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성
권 용 철
달이 돋는지 먼 수평선 하늘은 노르무리하게 물들어 있었다.
바다는 다림질이라도 한듯 매끈하고 고요했다.
가끔 짭짤하면서도 싱싱한 초록빛의 미역 내음이 코를 훅 스치며 지나갔다.
고운 모랫벌은 어두움 속에서 하이얗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바닷 가에 이르자, 뒤를 힐끔 돌아 보았다.
자기네 초막집이 나직한 언덕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바알간 등불이 갈대숲 사이로 희미하게 번져오고 있었다.
소년은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 너른 바닷 가에 있기엔 너무 작은 집이라고 생각되었다. 적어도 이런데 있자면 커다란 성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소년은 저녁마다 이 바닷가로 나오는 것이었다. 답답하기만 한 저 작은집 안에 있기가 싫은 것이었다.
이 바닷 가로 나오면 엉뚱한 생각이 곧잘 떠올라 신이 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싱그레 웃으며 모래위에 드러 누웠다.
새파란 별들이 하늘 가득히 열려 있었다. 저녁 때 소나기가 세수를 시킨 탓인지, 별들은 별나게 반짝이고 있었다.
소년은 심심해 눈을 반쯤 감았다.
별들은 조개처럼 길쭘해 졌다.
이번엔 억지로 하품을 해서 눈물을 생기게 했다.
별들은 어룽어룽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반쯤 감았다.
별들은 저마다 뾰족한 뿔을 만들었다.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소라뿔 같은 그것은 별나게 길어졌다 짧아졌다 했다.
소년은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눈장난을 계속했다.
자신도 모르게 온 정신을 별들에게 빼앗기고 있었다. 자기의 몸뚱이를 까아맣게 잊고 있었다.
별들을 따 모아, 깊은 바닷 속에 커다란 별성을 쌓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별들은 예쁜 난장이들의 나라
아름다운 보석으로 되어 있대요......”
소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뛰어갔다.
마당 가에 세워져 있는 돛대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커다란 소나무 옆에 이르자,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은 여전히 푸른 눈을 깜박이며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별을 따기위해 장대를 높이 쳐들었다.
발돋음을 한껏 해도 장대 끝은 하늘에 닿을듯 말듯 했다.
소년은 바삐 소나무에 장대를 기대 세웠다.
신을 벗고, 손바닥과 발바닥에 침을 패패 묻친 다음, 소나무 위로 솔작솔작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이르자, 소년은 장대를 높이 쳐들었다.
아아, 장대 끝은 별들에게 닿고 있었다.
소년은 입을 헤, 벌리며 별들을 후자들기 시작했다.
“디딩 동댕......”
별들은 양금을 퉁기는 듯한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져 내겼다.
소년은 신이나 대구대구 후자들었다.
별들이 떨어지며 내는 빛으로, 하늘은 흡사 수없이 많은 별똥별이 흐르는 것처 휘황찬란했다.
커다란 성을 하나 쌓을 정도의 별이되자, 소년은 장대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온 산에 별들이 감꽃처럼 파랗게 깔려 있었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것도 있고, 반딧불처럼 갈대숲 속에 떨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소년은 설레이는 가슴을 억누르며 재빨리 나무에서 주르르 내려왔다. 그리고는 제일 가까이 있는 별을 하나 만져보았다.
그것은 생각대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보석이었다. 황금 같기도 했고, 사파이어 같기도 했다.
그 속엔 예쁜 난장이 공주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소년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다른 별들을 살펴 보았다.
역시 처음 별과 마찬가지였다. 좀 다른 게 있다면 옷 빛깔이 틀린다는 것 뿐이었다. 아니 또 있었다. 어떤 별엔 공주대신 왕자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눈처럼 깨끗하고 하얗다. 길다란 눈썹 속에 들어있는 맑고 까만 눈매는, 미운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공주 왕자 할 것 없이 모두 다 궁금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어서 그 궁금증을 풀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별나라 공주님과 왕자님 여러분 무척이나 놀라셨겠지요? 그러나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별들을 딴 것은, 저 넓고 깊은 바닷속에 훌륭한 별성을 쌓고 그 안에 아름다운 궁전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을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제 생각이 좋다고 여겨지거든 어서 빨리 문을 열고 나와 주십시오.”
소년은 별들을 휘둘러 보며 두 눈을 빛내었다.
“나쁜 사람이 아니구나.”
“참 멋 있는 생각인데......”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바깥으로 몰려 나왔다.
소년은 신이나 두 손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별을 메고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네,네, 따라가다 말다요.”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은 자기네들이 살던 별을 떠받쳐 메고 소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푸른 별의 행열은 아름답게 반짝이며 바다를 향해 닥아갔다.
“번호 맞춰-이 갓!”
소년은 신이나 코구멍을 발름거리며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하나! 둘!...”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은 힘차게 번호를 부치기 시작했다.
달이 돋는지 먼 수평선 하늘은 노오랗게 물들어 있었다.
번호가 끝나자, 그들은 봐이올린처럼 가늘고도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별나라 노래를 처음 들어 그런지, 소년은 그들의 노랫 소리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알리바마>라는 미국 민요처럼 명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그리움과 슬픔이 담겨있는 그런 노래였다.
“제 자리에---이 서!”
소년은 바닷 가에 이르자, 노래 속에서 황급히 빠져나와 고함을 질렀다. 노래는 발걸음과 함께 뚝 멎어졌다.
“별성은 바로 저 수평선이 있는 바다 속에 쌓습니다. 황금빛 물결이 반짝이는 저 바다 속에 말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소년은 오른손을 들어, 하늘 나라 요정들이 내려와 춤을 추고 있는 듯한 아득한 바다를 가리켰다.
“아, 좋아요! 좋아요!”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은, 금빛 달빛이 잔물결에 부서지는 환상적인 바다를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이 갓!”
소년은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을 돌아보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먼저 바다로 걸어들어 갔다. 두 발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폭폭 빠졌다.
소년은 화가 벌컥 났다.
“제 자리에---이 서!”
소년은 재빨리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을 멎게 한 다음, 웃통을 홀딱 벗었다.
발을 빠지게 하는 바다를 그대로 두면 안되는 것이었다. 한 번 혼을 내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발이 물에 빠지면 저 수평선까지 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소년은 두 손을 허리에 짚으며 무서운 눈으로 바다를 꼬나 보았다. 그러고 있다간 두 손으로 바다의 볼을 꼬옥 찍어 잡았다.
“이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아! 내가 누군지 모르니? 어디라고 감히.”
소년은 어금니를 지긋이 물며 바다의 볼을 앞뒤로 마구 흔들어 댔다.
바다는 황소같은 눈을 디룩거리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정을 못 다시겠어? 엉?
다시 그러겠니 안그러겠니?“
소년은 꽥 소리를 지르며 바다의 따귀를 두어대 올려 붙였다.
바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몹시 아픈 시늉을 했다.
“왜 대답이 없어! 네 위로 걸어가게 하겠니! 안 하겠니!”
소년은 바다를 배지기 떠 바위 위에 태질을 쳤다.
“아이쿠 쿠쿠......”
바다는 천둥같은 소리를 내며 하얀 가루로 산산히 부서졌다.
잠시 후에 겨우 정신을 차린 바다는 코가 땅에 닿도록 빌기 시작했다.
“아이구,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바라시는 대로 모두 해 드리겠습니다.”
바다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음,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 준다. 앞으로 또 다시 그러면 그땐 정말 마지막인 줄 알아라.”
소년은 바다에게 눈을 부라린 다음.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을 데리고 달빛이 부서지는 수평선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로 하여금 그 위에다 사방이 칠십 리 씩 되는 높다란 별성을 쌓게 했다.
일을 하기엔 바다 위가 휠씬 쉬운 것이었다. 별성과 궁전이 다 이루어 지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바다에게 눈만 한 번 부릅뜨면 되는 것이었다. 별성을 마음대로 바다 밑에 가라앉게 할 수도 있고, 바다 위에 뜰 수 있게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은 잠시도 쉬지않고 부지런히 일을 했다. 바깥을 내다 볼 수 있도록 한 키 정도 높이 까진 모두 유리를 둘러 박게 했다.
별성을 다 쌓자 이번엔 궁전을 짓게 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을 만들고, 방마다 백조 깃털로 만든 커튼과 침대를 달고 넣게 했다.
처마 끝마다 루비로 조각한 여러 가지 아기 짐승을 달게 하고 넓은 정원도 아름답게 가꾸도록 했다.
별나라에서 갖고 온 꽃과 나무를 여기 저기 심게 하고, 파란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도 만들게 했다. 그 너머 푸른 숲도 만들고, 그 숲속엔 백조 떼가 헤엄치며 놀 수 있는 맑은 호수도 만들게 했다.
잔디가 깔린 운동장엔 시이소, 미끄럼틀, 회전그네 등등...... 온갖 놀이틀을 다 마련해 놓도록 하고, 배 고플 땐 언제나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끔 온갖 음식을 다 마련해 놓도록 했다.
재미있는 별나라 동화책과, 그림책과, 예쁜 구두와, 일곱빛 고운 무지개 구슬과, 꽃수술이 달린 제기 등등......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 모두 다 마련해 놓도록 했다.
이윽고 생각대로 다 이루어 지자, 소년은 왕으로 추대 되었다.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이 어떻게나 졸라대는지, 도저히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왕이 된 소년은 행복했다.
황금빛 왕관에 붉은 비단 옷을 입고 있는 앳띈 그의 모습은 정말 훌륭했다.
달빛에 번쩍이는 별성의 궁전도 그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위로 살짝 휘어진 추녀 끝의 모습이라든가, 가파른 지붕위에 삼각형으로 쏘옥 돋아나 있는 작은 창문이라든가...... 그것은 중국의 옛 나라 궁전보다도 훨씬 더 신비로웠다.
“에헴, 에헴”
어린 왕은 점잖게 기침을 두 번 한 다음, 바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궁전을 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하라!”
“네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바다는 전에 한 번 혼이 난 적이 있는지라 순순이 말을 들었다.
별성의 궁전은 점점 바다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아!----”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유리창으로 우----몰려들었다. 모두들 바닷 속 구경이 처음인지라 눈도 깜짝하지 않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이름모를 고기들이 지느러미를 얄랑거리며 닥아왔다 물러가곤 했다.
열 두 시간 쯤 후, 별성의 궁전은 모래밭으로 된 어느 깊은 바다 밑에 내려앉았다.
별성의 궁전이 내는 빛으로 바닷 속 주위는 달밤처럼 화안하고 아름다웠다.
어린 왕과 난장이 공주들과 왕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별성 주위엔 키 큰 바닷말이 갈대숲처럼 무성하게 우거져 있고, 나직하고도 하얀 모래 언덕엔 고운 산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야기로만 듣던 인어 아가씨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신선한 우유빛 살결에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느린 그녀는, 하얀 모래 위에 역시 하얀 검지 손가락으로 시를 쓰고 있었다.
한 소년이 살고 있었대요.
그 소년의 꿈은
깊은 바다 밑에
아름다운 별성을
쌓는 것이었대요.
그 다음은 어깨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만 꼬리 옆으로 삐어져 나온 끝 구절- 저는 그 소년이 무척 그리워요.- 하는 것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 소년이라면 바로 내가 아닌가!”
어린 왕은 이런 생각이 들자, 숨이 다 가빠왔다.
“저 아름다운 인어 아가씨가 나를 그리워 하고 있다니!”
어린 왕은 햇빛 같은 목소리로 소리높이 웃었다.
그 소리에 소년은 펀뜩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서운한 생각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등어리에 닿은 모래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다.
먼 수평선 하늘엔 둥근 달이 노란 풍선처럼 나직히 둥 떠 있었다.
노란 오술길 같은 달빛 줄기가 바다 복판에서부터 먼 수평선까지죽--- 뻗어 있었다. 아득한 그 수평선 위엔 작은 물결이 황금빛의 거울조각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소년은 빛나는 눈으로 그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먼 수평선 위에 쌓은 별성의 궁전을 찾기라도 하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