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타리는 사람들이 동물이나 동물들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동물-되기의 문제를 사유하기 위해서 동물을 어떻게 사유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노마디즘2. 60쪽)이다.
자연사(박물학)에서 동물을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계열'이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는 '구조'라고 부릅니다. 먼저 계열이란 'a는 b와 유사하고 b는 c와 유사하며, c는 d와 유사하고.....' 하는 유사성의 계열을 그리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유사성에 따라 연결되는 이 모든 항들은 그 정도의 차이나 질, 완전성의 정도라는 측면에서 그 계열을 대표하는 하나의 뛰어난 항과 연결됩니다. 모범 내지 모델이 되는 하나의 '탁월한' 자질을 가진 것이 있고, 이것과 가장 가까운 것에서 가장 먼 것을 차례대로 배열하여 하나의 '진화적'계열을 만듭니다. 그 모델인 항과 가장 가까운 것이 '진화된' 것이고, 가장 먼 것이 가장 덜 '진화된' 것이지요. 각각의 항은 대표항과 비교하여 그 완전성의 차이나 정도의 차이를 하나의 비율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신과 그 피조물 사이에 설정했던 '비율의 유비'라는 개념에 상응한다고 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의 계열을 따라서, 혹은 하나의 계열에서 다른 계열로 달라지는 유사성들을 갖게'됩니다. 즉 유사한 동물들의 계열이 하나의 선으로 그려진다면, 그와 다른 동물들의 계열이 분기되어 다른 계열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유비는 보다 감지되기 쉽고 대중적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며, 상상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만 이때의 상상은 계열의 가지들을 고려해야 하고, 외견상의 단절을 메워야 하며, 허위 유사성을 피하고 진정한 유사성을 등급화해야 하며, 전진과 퇴행 혹은 등급 하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학구적 상상이다."(노마디즘2. 62쪽)
또 하나 구조라고 불리는 방법이 있다.
'a와 b가 맺는 관계는 c가 d와 맺는 관계와 같다'고 말하며 이 관계들 각각은 자신의 방식대로 그 나름의 완전성을 실현한다. 그러한 관계의 동형성을 '구조'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물속에서의 아가미와 호흡의 관계는 공기 속에서의 폐와 호흡의 관계와 같다를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이를 비례관계의 유비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a:b=c:d 라는 비례관계의 동형성을 통해서 관계를 포착하기 때문이다. 앞서 비율의 유비에 따른 계열의 형식이 상상적인 것이었다면, 이러한 비례의 유비에 따른 관계는 분류의 왕도로, 지성적인 것이다."( 노마디즘2 62~63쪽 참고)
역시 이 자연사 박물학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지적하는 문제는 "계열의 근거인 완전성이나 질이라는 단 하나의 탁월한 항과 다양한 정도로 관계를 맺는, <비율에 기반한 유비>"의 사유 방식일 것이다.
"<자연>은 단계적인 닮음에 의해 계열의 모델과 근거로서 존재자들 모두가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 신이라는 최고항을 향해 나가면서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모방하는 존재자들의 사슬이라는 형식으로 고려된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은 이번엔 질서 잡힌 차이에 의해, 모든 것이 모방하는 모델 자체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모방해야 할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은 거울 속의 <모방>이라는 형식으로 고려된다."(천개의 고원. 446~447쪽)
'존재자들 모두가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 신이라는 최고항' 이런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본다면, 모든 동물들은 신의 주변에 신과 얼마나 닮았는가를 중심으로 배치될 것이다. 닮은 비율에 따라서 가운데 신을 중심에 두고 배치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 관념은 현재도 살아있다고 말한다.
"관념들은 항상 다시 사용된다. 그것들은 항상 사용되어 왔지만 극히 다른 현재적 양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동물들 상호간의 관계는 과학의 대상일뿐만 아니라 꿈의 대상, 상징의 대상, 예술이나 시의 대상, 실천과 실천적 활용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물 상호간의 관계는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인간과 원소들, 인간과 물리적 우주 및 미시-물리적 우주 등 여러 관계들 속에 놓여 있다. '계열-구조'라는 이중 관념은 어떤 시점에서는 과학의 문턱을 넘어가지만 그것은 과학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고 또 과학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며, 또는 다른 학문들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가령 꿈, 신화, 조직 등의 연구에 기여하기 위해 인간과학들을 고무시키기도 한다. ""(천개의 고원. 447쪽)
여기에 대한 보충설명을 더 옮겨보자.
융의 원형이론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바로 위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융은 동물이 꿈, 신화, 인간집단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집단적 무의식으로서의 원형에 대한 이론을 정교화하였다. 정확히, 동물은 전진-퇴행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지니는 계열과, 각각의 항이 리비도의 가능한 변환자(형태 변환)의 역할을 하는 계열과 분리될 수 없다. 이로부터 꿈을 다루는 모든 방법이 나온다. 왜냐하면 하나의 모호한 이미지가 주어지면, 문제는 그것을 그 원형의 계열 속으로 통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자연사와는 달리 계열의 뛰어난 항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무의식의 특정한 요청에 따라서, 특정한 행위와 기능과의 연관 속에서 한 마리의 동물이, 사자, 게, 혹은 맹금, 이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
한편 레비스트로스는 "내적 상동성을 향해 외적유사성을 초월하라"고 함으로써 상상적 계열화 대신에 지성적인 구조화를 주창합니다. 인간이나 동물과의 신화적인 동일시가 아니라, 그러한 항들의 계열 안에 존재하는 관계의 동형성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토템적 제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인간집단들이 어떤 동물의 종과 동일시된다고 말하지 않고, 집단 A와 집단 B의 관계는 종 A'와 종 B'의 관계와 같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각각 토템-동물을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인간집단이 주어져 있다면, 이 두 개의 토템이 그 두 집단의 관계-까마귀족이 매족과 맺는 관계-와 유사한 어떤 관계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노마디즘2. 63~64쪽.)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을 조금 더 옮겨보자.
결코 인간이 "나는 황소다. 나는 늑대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으나, 이렇게는 말할 수 있었다. 즉 나와 여성의 관계는 수소와 암소의 관계와 같고, 나와 다른 남자의 관계는 늑대와 어린 양의 관계와 같다고. 구조주의는 커다락 혁명이었다. 구조주의에서 와서 모든 세계가 훨씬 더 합리적인 것이 되었다. 계열과 구조라는 두 모델을 검토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진정한 분류 방법이라는 이유로 후자를 크게 칭찬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전자를 어두운 희생의 영역으로 추방하며, 환상과 몰상식 이라고 단정한 바 있다. 희생이라는 계열적 주제는 본래적 의미의 토템제도라는 구조적 주제에 자리를 양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여전히 원형적 계앨과 상징적 구조 간에는 많은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 (<천개의 고원>. 450쪽.)
이런 자연사의 계열과 구조를 따른 유사성의 방법으로 동물을 바라볼 때 문제점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렇게 지적한다.
"박물학은 무엇보다도 차이들의 합과 가치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진보나 퇴행, 연속성과 대규모적인 단절은 생각해낼 수 있지만 본래적인 의미의 진화, 즉 변양의 정도들이 외부 조건에 좌우되는 혈통의 가능성은 생각해낼 수 없다. 박물학은 <A와 B사이>처럼 관계들의 견재에서만 사고할 수 있을 뿐 <A에서 x로>처럼 생산의 경지에서는 사고할 수 없는 것이다."(천개의 고원.445쪽)
좀더 보충해서 아래 말도 옮겨보자.
계열과 구조라는 이 두 가지 방법은 이전의 자연사에서, 혹은 20세기의 중요한 이론적 사유에서 동물을 다루는 두 가지 전통적 방식인데, 근본적으로 유비와 모방이란 관념 안에서 동물이나 동물 간의 관계,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물들이 섞이고 인간과 동물이 결합되어 혼성되는 양상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이 들뢰즈/가타리의 생각입니다. 즉 이런 방법으로 '동물-되기'란 유사성에 따라 연결되는 상상적인 계열화의 선이나, 상동성에 따라 연결되는 상징적인 구조화의 선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횡단하면서 서로를 변용시키는" 현실적(실재적)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동물-되기는 꿈도 환상도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실재적이다."(노마디즘2.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