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사람이 점을 치고, 그 점을 놓고 집중적인 토론을 하였다.
학교 관리자로 학교 시스템을 새롭게 세워가고 있는데, 곧 이 학교를 떠나게 된다. 떠나게 되기까지
어떻게 지금까지 해 온 시스템을 잘 정비하고 이어갈 수 있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놓고 친 주역점의 결과는 풍산 점괘가 나왔다. 이 점괘를 놓고 읽어본다.
1
점괘의 의미는 점차적인 진입이다.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전체 질문에 대한 에너지는 어떻게든 점차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의 때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저런 우여곡절이 있을지 몰라도, 점차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뭔가를 움직여 가야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의미에도, 여러가지 다양한 철학적인 변수가 들어있다. 주역에서 여섯개의 효는 달리 말하면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는 여섯 가지의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변수를 모두 제대로 파악하고 몸으로 인식하여 현실에 직면한다면 결코 치명적인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점괘에 대해서 서괘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멈춤이란 그침이다. 어떤 사물도 끝까지 멈춰 있을 수만은 없으므로, 점진적인 진입을 상징하는 점괘로 받았다. 점이란 점차적인 진입이다."(1046쪽)
-멈추었으니 이제는 나아가는 때이다. 멈춤이 있었으니 나아가는 반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의 에너지는 늘 돌고 돈다. 멈추면 다시 움직이는 때가 오고, 지나치게 움직이다 보면 잠시 멈추어 쉬어야 하는 때도 오는 것이다.
괘의 모습은 나무를 상징하는 손괘가 위에 있고 산을 상징하는 간괘가 아래에 있다. 산 위에 나무가 있는 모습이다. 나무가 높이 서 있는 것은 산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그 높은 것이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높음이 바탕을 가진 것은 그 나아감이 순서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므로, 점차적인 진입니다. (1046쪽)
- 풍산 점괘에서 풍은 바람만이 아니라 나무를 상징하기도 한다. 산 위에 나무가 서 있는 그림은 보기에도 좋다.나무가 점차적으로 자라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저 든든한 나무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이 말이 어렵다.
점차적인 진입은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길하니, 이로움은 올바름을 지키는 것에 있다. (1047쪽)
왜 이렇게 점차적으로 나가는 것을 시집가는 것에 비유했나 했더니 전통적인 관계를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옛날 사람들에게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육례를 갖추어 성혼하는 과정 그 자체를 비유한다는 것이다.
육례가 무엇인지 참고삼아 옮겨본다.
"혼구(婚구)는 중매를 세워 양가에 혼담이 오가며 혼인을 성사시키는 것으로 한 쪽에서 청혼하며 한쪽에서 허혼을 합니다. 납채(納采)는 양가 합의하에 남자측에서 신랑될 사람의 생년월시를 적은 사주단자를 보내고 혼인날을 택일해 보내달라고 청하는 것이고, 납기(納期)는 여자측에서 사주를 방은 뒤에 혼인 날짜를 택일하여 신랑집에 보내는 것입니다. 납폐(納幣)는 양가에서 예물을 교환하는 것인데 주로 혼인날이 가까워오면 신랑측에서 신부집으로 폐백을 보내는데 보통 함을 보내는 것이 대표적이지요. 대례(大禮)는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부부가 되는 의식을 행하는 것을 말하고, 우귀(于歸)는 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신행이라고도 합니다."(대산주역강의2.407~408쪽)
2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 하히나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롭다(女歸吉, 利貞)는 부분에서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롭다'는 利貞의 의미가 여러가지로 쓰인다고 한다.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한다.
1)어떤 경우는 올바르지 못하다고 의심하여 경계해주는 경우도 있고,
2)어떤 경우는 어떤 일이건 반드시 올바르게 해야만 마땅함을 얻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3)이롭게 되는 이유가 올바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1048쪽)
1번의 경우는 산택손괘, 즉 덜어주는 때에 해당하는 말이다. 특히 구이효를 말하는데, 매우 흥미롭다. 산택손괘에서 구이효는 양으로 강직한 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강직한 사람이 덜어주는 때를 맞이해서 자신이 포함된 괘의 에너지는 기쁨을 뜻하는 택괘이다.
그러니까 강직한 사람이 남에게 덜어준다고 자꾸만 유순하게 상대를 기쁘게만 해서는, 이는 단지 덜어내는 행위에 불과할 뿐, 실제로 자신을 덜어내 윗사람을 증진시키는 것까지는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때에 제대로 올바름을 지키지 못하고 덜어주는 행위만 한다면, 그저 유순하게 상대를 기쁘게만 한다고 덜어주려 한다면, 결과적으로 덜어서 증진시키는 효과가 없다는 말인데, 이 말이 쉽지 않다. 덜어주어야 할 때 안 덜어주고 올바름을 지켜야 하는데, 이런 때는 인색하다는 말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힘의 균형과 시절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도 특히 이렇지 않을까. 무조건 덜어주는 것이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경계하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2번의 경우는 산천 대축괘의 경우이다. 대축괘는 기르고 축적하는 괘이다. 기르고 축적을 하는데, 당연히 어떤 일이건 올바르게 해야만 마땅함을 얻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경고를 떠나서 올바름이 더 먼저이다. 일종의 대의 같은 것이 있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기르고 축적하는 걸 기본으로 내세우는데, 그 바탕인 올바름이 없으면, 거기에 세워진 축적은 대단히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다음 3번의 예가 풍산 점괘이다. 점차적인 과정의 올바름이 있기 때문에 이롭다는 것이다.
이건 이렇고,
하여튼 질문한 사람에게 시스템을 잘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데는 그 결과가 이로우려면 어떤 형태로든 올바른 순서를 제대로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순서를 제대로 점진적으로 밟지 않고서는, 순서를 무시하고 과정을 무시하고 혼자만 치고 나간다고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지 말년으로 가면 레임덕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공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올바른 순서를 지켜서 점진적으로 나갈 때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점진적으로 나가는 변수에는 여섯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는데
먼저 초육효부터 보자.
풍산점괘는 음양의 배치가 아래로부터 음음양 음양양 의 모습이다.
초육효는 기러기가 물가에 점차로 나아가는 것이니, 소자는 위태롭게 여겨 말이 있으나 허물이 없다.
기러기에 비유를 하였다. 점진적으로 순서를 지켜나가는 데 기러기의 상징이 가장 맞는가 보다. 새가 물위에서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데는 일단 물가로 접근하는 단계부터 시작할 것이다.
기러기는 "오는 데에 때가 있고 무리를 짓는 데에 질서가 있으니 그 때와 순서를 잃지 않는 것이 곧 점진적인 진입"(1053)이라고 한다. 점차적으로 진입을 할 때는 순서를 잃지 말아야 한다.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첫번째 맨 아래 음효가 시초에 위치에 있는 것은 매우 낮은 것이고 음이라는 자질은 매우 약한 것인데, 위로 호응하여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러한 조건으로써 나아간다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보면 근심스런 일이다. (1053쪽)
-그럴 것이다. 점진적으로 나가야 하는 때에, 자기가 가진 실력도 부족하고 맨 아래 자리에 처해 있다. 이러니 나아가긴 해야 겠고, 위로는 층층시야 윗 사람들이 있고 어디 쉽겠는가. 거기다 무슨 순서도 제대로 지키라고 하니 이게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에도 쉬지 말고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런 때가 온다.
무언가 힘든 때는 다 접고 그냥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점괘를 쳤을 때 이런 나아가라는 괘가 나오면 또 쉬지는 말고 뭐라도 조금이라도 하면서 나가야 한다. 힘들고 근심스러울 때 나아가라고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런 괘가 또 없던 힘도 내게 하니 힘을 내서 앞으로 나가는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정이천 선생의 이 말도 귀담아 들어보면 좋겠다.
"아랫자리에 있는 것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유연하게 행하는 것이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며, 호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점차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서, 이런 조건이 오히려 마땅한 의리에서 보자면 본래 허물이 없다는 점을 소인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1053쪽)
아랫자리를 오히려 걸림돌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4
다음에 점진적으로 나아갈 때 두 번째 변수가 있다.
육이효를 보자.
육이효는 기러기가 반석에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서 음식을 먹는 것이 즐겁고 즐거우니 길하다.
두 번째 음은 아랫괘에서 가운데 중을 차지한다. 두 번째 자리에 음이 왔으니 자리도 좋고 가운데도 차지하였다. 그런데 이런 음이 저 위 상괘의 다섯번째 양과도 호응을 한다. 다섯번째 강직하고 실력있는 군주의 도움까지 받는 것이다. 그러니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때 이 두번째 음의 순간, 음의 때는 아주 길하고 주변 여건이 좋다. 이런 때도 있을 것이다.
모든 조건이 다 잘 갖추어져 있고 주변에 돕는 사람도 많아서 무슨 일을 해도 좋을 것 같은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때라도 물론 점진적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기만 하다면 아주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 그저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길하게 놀기만 해도 될 것이다. 논다는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면 좋겠다. 조급해 하지 말고, 헛되이 그저 배만 부르게 먹자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가야 하는 때이니....
어떤 사람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는 사람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도우려고 하는데, 그걸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5
그런데 구삼효로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점진적으로 나가는 때에서 가장 위험하고 힘든 변수이다.
구삼효는 기러기가 육지로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남자는 가면 돌아오지 않고 부인은 잉태하더라도 기르지 못하며 흉하니, 도적을 막는 것이 이롭다.
아, 이 무슨 흉한 말인가?
이런 때에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
주역을 하는 우리들은 이런 부분에 해석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점진적으로 나가야 하는 떼, 왜 구삼효를 저렇게 흉하게 보았을까. 아주 나이브하게 남자와 여자로 비유를 한 아래 괘 해석을 옮겨보자.
세 번재 양효인 구삼효는 여섯 번째 양효인 상구효와 응한다. 그런데 양과 양이 서로 응하니 이건 서로 맞지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위를 보면 바로 위에 네 번째 이웃한 자리에 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래서 구삼효 남편은 상구효와 응하지를 못하니 눈이 바로 위에 있는 여자에 해당하는 음에 정신이 팔려서 속된 말로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 양인 구삼효는 윗 자리 지위도 높은 음이 아래를 보고 잘 해주니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가 있을 것이다.
구삼이 만나지 말아야할 육사와 만나는 것이다.
"구삼의 지아비가 가지 말아야 할 육사한테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가는 것이 되어 다시는 낯을 들고 돌아오지 못하며(夫征不復), 육사 여자가 구삼 남자와 만나지 말아야 할 관계인데 불륜의 관계로 만나서 임신을 했다고 할 적에 육사가 임신한 얘기는 기르지 못해서(婦孕不育) 모두 흉한 것입니다.
주역에서는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을 도적이라고 하는데, 가만히 있는 나에게 와서 해롭게 하는 것도 도적이지만 나 스스로 해로움을 자초하는 짓을 하는 것도 도적입니다. 구삼이 육사와 만나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적을 만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삼이 만나지 말아야 할 육사와 만나서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도적을 불러들이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즉 처음부터 구삼은 육사를 만나지 말아야 하고 육사는 구삼과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대산주역강의2. 414~415쪽)
- 일단 저 구삼효의 의미에 대해서는 머리로는 왜 저런 말이 붙었는지 이해는 간다. 문제는 저런 경우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가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난다는 저 행위에는 불륜이고 뭐고의 개념 자체를 떠나서 일단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음양이 서로 만나는 것에 죄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저들의 음양의 만남이 일단 강압적인 어떤 폭력의 관계가 아니냐가 문제일 것이다. 무언가 점진적으로 나가야 하는 때에는,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저 비유에 대한 깊은 의미를 해석할 필요는 있다. 멀리 자기를 도와줄 양은 꼭대기에 앉아 있고 자기하고 맞지도 않는다. 당장 눈 앞의 부드러운 여성으로 상징되는 존재가 자기와 맞는데, 그러나 이런 부드러운 저 존재가 오히려 점진적으로 나가는데 길을 막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무얼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자기를 끌고 가는 저 여자의 존재는 무엇일까. 양의 기운을 가진 남성성으로 상징되는 존재가 여성성으로 상징되는 존재와 만나서 오히려 아무런 잉태도 못하고 마는 경우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긴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이기적으로 상대를 필요로 해서 만난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니까 만나는 것이다. 남자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니까 여자를 만나는 것인데, 무엇이든지 점진적으로 나가야 하는 때라고 할 때는 역시 나에게 부드럽게만 대해주는 상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한번 정도는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도 싶다.
다 존재가 만날 때는 시절의 운이 있는 것이다. 타이밍이 있다. 점진적으로 나가야 하는 때에 어떤 남자가 아주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잘 만나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때에 어떤 운명으로 운명이 얽히여 만남을 해서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인데, 하여튼 저 시절운에 대해서 잘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여자를 만나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구삼효는 점진적으로 나가야 하는 때에는 자기를 돌아보란 소리이다.
점을 친 사람은 학교를 돌아볼 때 일단 내가 오바하지 않게 나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나에게 부드럽게 하는 그 어떤 존재들에 대해서.... 나에게 아첨하는 사람들?. 도대체 아첨이란 건 또 무엇인지.... 이것도 어렵긴 한데.....
6
육사효의 변수는 그럼 어떤가?
점진적으로 나가는데 또 하나의 때가 있다.
육사효는 기러기가 나무로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혹 그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다.
점진적으로 나가는 때는 기러기 상징을 가져왔다.
지금 육사효의 처지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위 아래로 양효가 포진해 있고,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다. 아래 기러기 상징의 말이 흥미롭다.
"기러기는 발가락이 연결되어 나뭇가지를 잡지 못하므로 나뭇가지에 깃들지 않는다. 각(桷)은 가로로 평평하게 뻗은 나뭇가지다. 오직 평평한 가지의 위라야 기러기는 안정되게 거처할 수 있다. 육사효의 처지는 본래 위태롭지만, 스스로 안정되고 편안한 방도를 얻ㅇ면 허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기러기가 나무에서는 본래 불안했지만 평평한 가지를 얻어서 처하면 편안해지는 것과 같다. 육사효는 올바른 위치에 자리하고 공손하지, 마땅히 허물이 없는 자다. 하지만 반드시 득실로써 말한 것은 득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의리를 밝히려 한 것이다."(1058~1059쪽)
저렇게 편안하게 거처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때가 있다. 그곳을 찾아내는 눈이 필요하다. 저런 장소를 찾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을 상당히 비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7
다섯 번째 변수인 구오효를 보자.
구오효는 기러기가 높은 언덕에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부인이 3년 동안 잉태하지 못하나, 끝내는 이기지 못하여 길하다.
왜 저런 말을 하는가? 다섯번째 구오효의 배필은 두 번재 음이다. 그런데 다섯 번째 양인 남자가 아래 음인 여자를 찾아가는데, 그 사이에 낀 네번째 여자인 음과, 세 번째 양인 남자가 방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3년 동안 잉태를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끝내는 구삼과 육사가 이기지 못하여 둘이 만나게 되고 길하게 된다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무언가 순서를 밟아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일도 그렇고, 풍산 점괘는 사람을 만나는 의미에 대해서 많은 철학을 준다.
어떤 사람을 만나 점진적으로 나가야 하는 때 이런 여러가지 경우가 있으니 어떻게 나와 맞는 사람과 점진적으로 사랑을 나눌 수가 있을까? 쉬운 일이 아니다.
끝으로 상구효는 기러기가 허공으로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그 깃털이 모범이 될 만하여, 길하다.
점을 친 사람은 이 상구효가 동하였다. 더 말이 필요없다. 길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있었다.
점을 쳤을 때,도대체 어떤 효사에 더 끌려야 하는가. 어떤 효사를 더 내것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물론 다 중요하지만
1) 일단은 내가 끌리고 꽂히는 효사에 나를 투사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
2) 동하는 효사는 나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이 동하는 괘는 필히 살펴보고
3) 그 괘에서 의미가 있는 비중있는 효사의 자리가 있으니 그 효사도 살펴봐야 한다.
결국 여섯 개의 효를 다 살펴봐야 하는데 점을 친 사람이 물어본 문제에 따라서
어느 효가 더 비중이 있고 나에게 끌리는 것이 있는 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8
우리는 이런 얘기도 하였다.
주역을 혼자 읽는 것과 같이 읽는 건 다르다.
예를 들어서 그룹으로 꿈투사를 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의 질문을 던져 놓고
그 나온 점괘에 대해서
그룹으로 같이 주역의 말씀을 읽으며 투사를 해 주니 훨씬 주역의 말씀도 잘 읽히고
점을 친 사람의 인생도 더 깊이있게 수 많은 질문을 공감하면서 얘기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주역점이라고 해서 한 사람이 남의 운명을 예견하고 점쳐주는 것이 아니고
그룹으로 같이 읽고 토론하고 자기 인생을 내 놓고 투사를 해 주면 어떨까.
이래서 그룹으로 공부하는 우리들이 조금더 공부를 한 다음에
주역점 해석을 하는 주역 카페라도 차려서
다 함께 그때 그때 한 사람의 질문을 놓고 그룹 꿈 투사하듯이 한번 놀아보자는 말도 하였다.
못할 것도 없다.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공부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다보면 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점진적인 진입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