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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
허영숙
간단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을 제출하라 한다 A4 용지 한 장의 분량으로 써라 하니 웃음이 나온다 마흔 해의 이력을 A4 용지 한 장에 어떻게 다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초등학교 졸업이 언제였더라 손가락으로 꼽다가 책상 한 쪽 구석에서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는 먹다만 새우깡 겉봉에 찍힌 바코드를 본다 저 굵고 가느다란 세로 줄에 기록된 것은 새우의 함량이라든가 출고 일자 혹은 숫자로 드러나는 가격에 불과할 뿐 비닐봉지 안에 갇힌 공기의 질량이나 내게 오기까지의 경로를 기록할 수 없다 어느 겨울 날 찬물에 돌미나리를 씻으며 울고 싶었던 이유가 시린 손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한 줄의 좁은 칸에 다 적을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나를 이 작은 칸 안에 모두 말 할 수는 없다 길 위에서 버려진 신발이 몇 켤레였는지 밟아온 길을 일으켜 세워 바코드를 만든다 고음으로 내걸렸던 푸른 날의 한 때를 세로로 긋다가 올려다 본 하늘 정오의 햇살이 내 몸의 바코드를 환하게 찍고 간다
경북 포항 출생 <시마을> 동인 시마을 최우수작가(3회) 2006년 <시안> 신인상 수상
===================================== [감상] ‘바코드’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은 영악하다. 뭐든지 쓰윽 읽고 지나가면 한 순간에 그 상품을 위하여 투자된 노동이며, 땀방울이며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낸다. 그러나 그 ‘바코드’가 산다는 것의 아픈 질량을, 가슴 시린 추억이며, 기쁘거나 때로 슬픈 날들의 내역을 계산해 낼 수 있으랴. ‘찬 물에 돌미나리를 씻으며’ 펑펑 울고 싶었던 그 추운 날의 기억들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바코드화 되어 가는 산업사회에 대한 뒤돌아봄과 푸른 시선이 정오의 풍경을 둥글게 말아쥐고 있다. 햇살, 나를 환하게 찍고 간다. 내 몸의 바코드, 결코 기록될 수 없는.... [양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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