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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책 공부

<거짓말 학교>(전성희. 문학동네)를 읽고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10.08.13|조회수822 목록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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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읽었다. 첫 작품집인데 이 정도 이야기꾼이라면 앞으로 많은 작품을 써 낼 것 같다.

 이야기 시작부터 흥미롭다. 관심을 일단 확 끈다. <푸이스트 법칙>이란 말이 있는 가 보다. 아마도 이 작품을 쓰도록 작가를

자극하고 영감을 준 하나의 개념인듯 싶다. 이런 개념에서 이런 긴 이야기를 끌어내는 지적인 탐구심이 일단 좋다.

 한 편의 작품이 감동을 주려면 이런 저런 요소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1) 시원하게 직선으로 뻗어가는 듯 하다가도, 어느 지점에서 맴을 돌며 깊이 본질에 대해 탐구해 들어가는, 달려가다 멈추고 송곳처럼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나와 달려가곤 하는 얽히고 설킨 사건 전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런 사건의 얼개가 돋보인다.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흥미진진한 느낌이 들게 한다.

 

2)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묘사가 돋보일 때도 읽는 이는 감동을 받는다.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3)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주의 작품은 당장은 눈을 끌게 하지만 읽다보면 식상할 수도 있다. 상상력이 개입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거짓말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짓말을 빌미로 해서 존재와 제도의 본질에 대한 어떤 탐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것도 좋다.

 

4) 책을 끝까지 읽고 났을 때, 역시 사유의 전복성이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기존 도덕관념의 틀 안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면 감동은 식을 수가 있다. 새로움이 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끝맺음을 매우 흥미롭게 하였다. 이런 걸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가. '강인애, 너 어떡할래?'하고 묻고 있다.

 

 길은 아주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작가가 어린 아이보다 높은 자리에서 애초부터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언어 감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이 이런 결말까지도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역시 신인 작가들은 아동관이 다르다. 아이들보다 높은 자리에 서 있지 않다. 영적인 친구의 자리에서 고민을 나누는 언어 감각을 갖고 있다. 이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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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 가지 의문도 든다. 이 작품은 거짓말을 배우는 학교에 입학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추리와 탐정의 성격이 가미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거짓말 학교에 다니는 이 아이들에게 과연 진실이란 명제가 가능한 걸까. 거짓말 학교에 다니는 순간, 그리고 이 학교의 정체성을 아는 순간, 아이들은 당연히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 작품에는 한 사람의 진실한 대상으로 진실학 선생님이 나온다. 이 진실학 선생님은 과연 진실한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거짓 사람이었던가.

 무언가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났을 때 거짓말 학교라는 상징이 일종의 순환적인 공허한 시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일종의 아주 거대한 거짓말 학교를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참으로 진퇴양난이다. 무언가 허무한 존재의 본질 앞에서 책을 덮으면서 나도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점이 바로 이 작품의 특별한 독창성이 아닌가도 싶다.

 무언가 아동문학을 하는 작가가 아이들을 훈화나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아이들 스스로가 이미 세상의 온갖 그림자를 다 경험하고 있는, 금기가 깨진 시대에 어른과 같이 이미 가면을 쓴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걸 그냥 드러내고 있는 듯 싶다. 그야말로 이미 이 사회는 아이들이 '사라지는' 시대인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는 늦게 태어났을 뿐이지, 영적으로는 금기가 깨진 시대에 아이들이란 존재 자체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일까. 

 

 정연철의 <독립만세>(주병국 주병장에 실린 단편)도 이러한 시공간을 다루고 있다. 그림자 인간인 엄마와 딸이 주인공으로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을 꽝 닫으며 내 쫒는 할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독립해 가는 이 그림자 인간들은 자신의 삶을 도덕적인 잣대에서 보지 않고 있다. 순전히 할아버지 재산을 보고 그 재산을 물려 받아 독립을 하려는 기생해서 살아가는 군상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묘한 울림을 주고 있다. 요즘 작가들은 일그러진 그림자 인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바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선과 악의 판단자로 서려 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냥 보여줄 뿐이다. 아이들이라고 해도 이제는 선과 악의 판단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인가. 어른들은 흔히 걱정을 한다. 아이들이 이런 인물들에게 물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러한 금기가 작동하는 시공간 자체가 지금은 오히려 어색한 시대가 된 것일까. 아이들도 이제는 온실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재에 대한 실제적인 탐구를 몸으로 겪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러니까 아이들도 이미 태어나면서 어른과 마찬가지로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세상에 노촐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아이들은 이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가 어른과 같이 부딪히며 스스로 몸으로 겪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하는 어찌보면 정신적으로는 매우 고된 삶의 벌판에 내 뎐져진, 이제는 애어른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하여튼 아주 묘한 느낌이 들었다.

 

 거짓말 학교와 독립만세와 같은 작품 속 시공간의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겠다.

 이전 동화들하고는 무언가 묘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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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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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지맘 | 작성시간 16.11.26 질문과 생각이 많아지는 동화였습니다.
    '강인애, 이제 어떡할래?' 마지막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독립만세>(주병국 주병장에 실린 단편) : 위에 써 놓으신 제목
    저도 이 작품이 읽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검색이 안 떠서 순간 당황했는데
    주병장이 아니라 주방장이어서 ㅋㅋ 웃었습니다.
    꼭 읽어 보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야기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1.26 감사합니다. 소감 많이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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