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띠 오이디푸스의 신화학>(정재서)이란 책을 어제 산이슬과 이야기하다가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앞 부분을 좀 읽다가 몇 가지 발췌를 해 본다.
서양 신화에 촛점을 맞추어서 그간 진행되어온 신화학의 관점을 이제는 좀더 다양한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당근 이런 이야기에 주목을 하면서 몇 가지 아하 하고 오는 이야기들, 참고하면 좋을 이야기들을 메모해 둔다.
1
에드워드 싸이드는 지금은 고전이 된 그의 주저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 학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특권화하여 모든 이방적 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서구 문명이 순수하고 근원적인 것처럼 합리화시켜왔다고 비판한바 있다. (25쪽)
-여기서 말하는 특권화된 서구 문명의 논리를 넘어서는 다양한 사유의 한 축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동양 사람이 저 근대화과정을 통해 세뇌화되다 시피 한 일방적인 논리의 틀에서 벗어난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일 것이다. 동양고전에 대한 공부가 역시 아주 필요한 싯점이다. 이 공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저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2
브루스 링컨은 서구의 신화학이 아리안족 혹은 인도유러피언족의 기원을 탐색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데 열중해 왔으며, 이러한 경향이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의 욕망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근대 이후의 모든 학문 분야가 그러하지만 신화학의 세계도 평등하지 않다. 신화학은 특정 지역 곧 그리스 로마 지역의 신화를 바탕으로 개념, 분류, 특성 등을 규정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도출된 서구신화학의 이론들은 중국 신화를 비롯한 비서구 지역의 신화들에 대해 표준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 (25쪽)
- 서구 신화학의 이론들이 표준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는 논리는 이제는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히려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고 내재화된 이러한 근대교육과정을 통해 새겨지는 서구지향의 논리에서 벗어나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꿈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아동문학의 자리에서도 동화 이론이나 판타지를 비롯해서 아동문학사 전체에 대한 어떤 이론의 가설들을 세울 때에도 역시 서구 사람들이 세워놓은 이론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저런 면에서 저 벽을 넘기 위해서는 동양 고전이나 역사 자체에 대한 나름의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사유를 하는데 역시 기초가 되는 어떤 이야기의 원전은 신화, 전설 민담과 같은 설화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쪽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양 고전을 신화의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제대로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3
그림 형제에 의해 제안된, 설화에 대한 신화, 전설, 민담의 3분법은 마치 신화를 다른 서사물과 구분하는 준칙처럼 여겨져왔고, 이에 따라 신화와 전설 혹은 민담의 구분이 확연하지 않은 중국신화 내지 동아시아 신화는 엄격한 의미에서 신화로 간주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배스컴의 광범위한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상당수의 민족은 신화와 전설을 통합해서 인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배스컴은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신화, 전설, 민담의 3분법보다 신화와 전설을 포괄하는 '참된 이야기'(true tales)와 '꾸민 이야기'(fiction tales)의 2분법이 더 통용되고 있다고 증언한다.
설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아르네와 톰슨에 의한 <민담의 유형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유럽 및 중동 지역의 설화를 바탕으로 그 구도가 짜여진 것이다. 후일 다른 지역의 설화를 보강하긴 하였지만 이 책의 체계 속에 중국의 설화가 온전히 망라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서구의 요정 이야기에 바탕한 인식틀로는 동아시아 설화를 대표하는 신선 이야기의 특성이나 위상을 제대로 파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29~30쪽)
- 상당히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화 전설 민담의 세가지 유형을 잣대로 <유럽의 민담> 같은 책도 쓰여진 걸로 알고 있다. 이 책은 신화나 민담, 전설의 차이를 이해하고 나름대로 구조적인 면에서 이야기를 분석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은 책이었다. 관점은 다양한 자리에서 볼 수 있으니, 이런 저런 신화와 민담의 3분법을 벗어나서 또 다른 자리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논의와 관련해서 아래 부분을 더 옮겨보는 것도 좋겠다.
4
신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신인관계론의 관점에서 서양신화와 동양의 신화는 아주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중국신화의 차이를 들었는데 옮겨본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들은 비록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인간과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신에 대한 도전, 반향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예컨데 신의 권능을 시험하려 했던 탄탈로스는 아들을 요리해 신들을 대접했다가 들통이 나서 그 자신이 영원한 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손인 니오베, 아가멤논 등도 앙화를 입었다. 베짜기의 명수 아라크네는 어떤가? 재주를 믿고 오만했던 그녀는 여신 아테나와의 게임에서 정당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을 능멸했다는 이유로 거미가 되는 악형을 받는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대부분의 영웅들이 불행한 최후를 맞는 것도 엄정한 신인관계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중국 신화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그리 엄정하지 않다. 예컨데 염제의 작은 딸은 대신의 권속이므로 불사의 존재이겠으나 요절하여 요초(瑤草)라는 풀로 거듭났다가 다시 무산신녀(巫山神女)로 태어나 이루지 못한 애욕을 초희왕을 통해 실현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황제, 염제, 치우, 요, 순, 우, 탕 등 조차도 비록 역사화되긴 했지만 그들의 행위는 신적인 초월성을 띠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인 한계성을 보여준다. 가령 우는 태생부터가 비범한 신적 존재이나 그가 홍수를 다스리는 과정은 노력하는 인간의 삶 그것이다. 이들의 반인반신성은 중국신화에는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절대적 신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화 시대 이후 중국에서도 신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꾸준한 노력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이의 대표적 예로서 도교의 신선을 들 수 있다. 신선은 본래 인간이었으나 수련을 통해 신과 같은 경지에 도달한 존재이다.
물론 신선 설화는 신화라기보다는 전설이나 민담의 성격을 띤 것이지만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는 설화의 집대성이라 할 <태평광기>에서 가장 비중있게 자리매겨져 있어 서구의 요정 이야기와 대비되는 동아시아 설화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서구 신화의 엄정한 신인관계에 바탕해 건립된 설화 분류체계가 그림 형제의 그 유명한 신화, 전설, 민담의 3분법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세계 상당수 민족은 설화를 3분법 보다는 신화와 전설, 민담의 2분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신화와 전설 즉 신화와 전설을 한가지로 본다는 것은 신인관계를 엄정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32~33쪽)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우리들도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 무언가 인간과 신이 시공간을 공유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런 동양의 신화적인 사고는 신인관계를 엄정하게 분리된 것으로 느끼지 않는 일종의 스피리트 개념으로 인식해도 좋겠다.
엄격한 분리가 작동하는 도너츠 모양의 사고와 뫼비우스 띠의 사고를 여기에서도 적용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겠다.
5
변형관념에서 일종의 이형 다시 말해서 반인반수나 괴물같이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의 존재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가. 이것도 서양과 동양의 인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걸로 되어 있다. 옮겨본다.
이형이란 반인반수나 괴물같이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말한다. 이형은 다시 상이한 것들이 합쳐진 혼종형과 개체 스스로가 변형된 변종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동아시아권인데도 중국에서는 혼종형, 일본에서는 변종형의 요괴가 많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혼종형을 중심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와 중국신화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신화에서 혼종형은 사실살 반인반수형으로 표현된다. 대부분의 신화에서는 반인반수의 존재가 많이 출현한다. 가령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인신우수(人身牛首)의 미노타우로서, 인면조신(人面鳥身)의 세이렌, 인면마신(人面馬身)의 켄타우로스 등이 반인반수인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신화에서는 인신우수의 염제 인면사신(人面蛇身)의 여와, 인면용신(人面龍身)의 뇌신(雷神)등을 비롯해 허다한 반인반수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반인반수의 존재는 대부분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중국신화에서는 그들이 긍정적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데 똑같이 인신우수의 형체를 한 미노타우로스와 염제를 보자.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섬의 미노스 대왕의 비 파시파에가 황소와 교접하여 낳은 사생아이다. 태생부터 좋지 않게 설정된 미노타우로스는 식인괴물로서 미궁에서 희생물을 잡아먹다가 결국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살해된다.
염제는 어떠한가. 그는 농업을 발명하고 의약을 창시하여 인류에게 큰 도움을 준 선신(善神)이다. 이 뚜렷한 대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미노타우로스를 비롯해 세이렌, 스핑크스, 메두사 등 반인반수의 존재들이 대부분 사악하고 위험한, 그리하여 결국에는 영웅에 의해 퇴치될 운명을 지닌 괴물들이다. 중국신화에도 흉악한 반인반수의 괴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이러한 상위(相違)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스로마신화는 일찍이 철학 및 인문정신이 싹튼 그리스의 풍토에서 인간중심으로 조정되었다. 그리고 호메로스등 다수의 작가들에 의한 문학적 윤색이 이러한 조정을 강화시켰다. 이에 따라 완전한 형상은 인간의 모습을 지향하게 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한결같이 잘난 남자 예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신을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하였기 때믄이다. 이와같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동물성은 저열한 것으로 간주된다. 결국 동물성이 섞인 반인반수의 존재는 사악한 괴물로 취급될 수 밖에 없다.
중국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원시성을 더 많이 보존하고 있다. 천인합일 관념이 우세한 중국의 문화적 전통에서 중국신화는 그래도 인간중심으로의 개편과정을 덜 거친 것이다. 아울러 후대에 인문화, 역사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업작가에 의해 총체적인 개편의 과정을 거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소박한 면모를 간직하게 된 것이다.
원시적 사고에서 동물성은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다. 위대한 자연의 본질에 가까운 그것은 신성함과 아울러 월등한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신화에서 반인반수의 형상은 훌륭하고 전능한 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황제, 염제, 소호, 복희, 여와 등의 대신들이 모두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것은 거의 미남 미녀로 표현된 그리스로마 신화의 대신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반인반수, 그것은 신성한 토템 동물과의 합일, 나아가 거룩한 자연과의 일체감을 표상한다. 그리스로마의 신들도 원시적인 모습은 반인반수였을 것이지만 오늘날 안전히 인간화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비해 중국신화의 신들은 여전히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현실은 신화학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텍스트가 더 신화의 진상을 말해주고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하여 그리스로마신화를 표준으로 한 기존의 서구 신화학에 대해 심문의 여지를 제공한다. ((35~38쪽)
- 길게 인용해 보았다. 여러가지 토론이 가능하겠는데, 꿈을 꾸고 그 꿈의 상징을 해석해 볼 때도 이러한 동서양의 신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는 고려해 볼만하다. 지금 우리의 몸은 동서양의 문명과 사고를 같이 받아들인 상태에 있다. 그러니 어느 한 쪽의 사유나 논리보다는 양쪽의 논리를 다 받아들이면서 지금 내 몸의 상태를 느끼고, 심리 에너지, 정신 에너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한다. 상당히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 몸을 하나의 소우주로 보고 소우주에 떠도는 기의 흐름, 정신에너지의 흐름을 파악할 때, 당연히 저러한 신화에 대한 상징을 어떤 관점에서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내 몸에 찾아오는 상징의 이미지들을 느끼고 의식화하고 받아들이는 개인의 삶은 아주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이니 명리학이니 이런 저런 타로니 하는, 점을 칠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관점에서 점이 올려보내주는 상징의 이미지들을 해석하느냐는 아주 미묘한 문제라 하겠다. 쉽지 않지만 즐겁기도 한 문제이다.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