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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멩이 작성시간08.02.04 근데 라깡은 왜 팔루스를 궁극적으로 어떠한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는 건가요?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어떻게 해서 남성에게 중요한 인물이라는 상징으로서 작용할 수 있었나요? 고대에는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현대에 들어서 더이상 의미있는 상징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지요? 실제로 남근을 숭배했던 배경에는 여성(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의미체계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아버지의 몸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거지요. 하나의 남성으로서요.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오거든요. 근데 그러한 상징적 의미가 허깨비 개념이라고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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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야기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2.04 더 공부해 봐야겠는데요.허깨비가 그냥 허깨비가 아니고, 허깨비가 사람들의 상상속에서는 하나의 에너지를 갖고 현실에서 작용을 한다는 거겠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제 나름의 상상계에서 어쩌면 자기도취적인 상태에서 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라깡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로 세상을 나누어 보는 것도 같습니다. 이 세 의미는 상당히 어려운데요. 판타지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개념들입니다. 시공간을 보는 라깡 나름의 개념들이 사실 상당히 재미있고, 많은 상상력을 주는데요. 라깡은 자신이 프로이트의 독자라고 했다는데요. 독자라고 해도 날카롭게 비판적으로 재해석해서 읽어내는 독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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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야기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2.04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책도 라깡의 이야기를 다시 연구자가 나름대로 해석을 해 놓은 문장이기때문에, 또 한번 옮겨지는 과정에서 틀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상관없어요. 우리는 라깡이나 라깡 연구자들의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고, 그 어떠한 원전이든지 간에, 그건 하나의 재료에 불과하니까요. 라깡 연구자라면 원전의 정확성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이들 연구에서 그냥 우리 나름의 탐구문제를 얻으면 되는 겁니다. 지식을 짜집기하는 공부하고, 몸의 에너지로 나의 사유로 지식의 관점을 녹여내는 공부는 그래서 아주 달라요. 우리는 지금 라깡을 모시는 공부가 아니라, 라깡을 재료로 해서 우리 나름의 사유를 해 나가보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