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느림 주역 읽기 모임(4.19)을 하고- 중택 태괘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19.04.20|조회수119 목록 댓글 0


 오늘은 세 사람이 주역점을 쳤다.

명퇴를 하는데, 어떤 마음 가짐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매우 절실한 마음으로 친 점에서는 중택태괘가 나왔다.

지금 몸의 에너지상태를 물었을 때는 풍수 환괘가 나오고,

시댁의 상황을 물었을 때는 지수 사괘가 나왔다.

이 괘들 가운데 중택태괘를 놓고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

 중택태괘는 기쁨의 괘이다. 어떤 기쁨인가. 존재는 모두가 기쁘게 살고 싶어한다. 기쁨을 즐기고 싶어한다. 이 기쁨이 나만의 독불장군식의 기쁨인가, 나 잘난 맛에 사는 기쁨인가? 아니면 타자와의 조화를 통해서 얻는 기쁨인가? 동양의 우주관에서는 나만의 독불장군식의 기쁨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기쁨은 기쁨이란 철학적 성찰에 끼어들지도 못하는 것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기쁨의 경지란 어떤 것인가? 이 중택 태괘는 아주 많은 성찰을 하게 한다. 기쁨의 본질에 대해서 이렇게 멋지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들도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

 처음 시작할 때는 조금 어려웠다. 너무나 어찌보면 당연한 당위적인 말이 나열되는 느낌이 들어서.

단전에서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보자.


 단전에서 말했다. 태는 기쁨이다. 강한 것이 중에 있고 유한 것이 밖으로 드러나, 기뻐하게 하되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로우니, 그래서 하늘을 따르고 사람들에게 호응한다. 기뻐하게 해서 백성들을 선도하면 백성들은 그 수고로움을 잊고, 기뻐하게 해서 어려운 일을 하게 하더라도 백성들은 그 죽음을 잊으니, 기쁘게 하는 것이 이렇게 커서, 백성들이 권면되는 구나!.


 기쁨의 괘가 가만히 보면 나만 기쁘고 내가 기쁜 것이 아니라, 남을 기쁘게 해서, 그 기쁨이 나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게 하라는 것이니, 이 말이 참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남은 기쁘지 않은데 나만 기뻐서는 이 기쁨의 괘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가 참 어려워서 더 읽어보았다.


3

 상전에서 말했다. 연결된 연못이 태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동지들과 강학하고 학습한다.

 이택은 두 연못이 서로 연결되어 붙어 있는 것이다. 두 연못이 서로 붙어 있어 교류하여 서로 적셔주니, 상호 영향을 미쳐서 서로 성장하고 보충하는 모습니다. (1137)


 중택태괘에서 기쁨이란, 연못이 서로 붙어 있는 이미지이다. 존재가 서로 붙어서 서로를 적셔주는 이미지인 것이다. 혼자의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 서로 붙어서 기쁨을 누리는 이미지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서로 붙어서 기쁨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 나만 잘해서도 안되고, 상대만 잘해서도 안되니.....


그럼 초구효부터 살펴보자.

 주역에서 기쁨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최소 여섯 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 여섯 가지의 경우의 수만 잘 이해를 하고 몸으로 살아볼 수만 있어도 대단한 경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구효는 조화하면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 길하다.


이 말에 대한 해석이 참 흥미롭다. 양양음 양양음 에서 초구효는 양효지만, 기쁨을 상징하는 태괘의 형체에 자리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연계되어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

 

이 말이 핵심이다. 살다보면 어떤 순간에는 아무도 호응할 사람이 없고, 같이 붙어서 연계될 사람이 없는 홀로 서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홀로 서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쁨의 때가 있다는 것이다.

 중택 태괘를 보면 아래에서 양양음, 양양음이다. 그러니 초구효 양과 구이효 양이 같이 붙어 있다. 양과 양이 붙어 있으니 서로 연계되지가 않는다. 양과 양이 부딪히니.... 또 구사 양하고도 응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오직 홀로 서게 되는 것이다.

 누가 손잡아 주지 않는데도 막힌 상태에서도 타자와 조화를 이루면서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경지일 것이다. 남과 부딪히지 않으면서도 홀로 온전히 선 사람의 경지라 할 수 있겠는데, 이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살다보면 이런 때가 온다. 아무도 나를 봐주지도 않고, 나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등돌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만 왕따 당해서 혼자 인것 같기도 하고...... 이런 연계할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다.

 명퇴를 해서, 삽십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설 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아마도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있어본 사람들은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굽실대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그냥 계급장을 띠면 보통 사람처럼 바라볼테니......

 이런 때에도 홀로 타인과 조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낮추고 조화하여 이치에 순종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되, 편벽되고 사사로움이 없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낮춘다는 이 말, 이치에 순종한다는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새겨야 한다.


 태괘는 아래로부터 양양음이니까, 음이 하나고 양이 둘이니 하나인 음이 주도권을 쥐는 여성성이 느껴지는 괘이다.  음이 맨 위에 있어, 아래에 품고 있는 두 양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 이 기쁘게 한 양들이 음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남을 기쁘게 해서 그 기쁨이 나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는 매우 조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4

 구이효의 해석 또한 어렵다.

 구이효는 믿음으로써 기쁘게 하는 것이니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구이효는 음유한 사람인 욕삼효를 받들어 가까이 관계하고 있으니, 음유한 사람은 소인이다. 그를 기쁘게 하면 당연히 후회가 있을 것이다.(1139쪽)


 이 말도 쉽지가 않다. 기쁨의 상태에 있을 때 어떤 경우는 자신은 아주 힘이 세고, 가진 것도 많고 삶의 중심에 서 있어서 아주 좋은데, 그런데 이 사람은 위의 상관이라 할 수 있는 욕삼효와 이웃하고 있다. 이 욕삼효는 늘 구이효에 다가와서 이런 저런 요구를 하는 것이다. 자기는 지금 힘들다고, 그러니 힘이 센 니가 나를 좀 기쁘게 해 달라고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이 힘이 센 구이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섣불이 이럴 때 욕삼효의 말을 듣고 응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떤 우쭐한 마음에, 섣불리 남을 기쁘게 해 준다고 하다가, 자신이 후회할 일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참 어렵다.


명퇴를 했을 때, 아마도 대개 남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돈도 조금 있겠다, 명퇴금도 받았겠다 하면 이런 사실을 알고, 주변의 힘든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양강한 명퇴자에게 접근하여 온갖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고, 온갖 유혹의 사업 제안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명퇴금은 자식이나 아니면 동료 사업자의 껌값처럼 사라진다고도 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구이효의 도움이 정작 상대가 홀로 설 수 있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테니.....


섣붇리 남을 즐겁게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강중한 자신이 자신의 본분을 잃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믿음으로써 기쁘게 한다는 것의 본질은, 마음 속에 믿음이 있다는 말이다. 이 진실함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중택 태괘에서 가장 본질은 결국은 일단 기쁜 경지에 다다르려면 최대한 홀로 서는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서는 기쁨의 경지를 즐길 수가 없다. 이것이 참 어렵다.

 타자와의 조화는 타자로 하여금 홀로 서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같이 즐기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이게 무얼까.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5

 육삼효는 와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 흉하다.

 양양음에서 세 번째 효가 음인데, 이 음은 와서 기쁘게 하니 흉하다고 하엿다. 여기서 온다는 말은 달리 보면 위에 있는 음이 아래에 있는 양을 찾아가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함부로 상대가 기뻐하기를 구하는 형상이다.


 살다보면 오히려 육삼효의 상태에 있을 때가 더 많지 않을까. 상태가 안 좋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그럴 때는 남을 탓하기도 한다.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내 친구가, 가족의 누군가가 무언가 잘못을 해서 그 상대 때문에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식으로. 그래서 자꾸만 한탄을 하게 되고, 남으로 하여금 기뻐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힘드니 니가 좀 더 기쁘게 살아서 나를 즐겁게 해 달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기쁘게 살 능력은 없으니 니가 기뻐하면서 그 기쁨이 나로 하여금 즐겁게 만들어달라는 것인데, 이것이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런 마음이 생긴다.

  이게 다 살아가는 삶의 현상이라 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내가 약한 상태에서 어떤 누군가가 기뻐해 주기를 바랄 때는 그 결과가 그리 좋지 않다는 말이다. 이 말 또한 이해가 쉽지는 않다.


 내가 상태가 안 좋을 때 관계하고 있는 사람도 상태가 안 좋을 수가 있다. 서로 영향을 주니. 그런데 그 상황의 반전을 내가 아니라 니가 좀 왜 기쁘게 반전시키지 못하느냐고 탓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럴  때가 자주 올 것이고, 이 때는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다 상태가 안 좋을 때 힘든 상황을 맞이하는데, 이때 주역 경전의 육삼효를 한번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와서, 아니 찾아가서 그로 하여금 니가 좀 기쁘께 해서 나를 함께 기쁘게 해 달라고 자꾸 요구한다면,아니면 유혹한다면 결국은 흉한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주역에서 흉은 훨씬 마이너스 방향으로 상황이 진전되는 것을 말한다.

 힘들 때 옆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에게 니가 좀 잘 해 보라고 탓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겠지만, 한번 더 호흡을 가다듬고 주역점이라도 쳐서 내가 홀로 설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최대한 들어다 봐야 할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남에게 자꾸 기쁨의 경지를 요구하고, 그 기쁨이 나를 통해 발현되게 해 달라는 부탁은 한 두번 연기는 좋지만, 계속 되기는 힘들 것이다.

 주역만큼 기쁨의 다양한 경우를 풀어낸 책도 드물 것이다.


6

 다시 구사효를 보자. 기쁨의 경지에 대한 또 다른 상태를 말한다.


 구사효는 헤아리면서 기쁘게 해서 편안하지 못한 것이니, 절도를 지켜서 미워하면 기쁜 일이 있다.


중택태괘는 양양음양양음 에서 네 번째 양을 말한다. 이 네 번째는 아래로는 음이고, 위로는 양의 사이에 끼어 있다.

위의 강중한 구오효인 양을 따르면 좋겠는데 자꾸만 아래 욕삼효에 마음이 끌린다. 이 나약한 육삼효는 끊임없이 구사효와 관계하면서 관심을 끌지도 모른다.

 개질 유희(介疾 有喜) 라고 할 때, 이 개는 '나누어진 경계를 말한다. 두 경계에 끼어서 '단호하게 정도를 지켜서 사악한 자를 미워하면서 멀리하면 기쁜 일이 있다고 할 수가 있겠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힘이 있을 때는 무언가 호흡이 맞는 짝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상대를 기쁘게 한다는 것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헤아리다 보니 골치가 아프고,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절도를 지켜서 멀리하고 미워하면 기쁜 일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참 어려울 것이다. 절도있게 미워한다는 말이, 중심을 지켜서 무언가 남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어떤 깊은 통찰, 그리고 아래 음과 함께 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위의 기쁜 상태와 관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구사효는 아직 '득실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자신이 따르는 것에 달려 있을 뿐이다'고 하였다.

 점을 친 사람은 구이효와 구사효가 동했다. 이 구사효의 경지 또한 제대로 살펴야 할 것이다.

 구이효는 섣불리 누군가를 기쁘게 하려고 하다 낭패를 볼 수 있을테고, 구사효는 절도를 지키면서 남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미워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병통을 막을 수가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7

 구오효는 깍으려는 것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다


 이 말도 어렵다. 여기서 부우박(孚于剝), 깍으려는 것을 믿는다는 말도 어렵다. 여기서 박(剝)은 양을 소멸시키려는 것을 말한다. 양양음양양음 에서, 다섯 번째 양은 여섯 번째 음이 와서 양의 기운을 깍아먹고 벗겨먹고 하려 하는 것이다. 이 기운을 믿으면 위태롭다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오히려 조심해야 할 것이다. 기쁨의 경지는 누군가가 와서 나를 기쁘게 하려 할 때 조심해야 한다. 내가 가서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은 좋으니, 누군가 나에게 와서 기쁘게 하려 한다면, 그 기쁨은 나의 중심을 키우는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쁨은 나의 중심을 키우는 독불장군 식의 방향이 아니라, 남의 중심을 키우면서 나도 함께 즐기는 조화와 나눔의 경지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는 괘이다.


 명퇴의 길에 들어서려는 사람에게 기쁨의 상태란 무엇일까. 삼십년을 넘게 산 사람에게 기쁨이란, 또 다시 나의 중심만이 아니라, 이제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남을 기쁘게 하면서 나도 덩달아 즐기는 삶을 살라 하는데, 이 삶은 또한 내가 홀로 서지 못한다면 기쁨의 경지가 훼손되어서 흉한 유혹에 사로잡힐 수도 있으니.....

 이게 무슨 경지를 말하는 것인지, 참 쉽지가 않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