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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책 공부

캐릭터와 등장 인물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06.07.22|조회수475 목록 댓글 0

 

 김옥 동화 한 편을 또 읽어보았다. <청소녀 백과 사전>(<<어린이와 문학>>.2006.1)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싯점은 앞서 <<축구 생각>>과 똑같다. 한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인칭 싯점에 서 있다. 역시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위에서 말한 김옥의 그런 재주를 또 다시 실감하겠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성에 눈 떠가는 아이들의 내면 감정을 이렇게 섬세하고, 익살맞게 풀어가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축구 생각>>과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캐릭터와 등장인물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어떤 작품이든지 등장인물은 있다. 그러나 모든 작품에서 이 등장인물이 나름의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승화되어 가지는 못할 것이다. <<축구 생각>>에서 중심인물은 대용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일인칭 화자는 자기가 겪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당연히 중심인물이면서, 문제 인물이면서 또한 그 또래 그런 축구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의 내면을 반영하는 한 사람의 캐릭터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면 <<축구생각>>에서 대용이란 아이는 얼마나 요즘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대신 살아주는 캐릭터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일까.


 한 등장인물이 한 사람의 캐릭터로 승화되어 가기 위해서는 그 인물과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고 사는 주변인물들과 맞서고 기대고 하는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격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 등장인물이 작품 끝으로 가면서 한 사람의 캐릭터로 승화되어 가는 긴 흐름,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흐름이고, 진정한 이야기꾼은 이런 흐름을 잘 잡아내서 독자의 감정을 쥐고 흔들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다.


 대용이가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며 살아가는 학교와 집이란 시공간에서, 대용이의 간절한 바람을 가로막고 있는 주변인물은 주로 어른들이다. 먼저 대용이는 선생님과 맞선 자리에 서 있다. 교실에서 공을 차다 선풍기를 부수고, 수업시간 늦게까지 축구를 하는 통에 선생님과의 대결에서는 보기 좋게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시 집으로 오면 엄마가 선생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수학성적이 너무 안 좋아 학원에 다녀야 하고, 한 과목이라도 90점 이상 받으면 축구를 하게 한다는 당근 전략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무슨 수로 50점이나 받던 놈이 90점 이상을 받을 수 있으랴. 역시 시험에서도 대용이는 도저히 엄마와의 대결에서 이길 승산은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아이의 간절한 바람은 어른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일방적인 관념으로 인해 실현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래서 이 작품을 읽는 아이들은 주인공 대용이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일상의 흐름에 가슴을 조리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문장에 눈을 반짝이며 듣고 읽고 할 것만 같다. 작품을 읽다보면 이런 게 바로 이야기꾼의 재주로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이 재미있게 읽고나서는 어딘가 내 무의식에 말을 걸어오는 힘이 약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무얼까. 이 두 작품은 상당히 극적인 구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극적인 구성을 내세우는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인물의 성격을 극대화시키는 지점까지 밀고 간다. 한 인물이 처한 상황이 아래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위로 상승하든지 간에 절망과 희망 사이를 극한까지 오고가면서 주변 인물들과 맞서고 기대고 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연출해 간다. 이런 인물의 극대화 전략이 오락 영화가 추구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구성방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축구 생각>>이나 <<청소년 백과사전>> 같은 작품도 이런 극적 구성을 많이 닮아 있다. 김옥이 최근에 발표한 동화는 이런 극적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처음 도입부분에서는 작가가 삶 속에서 발견한 인물이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이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극적으로 구성된 인물이란 느낌이 든다. 작품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되돌아볼 때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당히 작가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도식적인 인물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을 읽고 났을 때, 읽을 당시는 재미있게 읽히는데, 다 읽고 나면 어딘가 무의식에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인물이 남지를 않는다. 캐릭터와 등장인물의 차이, 무의식 속에서 발견한 인물과, 작가의 재치와 관념으로 구성된 인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문제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축구 생각>>에는 시험지를 보여준 승완이가 축구 시합이 있는 날 대용이에게 시험지 본 사건을 말하면서, 자기에게 시합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그 사실을 폭로한다는 예상치 않은 극적인 인물로 나온다. 승완이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인해서 대용이의 행복한 꿈은 사라지고, 대용이는 승완이의 협박에 굴복하여 결국은 자기 대신 시합에 뛰도록 하였다.


 대용이는 계속해서 임기응변의 삶에 직면하게 된다. 축구를 간절히 바라는 자신의 내면을 가로막는 어른들과의 대결은 없다. 어른과의 대결을 통한 진정한 문제해결보다는 시험지를 훔쳐보게 되고, 또한 승완이의 변신으로 인해 축구마저 못하게 되는 과정에 처하면서 대용이란 중심인물의 성격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사건에 휘말려 내면성격이 없이 작가에 의해 부여된 임기응변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도형인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른의 고정관념을 풍자하면서, 거기에 맞선 한 아이가 겪는 내면의 감정변화도 희미해지고, 단지 그냥 축구만을 좋아하는, 놀이가 아닌 자본주의 스포츠 문화에 정신없이 쓸려가는, 게임에 빠진 아이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요즘 흔히 보는 아이들의 분신을 보는 듯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에 대한 환상은 어떤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일까. <<축구 생각>>은 이 근본 문제에 대한 탐구가 빠져있다. 세계관에 대한 탐구가 허약할 때, 인물의 극대화 전략을 내세우는 작품은 점점 오락의 기능을 담당하는 쪽으로만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갈 것이다. 


 이런 점은 <<청소녀백과사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경은이와 애리는 친한 친구이고, 이 둘 사이에 두 남자 아이가 끼어 있다. 애리는 성주란 아이를 좋아하는데, 성주는 하필이면 젓가락 데이 날 경은이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래서 두 친구는 곤란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 둘은 이 시간을 잘 넘기는가 했더니, 결국은 성주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애리에게 급식을 먹는 시간에, 된장국이 싫다는 성주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싫어도 몸에 좋은 건 억지로라도 많이 먹어 둬야 하는 법이야. 알았지?”

 그러니까 성주가 화를 내면서

 “야, 엄마처럼 굴지마, 그렇게 좋으면 너나 실컷 먹고 더 뚱뚱해져라, 이 웬수 덩어리야.”

 하고 욕을 하였다.

 이런 다음에 밥을 먹고 빈그릇을 내러 가는 애리의 발을 걸어 애리는 급식판을 들고 꽈당 교실에 넘어지고 말았다. 

 승완이가 시험지를 보여주고는, 주인공의 앞날에 결정적인 아픔을 주는 그림자 인물로 등장하는데, <<청소녀백과사전>>에서는 성주가 그런 인물로 등장을 하고 있다. 경은이는 성주에게 받은 젓가락 과자를 돌려주고, 애리가 흘린 급식을 말없이 치우는 착한 영우에게 자기의 사랑을 전하는 편지를 전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경은이와 영우의 사랑은 맺어지게 되는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났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앞에서 말한 무의식에 말을 걸어오는 힘이 약하다는 느낌이 든 건 왜일까.


 거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극적인 드라마에서 인물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주변인물의 엄청난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축구 생각>>에서는 승완이란 아이의 돌변, 그리고 이 아이가 전적인 비인간적인 자리에 서면서 주인공은 상대적으로 극대화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청소년 백과사전>>에서는 애리와 성주란 주변인물의 희생을 바탕으로 경은이와 영우가 극적인 중심인물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성주란 인물은 가장 악한 행동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또한 애리는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가진 철없고 속없는 아이의 자리에 서는 역을 해 주었다.

  

 이 작품이 무의식에 말을 거는 그런 깊은 여운이 덜 느껴진다는 건 이런 극적인 구성 때문 만은 아니다. 이런 식의 논리로 말하면 인물의 극대화를 노리는 영화는 다 그럴 수 있을테니까. 물론 인물의 극대화를 내세우는 영화들이 하두 황당해서 그저 한번 보고 웃고 마는 오락의 성격을 띤 작품들은 많이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동화는 그런 오락영화와는 다른 자리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세계관에 대한 탐구가 허약할 때 극적인 구성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기 힘들 것이다.

 <<축구 생각>>을 쓰기 전에 우선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의미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단순한 놀이가 아닌, 스포츠화된 축구에 빠진 아이의 내면 심리는 어른들이 교묘하게 만들어놓은 자본주의 논리에 혹시 이 아이들이 빠져 있는 걸 반영하는 현상은 아닐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승부욕은 과연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애리나 경은이와 같이 사춘기 아이들이 보이는 남자 친구에 대한 그런 환상은 또한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애리가 성주에게 보여주는 관심은 요즘 여자아이들의 내면에 들어있는 여성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또한 거기에 대해 그런 극한의 반응을 보이는 성주의 행동 또한 남성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나게 한다.

 인물의 극대화 전략을 통해, 이 작품은 축구의 본질, 남성성과 여성성의 본질에 대한 탐구도 끝까지 몰고 갔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었다면 재미와 아울러 감동까지 주었을 것이다. 


 중심인물의 극대화 전략이 이런 세계관에 대한 탐구를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할 때 그런 극적 구성의 이야기는 세계관의 허약성으로 말미암아 오락의 기능을 하는 작품, 자본주의 소비전략에 편승하는 흥미위주의 작품으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래도 김옥의 최근 동화에는 섬세한 내면 심리묘사가 돋보이고. 등장인물들이 서로 맞서고 기대고 하면서 흘러가는 이야기 속도가 있다. 이렇게 요즘 아이들의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잡아내는 섬세한 감성이 세계관에 대한 탐구와 함께 결합을 하면 상당히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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