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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책 공부

'영실이'를 아시나요?

작성자조아요|작성시간04.10.27|조회수153 목록 댓글 0

앞 글에 이어서 얘기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싸우는 아이, 찬수에게만 정신이 팔려서 한참을 설레였답니다. 찬수는 어른이 됐으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정말 찬수를 책 속에서 현실로 꺼내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영실, 우리 누이의 자화상!

 

그리고 영실이는, 책 표지 그림 뒤면에 유리창 앞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애는 영실이가 아니라 미숙이이지요. 그런데 그게 제겐 영실이처럼 보입니다. 소공녀의 베티처럼 낮고 천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 노예가 되어버린,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일만 죽어라 해주고, 구박까지 받는 헐벗은 영실이. 웃는 얼굴은 상상할 수가 없는,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버린듯한, 어린 나이에 삶에 찌들어버린 전쟁고아 식모 영실이. 처음엔 영실이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바보같이, 왜 그렇게 사냐고...? 왜 큰 목소리 한 번 못내고 병신같이 맞고 사냐고, 왜 일한 돈 한 푼 못받아내냐고, 왜 거지같은 옷만 입고 사냐고? 그러니까 인구네 식구가 널 더 무시하지...'

 

저의 분노는 응당 어린 소녀를 돈 안내고 부리는 파렴치한 인구네 엄마를 비롯한 인구네 식구에게 향했어야 하건만, 오히려 당하고도 말못하는 영실이에게 향했더랍니다. 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불쌍한 영실이를 위로해주기는 커녕 답답하다고 미워하기까지 하다니...제가 왜 영실이를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당연히 인구네 집을 나와야지, 도망치다가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고 나와야지, 근데 왜 제 발로 못나와, 답답해 미치겠어!' 도저히 영실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은 오로지 영실이 한 명일 뿐일 거라고 영실이는 나와 아주 다른 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시나브로, 영실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제 생각이 변화되는데는 장장 1~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영실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는 이해, 그 시대 영실이같은 입장에 처해 있었더라면 나라도 손쉽게 그 집을 빠져나올 수 없었겠다는 공감. 처음 영실이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어떻게 변화,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 매개는 제 스스로가 이 땅의 여자라는 인식의 변화 때문인 듯싶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피동화 되어 버린 여자들의 삶은 우리 주위에 참으로 많습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 집 할머니, 우리 이웃의 아줌마들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만들고 통제할 수 있는 힘! 그것마저도 없이 단지 목숨을 연명하며 사는, 도대체 사는 까닭을 모른 체 살아가는 목숨들,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 여인네들의 한과 체념, 숱한 문학작품들(규원가, 시집살이노래 등)에서 배워왔습니다. 정작, 문학작품을 배우면서 오히려 우리 여인네들의 인고의 정신만 더 뿌리깊이 내면화되지나 않았는지 걱정될 정도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통 여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미덕으로 가치화하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비판적인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영실이는 한국 전쟁 때 고아가 됐고, 이 집 저 집 식모살이 하면서 밥만 얻어먹으며 죽어라 일하며 살았고(지금이야 미성년자보호법이 있지만은) 살뜰한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10대소녀입니다. 세상에 영실이 편은 한 명도 없고, 한글도 모르고, 무서운 주인여자는 실수하면 때리기만 합니다. '날고싶지 않은 독수리-풀빛'에서 닭처럼 키워진 독수리가 떠오르네요. 영실이는 사람다운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인권을 유린당했습니다. 그런 나약한 존재에게 왜 넌 부당한 억압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 나오지 못했느냐고 따진다면 그건 너무 잔인한 말입니다. 영실이에게 그 시대(전쟁 직후), 그 사회가 언제 한 번 인간다운 삶을 맛보게나 해주었습니까. 그래서 영실이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눈물로 다스릴 수밖에 없는 울보,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찬수가 고맙습니다. 동네 사람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던 불쌍한 식모 영실이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고,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실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찬수를 진짜 영웅이라고 한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었고, 다른 생명과 더불어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시키려는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에서 영웅의 전통은 문학 작품에서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날카롭고도 정확한 독자의 눈을 갖춘다면 말입니다.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새로 애 봐주러 간 집에선 월급도 주고, 옷도 주고, 한글도 가르쳐주었다)을 받아본 영실이이기에 다시 끌려간 인구 엄마네 친정 (천안)에서는 영실이는 독수리의 야성을 찾고 스스로 탈출해 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영실이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영실이에게 힐링카만큼의 자존감을 갖추라고 요구할 순 없지만, 영실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절대로 자기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억울하게 참고 있지만 말라고, 두려움을 깨는 순간, 행복이 보인다고...'

 

선생님! 우연히 이 카페를 알게 되고(우리교육에 싸우는 아이에 대해 질문했더니 이 카페를 알려주대요)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기에 예전에 써두었던 '무던이'를 올렸고 내친 김에 이 글까지 써 보았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대개 궁금합니다.  맴만 돌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여기에 쓰니까 잘 펼쳐지네요. '싸우는 아이'가 인연이 되어 선생님과 인터넷상으로나마 글을 주고 받을 수 있어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같습니다. 손창섭 님이 창조한 인물들에게서는 저도 모르게 애정이 생겨나고, 제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기에, 그리고 그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참으로 많기에 이렇게 감상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더욱  명확하게 한 편의 글로 정리하면 좋겠는데, 저의 글쓰기 방식이 어떤 형식으로 어느 매체에 적당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 답글 올려주세요. 저는 지금 대화에 목말라 있거든요.

 

그리고, 참, 선생님! 저는 이야기밥을 듣기만 하고 한 번도 보지는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지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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