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은 요정이야기의 기원이나 의미를 알아보려고 사전을 찾아보았으나 별 도움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보통 요정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주 작은 존재, 그리고 인간사에 선하든 악하든 큰 영향을 미치는 마법의 힘을 가진 존재로 믿고 있단다. 그런데 여기에서 톨킨은 아주 흥미로운 말을 한다.
초자연(supernatural)이란 엄격한 의미로 쓰이건, 느슨한 의미로 쓰이건 간에 위험하기도 하고(dangerous) 어렵기도 한 말이란다. 그런데 이 초자연성이란 의미는 요정들에게는 오히려 적용되기가 힘들거란 말을 한다. 왜냐하면 요정이 극히 작다는 이유로 칭송을 받기는 하지만, 인간이야말로 요정에 비하면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냐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에 비하면 요정이 더욱 자연적이란다. 이게 바로 요정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요정은 자연에 존재하는 스스로 그러한 존재이다. 나중에 톨킨도 말하지만, 이 요정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자연스런 존재인 것이다. 마치 전기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느낄 수는 있는 실체인 것처럼, 요정 또한 이런 느낄 수는 있는 존재인 것이다. 느낄 수 있다는 건 하나의 에너지를 가진 존재를 뜻한다. 우리 마음 속 우주에 존재하는 이미지이자 에너지인 그 무엇이다. 이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다고 말하는 이 요정을 어떻게 체험해보는가. 판타지 공부는 바로 이런 쪽으로 향해 가야 한다. 그래야 판타지 공부가 우리 삶을 바꾸고 몸을 즐겁게 하는 쪽으로 갈 수가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존재들은 주로 어디에 살고 있는가. 아마도 이들은 우리 마음 속 우주에 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정이야기나 신화나 동화나 판타지는 주로 우리 마음 속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우리 마음 속 우주에서 일어나는 요정들, 정령들의 이야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장이 바로 꿈의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꿈은 우리 마음 속 우주에 살고 있는 정령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꿈에 나타나는 모든 존재들은 일종의 마법에 걸린 목숨들이라 하면 좋겠다. 마법에 걸린다는 의미가 상당히 중요하다. 서양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다는 말을 쓰는데, 우리에게는 여기에 어울리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이런 논의도 좀 해 보면 좋겠다. 마법에 걸린다는 말은 뒤에가서 톨킨이 하는 말을 좀더 들어보기로 하자.
다시 톨킨 이야기로 돌아가자. 요정이 훨씬 인간보다 더 자연적인 존재란 말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 이 요정의 실체를 어떻게 체험해보는 방법은 없을까. 역시 우리는 꿈을 통해 요정과 같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존재를 체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여자들의 꿈>이란 책이다. 이 책에서 한 부분을 옮겨가며 이야기를 더 해 보자.
융은 동물과 곤충들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의 핵심, 즉 '자기'의 원형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펄스는 꿈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인데, 모든 요소- 자동차, 별, 괴물 등을 다 포함하여-는 잠재적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원천의 상징이라고 본다. 모든 경우마다 흥미있는 문제는, 왜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동물이나 물건이 나타났으며, 그것이 자기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를 알수 있는 좋은 방법은 꿈의 요소가 하는 대로 움직여보는 것이다.(<<여자들의 꿈>> 61쪽)
위의 말에서 우리 꿈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이며, 잠재적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천의 상징이란 말이 우선 가슴에 와 닿는다. 꿈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살게하고,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인 것이다. 에너지는 당연히 몸에 어떤 기운을 불러온다.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결국 중요한 일은 바로 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우리 마음 속 우주에서 살고 있는 에너지 원천이 되는 상징의 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친구가 되고, 어떻게 그 상징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위 글에서 꿈 작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상징을 한번 몸으로 살아보라는 말을 한다. 그럴 때, 그 상징이 뜻하는 의미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얻은 한 사례를 발표하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옮겨본다.
"또 다른 접근 방법은 사람들이 마치 하나의 커다란 유기물처럼 한 사람의 꿈 장면이나 상징을 함께 재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워크솝에서 어떤 여자는 꿈에 검은 기차가 끊임없이 달리는 불안한 상징을 보았다면서, 모임 전체에게 몸으로 그 기계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흥미롭게도 우리에게 얼굴을 안쪽으로 향하라고 했으므로, 그에게서 돌린 우리의 등은 기차의 바깥면이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 상징이 '부담'스러웠던 이유가 다른 것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기차가 겉으로는 소극적으로 보여도,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우리의 팔, 다리,얼굴, 주의력등)도 알게 되었다. 검정색을 '부정적인'색깔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연습을 통해 매우 긍정적이고 흡수력 있고, 보호적이며 특히 변화할 때 유용한 색으로 보는 훈련을 받았다. 움직임을 통한 실험을 거쳐서, 기차는 그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그 상징은 내면으로 향하고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강력하고 능동적이며 의미 심장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 과정을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위책. 62~63쪽)
여기서 한 가지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이 마음 속 우주에서 일어나는 꿈의 상징들을 해석해내는 건강한 자아의 문제이다. 사실 잔인하고, 우울한 꿈에서 위의 여인처럼 건강한 자기 중심의 본질을 찾아내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꿈을 분석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먼저 필요한 자질은 자기 존중감이다. 자기만을 사랑하라는 편협한 자기애가 아니라, 나도 한 사람의 우주가 되는 인간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감이 일단 있어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그러한 자기 준중감을 갖기 위해서는 단순한 꿈의 분석만으로는 안되며 역시 마음공부를 바탕으로 하는 명상의 힘이 필요하다. 꿈의 분석과 마음공부(명상)가 하나로 되어야 한다. 마음 속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꿈은 상징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러나 명상을 하면 자기 몸의 소리를 느낌이나 에너지나 파동으로 역시 듣고 느낀다. 꿈은 꾸어져야 하지만, 명상은 내가 찾아갈 수 있다. 마음 공부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꿈을 분석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여자들 가운데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많다. 점을 보는 것 자체도 나쁠 거야 없겠지만,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점을 해석하는 의식과 무의식이 건강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다. 꿈이나 점에 사로잡혀버리는, 먹혀버린다면 그런 사람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점에만 의지하고, 실제 삶은 무질서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점 보다는 자기 꿈이나 명상을 통해 날마다 자기 몸의 소리를 듣는 공부를 해야 한다. 판타지 공부는 이런 쪽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이런 쪽으로 판타지 공부가 될 때, 좋은 작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