아이는 누구의 딸이 온데 박복하게도 얼마 전 남편과 사별하고 시가에서도 의탁할 길이 없어 잠시 소인에게 돌아와 있는 중이옵니다.'하였다.
안핵사는 속으로 '옳다 구나!'하며 무릎을 치고는 슬그머니 주인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며 오늘밤 상면케 해줄 것을 청했다. 주인은 딱 잡아떼며 말하기를"여식은 비록 비천한 소인의 소생이 오나 내칙제서(內則諸書:여자의 행실과 법도를 적은 책)며 일반 학문을 익혀 정절을 소중히 하고 있사오니 천부당 만부당 한 줄로 아옵니다."하였다. 더욱 초조하고 마음이 들뜬 그는 애원조로 거듭해서 간청하자 못이기는 체하는 말이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 하였으니 부디 버리지 않는다는 약조만 하신다면 한 번 권하여 보겠나이다."하니 그는 그러마고 거듭 다짐하며 멋모르고 좋아했다. 일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니 능청스런 노구와 간교한 노아는 기뻐 어쩔 줄 몰라했는데 이윽고 해가 지고 밤이 이슥하자 주안상을 곁들여 안핵사의 방을 찾아 들었다.낮에는 먼 발치로 어름어름 보았으나 곱게 단장하여 촛불 앞에 앉은 노아를 본 순간 빼어난 절색에 그만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으며, 무상한 인생과 덧없는 세월로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하였다.그럭그럭 회포를 풀고 동침을 권하자 노아는 안색마저 변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럴수록 애간장이 탄 그는 섬섬옥수를 부여잡고 간청하니 대장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자 노아는 이제는 되었겠지 생각하고 마지 못하는 척하며 응하면서 다시는 버리지 않겠다는 자문을 받은 후에 원앙금침 속에 들었다.함안에 도착한 안핵사는 왕법을 문란케 한 요녀 노아를 대령시켜 극형에 처하라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동헌 앞뜰에 끌려 온 노아는"능지처참의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마땅히 공사(供辭;변명서)를 보시고 결정함이 국법이온데 무조건 벌 주심은 과한 줄 아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공사를 먼저 보시업소서!"하니 안핵사가 그 말을 옳게 여겨 공사를 보니 아비의 사연을 먼저 쓰고 끝에 시 한 구절을 적었다. 노아옥비 시수명 (盧兒玉臂 是誰名) - 노아의 옥같은 팔에 그 누구의 이름인고, 각입기부 자자명 (刻入肌膚 字字明) - 살갗에 깊이 새겨 자자히 완연하다. 영견낙동 강수진 (寧見洛東 江水盡) - 차라리 낙동강 물의 마름을 볼 지언정 첩심종불 부초맹 (妾心終不 負初盟) - 이몸이 맺은 맹서 변할 줄이 있으랴. 안핵사는 깜짝 놀라 바라보니 지난 밤에 만나 백년 천년을 같이 하자던 그녀가 아닌가? 비로소 그녀의 간계에 속은 것을 알았으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안핵사는 갑자기 병을 빙자하여 치죄를 중지하고 영원히 관직에서 물러 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강원도 포수나 함흥차사와 같이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함안차사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예문]일본 사령관은 키스카 섬의 기상을 파악하기 위해 잠수함이나 함선을 보냈으나 `함흥차사'였다. 이젠 전적으로 기상장교의 예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이번에는 안개가 낍니다.” 연필 한 자루에 운명을 걸고 일기도를 그려가면서 안개가 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기상장교는 최종적으로 일기도 위에 `안개'라고 써 넣고는 사령관에게 보고한다. <국방일보> ■ 합종연횡 合縱連橫 [합할 합/세로 종/이을 연/가로 횡]
☞공수(攻守)동맹의 뜻, 남북으로 합류하고 동서로 연합한다는 뜻으로, 강적에 대항하기 위한 권모 술수의 전략을 말함.
[출전]『史記』
[내용]한전국시대 말경 소진이 진에 대항하기 위하여 남북의 여섯나라(한,위,조,연,제,초)를 동맹시킨 외교책--합종/소진이 피살된후 장의가 이들 여섯나라를 동서로 묶어 진을 섬기게한 외교책--연횡 ☞ 합종연횡[합종연회라고도 씀]은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의 두 외교정책을 합한 말로, 국제 무대에서의 외교적 각축전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합종의 종은 종(縱)의 뜻으로 남북을 뜻하고 연횡의 횡(衡)은 횡(橫)의 뜻으로 동서를 말한다. 이 말을 외교정책으로 처음 들고 나온 것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였다. 전국시대는 이른바 칠웅(七雄)이 할거해 있던 시대로 서족으로 진나라가 강대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동쪽으로 나머지 여섯나라가 남북으로 줄지어 있었다. 소진은 여섯나라가 남북 으로 합작해서 방위동맹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공존공영의 길이라고 주장하여 이를 「합종」이라 불렀고, 이에 맞서서 장의는 약한 나라끼리 합종을 하는 것 보다는 강한 진나라와 연합하여 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고 하여 이를 「연횡」이라 불렀던 것이다. 소진과 장의는 먼저 이 「합종책」을 들고 나와 6국의 군사 동맹을 성공시킨 다음 그 공로로 6국의 제상직을 한 몸에 겸하고 자신 은 종약장(從約長)이 되어 6국의 왕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소진의 이 정책을 깨뜨리기 위해 각국은 개별적으로 찾아 다니며 진나라와의 연합책만이 안전한 길이란 것을 설득시켜 소진의 합종책이 사실상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것이 장의였다. 전국 백년의 역사는 이 합종과 연횡이 되풀이한 역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두고두고 말썽이 되어왔다. 그래서 제자백가중 외교무대에서 세치 혀로 활약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종횡가라고 한 것도 이 합종연횡에서 나온 이름 이었다. ■ 항려지년 伉儷之年 [짝 항/짝 려/해 년]
☞장가들고 시집갈 나이 **항려=配偶(배우)
■ 항룡유회 亢龍有悔 [목 항/용 룡/있을 유/뉘우칠 회]
☞절정에 이른 용은 자칫 후회하기 쉽다. 영달을 다한 자는 더 이상 오를 수 있는 길도 없으며, 쇠퇴할 염려가 있다
[출전]『易經』 乾掛
[내용]중국 사람들이 끔직이 섬기는 동물에 '사령(四靈)'이란 것이 있다. 용(龍) · 봉황(鳳凰) · 기린(麒麟) · 거북이다. 각기 상징성을 부여했는데 용은 황제, 봉황은 길상의 상징이다. 기린은 자손과 행복, 거북은 건강과 장수의 상징이다. 사령 중 으뜸인 용은 그 생김새가 호랑이의 머리에 뱀의 몸뚱이, 독수리의 발톱, 사슴뿔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가공의 동물임에도 중국 사람들이 용에 대한 기대는 대단하고 그들만큼 용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이렇게 용을 숭상하는 까닭은 용이 지닌 무한한 능력 때문이다. 이놈은 작아지려고 마음 먹으면 번데기만 해지지만 커지려고 하면 천하를 뒤덮을 수 있다. 아래로는 깊은 연못에 잠길 수도 있는 반면 위로는 구만리 창천(蒼天)을 솟구칠 수도 있으며 비구름을 마음대로 부린다. 여의주(如意珠)라도 입에 무는 날이면 온갖 조화를 부린다. 한마디로 무소불능(無所不能)의 존재인 것이다.
중국 첫 황제인 황제(黃帝)의 상징인 황룡(黃龍), 나이가 8백세라는 청룡 (靑龍), 적룡(赤龍), 흑룡(黑龍) 등 오색 용은 천지를 이룩하고 있는 용들이다. [회남자(淮南子)]에 보면 날개 달린 비룡(飛龍)이 뭇 날짐승을 낳았고, 네발이 달린 응룡(應龍)이 뭇짐승을 낳았으며 교룡(蛟龍)이 뭇 고기를 낳았다 했다. 이처럼 중국의 천지와 모든 생물의 계보를 더듬어 올라가면 용으로 귀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앉는 좌상을 용상(龍床)이라 하고 임금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용가(龍架), 임금이 타고 다니는 말을 용기(龍騎), 임금을 상징하는 깃발을 용기(龍旗),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의 자손을 용종(龍種)이라 함을 미루어 봐도 용이 최고 통치권자를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왕조의 성을 바꾸는 역성(易姓) 혁명을 할 때 용종 곧 용의 후손임을 입증시켜 쿠데타에 대한 백성의 반감을 수렴하려 했던 사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용종임을 자처하고 그 물증으로서 용린(龍鱗), 곧 용비늘을 고려 왕조 대대로 계승해 내렸었다. 이 고려의 용비늘에 대한 조선조 중종 때의 기록을 보면, 잘 살펴보니 태모갑을 깎아 용비늘처럼 만든 것이라 했다. 이 용비늘은 명종때 난 경복궁의 불로 타 없어졌다.
주역(周易)의 건괘(乾掛)는 용(龍)이 승천하는 기세,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남성적 기운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운세를 단계별로 용(龍)에 비유하고 있다.
곧 연못 깊이 잠복해 있는 용(잠용 潛龍)은 덕(德)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런 다음 땅위로 올라와 자신을 드러내는 용(견용 見龍)이 되면 비로소 덕 (德)을 만천하에 펴 훌륭한 군주(君主)의 신임을 받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하늘을 힘차게 나는 용(비룡 飛龍)이다. 이것은 본 괘(掛)의 극치로서 제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덕(德)을 갖추었으므로 훌륭한 신하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보필한다.
이렇게 하여 절정의 경지에 이른 용(龍)이 항룡(亢龍)이다. 승천(昇天)한 용 (龍)인 셈이다. 하지만 물극즉반(物極則反-만물이 극(極)에 차면 기우는 법),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지 않았는가. '항룡(亢龍)'에 대한 공자(孔子)의 해석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곧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항룡(亢龍) 에 이르면 후회(後悔)하기 쉽상이니 이것이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것이다. 물론 항룡유회(亢龍有悔)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만과 무시보다 덕을 쌓고 처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잃었던 민심(民心)을 회복하는 길 뿐이다. 요컨대 건괘(乾掛)는 우리에게 변화에 순응할 것과 겸손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항산항심 恒産恒心 [항상 항/재산 산/마음 심]
☞재산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가 생김.
[출전]『孟子』
[내용]맹자(孟子)가 유세(遊說)에 실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 산동현(山東縣)에 돌아와 쓸쓸히 만년을 보낼 때의 일이다.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등(騰)이라는 소국(小國)이 있었다. 그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등문공(騰文公)은 그를 국정(國政)의 고문(顧問)으로 초빙했다. 맹자(孟子)가 오자 그는 대뜸 치국(治國)의 방책을 물었다. 사실 맹자(孟子)는 위민정치 이념에 투철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늘 통치자 보다는 백성의 입장에 서서 정치를 논했다. 그는 문공(文公)에게 왕도정치를 설명하면서 그 첫걸음은 백성들의 의식주를 만족하게 해주는데 있다고 했다. 제 아무리 인의(仁義)니 도덕을 강조한들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면 사상누각 (砂上樓閣)에 불과할 뿐이다. 곧 민생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유항산(有恒産)이면 유항심(有恒心)입니다 (변치 않는 재산이 있으면 변치 않는 마음도 있는 법)."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 해로동혈 偕老同穴[함께 해/늙을 로/같을 동/구멍 혈]
☞부부가 화목하여,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힘. 부부사이의 화목함.
[출전]『시경(詩經)』
[내용] 격고(擊鼓)라는 시에,「죽으나 사나 만나나 헤어지나, 그대와 함께 하자 언약하였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겠노라. 즉 전선에 출장한 병사가 고향에 돌아갈 날이 언젤런지...... 애마(愛馬)와도 사별하고 싸움터를 방황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다. 그러나,“아, 멀리 떠나 우리의 언약을 어기다니"로 끝맺은 병사의 슬픈 노래다 [원문]死生契闊에 與子成說호라, 執子之手하여 與子偕老라 호라
[예문]해면은 단단한 표면에 붙어있는 식물처럼 보이나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다세포동물 중에서 가장 하등한 동물이다. 해면은 작은 구멍이 많아 물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예전에는 청소나 목욕할 때 사용하였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펀지도 해면(sponge)에서 그 이름과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지구상에는 약 10,000종의 해면이 있으며 대부분은 바다에 살고 있다. 해면은 모양이 다양해 바위에 이끼처럼 낮게 깔려있는 것도 있고 굴뚝처럼 솟아 오른 것도 있다. 해면을 실험실에서 여러 조각으로 잘라 놓으면 잘린 조각들이 다시 모여 원상 복귀한다고 하니 가히 불사조이다. 일본에서는 해면을 결혼선물로 주기도 한다. 예쁜 꽃병처럼 생긴 해면에 새우가 들어가 살다가 몸이 커지면 빠져 나오지 못하고 평생을 같이 해로동혈(偕老同穴)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는 205종의 해산 해면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해어지화 解語之花 [풀 해/말씀 어/어조사 지/꽃 화]
☞말을 이해하는 꽃--미인을 뜻하는 말
[출전]『開元天寶遺事』
[내용]당나라 현종이 비빈,궁녀들을 데리고 연꽃을 구경하다가 양귀비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 해옹호구 海翁好鷗 [바다 해/늙은이 옹/좋아할 호/갈매기 구]
☞바다 노인이 갈매기를 좋아한다. 사람에게 야심(野心)이 있으면 새도 그것을 알고 가까이하지 않는다.
![]() [출전]『열자(列子)』 황제(黃帝) 편
[내용]바닷가에 사는 어떤 이가 갈매기를 좋아했다. 그는 매일 아침 바닷가로 나가서 갈매기들과 더불어 놀았는데, 그에게 놀러 오는 갈매기들이 200마리도 넘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더불어 논다는 말을 들었다. 그 갈매기를 잡아 오도록 해라. 내 그걸 가지고 놀고 싶구나." 그는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다음날 역시 바닷가로 나갔다. 그런데 이날 갈매기들은 그 위를 맴돌며 날 뿐 내려오지 않았다. ■ 행불유경 行不由徑 [다닐 행/ 아니 불/ 말미암을 유/ 지름길 경]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고 큰 길을 걷는다는 말로, 정정당당히 일함.
[출전]『論語 』
[내용]공자의 제자 자유(子遊)가 무성(武城)이라는 작은 도시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축하 겸 애제자가 일하는 모습을 보러 간 공자가 그에게 물어 보았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너도 부하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터인데, 이렇다 할 인물이 있느냐?" "예. 안심하십시오. 성은 담대(澹臺), 이름은 멸명(滅明)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가고,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얻어서 다행이다. 소중히 대하려무나." 공자는 기뻐하며 자유를 격려했다.
■ 허유괘표 許由掛瓢 [허럭할 허/말미암을 유/걸 괘/표주박 표]
☞속세를 떠나 청렴하게 살아가는 모양
[출전]『高士傳』
[내용]중국 요임금 때 기산에 은거하던 허유가 그릇이 없어 손으로 물을 떠 마 시는 것을 본 나무꾼이 표주박 하나를 주었으나 허유는 그 것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내 버렸다. ■ 현두자고 懸頭刺股 [매달 현/머리 두/찌를 자/다리 고]
☞머리를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른다. 공부 등 뭔가를 매우 열심히 하는 것, 학업에 전심전력함.
[내용]. 졸음이나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에 끈을 묶어천장 대들보에 매달고 송곳으로 넓적다 리를 찌른 데서 유래되었다. 한나라의 손경은 낙양에 도착한 후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졸음이 오면 머리를 천장 대들보에 끈으로 매달아 놓고 학업에 매달렸다. 전국 시대 때 소진은 책을 읽다가 졸리면 송곳으로 자신의 넓적 다리를 찔렀다. 피가 흘러 복사뼈까지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동] 추고지면[錐股之勉][동] 차형손설[車螢孫雪] ■ 현하지변 懸河之辯 [매달 현/강 하/어조사 지/말잘할 변]
☞흐르는 물과 같은 연설. 매우 유창한 말솜씨.
[동]懸河口辯/懸河雄辯/구약현하口若懸河]
[출전]『진서』 [내용]입에서 나오는 말이 경사가 급하여 쏜살같이 흐르는 강과 같다는 말로, 말을 거침없이 청산유수처럼 유창하게 엮어 내려감을 비유한 말이다. 《진서(晉書)》〈곽상전(郭象傳)〉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서진(西晉)의 학자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탁월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일상생활 속의 모든 현상에 대한 깊은 사색을 즐겼다. 그는 성인(成人)이 되어서도 노장(老莊)의 학설을 좋아하여 그에 관한 연구와 집필을 계속하였다. 곽상은 그 당시 조정으로부터 관직을 맡아 줄 것을 부탁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학문 연구에 뜻을 두고 있었으므로 모두 사양하였다. 그러나 한번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황문시랑(黃門侍郞)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는 관직생활에 있어서도 매사를 이치에 맞게, 분명하게 처리하였고, 다른 사람들과 어떤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좋아했다. 토론을 할 때마다 그의 말이 논리 정연하고 언변이 뛰어난 것을 지켜보던 왕연(王衍)은 이렇게 칭찬의 말을 했다.
“곽상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마치 산 위에서 곧장 떨어지는 물줄기가 그치지 않음과 같다[聽象語 如懸河瀉水 注而不竭(청상어 여현하사수 주이불갈)].”고 하였다. 여기서 ‘구약현하’라는 말이 나왔으며, 이 말은 ‘현하지변(懸河之辯)’과 유사하다. 이 말들은 말만 번지르르게 하고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것을 두고 말할 때도 있다.<두산백과>
■ 혈혈단신 孑孑單身 [와로울 혈/홀로 단/몸 신]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는 홀몸..
[예문]긴 한숨 피눈물은 창끈으 애원이라. 방으로 뛰여들어가 입은 옷도 아니 벗고, 외로운 비개 우에 벽만 안고 돌아누워 주야 끌끌 울 제, 속에 울회가 훨훨, 병 아니고 무엇이요? 늙은 어미가 곁에 앉어 아무리 좋은 말로 달래고 달래여도, 시렴 상사 깊이 든 병 내내 고치들 못허고 원통히 죽게 되면, 칠십 당년 늙은 것이 사우 잃고 딸 죽이고, 지리산 갈가마구 겟발 물어다 던지듯이, 혈혈단신 이 내 몸이 뉘기를 의지허오리까? 이왕에 가실 테면 춘향이도 죽이고, 나도 죽이고, 향단이까지 마자 죽여, 삼 식구 아조 죽여 땅에 묻고 가면 갔지 살려두고는 못 가리다. 양반의 자세허고 몇 사람 신세를 망추랴고. 마오, 마오, 그리 마오.“<판소리다섯마당>춘향가
■ 형설지공 螢雪之功 [반딧불 형/눈 설/어조사 지/공 공]
☞가난한 사람이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함을 일컫는 말
![]() [동]螢窓雪案(형창설안)--공부하는 서재. 車螢孫雪(차형손설). 映雪讀書(영설독서).
[출전]『晉書』/『日記故事大全』--明, 장서도 [내용] :진나라의 차륜이 어려서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기름을 항상 얻지는 못했다. 여름철에 명주 주머니에 수십 개의 반딧불을 담아 책을 비추어 그것을 읽어 밤낮으로 계속하더니, 뒤에 벼슬이 상서랑에 이르렀다. 지금 사람들이 공부방의 창을 형창이라 함은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진나라의 손강이 젊었을 때 마음이 맑고 꿋꿋하여 사귐이 잡스럽지 않았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기름이 없어 일찍이 눈에 비추어 책을 읽더니, 뒤에 벼슬이 어사대부에 이르렀다. 지금 사람들이 책상을 설안이라 함은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 고사에서 비롯되어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형설지공' 또는 단순히 '형설'이라고 한다.
[원문][晉 車胤이 幼에 恭勤博覽할새 不常得油라. 夏日에 以練囊으로 盛數十螢火하여 照書讀之하여 以夜繼日이러니, 後에 官至尙書郞하니라. 今人이 以書窓으로 爲螢窓은 由此也니라. 晉 孫康이 少에 淸介하여 交不雜이나 家貧無油하여 嘗映雪讀書러니, 後에 官至御史大夫하니라. 今人이 以書案으로 爲雪案은 由此也니라.](晉書)
** 螢(반딧불 형) 胤(잇다, 자식 윤) 練(비단 련) 囊(주머니 낭) 照(비출 조) 康(편안할 강)
■ 형이상 形而上 [모양 형/말이을 이/위 상]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것.구체적으로 볼 수 없는 것,유형의 현상을 초월한 무형의 것,감각을 초월한 무형의 본질적 존재로 직관이나 이성,사고에 의해서만 인식되는 추상적,철학적,초경험적이란 의미
[출전]『주역(周易)』
[내용] "형상(形象) 이전의 것을 도(道)라고 한다", "형상 이후의 것을 기(器)라고 한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형이상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초월한 정신, 도를 가리키고 형이하는 형상을 가진 물질 또는 그런 속성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형이상은 사물이 형체를 갖기 이전의 근원적인 본모습이며, 형이하는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을 뜻한다. 송대(宋代)의 주희(朱熹)는 "형이상자는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다"라고 하고 도를 이(理), 성(性)이라고 해석하였고 "형이하자는 실상도 있고 모양도 있다"라고 하여 기를 기(氣)라고 해석하여 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인간과 사물이 생성될 때 이(理)를 먼저 받은 후에 본성을 갖게 되고 기를 받은 후에 형태를 갖추게 된다고 하였다. 이전에는 형이상인 이가 형이하인 기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한다고 하였으나 이기의 관계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형이상적인 존재이고 기는 형이하적 존재로서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불리부잡(不離不雜)에 있지만 현상적 실재물에서는 이를 따라서 기가 있고 기를 떠나서 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기가 운동성을 갖는 데 반하여 이는 무위이고 기의 운동에 따르며 거기에 질서를 부여할 뿐이다.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는 이와 기로 해석되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인 동시에 통합될 수 없는 관계로, 그 관계를 파악하는 이해방법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학설들의 전개와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 [원문]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 형이하 形而下 [모양 형/말이을 이/아래 하]
☞형체가 있는 유형의 구체적인 것.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부터 감각으로 인식되는 것.물질적 존재의 의미로 시간이나 공간 중에 형체를 갖고 나타나는 것 즉 자연현상
[원문]形而下者謂之器
■ 형처 荊妻 [가시나무 형/아내 처]
☞남에게 자기 아내를 낮추어 일컫는 말.
[출전] 『烈女傳』
[내용]후한(後漢) 시대 양홍(梁鴻)이라는 사람의 처 맹광(孟光)의 이야기다. 맹광은 뚱보인데다 얼굴이 추하고, 게다가 얼굴빛이 새까맸다. 하지만 미녀에게는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쉽게 돌절구를 들어올릴 정도로 힘이 세었다. 더욱이 마음이 상냥하고 그 언행에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마을에서는 평판이 좋아 사방에서 혼담이 들어왔으나 맹광은 계속 거절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른 살이 되어 버렸다. 맹관은 혼담이 들어오는 족족 퇴박하더니 양홍이라는 돼지치기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맹광의 부친이 양홍을 찾아가서 청혼을 했다. "댁의 따님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 양홍이 청혼을 받아들이자 맹광은 양홍의 희망대로 신변의 일용품만 가지고 시집을 왔다. 이튿날부터 즉시 허술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트레머리로 하고 친정에 있을 때와 같은 복장을 했다. 양홍은 그러한 아내를 보고 흡족해 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의 아내다."
당시는 왕망(王莽)이 정권을 빼앗아 국호를 신(新)이라 칭한 때로, 그의 악정을 견디지 못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천하가 어지러웠다. 양홍은 학식이나 인품이 높아 사방의 반란자나 그 부하들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유혹의 손길을 피해 돼지치기를 그만두고 맹광과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산속에다 양홍은 땅을 갈고, 맹광은 베를 짜며 2년간을 살았다.
이윽고 산속에까지 유혹의 손이 뻗치자 두 사람은 오(吳)나라에 가서 이름을 숨긴 채 어느 집의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살았다. 양홍은 매일 삯방아를 찧으러 나가고, 그 근소한 수입으로 겨우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맹광은 매일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무명 치마를 입고서 남편을 따뜻이 맞았으며, 밥상을 눈썹 높이 들어 공손히 남편에게 식사를 권했다. 常荊釵布裙每進食 擧案齊眉(상형재포군 매진식 거안제미)
이 맹광의 고사에서 허술한 옷차림을 가리켜 형채포군(荊釵布裙)이라 하고, 부인이 예절을 다해 남편을 섬기는 것을 거안제미(擧案齊眉)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형처(荊妻)라는 말도 생겼다.
■ 혜전탈우 蹊田奪牛[지름길 혜/밭 전/빼앗을 탈/소 우]
☞남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그 소를 빼앗음. 가벼운 죄에 대한 처벌이 혹독함
[출전]『史記』
[내용]춘추시대 진(陳)나라의 대부 하징서(夏徵舒)가 자기 집에 놀러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임금 영공(靈公)을 시해(弑害)했다. 이 소식을 들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군사를 일으켜 진(陳)나라의 수도를 공략하고 하징서를 죽임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장왕은 내친 김에 진나라를 초나라의 한 고을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장왕이 우쭐해 있을 때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있던 대부 신숙시 (申叔時)가 돌아왔다. 그가 장왕에게 업무 보고만 하고는 그대로 물러나려고 하자 장왕은 불쾌한 표정으로 불러 세우고는 말했다.
"하징서가 무도하게도 그 임금을 시해했기 때문에 과인이 쳐들어가 그를 죽였다. 제후(諸侯)와 현공(縣公)들이 모두 축하해주는데 그대만 아무 말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신숙시의 대답은 이랬다. "임금을 시해한 죄는 물론 크지요. 그를 처단하신 전하의 의리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남의 소가 무단히 내 밭을 짓밟았다면 잘못된 일이지요. 그렇다고 남의 소를 빼앗는다면 지나친 처벌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후들이 전하를 칭송하는 것은 죄지은 자를 징벌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를 이 나라의 한 고을로 만든 것은 남의 부(富)를 탐낸 것입니다. 죄 있는 자를 징벌하면서 남의 땅까지 탐낸다면 이게 옳은 일이 되겠습니까?" 장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과인의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군.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되지 않겠는가." 장왕은 빼앗은 진(陳)나라를 즉각 원상 회복시켜 주었다.
■ 호가호위 狐假虎威 [여우 호/빌릴 가/범 호/위엄 위]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리다. 남의 권세에 붙어 위세를 부리는 사람.
![]() [동]借虎爲狐(차호위호). 假虎威狐(가호위호). [속담] 문선왕(공자) 끼고 송사한다.
[출전]『전국책(戰國策)』 [내용] :「호랑이가 온갖 짐승을 구하여 그것을 먹으려다가 여우를 얻으니, 여우가 말하기를“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지 못하리라. 천제께서 나로 하여금 온갖 짐승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 그대가 나를 잡아 먹으면 이는 천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대가 나를 못 믿겠다 생각하거든 내가 그대를 위해 앞서 갈 터이니, 그대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온갖 짐승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가를 보아라.”했다. 호랑이는 그렇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그와 더불어 가자, 짐승들이 이것을 보고 모두 달아나거늘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달아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 [참고]기원전 4세기 초,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하루는 선왕이 신하들에게 "듣자하니, 위나라를 비롯하여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하고 물었다. 이때, 위나라 출신인 강을(江乙)이란 변사가 초나라 선왕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왕족이자 명재상으로 명망 높은 소해휼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강을은 이야말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얼른 대답하였다.[荊宣王問群臣曰 吾聞北方之畏昭奚恤也 果誠何如 群臣莫對 江乙對曰 ] "그렇지 않습니다.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어찌 한 나라의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교활한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명을 받고 내려온 사자(使者)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나를 백수의 왕으로 정하신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니 천벌을 받게 될 거다. 만약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하나도 없을 테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따라오고 있던 호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호랑이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전하의 땅이 사방 오천리요 군사백만을 거느리고 소해휼에게 전속을 시켰습니다. 지금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소해휼울 두려워하는 것은 그 사실은 그 뒤에 있는 초나라의 병력, 곧 전하의 강한 군사력입니다. 백수가 여우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今王之地方五千里 帶甲百萬 而專屬之昭奚恤 故北方之畏奚恤也 其實畏王之甲兵也 猶百獸之畏虎也] 이 고사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나왔으며, '가호위(假虎威)' '가호위호(假虎威狐)'라고도 한다. 오늘날 이 말은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남을 등쳐먹는 행위를 일삼는 것을 비유하여 사용된다.<두산백과> [원문]虎求百獸而食之라가 得狐하니 狐曰,“子는 無敢食我也리라. 天帝使我長百獸하니 今子食我면 是는 逆天帝命也라. 子以我爲不信이어든 吾爲子先行하리니 子隨我後하여 觀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하라”하니 虎以爲然하여 故로 遂與之行한대 獸見之하고 皆走어늘, 虎不知獸畏己而走也하고 以爲畏狐也러라. ** 假(빌릴 가) 威(위엄 위) 敢(감히 감) 獸(짐승 수) 隨(따를 수) 畏(두려워할 외) ■ 호계삼소 虎溪三笑 [범 호/시내 계/석 삼/웃을 소]
☞학문이나 예술에 열중하여 道程이 먼 것을 잊음/중국 고사에서 취제한 동양화의 화제
[준]三笑
[출전]『盧山記』 [내용]동진시대의 학승 혜원법사는 동림사에 있으면서 아직 호계를 건너간 적이 없었다.(건너지 않기로 맹세했다고 함)그런데 어느날 도연명과 육수정이 찾아왔다.돌아서는 그들을 배웅하면서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호계를 건넌 것도 몰랐다.호랑이가 으르렁대는 소리를 듣고서야 세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껄껄 웃었다**호계-강서성 구강현 盧山동쪽에 있는 계곡의 이름 **세사람이 시대가 달라 사실이 아니라는 설도 있음
호계는 중국의 여산(廬山)에 있는 계곡으로 《여산기(廬山記)》에 “유천(流泉), 절을 돌아서 내려와 호계(虎溪)에 들다”라고 하였는데, 여산의 고승 혜원(慧遠)이 손님을 배웅할 때 이곳을 지나치면 호랑이가 울었다 하여 이런 명칭이 붙었다 한다. 삼소는 혜원이 손님을 보낼 때는 이 호계를 경계로 하여 그 곳 이상 배웅을 하지 않았으나, 도사인 육수정(陸修靜),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두 사람을 배웅할 때는 이야기에 도취한 나머지 이 호계를 지나쳐버려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 하여 생긴 말이다. 이 설화는 당대 이래 전하여지고 있으나 역사적인 사실로서는 의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 고사를 화제로 한 회화는 중국 송대의 석각(石恪)이 그린 것이 최초라고 하며 많은 화가들이 이 고사를 화제로 하여 작품을 남겼다.<두산백과> ■ 호구고수 狐구羔袖 [여우 호,갖옷 구,새끼양 고,소매 수]
☞값비싼 호구(호백구)에 염소가죽으로 소매를 단다.-전체적으로 좋으나 한군데 결점이 있음
**호구(호백구)-여우 겨드랑이 흰 털가죽을 이어서 만든 갖옷.옛날 중국에서 경대부 이상의 고관들만 입을 수 있었던 매우 값비싼 옷--귀족에 비유
■ 호구지계狐丘之戒 [여우 호/언덕 구/어조사 지/경계할 계]
☞남에게 원한을 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뜻
[동]인유삼원人有三怨
[출전]『열자』 [내용]전국시대 호구라는 마을의 한 노인이 초나라의 대부 손숙오에게 "사람에게는 세가지 원한, 곧 고관에 대한 세인의 질투,현신에 대한 군주의 증오,녹이 많은 고관에 대한 원한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전국시대 때, 초(楚)나라의 호구(狐丘)라는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이 초나라의 대부(大夫) 손숙오(孫叔敖)에게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원망의 대상이 있는데, 혹시 그걸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손숙오가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묻자, "사람들은 직위가 높은 사람을 투기하고, 임금은 벼슬이 높은 현신을 미워하며, 녹을 많이 받는 사람은 세인의 원망을 듣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손숙오가 "제 직위가 올라갈수록 저의 뜻은 더욱 낮추고, 제 벼슬이 높아질수록 저의 마음을 더욱 작게 가지며, 제 녹이 많아질수록 제가 베푸는 것을 더욱 넓게 한다면, 이 세 가지 원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라고 물었다. 세월이 흘러 손숙오가 병이 들어 죽을 때가 되자, 아들을 불러 훈계하기를 "임금께서는 자주 나를 봉(封)하려 했지만 내가 받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임금께서는 분명히 네게 땅을 봉해 주실 것인즉, 너는 절대로 이로운 땅을 받아서는 안 된다. 초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침구(寢丘)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곳은 이롭지도 않고 명성 또한 아주 좋지 않다. 초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믿고, 월나라 사람들은 상서(尙書)를 믿으니 오래도록 차지할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다"라고 말했다. 손숙오가 죽자, 과연 임금은 그의 아들에게 기름지고 아름다운 지방을 분봉하려 했으나, 그의 아들은 부친의 유언대로 이를 사양하고 침구 지방을 요청했다. 임금이 그곳을 그에게 주어 오래도록 자손들이 잃지 않고 차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호구지계(狐丘之戒)'는 호구에 사는 노인이 초나라 대부 손숙오에게 사람들이 가지는 세 가지 원망, 곧 '고관에 대한 세인의 질투, 현신에 대한 군주의 증오, 녹이 많은 고관에 대한 세인의 원망'이 있으니 이를 조심하라고 충고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같은 뜻으로 '인유삼원(人有三怨)'이란 말이 있다. <두산백과> ■ 호구지책 糊口之策 [풀칠할 호/입 구/어조사 지/계책 책]
☞입에 풀칠하다.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 [예문]막국수의 탄생 설화가 참 독특하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거듭되는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명나라에서 들여온 메밀로 호구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게 되었죠. 그런데 메밀을 산과 들에 심고 식량으로 먹게 된 백성들이 갑자기 이유없는 부기를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유를 알아본즉 메밀은 계란노른자나 돼지고기를 곁들여 먹어야만 그런 증상이 없어진다 하였고... 이렇게 해서 오늘날과 같은 막국수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라 합니다.<여행일기>
■ 호사다마 好事多魔 [좋을 호/일 사/많을 다/마귀 마]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것이 많다.좋은 일에는 흔히 탈이 끼어들기 쉬움,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
![]() [예문1]경선多魔?…"모처럼 상승세 탔는데…"잇단 악재 부심" "호사다마(好事多魔)" 민주당의 국민참여 경선이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가운데 악재도 함께 잇따르고 있어 당지도부를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있다.
경선 후보간 금품살포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다 일부 경선주자의 수뢰의혹이 제기되고 아태재단의 비리 및 국정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는 바람에모처럼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는 악재가 발생했을 경우 일단 신속히 대응해 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동아일보>
[예문2]투어 2년차인 최경주는 올 상반기에 이미 "톱5"에 두차례나 드는 등 꾸준히 중상위권 성적을 내며 투어에 적응해왔다.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자신감이 붙은 최경주는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으며 그러던중 왼팔 근육이 이완되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지난 5월 국내 SK텔레콤클래식에서 커트탈락의 "망신"을 당한 때가 그 시점이었다.
■ 호시탐탐 虎視耽耽 [범 호/볼 시/즐길 탐/즐길 탐]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공격이나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모양. 또는 어떤 일에 대비하여 방심하지 않고 가만히 정세를 관망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출전]《주역》
[내용]글자의 뜻으로 보아 '眈眈(탐탐)'이 옳고, '耽耽(탐탐)'은 그 속자(俗子)로 봄이 옳을 듯하다. 《주역》의 육십사괘에 '이(
)’라는 괘가 있다. '이(
)’란 아래턱을 가리키는 말로, '기른다'는 의미가 있다. 그 괘형은 두 양(陽)이 상하로 있고, 사음(四陰)이 가운데 끼어 있는 형상으로 마치 사람이 입을 벌린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을 구성하는 팔괘(八卦)의 괘덕(卦德)으로 보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 턱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여 음식으로 사람의 몸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기른다'는 뜻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이괘의 효사(爻辭)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전이길 호시탐탐 기욕축축 무구(顚
吉 虎視耽耽 其欲逐逐 无咎;거꾸로 길러지는 것도 길하다. 호시탐탐하여 그 욕심을 쫓아가면 허물이 없다.)" 이괘는 인간세상의 계급에 비유하면 천자를 보좌하여 천하의 만민을 기르는 대신의 지위에 상당한데, 음유(陰柔)로 힘이 부족하여 혼자의 힘으로는 천하의 만민을 기르기는커녕 자기의 몸을 기르는 일조차도 불안하다. 그러므로 아래 지위에 있는 백성의 도움과 위에 있는 천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위에 있는 사람이 호시탐탐하여, 위엄이 있고 사납지 않은 태도로 정중하게 행동하면 아랫사람도 감히 깔보지 못하고 또한 그를 받들게 될 것이다. 또 사람에게 길러짐을 구할 때는 그 욕심을 따라서 끊임없이 하면 일이 성취되고, 이렇게 하여 이미 위엄을 갖추고 사람에게 길러짐을 구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으면 허물을 얻지 않게 되는 것이다.<네이버백과>[예문]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절대 공개할 수 없는 제조 비결이 있다”며 “중국이나 동남아 업체들이 호시탐탐 기술 유출을 노리고 있어 일부 업체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 호연지기 浩然之氣 [넓을 호/그럴 연/기운 기]
☞넓고 큰 기운. 공명정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적 용기.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속에서 자연적으로 움직이는 지극히 평화스러우면서도 광명정대한 정기
[출전]『孟子』 公孫丑篇
[원문]難言也 其爲氣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天地之間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也 是集義之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 則矣.
[내용] : 맹자가 제(齊)나라에서 제자 공손축(公孫丑)과 나눈 대화다.“선생님이 제의 대신이 되어서 도를 행하신다면 제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覇者-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동심(動心-책임을 느껴 마음을 움직임)하실 것입니다.”“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맹자는 그것을 용(勇)이라 말하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용(大勇)이라 하였다.“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告子-맹자의 논적(論敵-맹자의 성선설 부정)〕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知言〕. 거기에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있다. 지언(知言)이란 피사(?辭-편협한 말), 음사(淫辭-음탕한 말), 사사(邪辭-간사한 말), 둔사(遁辭-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명(明)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며, 기(氣)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의(義)와 도(道)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예문]옛날 우리나라의 문객들도 낚시를 즐겼는데, 낙향 또는 유배 생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낚시와 관련된 고사도 많아 공자는‘조이불망(釣而不網)’이라 하여 군자는 고기를 잡되 그물질을 하지 않는다고 했고, 강태공은 강가에서 낚시로 일하면서 천하의 경륜을 탐구하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 파묻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즐겼다고 한다. 강태공이 쓰는 낚시바늘은 미늘이 없이 곧아서 물고기가 낚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강태공이 세월을 낚았다.”라고 말햇다. 이러한 연유로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호유기미 狐濡其尾 [여우 호/젖을 유/그 기/꼬리 미]
☞처음에는 쉬워도 나중에는 곤경에 빠짐,준비가 없으면 일을 추진할 수 없음
![]() [출전]『전국책』
[내용]여우는 머리가 가볍고 꼬리가 무겁기 때문에 꼬리를 얹고 물을 건너는데 중간에 힘이 빠져 고리를 물에 빠뜨리면 익사하거나 물을 건너지 못한다는 속설 ■ 호접지몽 胡蝶之夢 [오랑캐 호/나비 접/어조사 지/꿈 몽]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 물아일체의 경지-물아의 구별을 잊음/만물일체의 심경/인생의 덧없음을 비유/꿈.
[동]莊周之夢(장주지몽) [출전]『莊子』, 齊物篇 [원문]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 [내용] 장자(莊子)의 만물제동(萬物齊同) 사사에는 우리가 대소(大小), 미추(美醜), 선악(善惡), 시비(是非) 등의 대립되는 가치관에 있어서 그 하나는 좋다 하고 그 하나는 나쁘다고 하는데, 장자는 그것은 우리가 도를 도로써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것일뿐 실제에 있어서는 무차별임을 주장하였다.“꿈 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 통곡하는 수가 있다. 또 꿈 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사냥을 하면서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임을 의식하지 못하여 꿈 속에서 꿈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나 깨어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이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꿈이 현실이 아니고,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다.“예전에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꺼이 날아 다니는 나비였다.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莊周)임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나는 장주가 되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도(道)의 세계에서 보면 만물이 다 제일(第一)하다. 장주도 호접이고 호접도 장주라.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꿈이다.
■ 호중천지 壺中天地 [병 호/가운데 중/하늘 천/땅 지]
☞항아리 속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별천지(別天地)·별세계·선경(仙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또는 술에 취하여 세속을 잊어버리는 즐거움이나 장소가 극히 협소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동]호중지천[壺中之天],일호지천[一壺之天][유]무릉도원[武陵桃源],別天地,선경[仙境],이상향[理想鄕]
[출전]『後漢書』 [내용]이 말은 한대(漢代)의 선인(仙人)인 호공(壺公)이 하나의 항아리를 집으로 삼고 술을 즐기며 세속을 잊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로, 호천(壺天)·호중천(壺中天)·호중천지(壺中天地)·일호지천(一壺之天)이라고도 한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전(方術傳)〉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후한 시대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남현(汝南縣)의 시장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비장방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영약(靈藥)을 파는 약장수 할아버지가 한 분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는 언제나 가게 앞에 항아리를 하나 놓아 두고는, 시장이 파하면 얼른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시장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비장방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를 항아리 속으로 안내했다. 항아리 속에는 훌륭한 옥으로 만든 화려한 저택이 장엄하게 솟아 있고, 그 저택 안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고 나서, 다시 항아리 밖으로 나왔다. 이 약장수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유배된 선인(仙人)인 호공이었다. 뒤에 호공이 용서를 받아 천계(天界)로 돌아갈 때, 비장방도 그를 따라갔는데 선술(仙術)을 익히는 데 실패하여 지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비롯하여 ‘호중지천’은 별천지·별세계·선경을 의미하게 되었다. 항아리의 입구가 좁은 데에 연유하여 장소가 극히 협소함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두산백과> ■ 혹세무민 惑世誣民 [미혹될 혹/세상 세/속일 무/백성 민]
☞세상을 미혹되게 하고 백성들을 속이다.
[예문]『나의 강의는 한 편의 드라마다. 드라마의 갈등구조와 복선이 숨어 있다. 난 대중을 본질적으로 간파한다.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직감적으로 안다』 도올은 기이한 언행으로만 대중을 사로잡지 않았다. 혹세무민으로 대중을 유혹하지도 않았다. 그는 드라마가 뭔지, 쇼가 뭔지,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뭔지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월간조선> ■ 혼연일체 渾然一體 [모두 혼/그럴 연/몸 체]
☞사람들의 행동·의지 따위가 조금도 차이가 없이 한 덩어리가 되다.
![]() [예문1]"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雍也)" 이 구절에서 모르는 한자는 없지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잘 알려진 구절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지(知), 호(好), 낙(樂)의 차이입니다.글자 그대로 지(知)는 아는 것. 호(好)는 좋아하는 것. 낙(樂)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도 언급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지(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好)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로 보는 데에 비하여 낙(樂)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學習)과 노동(勞動)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고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知), 호(好), 낙(樂)의 차이를 규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각각을 하나의 통합적 체계 속에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知)를 대상(對象)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好)는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에 관한 규정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樂)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好)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樂)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圓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樂)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와 부분, 체(體)와 용(用)이 혼연(渾然)의 일체(一體)를 이룬 어떤 질서(秩序)와 장(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호(好)는 대상을 타자(他者)라는 원천적 비대칭적 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知)와 호(好)를 지양(止揚)한 곳에 낙(樂)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고전강독의 관점에서 이를 규정한다면 “낙(樂)은 관계의 최고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攄得)이 가능한 것이지요.
![]() 세계인식이 정보(情報)형태의 파편적 분석지(分析知)에 머물거나 이데올로기적 가치판단(價値判斷)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낙(樂)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지(知)에서 호(好)로 호(好)에서 낙(樂)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높여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신영복 고전강독--성공회대 강의>
[예문2]이상국개인전-관훈동 인사아트 센터
70년대 이후 민중의 애환을 서정적으로 그려온 작가가 이번엔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바다와 사막, 산 등을 자유롭게 활달한 필치로 표현했다. 근작 40여점을 출품. 작가가 그림의 대상과 하나된, 혼연일체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 혼정신성 昏定晨省 [어두울 혼/정할 정/새벽 신/살필 성]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림-부모를 섬기는 자식의 바른 효행
[준]定省
[유]온청정성[溫淸定省]동온하청[冬溫夏淸]
[출전]『禮記』
![]() [내용]이 말은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곧 효, 또는 효행이다. 이 효사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가장 으뜸되는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즉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공자는 이러한 효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 유교적인 효사상은 맹자에 와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효경(孝經)》에서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명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효사상이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되자 자연히 효에 대한 행동상의 규범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종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먼저 부모를 대하는 얼굴가짐을 중시했다.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겨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하여 ‘색난(色難)’이라 하였다. 또 부모의 잘못을 보면 간언은 하되 뜻은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시면 3년간 부모의 평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저녁에는 잠자리가 어떤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해보고 아침에는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여쭌 다음 부모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폈으니, 이것이 바로 ‘혼정신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기본 도리였던 것이다. 이 말은 겨울에는 따뜻하게[溫] 여름에는시원하게[淸] 해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는 뜻의 '온청정성(溫淸定省)'이란 말과 뜻이 통한다. 또 부모를 섬기기는 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서늘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청(冬溫夏淸)'이라는 말도 모두 《예기》에 나오는 말로서 그 뜻이 서로 통하는 말이다.
■ 홍로점설 紅爐點雪 [붉을 홍/화로 로/점 점/눈 설]
☞불로 벌겋게 단 화로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는다.사욕이나 의욕이 일시에 꺼져 없어짐./도를 깨달아 마음 속이 탁 트여 막힘이 없음/크나큰 일에 적은 힘이 아무런 보람이 없음
![]() [원]홍로상일점설 紅爐上一點雪
[예문1]아마조나스 오페라극장의 전체적 인상은 거대한 아마존과 싸우 느라고 나이보다 훨씬 늙어버린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비단 이 극장뿐만이 아니라 마 나우스는 도시 그 자체가 아미존에 뛰어든 이질적인 틈입자(闖入者)였습니다. 아스팔트는 뜨 겁고 선창의 쇠붙이들은 녹쓸고 있습니다. 마나우스는 비록 그 규모가 150평방km에 달하는 큰 도시이지만 7백만 평방km의 광활한 아마존 유역에 비교해 보면 그것은 실로 홍로점설 (紅爐點雪)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존과 싸우고 있는 마나우스와 아마존과 더불어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은 너무나 선명 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신영복 해외기행 <녹색의 희망 아마존>에서 [예문2]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본분종사 전제차구 여목인창박 홍로점설 역여석화전광 학자실불가의의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 래하고 불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 이듯 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 <원불교, 선가귀감(禪家龜鑑)중에서> [참고]'붉은 화로 위의 한조각 눈'은 마치 무상하고 덧없음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선의 입장에서는 아주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화로를 불심, 불성에, 눈은 번뇌망상에 각각 비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열하게 타고 있는 화로 위에 한조각 눈을 놓으면 즉시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갖춰진 불심, 불성의 달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면 어떤 망상이나 분별심이 나타난다해도 순식간에 사라져 자취마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화로와 같은 불심 앞에서는 한 점의 미망도 남김없이 태워져서 정무구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빛난다. 망상이 남김없이 소진돼 약간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자취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철저하게 대오한 사람의 무애자재한 실천 수행을 가리킨다. 이 '자취를 없애는'것은 본래 갖춰져 있는 불성이 미망의 구름에 덮여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태워버릴 수 있는 열화같은 의지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 '붉은 화로 위의 한조각 눈'에 대한 두 선사의 일화가 있다. 문 : 흰 칼날이 죽이려고 할 때 한구절을 말하라. 답 : 붉은 화로 위에 한조각 눈이다. 문 : 눈이 녹고 난 뒤에는 어떠한가? 답 : 비, 눈, 안개, 얼음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녹으면 한가지로 계곡의 물이다. 이 문답에서는 일체를 융화하는 고차원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碧巖錄> ■ 홍일점 紅一點 [붉을 홍/한 일/점 점]
☞ 여럿 가운데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하나뿐인 여자. 여러 하찮은 것 가운데 단 하나 우수한 것.
[출전] ≪唐宋八家文≫ 〈王安石 詠石榴詩〉
[내용]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 동인춘색불수다(動人春色不須多)
-->온통 새파란 덤불 속에 핀 붉은 꽃 한 송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색깔은 굳이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온통 새파랗기만 한 푸른 잎 속에 한 송이 붉은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색깔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바로 이런 감동이다. 여러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어 있는 것보다는 무성한 푸른 잎 사이로 어쩌다 피어 있는 한 송이 빨간 석류가 훨씬 사람의 눈과 마음을 끈다. 이와 같이 만록총중홍일점이란, 여성들의 사회 생활에 제약이 많았던 시절에 많은 남성들 사이에 홀로 끼여 있는 여성을 나뭇잎 속에 파묻혀 있는 꽃에 비유한 것이다. 이 시기에 남성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던 것은 주로 기생들이었으니, 여기서 가리키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여러 남성 사이에 혼자 섞인 여성을 두루 가리킨다.<두산백과> ■ 화광동진 和光同塵 [화할 화/빛 광/같을 동/티끌 진]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같이 함.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속세의 사람들과 어울려 동화함.
[출전]『노자(老子)』
[내용]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知者不言(지자불언)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言者不知(언자부지)
그 통하는 구멍을 막아 塞其兌(새기태)
그 문을 닫고 閉其門(폐기문)
그 날카로움을 꺾고 挫其銳(좌기예)
그 얽힘을 풀고 解其紛(해기분)
그 빛을 부드럽게 하여 和其光(화기광)
그 속세의 먼지와 함께 하니 同其塵(동기진)
이것을 현동(玄同)이라 한다. 是謂玄同(시위현동)
■ 화룡점정 畵龍點睛 [그릴 화/용 룡/점찍을 점/눈알 정]
☞장승요가 벽에 그린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즉 곧 하늘로 올라갔다.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완성시키다.
![]() [출전]『水衡記』
[내용]:「唐나라 때 장승요란 사람이 금릉 안락사에 두 마리 용을 그려 놓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매양 말하기를“눈동자를 그려서 넣으면 곧 날아서 가리라.”하니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니 잠깐 사이에 우뢰가 일고 번개가 나더니 벽이 쪼개지면서 한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고 한 마리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대로 있더라. [원문]張僧繇가 於金陵安樂寺에 畵兩龍호대 不點睛하고 每云‘點之면 卽飛去라’하더니 人이 以爲妄이어늘 因點其一하니 須臾에 雷電破壁하여 一龍이 上天하고 一龍 不點眼者는 見在하니라. ** 繇(우거질 요) 畵(그림 화) 睛(눈동자 정) 雷(우뢰 뢰) 電(번개 전) 壁(벽 벽)
■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꽃 화/없을 무/열 십/날 일/붉을 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한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함,권력은 오래가지 못함
![]() [유]권불십년[權不十年],세무십년과[勢無十年過]
[예문1]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 없다고.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주장하는 놀자주의의 근거도 바로 이 화무십일홍에 있었다. 살갗 팽팽하고 뺨에 핏기 곱게 돌 때 놀아도 재미있지 꽃지고 나서 해외여행 효도관광 정강이 시리도록 돌아다녀봤자 무슨 즐거움이겠느냐고 청승스런 그 노래는 우릴 설득했다. 더럽고 아니꼽고 무섭고 괴로운 무엇을 보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에 화무십일홍이여.세월 질겅질겅 씹어먹고 있노라면 넌 곧 지는 꽃이여.너 지고 나 필 때 한번 보자 이 말이여...<화무십일홍에 관한 단상> 중에서 [예문2] 인간사가 존재하는 한 드라마는 존재한다. 그리고 드라마도 생명체처럼 자라나기도 스러지기도 한다. 드라마의 인기도 생명수가 있을 때 활짝 꽃 피우게 된다. 방송사 역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언제까지 ‘드라마 왕국’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주간한국>
■ 화사첨족 畵蛇添足 [그릴 화/뱀 사/더할 첨/발 족]
☞뱀을 그리고 발을 더한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
![]() [동]蛇足(사족). /牀上安牀(상상안상) : 마루 위에 마루를 놓는다. [속담] 고깔 뒤에 군헝겊. /뱀 발을 덧붙인다.
[출전] 『戰國策』 [내용] :「楚나라에 제사를 맡은 사람이 그 하인들에게 큰 잔에 담긴 술을 주거늘, 하인들이 서로 말하되“여러 사람이 이를 마시면 만족하지 못하고 한 사람이 마시면 조금 과하니 청컨데 땅에다가 그려서 뱀을 만들되 먼저 이룬 사람이 술을 마시기로 하자.”하였다. 한 사람이 뱀을 먼저 이루어 놓고 막 이를 마시려고 할 때,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땅에 그리며 말하기를“내가 능히 그렸으나 발이 아직 발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도다.”그 때 바로 한 사람이 뱀을 완성하고, 그 술잔을 빼앗아 말하되“뱀은 진실로 발이 없거늘 그대는 어찌 뱀의 발을 그릴 수 있겠는가?”하고 마침내 술을 마시니 뱀의 발을 만든 사람은 마침내 그 술을 마시지 못하였다. [원문] 楚有祠者하여 賜其舍人?酒하니 舍人이 相謂曰“數人이 飮之면 不足이요 一人이 飮之면 有餘하니 請畵地爲蛇하여 先成者가 飮酒하리라”一人이 蛇先成하여 引酒且飮之할새 乃左手로 持?하고 右手로 畵地曰“吾能爲之나 足未成이로다.”一人之蛇가 成하야 奪其?曰“蛇固無足이라 子安能爲之足이리요”遂飮其酒하니 爲蛇足者는 終亡其酒러라.**引 당길 인/奪 빼앗을 탈/固 진실로 고/安 어찌 안/遂 드디어 수 ![]() [예문]남사당에 관하여 …
우리는 일반적으로 연희(演戱)를 그저 하나의 여흥 수단으로 넘겨 버리는 옳지 못한 습성을 갖고 있다. 예술을 생활을 떠난 관념의 소산으로 아는 인습이 조선왕조의 폐쇄적 도악사상 (道樂思想)등으로 하여금 더욱 고질화 시키는 역활을 해 온 것 같다. 도악적 심미욕 (道樂的 審美欲)의 노예가 되어 민중의 생활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그 함수 관계를 차단하며 다분히 통치권력의 지배수단으로 발아(發牙)한 향락적 예술형태와는 달리, 오히려 이들과 대립 관계에 서면서 이땅의 원초적 민주평등사상 (民主平等思想)을 바탕으로 한 민중예술 (民衆藝術)로 부각되어 나타난 것을 남사당놀이로 보는 것이다. 남사당패란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민중속에서 스스로 형성, 연희되었던 유랑예인집단 (流浪藝人集團)을 일컫는 것으로 그 배경은 말할것도 없이 민중적 지향을 예술로써 승화하여 온 진보적 구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반인적 자연(反人的 自然)과 인성(人性)에 대한 대립적 존재로서 민중의 생활사 (生活史)와 같은 맥락을 갖는 것이다. 그들의 형성배경에 대함 사소한 부정적 異見들은 가시덤불의 민중사를 통찰해 보면, 뜨거운 애정으로 감싸질 화사첨족 (畵蛇添足)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 화서지몽 華胥之夢 [빛날 화/서로 서/어조사 지/꿈 몽]
☞화서의 꿈. 좋은 꿈이나 낮잠[유] 화서지국(華胥之國), 유화서지국(遊華胥之國)
![]() [출전]『列子』 黃帝篇
[내용]먼 옛날 중국 최초의 성천자(聖天子)로 알려진 황제(黃帝:공손헌원 公孫軒轅) 는 어느날, 낮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놀러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향(理想鄕)을 보았다. 그 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愛憎)도 이해(利害)의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했다. 또 물 속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죽지 않으며, 공중에서 잠을 자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과 같고 걸어도 땅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또한 사물의 미추(美醜)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험준한 산골짜기도 보행을 어렵게 하지 않았다. 형체를 초월한 자연 그대로의 자유로 충만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번뜩 깨닫는 바 있어 중신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꿈 이 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짐(朕)은 지난 석 달 동안 방안에 들어앉아 심신 수양에 전념하며 사물을 다스리는 법 을 터득하려 했으나 끝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오. 그런데 짐은 이번 꿈 속에서 비로소 그 도(道)라는 것을 터득한 듯싶소." 그 후 황제(黃帝)가 '도(道)'의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원문]華胥氏之國 在?州之西 臺州之北 不知斯齊國幾千萬里蓋非舟車足力之所及 神遊而已 其國 無師長 自然而已 其民無嗜欲 自然而已 不知樂生不知惡死 故無夭敵 不知親己 不知疏物 故 無愛憎 不知背逆 不知向順 故無利害都無所愛惜 都無所畏忌 入水不溺 入火不熱 斫撻無傷 痛 指?無?榻 乘空如履實寢虛若處牀 雲霧不?其視 雷霆不亂其聽 美惡不滑其心 山谷不? 其步 神行而已.
■ 화씨지벽 和氏之璧 [화할 화/성 씨/어조사 지/구슬 벽]
☞천하 명옥(天下名玉)의 이름. [유] 완벽(完璧). 연성지벽(連城之璧)
[출전] 『韓非子』 〈卞和〉
[내용]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 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한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월형( 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그러안고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울었다. 문왕이 그 까닭을 묻고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이라 명명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렸다. ■ 화조월석 花朝月石 [꽃 화/아침 조/달 월/돌 석]
☞꽃피는 아침과 달뜨는 저녁.--경치가 좋은 때
**음력 2월15일--화조/음력 8월15일--월석
[예문].<창부타령>
일년삼백육십오일은 춘하추동 사시절인데 꽃피고 잎이피면 화조월석(花朝月夕) 춘절(春節)이요. 사월남풍 대맥황(大麥黃)은 녹음방초 하절(夏節)이라 금풍(金風)이 소슬하여 사벽충성(四壁蟲聲) 슬피울면 구추단풍(九秋丹楓) 추절(秋節)이요 백설이 분분하여 천산(千山)에 조비절(鳥飛絶)이오.만경(萬頃)에 인종멸(人踪滅)하면 창송녹죽(蒼松綠竹) 동절(冬節)이라 인간칠십 고래희요 무정세월 약류파(若流波)라 사시풍경(四時風景) 좋은 시절 아니 놀고어이하리.얼시구 좋다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 화종구생 禍從口生 [재앙 화/따를 종/입 구/날 생]
☞화는 입으로부터 생긴다.말을 조심하라 *從=~로부터
[동]禍從口出/구시화문[口是禍門], 病從口入 禍從口出 [출전]『택씨요람』
■ 화중지병 畵中之餠 [그림 화/가운 데 중/어조사 지/떡 병]
☞그림의 떡. 아무리 욕심이 나도 차지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 형체는 쓸모 없는 것..
![]() [참고]날개 부러진 매. 나무 거울이라. ◆추풍선(秋風扇).--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못쓰게 된 물건을 이름
[예문]값싼 한국외평채, 국내은행엔 그림의 떡 --국내 은행들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가격이 폭락한 외평채를 매입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감독원 규정이 대폭 강화돼 투자부적격 등급 의 국가와 금융기관에서 발행한 유가증권은 매입하지 못하도록 명시 해 놓았기 때문.<디지틀 조선> [예문2]현대의 각박한 생존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문화예술은 자칫 화중지병(畵中之餠)과 같은 사치로 보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침체된 삶의 활력소 때로는 무미건조한 일상의 청량제와 같은 문화의 '보이지 손'의 역할과 잠재적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매일경제] [예문3]국정의 최고책임자로부터 국민 한사람에 이르기까지 비장한 각오로 지혜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세계속의 선진산업사회 건설은 우리에게 영영 화중지병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한국경제]
■ 화촉 華燭 [빛날 화/촛불 촉]
☞결혼을 상징하는 붉은 색 양초
![]() [내용]화(華)는 가지에 피어 있는 예쁜 꽃의 모습으로, 본디 뜻은 꽃이다. 그래서 '화려하다' '빛나다'라는 뜻도 가지게 되어 화려(華麗) ·화사(華奢) ·부귀 영화(富貴榮華) ·호화(豪華)라는 말이 있다.
촉(燭)은 화(火)와 촉(蜀)의 결합인데, 촉(蜀)은 해바라기 벌레를 말한다. 변색(變色)에 뛰어나 판단을 흐리게 하므로 물(水)을 흐리게 하는 것이 촉 (濁)이고, 기어가는 모습이 뿔(角)을 쳐들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촉(觸 뿔로 들어 받을 촉)자가 나왔다.
또 욕심이 많아 혼자 먹는다 하여 짐승을 뜻하는 견(犬)자를 덧붙여 독(獨)자를 만들었는데, 본디 승냥이같이 생긴 일종의 '야생(野生) 개'를 뜻한다. 촉(燭)은 촉(蜀)처럼 갉아먹듯이 하면서 불(火)을 밝힌다는 뜻으로 '초'나 '촛불'을 의미한다. 燭光(촉광)· 燭臺(촉대)· 燭數(촉수)· 雙燭(쌍촉)이 있다.
따라서 화촉(華燭)이라면 '화려한 촛불'로 붉은 색의 초를 뜻하는데, 중국에서는 육조시대(六朝時代)부터 결혼식과 같은 경사스런 날에 화촉(華燭) 을 사용했다.
붉은 초에 흰 불이 타들어 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화촉(華燭)이라면 '결혼(結婚)'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화촉(華燭)을 밝혔다'는 표현을 접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화촉(華燭)은 결혼 의식에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첫날밤을 지내는 신혼방에서도 사용했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화촉동방(華燭洞房)이다. 곧 신혼방(洞房)에 화촉(華燭)을 밝혀 놓고 첫날밤을 보낸다는 뜻이다.
[참고]--->>화촉동방 첫날밤에
부끄럼도 가이없고
시고야 흐르는물에 남산밑에 배를밀어 화촉에 불밝혀라 오중에 신발준비 밤은점점 깊어오고 우리야정도 깊어온다 밤중밤중 야밤중에 눈을감고 누웠으니 창밖엔 말달리는소리 정든님 소릴란가 버선발로 뛰어가서 정든님손목을 덥썩쥐니 들어가오 들어가오 나자는 별당으로 들어가오 한이불 병풍삼고 원앙침 둘이배고 두리둥실 누웠으니 어사야 별당이 여기로구나 ■ 화호유구 畵虎類狗 [그릴 화/호랑이 호/무리 류/개 구]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 비슷하게 됨. 소양이 없는 사람이 호걸의 풍도를 모방하다가 경박한 사람이 됨.
■ 확금자불견인 攫金者不見人[움켜쥘확/쇠금/놈자/아니불/볼견/사람인]
☞돈을 움켜쥐려는 자에게는 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한다, 물욕에 가리우면 의리나 염치를 모르는 것을 뜻한다.
[출전]『열자(列子)』설부(說符) 편
[내용] 옛날 제나라 사람 중에 금을 탐내는 사람이 있었다. 이른 아침 옷을 입고 시장에 가서 금을 파는 곳을 찾아가 그곳의 금을 훔쳐가지고 갔다. 관리가 그를 체포한 다음 그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있었는데 그대가 남의 금을 훔쳐간 것은 어째서인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금을 가지고 갈 적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목적만을 성취하려다 보면, 주위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해지기 쉽다. 따라서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도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한다.
■ 환골탈태 換骨奪胎 [바꿀 환/뼈 골/빼앗을 탈/아이 밸 태]
☞뼈를 바꾸고 태를 빼앗는다는 뜻,남의 시나 문장의 취의(趣意)를 따서 어구만을 바꾸어 自作처럼 꾸밈/ 용모가 환하고 아름다워 딴 사람처럼 됨
[출전]『冷齋夜話』냉재야화
[예문]약속을 밥먹듯 어기는 언론을 어느 취재원이 신뢰하고 정보를 제공하겠는가? 엠바고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기자실 문화 역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공개적, 전향적으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우리는 본다<기자협회보>
■ 환과고독 鰥寡孤獨 [홀아비 환/과부과/고아 고/홀로 독]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곤궁하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
[동]四窮(사궁)
[출전]『맹자』
■ 황견유부 黃絹幼婦 [누를 황/비단 견/이릴 유/지어미 부]
☞절묘[絶妙]라는 뜻의 은어[유]有知無知三十里[출전]『世說新話(세설신화)』
![]() [내용]조조가 젊었을 때 친구 양수와 함께 강남을 여행하다가 孝婦 조아의 비석을 보니 뒷면에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제臼]"의 여덟 자가 새겨져 있었다.
조조가 그 뜻을 몰라 양수에게 물으니 안다고 대답했다.30리를 걸어간 후 조조가 '이제 알았다'하며 그 뜻을 양수에게 설명하자 두 사람의 해석이 서로 일치했다.
**이 여덟자는 후한의 채옹이 한단순이 지은 조아의 비문을 칭송한 수수께끼같은 은어인데 조조는 黃絹은 色絲를 뜻하므로 합하면 絶,幼婦는 少女를 뜻하므로 妙,外孫은 여자(女)의 자식(子)이므로 好,제臼는 辛을 受한다는 뜻으로 辭와 같은 뜻이 된다.그래서 이 여덟자는 絶妙好辭[절묘하게 좋은 말]라 해석했다. ■ 회계지치 會稽之恥 [모일 회/생각할 계/어조사 지/부끄러울 치]
☞뼈에 사무쳐 잊을 수 없는 패전의 치욕./회계산(會稽山)의 치욕을 씻음
[동]와신상담[臥薪嘗膽]/절치액완(切齒扼腕).
[출전]『史記』
[내용][오의 발전과 초나라와 전쟁] 오나라는 수몽왕 이전까지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역사에 기록도 거의 없다. 다만 중국의 천자(周)와 동족인데, 그 백성은 남쪽의 만족으로 중원에서 보면 오랑캐 였고 초나라에 복속하고 있었다. 문명의 변방에 있던 오나라가 강대국인 초나라에게 이반하기 시작한 것은 수몽왕 때인데, 수몽 즉위 2년(BC 584년)에 초나라 대신 무신(巫臣)이 오나라를 방문하면서였다.
무신은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하희(夏姬)라는 희대의 요부에 반해 晉나라로 망명 가 진을 위해 초나라를 배후에서 견제하고자 오나라에 사자로 와서 아예 아들까지 연락관으로 남겨두고 오나라를 훈련시켜 군사강국으로 만들어 오나라를 부추켰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오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에 복속해 있던 이민족을 하나 둘 복속시켜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
이 때부터 오나라와 초나라는 적대관계가 되었고 요 왕때 변방 시골에서 뽕나무를 둘러싸고 양국 처녀들의 싸움이 국가간의 전쟁으로 확대되어 공자 光(후에 합려) 이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 땅 두 성읍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후 양국은 적대관계를 넘어 원수관계로 발전되었다. 그 후 오왕 여제 3년(BC 545년)에 제나라 재상이었던 경봉(慶封)이란 자가 오나라로 망명하였고, 합려 왕 때에는 초나라 관리였던 오자서 망명했고 손무를 중용하여 오나라 군대는 정비되고 개혁되어 중원을 넘보게 될 정도로 성장하였다.「춘추좌씨전에는 합려의 조부인 수몽시대(BC 585~561)부터 50년 동안에 오와 초가 10여 차레의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 후 오초는 늘 전쟁상태에 있었으며,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전략에 따라 초를 공격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초토화시켜 초왕이 피란가는 위기에 처하자 초나라 대신 신포서가 秦에 구원하여 진나라 군사가 초군과 합세하여 역공을 개시, 전세는 바뀌어 오나라는 수세에 몰려 오자서도 대패하였으며, 이 와중에 합려의 동생인 부개가 전쟁 도중 본국으로 돌아와 자립을 선언, 스스로 왕이 되었다. [오월싸움의 시작] 이러한 형국에서 오나라 國元땅에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오가 초나라 수도를 점령한 이듬해 오나라 남쪽에 있던 월나라 왕 윤상(允常)이 느닷없이 오나라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오나라는 전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 정벌에 나섰기 때문에 완전히 허를 찔린 형국이었다. 월나라가 합려가 대궐을 비운 사이 오나라 남쪽 절강(浙江)유역의 취리(聚里)에 난입하여 인근을 쑥밭으로 만들고 스스로 자기 땅으로 편입시켜 버린 것이다. 원래 월나라는 역사에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초기에는 미개하고 오랑캐로 취급 받아 왔으며 오나라의 속국으로 해마다 합려를 위해 공물을 보내오고 왕족이 오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형편이었다. 합려가 왕이 되기 위해 자객 전제 를 이용해 오왕 요를 죽일 때 사용한 칼 어장검(魚腸劍)도 윤상이 진상한 것이다. 합려로서는 그런 월나라가 오나라에 침입한 것이 분통이 터질 일이었으나, 월나라 입장에서 보면 전혀 괴이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에 합려는 초나라와의 몇 번의 싸움에 월나라에 출병을 명령한 바 있으나 월왕 윤상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따르지 않자, 합려는 이것을 응징하기 위해 3만의 군사를 보내 월나라 땅 취리를 빼앗고 절강 지역을 오나라 영토로 편입해 버렸다. 이에 월왕 윤상은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중, 오나라가 초나라와 진나라의 공격에 패하자 이를 틈타 오나라를 기습하여 빼앗긴 것을 되찾겠다고 하니 잘못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만큼 월나라는 국력이 그동안 크게 발전해 가 있었고 그 뒤에 벌어질 사태에 대해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오나라는 국내외 사정이 급박해 월나라에까지 손쓸 겨를이 없었고, 월나라도 절강유역을 잠식한 후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아 잠정적으로 두 나라는 잠잠한 상태가 되었다. [이상한 싸움] 진초연합국에 패하여 초나라 수도에서 퇴각한 이듬해,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초나라 공격을 명하여 회수를 거슬러 번양(繁陽: 하남성 신채현 북쪽)에서 초나라 육상부대를 격파하였다. 초나라가 두려워 수도를 북쪽의 약(호북성 의현성 남쪽)지역으로 옮길 정도였다. 그 후 합려는 10여 년 간 국력을 키워가며 재기를 노렸다. 마침 월나라는 윤상이 죽고 아들 구천이 계승하자, 합려는 기회다 싶어 기원전 496년에 월나라를 치기 위해 군대를 지금의 항주시 동쪽 취리에 진을 쳤다.과거 월왕 윤상시절에 빼앗겼던 절강 유역의 영토가 아직 미결로 남아 있는 것을 기화로, 새 왕으로 등극한 구천에게 이의 시정을 요구한다는 것이 싸움의 동기였다. 그런데 이 싸움은 처음부터 이상한 전쟁이었다.양군이 절강너머 취리 산악지대에 대치하고 있는데, 이상한 일로부터 결전이 벌어졌던 것이다.이 이야기는 좌씨전과 사기세가에 자세히 적혀 있다. 며칠 동안 대치되던 어느날, 월나라 진영에서 구천이 자국 죄인을 3개조로 나누어 각 조마다 목에 검을 갖다 대게 하고 오나라 군대 앞으로 나아가서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게 하였다. 「우리들은 양국이 사우는 이 곳에서 군령을 어겨 죄를 지었다. 이에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으로 속죄하겠노라」 이렇게 외치고 스스로 자신의 목에 칼을 대어 베어 버렸다. 잠시 후에 또 다른 조가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여 죽어갔다. 오나라 병사들이 어안이 벙벙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월나라 군사들이 공격해와 오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할 수 있었다.월나라 대부 영고부가 합려를 향해 달려들어 합려의 엄지 발가락에 상처를 입히고 신발 한 짝을 빼앗았다. 이후 퇴각하던 합려는 취리에서 약 3km 되는 곳에 있는 형땅에서 발가락 상처가 심해 세상을 떠났다. 합려가 죽기 전 부차를 불러 기필코 복수를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중원의 맹주로 자처하며 일세를 풍미했던 호걸 합려가 그렇게 허무하게 간 것이다.합려의 시신은 곧 도성으로 운구되고 그의 무덤은 도성의 창문박에 자리 잡았는데,「오월춘추」에 따르면 이 문은 초나라 쪽을 향해 지어졌다고 한다. 부차는 왕으로 즉위하자 마자 사람을 마당에 세워두고 자신이 들고 날 때마다 외치게 하여 복수의 일념을 한시라도 잊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하며 잠도 마굿간 같은 곳에서 섶을 베고 자면서 칼날을 갈고 있었다. 이것이 와신상담의 시작이었다. [구천의 항복] 오왕 부차는 밤낮으로 병사들을 훈련시켜 월나라를 향항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기원 전 494년, 합려가 죽은 지 삼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범려는 기선을 제압하고자 측근 범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선제공격을 감행하였다. 오나라는 월나라 군대를 부초라는 곳에서 격퇴하고, 구천은 패잔병 5천을 이끌고 회계산으로 들어가자 부차가 이를 포위해 버렸다. 구천은 범려의 계책에 따라 대부 種을 파견하여 화친을 요청하고 스스로 신하가 될 것을 맹세 하였으나 오자서의 반대로 무산되자, 대부 종은 오나라 대부 백비에게 뇌물을 주어 결국 부차는 구천을 용서하고 화친하였다.이 때 오자서는 다음과 같이 내뱉었다고 한다.「월나라가 앞으로 10년 동안 백성을 늘리고 재산을 불려서 다시 10년 동안 백성들을 가르쳐 깨우친다면, 20년 후에 오나라는 수렁에 빠질 것이다.」 ![]() [구천의 복수준비] 오나라에 도착한 구천 일행은 석실에 끌려가 말 사육하는 일을 하며 수모를 겪었으나 구천은 성실히 하여 부차의 눈에 들게 하여 마침내 귀국을 허락받고 돌아와 재기를 다졌다.사기 월세가에 따르면 구천은 언제나 자신의 옆에 肝을 달아 놓고 눕거나 앉을 때마다 그것을 보며 쓰라린 굴욕의 날들을 상기하며 복수를 맹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할 때마다 간을 핥으며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너는 회계에서의 치욕을 잊었느냐?」여기서 회계지치(會稽之恥)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오월춘추에 의하면, 구천은 간을 핥는 일 뿐만 아니라 장작위에서 자면서 복수를 맹세 하였다고 한다. 와신상담이라는 고사가 여기서 나왔는데,「십팔사략」에는 부차가 와신(臥薪) 하였다고 하여 와신상담의 주인공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부차와 구천이 복수를 위해 와신과 상담을 하며 절치부심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구천은 스스로 경작을 하였으며, 부인은 베를 짜고 식사때에도 육식을 하지 않았으며, 가나한 자를 돕고 백성들과 고학을 같이하며 재기를 다졌다고 한다. 구천은 이렇게 행동하면서 국정을 신임하는 측근들에게 맡겼는데, 월나라를 승리로 이끌게 한 중요 측근으로 범려와 대부 종,그리고 계연(計然)을 들 수 있다. [오자서의 죽음] 오왕 부차는 월나를 제압한 뒤 관심을 중원 지역으로 돌려 陳나라를 공격하였고 채나라를 복속시켰다. 그 후 오나라는 제나라 도공(悼公)이 노나라와의 결혼문제로 분쟁이 생겨 오나라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노나라 정벌을 제안하였다가 결혼문제가 해결되자 다시 오나라에 노나라 출병은 없었던 것으로 취소하자 부차는 제나라가 오나라를 무시하는 것이라 하여 기원전 484년 노나라,주나라,담나라군과 연합하여 강대국인 제나라에 출병하였으나 마침 제나라 도공이 권력을 쥐고 있던 가신 田氏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주춤하였다. 그해 가을 다시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려 하자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로 선물을 보내오면서 오나라를 돕겠다는 뜻을 전해왔다.오자서는 구천을 죽일 것을 간언하였으나 구천에게 선물을 받은 백비가 부차를 설득하여 구천을 신임함으로서 구천은 의심받지 않고 오나라를 향한 복수준비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오자서를 미워하는 부차는 백비로부터 오자서가 아들을 적국인 제나라 대부에게 맡겼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오자서에게 검을 내려 자살을 명하였다. [월나라의 공격] 기원 전 482년 여름, 부차는 황지에서 周나라, 노나라, 晉나라 제후를 참석시킨 가운데 회맹하였다. 한참 패자를 결정하는 맹약 의식을 준비하던 중, 복수를 벼르던 월왕 구천이 느닷없이 오나라 수도를 공격하였다. 오나라는 크게 패배하여 구천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어 화목을 도모하였다.그러나 오나라의 국력은 급속하게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2년 후(기원전 480년)에는 지금까지 조용하던 초나라 군대가 오나라를 공격하여 오나라를 격퇴시켜 오나라의 국력은 차츰 소진되어가고 있었으나, 이에 반해 월나라는 국정에 힘을 쏟아 차근차근 국력을 축적하였다. [오나라의 멸망] 구천은 신 땅에서 오나라 군대가 초나라 군대에 패한 이듬 해에 국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오나라를 공격하였다.오왕 부차는 수도 남쪽에 있는 호수인 입택에서 월나라 군대를 맞아 호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예상치 못한 월의 공격으로 오나라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패주하였고, 구천은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고 그대로 퇴각하였다. 이 모두가 범려의 계책에 따른 것이다. 그 후 3년 뒤, 구천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의 수도를 포위하였다. 이러기를 3 년, 결국 견디다 못한 부차는 수치를 무릅쓰고 월나라에 화의를 요청하였다. 회계에서 있었던 화의와 같은 조건으로 이번 화의도 체결되기를 간청하였다. 회계에서는 오자서의 만류를 듣지 아니하고 부차가 화의를 받아 주었으나, 이번 화의에서는 범려가 반대하는 것을 수긍하여 화의는 받아들이질 않았다. 결국 부차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죽기 전 죽어서도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하여 얼굴에 보자기를 씌어 달라 했다고 한다. 백비는 불충한 자로 구천에게 주살당하였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으나 「좌씨전」은 월나라에 출사하였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구천이 패업을 달성하자 월나라 재흥과 오나라 멸망에 큰 공을 세운 범려는 갑자기 구천에게 작별을 청하였다. 범려는 오왕 부차가 패업을 이룬 후 측근인 오자서를 가차없이 제거한 일을 뇌리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구천의 인상은 목이 길고 무척이나 새카만 얼굴색이었다고 한다. 여기다 눈꼬리가 위로 쭉 치켜 올라가고 눈썹은 다른 사람보다 흐린 편이었다고 한다.사기에 따르면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보통 불우한 시절에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지만, 나중에 성공해서 번영을 이루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 범려는 구천의 인상을 보고 오자서의 운명을 생각했던 것이다. 범려는 구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나라로 건너가 많은 재물을 모아 주위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일본 에무라 하루키(江村治樹)교수의 『와신상담의 오월전쟁』> [주(註)] 어장검(魚腸劍) --월나라의 구자야는 신의 경지에 오른 명공이었다. 명검을 만드는 솜씨는 중원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월나라 왕 윤상은 오나라에서 실질적으로 권세를 쥐고 있는 공자 光에게 선물할 보검 다섯자루를 구자야에게 만들게 하여 그 중 세 자루를 공자 광에게 보냈다.공자 광은 그 중 가장 우수한 검을 담로(澹盧)라 이름 붙이고, 다음으로 우수한 칼에는 반영(磐영) 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름붙이지 아니하여 무명검으로 남아 있는데, 광은 이를 오자서에게 주었던 것이다. 오자서는 이 칼을 전제에게 주어 왕 요를 죽이는데 사용토록 하였다, 전제는 요리사로 가장하여 생선속에 이 칼을 넣고 요왕에게 다가 가 요왕을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쿠데타로 왕이 된 합려는 요를 처단한 검에 어장검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서 세 자루의 칼은 비로소 제 이름을 다 찾았다고 전해진다. [참고]會稽之恥는 회계산(會稽山)의 치욕을 씻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 춘추(春秋)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저장성[浙江省]의 후이지산[會稽山]에서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하여 사로잡힌 몸으로 갖은 수모를 당하고, 겨우 본국으로 돌아가 20년간 상담(嘗膽)의 고생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켜 후이지산의 수치를 씻었다는 고사에 의한다.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에 그 유래가 전한다.<두산백과> ■ 회벽유죄 懷璧有罪 [품을 회/구슬 벽/있을 유/허물 죄]
☞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죄가 된다.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재앙이 온다.
[원]匹夫無罪 懷璧其罪
[동]회옥유죄[懷玉有罪]/포벽유죄[抱璧有罪]
[출전]『左傳』
[내용]중국 춘추시대 때 우(虞)나라를 다스리던 우공(虞公)은 동생 우숙(虞叔)이 가지고 있는 명옥(名玉)을 몹시 탐냈다. 우숙은 처음에는 아까워서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곧 후회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형에게 구슬을 바쳤다. "주나라의 속담에 '필부는 죄가 없어도 구슬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된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가져서 스스로 화를 불러들일 이유는 없습니다[周語有之 匹夫無罪 懷璧其罪 我徒以璧 不必招禍]." 우숙이 말한 주나라 속담은,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훗날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우공에게 건넨 것은 바로 화근을 넘겨준 것이라는 말이다.
얼마 후, 우공은 또 우숙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보검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우숙은 형은 만족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중에는 내 목숨까지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반란을 일으켜 우공을 쳤다. 이 일로 우공은 홍지(洪池)로 도망을 치게 되었다<두산백과> ■ 회사후소 繪事後素 [그릴 회/일 사/뒤 후/흴 소]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
![]() [출전]『논어(論語)』 팔일(八佾)
[내용]자하가 물었다. "'교묘한 웃음에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여, 소박한 마음으로 화려한 무늬를 만들었구나.' 하였으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이다." "예는 나중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를 일으키는 자는 그대로다.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동양화에서 햐안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여인의 아름다움은 표현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공자의 말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인(仁)한 마음이 중요하므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참고1]이 구절의 전체적인 의미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지만 다만 회사후소(繪事後素)의 해석에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전체의 의미를 먼저 읽어보기로 하지요.
자하가 시경(衛風의 碩人)의 구절에 대하여 그 뜻을 공자에게 질문했습니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림은 소(素)를 한 다음에 그리는 법이지 않은가.” 자하가 말했다.“ 예를 갖춘 다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네가(商) 나를 깨우치는구나!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이러한 일반적 해석과 달리 회사후소(繪事後素)를 ‘그림을 그린 다음에 흰색으로 마무리하는 법이다’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후호(禮後乎)도 ‘나중에 예로써 마무리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러한 해석상의 차이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자와 자하가 나눈 이 대화의 핵심은 미(美)에 관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소(素)를 먼저 한다, 아니다 나중에 한다고 하는 해석상의 차이는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의 핵심은 이를테면 미의 형식(形式)과 내용(內容)에 관한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소와 보조개와 검은 눈동자와 같은 미의 외적인 형식보다는 예(禮)가 더 근본적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회사후소(繪事後素)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후소를 그림을 그린 다음에 소(素)를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소이위현(素以爲絢)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도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흰 칠로 마감하여 광채를 낸다’고 해석하여도 상관없습니다. 문법적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소(素)는 예(禮)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예(禮)가 요구되는 시점이 어느 때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탕칠(下塗)을 한 다음에 그림을 그리든 또는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흰 칠로 마감하여 완성하든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경우든 예(禮)가 아름다움의 바탕이라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예로서 미를 최종적으로 완성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크게 보아 양자간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신영복 고전강독> ![]() [참고2]자하는 공자 말년제자로 본시 위(衛)나라 사람으로, 나중에 위문후의 스승이 되어 제(齊)나라 직하학파의 모델이 된 위나라의 학단을 형성했다. 자하는 문학적 상상력이 탁월했던 인물이다.
자하가 위나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하가 위나라의 노래, 위풍(衛風)의 한 수를 인용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노래는 위나라 장공의 제나라 태자 득신의 여동생인 장강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 제나라의 여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가 시집올 때 위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노래라 한다. 이 노래는 오늘날의 <시경>속에 위풍(衛風) "석인(碩人)"으로 편집되어 남아있다. "석인"이란 훤칠하고 늘씬한 여인을 뜻한다.
공자가 말하는 '회사후소'란 이러하다. 그림을 그리는데 먼저 색색의 물감으로 모든 형체를 구현하고 제일 나중에 흰 물감으로 그 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어 광채나게 만드는 최종 텃치를 하는 것과도 같이, 인간의 예라는 것은 온갖 갖가지 삶의 경험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최종적으로 그 인격의 완성을 최종적으로 텃치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하는 말하였다: "그림에서 흰 물감이 제일 뒤에 오듯이, 인간의 인격형성과정에 있어서는 예가 제일 뒤에 온다는 뜻이겠군요?" 결국 석인의 아름다움의 최종적 치장은 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에 공자는 기뻐서 말하였다. 이 때 '상(商)'이라는 것은 자하의 실제 이름이다. 애정이 듬뿍 담긴 친근한 호칭이다: "상아! 넌 정말 나를 계발시키는 사람이로구나! 이제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기여자'의 '기(起)'는 단순히 감정의 흥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라 할지라도 그 깨달은 바가 선생인 나를 앞서는 면이 있어, 내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도올 논어강의> ■ 회자인구 膾炙人口 [날고기 회/구운고기 자/사람 인/입 구]
☞'회자'란 '고기에 회친 것과 구운 것'이란 뜻으로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즉, 좋은 글귀가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출전]『맹자』
[내용]춘추 시대, 증참(曾參)과 그의 부친 증석(曾晳)은 모두 공자의 제자였는데, 증석은 양조(羊棗)를 즐겨 먹었다. 후에 증석이 세상을 떠났지만, 효성이 지극한 증석은 양조를 보아도 차마 먹지 못하였다.전국 시대에 이르러, 유가의 학설을 계승한 맹자의 제자들 가운데 공손추라는 사람이 이 일에 대하여 물었다."스승님, 회와 볶은 고기, 그리고 양조 중 어느 쪽이 더 맛이 있습니까(膾炙與羊棗, 孰美)?" "그야 당연히 회와 볶은 고기이겠지(膾炙)." "그렇다면 증삼은 무엇 때문에 회와 볶은 고기는 먹고, 양조는 먹지 않았습니까(何爲食膾炙而不食羊棗)?""회와 볶은 고기는 다같이 먹기를 좋아하는 것이고, 양조는 증석만이 먹기를 좋아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부르기를 피하여 입밖에 내어 부르기를 꺼리고 성(姓)은 부르기를 피하지 않는 것은, 성은 다같이 쓰는 것이고 이름은 혼자만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조(羊棗): 야생의 작은 감을 말한다. 처음에는 황색이었다가 익으면서 점차 검게 변하며, 모양이 양의 배설물과 같다 하여 양조(羊棗)라고 부른다.* 晳(밝을 석) 棗(대추나무 조) 與(줄 여) 孰(누구 숙) 何(어찌 하)
[예문]후속곡 <러브>는019 CF의 배경음악으로 각각 사용되어 음악팬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는것. 배경음악으로 전파를 탄 뒤부터 `누구의 노래냐' `어떤 음반에 수록되어 있느냐'는 등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일간스포츠>
■ 회자정리 會者定離 [모일 회/놈 자/정할 정/떠날 리]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임.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生者必滅 會者定離(생자필멸 회자정리),
[반]去者必反(거자필반)-떠난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 [예문1]-님의침묵--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예문2] 제망매가--월명사
![]() [예문3] 녹양(綠楊)이 천만사--이원익
들 가는 춘풍(春風) 잡아매며 탐화봉접(探花蜂蝶)인들 지는 곳을 어이하리 아모리 사랑(思郞)이 중(重)한들 가는 님을 잡으랴<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푸른 버들가지가 천갈래 만갈래의 실과 같다고 해도 가는 봄바람을 어떻게 잡아 맬 수 있으며, 꽃을 찾아 다니는 벌과 나비라 해도 떨어지는 꽃을 어떻게 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중요하다고 하나 떠나가는 임을 잡을 수 있겠는가?
■ 효빈 效빈[본받을 효/눈살찌푸릴 빈]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곧 ① 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의 비유, ②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의 비유.
[동] 서시빈목(西施빈目),서시봉심(西施捧心), 서시효빈(西施效빈).
[출전]『莊子』〈天運篇〉 [내용]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을 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장자(莊子)》〈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장자가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本質)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실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춘추 시대 말엽의 난세(亂世)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서시빈목'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 효시 嚆矢 [울 효/화살 시]
☞전쟁터에서 우는 화살을 쏘아 개전(開戰)의 신호로 삼다. 모든 일의 시초.
[동]最初(최초). /濫觴(람상) : 큰 강물도 그 근원은 술잔이 넘칠 정도의 작은 물에서 시작한다. /源泉(원천). 源流(원류). 水源(수원) : 물이 흐르는 근원. /破天荒(파천황) :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한 상태를 깨뜨린다. 아무도 생각 못한 놀라운 일을 하는 경우.
[예문]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에 함께 출연하는 두 남녀 배우의 사랑과 이혼, 재결합의 과정이 극중극과 현실의 이중구조로 엮여 펼쳐진다.
국내 뮤지컬계의 '장기집권' 스타인 남경주와 전수경이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고, 최정원이 전수경의 여동생 역을 맡는다.
번역과 드라마투르기(대본의 무대화 작업)는 김철리, 무대는 박동우, 음악은 박칼린, 안무는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레지나 알그렌(삼성의 '42번가' 안무)이 맡고, 연출은 연극계의 원로 임영웅씨다. 일단 작품에 참여하는 면면 모두 A급이다.
임씨는 산울림 소극장을 본거지로 연극 연출에 주력해왔지만 사실 국내 첫 창작뮤지컬 연출가다. 66년 옛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자리) 대극장에서 공연한 '살짜기 옵서예' (최창권 작곡.임성남 안무)를 연출했는데, 이것을 국내 창작뮤지컬의 효시로 친다.
이 작품은 고전 '배비장전' 을 각색한 것으로 패티 김이 초연 당시 주연이었다. 아무튼 '키스 미, 케이트' 초연은 국내 뮤지컬사에 남을 만한 일이 될 것은 분명하다.<중앙일보>
■ 후목분장 朽木糞牆 [썩을 후/나무 목/똥 분/담장 장]
☞썩은 나무에 조각하거나 부패한 벽토에 흙칠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 쓸모 없는 사람을 비유하거나 혼란한 세상을 비유함
[출전1]『論語』 공야장편
[내용1]공자의 제자 재여(宰予)가 대낮부터 침실에 들어가 있었다. 대낮부터 침실에 있는 것은 낮잠을 자고 있던가, 아니면 이성과 함께 있던가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생각되었다.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오也 於予與何誅
(후목불가조야 분토지장불가오야 어여여하주)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썩어 문드러진 흙담에는 흙손질을 할 수 없는 것이니, 재여를 나무란들 무엇하랴! 정신이 나태해져 있다고 간주된 재여는 스스으로부터 가망이 없다고 버림받은 것이다.
[출전2]『한비자』 현학편(顯學篇) [내용2]"담태자우(澹台子羽)는 군자의 용모라 중니(仲尼)가 보고 이를 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있어 보니 행동이 그 용모와 같지 않았다. 재여의 글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중니가 보고 이를 취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있어보니 지혜가 그 변설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용모로써 사람을 취함은 자우(子羽)에게서 그르쳤고, 언변으로써 사람을 취함은 재여에게서 그르쳤다고 했다."
■ 후생가외 後生可畏 [뒤 후/날 생/옳을 가/두려워할 외]
☞뒤에 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배는 나이가 젊고 의기가 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는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말.
[출전]《논어》
[동]후생각고(後生角高)--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청출어람(靑出於藍)--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낫다 [내용]자기보다 먼저 태어나서 지식과 덕망이 나중에 태어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생(先生)이고, 자기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 즉 후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후생(後生)이다. 그런데 이 후생은 장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외(畏)’란 좋은 의미에서 존경하고 주목할 만한 것을 말한다. 즉, 뒤에 태어난 사람인 후배들에게 무한한 기대를 걸고 한 말이다. 그들의 장래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알 수 없는 기대가 섞인 두려움인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고 말함으로써 젊었을 때 학문에 힘쓸 것을 충고하는 것이다. 공자는 이 말을 통해 젊은이는 항상 학문에 정진해야 하고, 선배되는 사람들은 학문을 하는 태도가 겸손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후생가외라고 한 것은 그의 제자 중 특히 재주와 덕을 갖추고 학문이 뛰어난 안회(顔回)의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이다.
이 말은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후생각고(後生角高)’라는 말과도 뜻이 통한다. 후생각고는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훨씬 나을 때 이르는 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네이버 백과> [원문]“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공자가 말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가히 두렵다. 어찌 오는 사람들이 이제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으랴.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될 뿐이다.
■ 후안무치 厚顔無恥 [두터울 후/얼굴 안/없을 무/부끄러울 치]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동]철면피鐵面皮
[예문1]그들이 비빌 언덕은 지역감정에 기댄 영남권이었다. 그들은 거기에 매달리고 부추겼다. 또 과거 TK·PK 정권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싹쓸이」에 비한다면 인사의 호남편중은 지나치게 부각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니다.<신동아 99. 3월> [예문2]며칠 전 민주당보가 중앙.조선.동아의 보도내용을 대대적으로 공격한 데 이어 어제는 '언론전쟁 불사'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민주당 중진이 또다시 "언론과 맞서라" 고 촉구하고 나섰다. 세무조사.공정위 조사.신문고시에 이어 펼쳐지는 이같은 험악한 분위기가 어디까지 연결될 것인가. 민주당보는 8개면 중 3개면에 걸친 대형 특집을 내고 3개 신문의 보도내용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정부 흠집내기' '개혁정책 헐뜯기' '경제불안 조성하기' 등의 소제목과 함께 '막가파식 왜곡' '후안무치' 라고 원색적으로 몰아붙였다. 세무조사와 신문고시에 대한 비판기사나 문제점 제시는 '억지' 요, '호도' 라고 일축했다. <중앙일보> ■ 흉유성죽 胸有成竹 [가슴 흉/있을 유/이룰 성/대나무 죽]
☞대나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마음 속에 이미 완성된 대나무 그림이 있다.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에 대한 계획, 방침 등이 이미 마음 속에 결정되어 있다.
![]() [출전]소식(蘇軾)·조보지(晁補之의 시) 與可畵竹時胸中有成竹(여가화죽시 흉중휴성죽)
[내용]문동(文同, 文與可)은 북송 시대의 사람이다. 인품이 고결하고 학자로서 유명했으며, 동시에 시와 문장에도 뛰어났고, 전(篆) ·예(隸) ·행(行) ·초(草)의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그는 특히 대나무 그림에 뛰어나서, 그가 그린 대나무는 마치 정말로 살아 있는 듯, 바람 불면 사삭사삭 소리가 나는 듯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고 한다. 문여가는 대나무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창가에 수많은 대나무를 심고, 매일 정성껏 가꿨다. 잎이나 가지가 자라는 모습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계절의 다른 모습, 비 올 때나 맑을 때나 안개 속의 서로 다른 자태를 살폈다. 오랜 세월이 흐르자, 대나무의 모든 것을 훤히 알게 되어, 눈을 감으면 대나무의 모든 것이 눈 앞에 수없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는 붓을 쥐고 그저 손을 몇 번 휘두르는가 싶으면, 종이 위에는 이미 절묘한 대나무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의 이런 경지를 문인인 친구가 흉중유성죽(胸中有成竹)이라고 표현했다. 흉유성죽(胸有成竹)은 그 준말이다. [참고]묵죽의 회화사상 뚜렷하게 일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북송의 문동(文同,960-1279) 때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남송의 미불(米揷)이 쓴 「화사」에 의하면 <심묵(深墨)은 전면이 되고 담묵은 뒷면이 되는데 이것은 문동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였는데 미불은 당시 예술계의 고증학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 그의 학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나 이미 문동 이전에도 죽화에 대한 새로운 창조 기풍이 있었기 때문에 미불의 논법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또 문동의 죽엽화법은 입체감과, 수묵의 취미에서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전대에도 더욱 그런 기풍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문동은 죽화법의 전형을 형성하였고 역대로 그의 전형을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문동을 묵죽화의 비조(鼻祖)라고 할 수 있다.
문동의 묵죽화법은 자연의 객관적인 관찰과 규율로 사물의 형태를 흉중(胸中)에 새겨두어 소위 <흉유성죽(胸有成竹)>을 그려야 한다는 것으로 형호(荊浩)의 산수화법과 매우 흡사한 논법이며 당 장조(張璪)의 주관정신론과 객관정신론의 이론과 같다. 송의 문인학자 소식은 문동과 외사촌간이었는데 문동의 죽화는 흉중일기라고 평하였으며 또 그를 문동파라고 하였다 ■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흑 흑/소 우/날 생/흴 백/송아지 독]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는 말로, 재앙이 복이 되기도 하고 복이 재앙이 되기도 한다
![]() [유]塞翁之馬 새옹지마 / 轉禍爲福 전화위복
[출전] 열자(列子) 설부(說符) 편 [내용]송나라 사람 중에 어질고 의로운 행동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삼대에 걸쳐 계속 이것에 힘썼다. 하루는 그 집에서 기르는 검은 소가 까닭도 없이 흰 송아지를 낳자 그것에 대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것은 길한 징조이니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시오." 그로부터 일년 후, 그의 아버지가 까닭도 없이 눈이 멀었다. 그런데 그 집 소가 또다시 흰 송아지를 낳았다. 그의 아버지는 또 다시 그의 아들을 시켜 공자에게 물어보도록 하였다. 이 때 아들은 말했다. "먼젓번에 그 분에게 물어보고 눈이 멀었는데 또 무엇 때문에 물으려 하십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성인의 말씀은 먼저는 어긋나다가도 뒤에는 들어맞는다. 다시 그분께 여쭈어 보거라." 그 아들이 또다시 공자에게 물어보니, 공자가 말했다. "길한 조짐이로다." 그리고 다시 그 송아지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아들이 돌아와 말을 아뢰니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행하거라." 그로부터 일년 후, 그 집 아들도 또 까닭없이 눈이 멀었다. 그 뒤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여 그들이 사는 성까지 포위하였다. 백성들은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고 유해를 쪼개어 밥을 지었다. 장정들은 모두 성 위로 올라가 싸우다가 태반이 죽었다. 그러나 이들 부자는 모두 눈이 멀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포위가 풀리게 되자 그들은 다시 눈이 회복되어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흥진비래·興盡悲來·[흥 흥/다할 진/슬플 비/올 래]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온다
[원]흥진비래·고진감래 興盡悲來·苦盡甘來--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번갈아 온다.
[예문]90년에는 1인당 GDP가 급증,2만7000달러로 세계 2위를 기록하는 호경기를 만끽했다.정치인들은 이를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기 바빴다.해외에서의 과다차입과 핀란드 마르카화의 과대평가는 감춰둔 채 공(功)만 부풀린 것이었다. 흥진비래(興盡悲來).90년대 유럽에 불어닥친 경기하강은 핀란드 경제의 거품을 만천하에 드러냈다.외환위기와 은행의 신용도 하락으로 위기가 시작됐다.방만한 대출로 생긴 손실을 은폐했던 것이 탄로났다.91년말 마르카화는 14% 평가절하되었고 급증한 외자의 이자지불도 20%가 껑충 뛰었다. 이렇게 되자 핀란드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섰다.대외 신인도 유지를 최대 목표로 설정,환율안정과 부실은행 정리,실업자대책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펼쳤다 <국민일보> ■ 희생 犧牲 [희생 희/ 희생 생]
☞종묘에 제사 지낼 때 바쳤던 소. 어떤 사물, 사람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음.
[출전]『書經』
[내용]희(犧)와 생(牲)은 약간 다르다. 희(犧)는 소(牛)의 기운(羲)이라는 뜻이다. 제사(祭祀)를 지낼 때 소를 바침으로써 신(神)으로 하여금 소의 기운을 누리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일지라도 얼룩소는 금물(禁物)이었다. 곧 희(犧)는 털에 잡색(雜色)이 섞이지 않은 소를 뜻한다. 한편 생(牲)은 소(牛) 중에서도 살아있는(生) 소를 뜻한다. 그것은 소를 잡아 고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소를 바쳤다는 뜻이다.
곧 희생(犧牲)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이나 종묘(宗廟)에 제사를 올릴 때 제물로 올렸던 소를 의미한다. 다만 암컷은 바치지 않고 튼튼하고 우람한 수컷만을 골라 바쳤다. 그런데 희생(犧牲)에는 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디 '삼생(三牲)'이라 하여 양이나 돼지도 제물로 쓰곤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축 대신 사람이 희생(犧牲)이 된 적이 있었다.
하(夏)나라의 폭군(暴君) 걸왕(桀王)을 정벌한 탕왕(湯王)은 은(殷)나라를 세웠다. 천하(天下)를 잘 다스렸지만 때아닌 한발(旱魃)로 백성의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무려 5년간 비가 오지 않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해야 할 판이었다. 백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그는 자신이 직접 희생(犧牲)이 되어 기우제를 올렸다.
그는 머리를 깍고 사지를 묶은 다음 희생(犧牲)이 되어 제단위에 섰다. 그의 정성에 감격한 天神(천신)이 큰 비를 내렸음은 물론이다. 이 때부터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것도 희생(犧牲)이라고 하게 되었다.
[참고1]신령에게 물품을 바치는 공물(供物)과 동물을 죽여서 행하는 동물희생의 두 가지가 있다. 공물에는 음식물과 일반물품의 두 경우가 있는데, 신과 사람과의 관계가 확립되면 음식물을 공물로 하는 일이 많다. 동물희생은 동물을 살해하는 것으로써 그 영혼을 통해 신에 대한 기원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과 동물의 영혼을 신령에게 바친다는 뜻이 있다. 또 인도 산지(山地)의 레디족이나 카리아족, 인도차이나의 요족 등 화전농경민들 사이에서는 동물의 피가 작물의 증식에 주술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떻든 공물이나 동물공양에서 공통적인 것은 그 대상물의 성화(聖化)와 희사(喜捨)이며 E.뒤르켐은 신성한 것의 제공을 희생의 본질적인 요소로 들고 있다. <두산백과>
[참고2]번제 [燔祭, sacrifice]이스라엘 민족이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야훼신에게 올린 가장 일반적인 동물의 희생의식이다. 희생’이란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는 산 짐승을 말하는 명사(名詞)인데, 희생을 제단 위에서 불로 태워 그 연기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공희(供犧)의 방법이다. 동물을 통째로 굽는다는 뜻에서 전번제(全燔祭)라고도 불리는데(시편 51:19), 하느님에 대한 봉헌자(奉獻者)의 모든 헌신을 상징하는 동시에 속량(贖良)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번제는 매일 희생물을 바치는 외에도 속죄일(레위 6장)과 3대 절기에도 드렸다. 희생의 대상이 되는 동물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 ·양 ·염소 등을 썼는데 가난한 이들의 경우에는 산비둘기 ·집비둘기 등을 희생으로 바치기도 하였다(레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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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낙서>자세한 설명
자, 이제 매일 괘를 보아 나가기 위해서는 점을 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물론 그 전에 주역상경(上經)의 앞부분에 있는 해설들을 살피거나 십익을 먼저 보는 것이 주역 전반을 대략 이해하는데는 좋겠으나, 우리의 목적은 주역을 통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년부터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점을 쳐서 그 괘만이라도 보아나가겠다는 것인 만큼 그 때 그 때 필요하면 살펴보기로 하고 생략하자. 다만 주역 해석에서는 숫자의 의미가 중요하니 하도낙서(河圖洛書)를 통하여 숫자에 대한 감은 먼저 잡아보고 넘어가자.
여기서의 설명은 주역전의 주역상경 중 역본의도(易本義圖)에 나온 글을 위주로 하여 순서와 말을 바꾸고 덧붙여 이해하기 쉽게 하였다.
1. 유래
하도는 복희씨가 황하에서 나온 용마 등에 있는 문신을 보고 팔괘로 만든 것이고, 낙서는 우왕이 낙수에서 홍수를 다스릴 때 나온 거북 등에 있는 점을 보고 홍범구주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주역에서 사용하는 팔괘와 1부터 10까지 숫자의 의미가 나오고, 오행의 상생 상극이 나오며, 낙서는 그대로가 그 유명한 마방진이 된다.
2. 모양
하도(오른쪽)는 용마의 목과 등의 무늬가 그림 같아서 圖라 하였을 것이고, 낙서(왼쪽)는 거북 등이 갈라져 점을 이룬 것이 글자와 비슷해서 書라고 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도서관이라 할 때의 圖書가 여기서 나온 듯.
![]() 자, 다소 복잡한데 이를 숫자로 간략히 하면 다음과 같다.
하도 낙서
백7 흑4 백9 흑2
흑2
백3 백5 백7
흑8 백3 흑10 백5 흑4 백9
흑8 백1 흑6
백1
흑6
3. 숫자의 설명
(1) 양의 수는 홀수(奇數)이므로 1,3,5,7,9가 모두 하늘에 속하니 天의 수가 다섯이다.
음의 수는 짝수(偶數)이므로 2,4,6,8,10이 모두 땅에 속하니 地의 수가 또한 다섯이다.
홀수를 합하면 25, 짝수를 합하면 30, 이 둘을 모두 합하면 55로 이 것이 天地의 수다.
(2) 1,2,3,4,5를 저절로 생긴 수라하여 생수(生數)라 하고 6,7,8,9,10을 생수에 의하여 만들어진 수라 하여 성수(成數)라 한다. 생수 중 5는 완전한 수라 중앙에 있고, 각 생수에 완전수인 5를 더하여 성수가 만들어진 것이다. 5가 완전수인 이유는 하늘에서 취한 3과 땅에서 취한 2를 더한 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3을 취하고 땅에서 2를 취하는(參天兩地) 이유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데(天圓地方) 원은 지름이 1에 둘레가 3이요 네모는 지름이 1에 둘레가 4라, 여기서 둘레가 3인 것은 陽인 1을 1로 삼아 3번한 것이고 둘레가 4인 것은 陰인 2를 1로 삼아 2번한 것이므로, 양인 하늘에서 3을 취하고 음인 땅에서 2를 취한 것이다. 이 天 또는 陽을 뜻하는 3과 地 또는 陰을 뜻하는 2는 점을 쳐서 괘를 뽑아낼 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3) 이래서 하도를 보나 낙서를 보나 5는 중앙에 있어서 군자의 지위를 가지고 뭇 수들을 거느린다.
하도는 5가 한 가운데에서 생수인 1,2,3,4를 북(항상 아래가 북이다), 남, 동, 서의 방위에 배치한 후 자신과 이들을 더하여 만들어지는 각 성수를 각 생수와 같은 방위에 두고 통솔하고 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수의 전체(常數의 體)를 보여주는 것이다.
낙서는 5가 가운데 있고 1,3,7,9의 홀수(奇數)를 북, 동, 서, 남의 방위에 배치한 후 1은 6, 3은 8, 7은 2, 9는 4(각각의 차 역시 5다)의 4개의 짝수(偶數)를 각 통솔하여 같은 방위에 두고 있으니, 양으로 음을 통솔함을 주장해서 변화의 운용(變數의 用)을 시작한 것이라 한다.
하도와 낙서의 수의 배치를 보면 1,3,5는 위치가 같고, 2,4는 다른데, 그것은 양은 바뀔 수가 없으나 음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며, 7,9가 양임에도 바뀐 것은 성수는 비록 양이라 하더라도 음(2,4)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도는 세겹의 원이고 낙서는 두겹의 원이라 할 수 있는데, 중앙이 주인와 임금(主, 君)이 되고 밖은 손님과 신하(客, 臣)가 된다.
(4) 하도는 완전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홀수(1,3,5,7,9)와 짝수(2,4,6,8,10)의 수가 각 5개로 같다. 다만 모두 더해 보면 홀수는 25, 짝수는 30으로 다름을 알게 된다.
한편 낙서는 변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하도에 비해 10이 빠져서 9가 최고수가 되므로 홀수는 5개이지만 짝수는 4개가 된다. 각각의 합도 홀수는 25, 짝수는 20으로 다르다.
그러나 하도와 낙서에서 각 중앙을 비워버리면 각각이 다 20이 되어 같아진다.
하도에서 중앙을 비운 것은 태극이고, 이에 따라 홀수합이 20 짝수합이 20인 것이 양의이며, 1,2,3,4로 각 5를 더해 6,7,8,9를 만든 것은 사상이고, 네 방위에 건곤이감을 두고 네 모퉁이에 태진손간을 만든 것이 팔괘다.
낙서에서도 중앙의 5를 비운 것이 태극이고, 이에 따라 홀수와 짝수의 각 합이 20인 것이 양의이며, 1,2,3,4가 9,8,7,6을 머금어서(각 5의 건너편이 된다) 종과 횡이 각 15이고 대각도 하나는 7(2+5), 8이고 또 하나는 9(4+5), 6으로 각 15로 4개 모두 15이니 이것이 사상이고(이 부분 해석은 나의 억측임, 가로 세로 대각이 모두 같으므로 마방진이다), 네 방위에 건곤이감을 두고 네 모퉁이에 태진손간을 삼으면 팔괘이다.
(5) 이제 오행(五行)을 보자.
주자(朱子)가 하도를 해석하기를,
하늘이 1로써 물을 낳으면 땅이 6으로 이를 완성한다 : 이것은 하도의 아래 쪽 백1흑6이 북방으로 물(水)을 뜻한다는 것이다.
땅이 2로써 불을 낳으면 하늘이 7로써 이를 완성한다 : 이것은 하도의 윗 쪽 백7흑2이 남방으로 불(火)을 뜻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3으로써 나무를 낳으면 땅이 8로써 이를 완성한다 : 이것은 하도의 왼 쪽 흑8백3이 동방으로 나무(木)를 뜻한다는 것이다.
땅이 4로써 쇠를 낳으면 하늘이 9로써 이를 완성한다 : 이것은 하도의 오른 쪽으로 흑4백9가 서방으로 쇠(金)를 뜻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5로써 흙을 낳으면 땅이 10으로써 이를 완성한다 : 이것은 하도의 가운데로 흑10백5가 중방으로 흙(土)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하도는 북-->동-->남-->중-->서-->북의 순서로 오행의 상생(相生)을 나타내게 된다.
오행의 상생이란,
물은 나무를 낳고(水生木)
나무는 불을 낳고(木生火)
불은 흙을 낳고(火生土)
흙은 쇠를 낳고(土生金)
쇠는 물을 낳는다(金生水)는 것이다.
한편 낙서도 이와 같이 1-6을 水, 2-7을 火, 3-8을 木, 4-9를 金, 5-10을 土라고 붙여보면, 하도와는 정반대로 낙서는 북-->서-->남-->동-->중-->북의 순서로 오행의 상극(相克)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행의 상극이란,
물은 불을 이기고(水克火)
불은 쇠를 이기고(火克金)
쇠는 나무를 이기고(金克木)
나무는 흙을 이기고(木克土)
흙은 물을 이긴다(土克水)는 것이다.
이상으로 하도낙서를 마친다.
좀 딱딱해서 유덕화가 부른 호방한 상해탄을 붙여둔다.
浪奔浪流 万里滔滔江水永不休 淘尽了世间事 混作滔滔一片潮流 是喜是愁 浪里分不清欢笑悲忧 成功失败 浪里看不出有未有 爱你恨你问君知否 似大江一发不收 转千湾转千滩 也未平复此中争斗 又有喜又有愁 就算分不清欢笑悲忧 仍愿翻百千浪 在我心中起伏够 지금 나오고 있는 곡의 가사는 위와 같다. 그런데 아래와 같은 다른 가사로 부른 곡도 있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 가리기 어렵다. 위의 것이 좀 더 깊이있고 유장하다면 아래 것은 더 호방하고 굳세다고 할까?
어찌 잊으리 그 찬란함이여 그 누가 상해탄을 잊으리
어찌 잊으리 그 호연지기를 상해탄 물결처럼 끊임없는 영웅담이여
절세미인 비범한 인물들 오직 상해탄에서만 나올 수 있으리니
온 몸에 한가득 담대함으로 우리 함께 멋드러지게 이 세상을 헤쳐나가세
사랑만도 아니고 근심만도 아니라네 모든 것은 굽이치는 파도와 같으니
천만번 뒤집히고 억만번 굽이쳐 그대와 나 운명처럼 만나리라
한맺힘도 없고 근심도 없다네 나의 사랑 상해탄이여
같이 가자 상해탄으로 그대와 함께 어우러져 이 세상을 누리리라
함께 가자 상해탄으로 우리 함께 어우러져 이 세상을 누리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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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하마평(下馬評)이란 말의 유래는 옛날 가마 또는 말의 상류층 사람들이 이용하던 대표적 교통 수단이었는데, 교통 표지는 그때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마비(下馬碑)이다. 하마비에는‘모두 말에서 내리시오.(大小人員皆下馬)’라고 적혀 있었다. 가마나 말에서 내린 주인이 볼일을 보러 가고 없는 동안 가마꾼이나 마부는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끼리 잡담을 나누게 되었고 별의별 애기가 다 나왔다. 그들의 주인은 고급 관리가 대부분인지라 이야기의 중심도 자연히 출세 진급 따위의‘자리’에 관계된 것이 많았다.
)라고도 한다. <두산백과>
[출전]『枕中記』
[참고2]함안차사 (咸安差使) --확실한 연대와 인물은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의 일인 듯 짐작된다.그 당시 한 사람이 대역죄를 지었는데 조정에서 안핵사까지 내려 보내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 죄인에게는 노아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천하 절색일뿐만 아니라 가무며 학문이 능하고 구변이 청산유수이어서 한번 본 남자는 그녀의 치마폭에 놀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예문]해면은 단단한 표면에 붙어있는 식물처럼 보이나 플랑크톤을 먹고사는 다세포동물 중에서 가장 하등한 동물이다. 해면은 작은 구멍이 많아 물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예전에는 청소나 목욕할 때 사용하였다. 




)’라는 괘가 있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