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느림 주역 읽기 봄 학기 첫 모임(3.15)을 하고- 화택규괘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19.03.18|조회수11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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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 느림 인문학공부 모임에서 주역을 읽은 지도 벌써 몇 년 되었다.

긴 겨울 방학을 끝내고 봄 학기 한 달에 한번씩 하는 주역 읽기 모임을 다시 시작하였다. 우리의 읽기 모임도 점점 깊어진다.

어제도 모여서 한 말 가운데, 주역 읽기가 혼자 읽을 때와, 둘이 읽을 때와 여럿이 읽을 때 다 맛이 다르다고 하였다.

그럴 것이다. 나도 그렇다. 주역은 삶의 변화 과정 가운데, 어느 한 싯점을 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중의 한 순간을 잡아서 하는 이야기이니, 그 순간 속에 영원이 들어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간은 그냥 흘러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다가올 현재인 미래가 다 뒤섞여 있는 것이다. 축적되어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이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2

 6명이 모여서 점을 치고 주역 경전을 읽는데,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겼다.  한 사람이 아주 급하게 힘든 일을 겪어서

이 일을 겪는 가운데 나온 점괘 세 개를 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놓고 읽어보았다.

 직장 일로 발령 나는 문제를 물었을 때는 지화 명이괘가 나오고, 발령이 나서 출근을 할 때 올 일년의 직장의 관계를 물었을 때는

화택 규괘가 나오고, 운전하는 문제를 물었을 때는 뇌천대장괘가 나온 것이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화택 규괘를 같이 읽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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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택규, 대립하고 분열하고 어긋나는 괘가 나왔다.

지화명이괘가 36번째고, 풍화 가인 괘가 37번째, 그리고 화택규가 38번째이다. 이렇게 괘가 흐른다.

규괘에 대해서 서괘전은 "가정의 도가 궁색해지면 반드시 어그러지므로 분열을 상징하는 규괘로 받았다. 규괘란 괴리다."(750쪽)

라고 말한다. 이걸 어찌 생각해야 할까.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어느 싯점에 오면 어그러지고 분열해야만 하는 개념이 아닐까. 이게 오히려 건강한 것이 아닐까. 어느 정도 아이들이 성장하면 아이들은 떠나야 하는 싯점이 오는 것이다. 가정의 화목 뒤에 오는 어그러지고 분열하는 이 싯점을 제대로 직면해야 하고 제대로 받아들이고, 제대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대립과 분열을 꼭 나쁜 의미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직장의 문제를 물었는데, 이 규괘가 나왔으니, 이건 또 어찌 해야 할까.

 주역의 괘는 나의 삶을 놓고 묻는다. 당장 문제를 물었을 때 나오는 괘로 우리는 이 괘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잘 모를 수가 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살아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주역점은 그러니까 내 삶을 어느 한 사람에게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쳐 놓고, 매 순간 규괘의 말씀과 상징을 생각하면서 삶에 직면해 살아보는 수 밖에 없다.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이 규괘의 상상력으로 해쳐내가는 것이다. 파도를 타듯이.

 

 4

 매사 모든 일이 어그러지고 대립하는 괘가 나올 때는 먼저 가족을 돌아보고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의 내면을 가장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근본 원인은 일차 가족에게 있다. 규괘가 나왔다면 가족도 삶의 한 일부분이요, 결국은 어그러지고 깨질 순간의 시절 인연이라 생각할 정도로 개인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각자 독립해서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을 치고 나서 점친 사람은 직장에서 그만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쓰러지는 곤란을 겪었다. 병원을 오가고 하는 며칠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을 친 사람은 이 점 괘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해야만 하였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직장에서 발령난 장소와 내 삶이 너무나 잘 맞지 않고 힘들기만 하니.....


화택규괘가 왜 어그러지고 대립하는 괘인가. 불은 위로 솟아오르고, 연못의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러니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분열하는 이미지가 눈에 보이듯 그려진다. 또 "중년 여자와 어린 소녀가 함께 살지만 각각 시집가는 곳이 달라서 그 뜻이 함께 가지 않는 것이 또한 분열의 뜻이다"(750쪽)라고 말한다.

 이 괘의 중심은 저 중년 여성에게 꽂혀 있다. 중년의 나이라고 할 때, 나의 모습도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보통 여성들이 가정이나 가족을 돌보다가 중년이되면 깨어나기 시작한다.  중년의 여성이 자기에게 눈을 뜨면, 그러면 당연히 가정이 깨어지고 일그러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깨어짐과 일그러짐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각자 자기의 살 길을 자기 힘으로 찾아가는 독립심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각자 자기 삶의 독립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5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분열은 작은 일에는 길하다.'고 하였다.

이거라도 다행이다. 분열의 때에 처해도 작은 일에는 길한 것이다. 작은 일(小事)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인생은 그리 별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작은 일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그 에너지가 흘러서 더 재미있는 일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특히나 시절의 운명이 잘 나갈 때는 모르지만, 이렇게 분열하고 대립하고 어그러질 때도 작은 일에 길한 운명을 즐길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이런 주역  경전을 읽는 것도 작은 일이다. 작지만 큰 일일 수 있으며, 어그러지고 대립하는 시절에는 몸을 낮추고 이런 주역 읽기라도 즐길 수 있다면, 분명 나름의 길한 에너지가 주변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에너지는 서로 공감을 일으켜서 무언가 밝은 에너지를 다시 몰고 올 것이다.


 "여자가 어릴 적 함께 살다가 장성하면 각각 시집갈 곳으로 가니, 그 뜻의 지향이 다르다. 분열이라고 말한 것은 본래 동일했기 때문이니, 동일하지 않다면 분열하지도 않는다."(751쪽)

 동일한 것은 다시 분열해서 각자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중년 여성에 해당하는 이괘와, 어린 소녀에 해당하는 태괘가 서로 분열해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규괘가 나왔을 때는 나를 돌아봐야 한다. 모두가 같은 곳을 지향할 때,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살다가, 나만의 길이 무엇인가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를. 이걸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분열의 때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찾고 나를 즐길 수가 있다.


6

 분열의 때에 대해서 아래 말을 우리는 제대로 새겨야 할 것이다.

 하늘과 땅은 분열되어 있지만 그 일은 동일하고,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나지만 그 뜻은 통하며, 만물은 다양하지만 그 일은 같은 종류이니, 분열의 때와 작용은 크도다! (睽之時用, 大矣哉!) 

 아무리 분열이 되더라도, 본래의 하나가 되는 그 지점을 봐야 하고, 그 에너지를 몸에서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만물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본래 같으므로, 세상이 크고 여러 생명체가 많아서, 차이가 나고 다양하지만, 성인은 그것을 동일화시킬 수 있으니, 분열의 때에 처하여, 분열을 화합하는 능력에 있어서 그 하는 일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크도다라고 했다.'(754쪽)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아야 하는 이 삶의 근본 에너지를 어떻게 삶에서 즐길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에서 첫 발령이 나서 모두가 낯설고 게다가 나하고는 너무나 어긋난 곳에 내가 던져진 것이다. 낯설고 엉뚱하고 힘든데, 이들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긋나면서도 작은 일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7

 그런데 이 점을 친 사람은 초구효가 동하였다.

초구효의 효사가 흥미롭다.


 초구효는 후회가 없어지니, 말을 잃어 쫒아가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온다.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만나면, 허물이 없다.


몸이 그렇게 안 좋고 고생을 했어도 이런 때일수록 더욱 마음을 편안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쉬어도 좋을 것이다. 규괘의 때라해도 사람과 단절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만날 사람은 만나서 풀어나가도 좋겠다. 그런 에너지가 내면에 있기에 이런 괘가 나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오히려 허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의 깊은 뜻을 잘 새겨야 할 것 같다.

분열의 때에 어떤 때에는 밉고 악한 사람이라 생각되더라도 만나야 할 때는 있는 것이다. 이게 쉽지 않다.

  정이천 선생은 여기서 "원한과 허물이 없다면 화합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피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원한과 허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도 내가 만든 나의 욕심이 만든 상이 아닐까. 나의 피해의식이 만든 상이 아닐까? 원한과 허물은 공격성에 속하는 감정인데, 이 공격성 또한 어찌보면 죽음 본능의 한 요소라 해도 좋을 것이다.

 원한을 가진 사람은 그걸 풀지 못하면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여 자기 원한에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한을 가진 사람 스스로가 자기를 해할 수도 있으니...... 이런 피해의식의 근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정말 억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않을테니.....이 험난한 세상에 이 말씀을 제대로 새긴다는 것 또한 보통 쉬운 일은 아닌다...... 하여튼 남이 아닌 나를 위해서라도 원한 감정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8.

 이 말도 들어두면 좋겠다. 초구효는 구사하고 관계가 있는데,

구사 효가 이렇다.


 구사효는 분열의 때에 외롭다. 훌륭한 남편을 만나 서로 믿음을 가지고 교제하니,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다.


 여기서 훌륭한 남편은 초구효를 말한다. 분열의 때에 자신의 내면이 양강하고 힘찬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그때 오히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규괘의 역설적인 의미는 모든 효가 다 어긋나 만나기 어렵지만, 마침내는 다 만나게 된다.

이 어긋나면서 결국은 만나게 되는 숨은 의미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한 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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