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읽기 모임 8회(5.27) 후기 1- 지산 겸괘, 겸손의 철학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19.05.30|조회수17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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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여러 명이 모여서 주역 점을 쳤다.

이런 점괘가 나왔다.

 알바 신청을 해 놓았는데, 이 신청이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수천수괘가

 가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지산 겸괘가

 아들 몸의 에너지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화천대유괘가

마무리 하는 원고에 대해서는 중풍 손괘가

지금 남은 해의 운의 방향에 대해서는 화택규괘가

활기찬 삶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는 산지박괘가

수업하는 아이들 과목을 더 늘려야 하는 가에 대한 물음에는 택산 함괘가 나왔다.


 이 질문을 놓고 먼저 중점적으로 읽어본 괘는 지산 겸괘이다.


가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가족이라고 하는 공동체도 개인의 욕망이 억압되는 곳이라면 결국에는 행복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보통 부모를 정점으로해서 가족의 형태가 유지되다가, 부모가 부재하기 시작하면 형제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 아무리 형제를 도우려 해도, 새로 형성된 가족들의 관계에서 각자의 이권이 개입되기 때문에, 형제라고 해도 형제를 도울 수 없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각자의 길을 그야말로 무소의 뿔처럼 가는 수 밖에 없다.

 재산이 얽히는 문제로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거나 재산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이미 자식의 명의로 된 재산이라면 그 재산에 대해서는 부모라도 잊어야 할 것이다. 이미 주었으면 그걸로 끝이다. 사랑은 주어 버리는 것이지, 다시 받을 것을 예상하면 점점 꼬이듯이. 그러나 이것이 또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있으니.

 하여튼 가족의 문제를 두고 치는 점에서는 개별적인 독립과, 가족이라고 하는 공동체의 유지를 두고 늘 줄타기 감정이 오가는데, 이 감정을 어떻게 잘 처리하면서 각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상대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족이라는 허명을 유지해 갈 것인가? 자기 욕망의 주체로 살기를 요구하는 세상에, 이런 문제가 어찌보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문제를 두고 친 점에서 지산 겸괘가 나왔다. 괘의 음양의 배치는 아래로부터 음음양 음음음이다.

 지산 겸괘는 겸손을 상징하는 괘이다. 겸손한 때를 지금 맞이한 것이다. 겸손의 때란 언제 오는 것인가?

 서괘전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가진 것이 풍족한 자는 가득 차서는 안되므로, 겸손을 뜻하는 겸괘로 받았다"(345쪽)

 이 앞 괘가 화천대유괘이다. 풍족해지면 허영과 오만에 이르기 쉬우니, 이래서는 안되기 때문에 겸괘로 받았다는 것이다.

 겸손이란 자신이 덕이 있으면서도 그 덕에 대한 인정과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직 군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겸손은 힘들다는 노래도 있듯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언가 크게 가진 재산이 있을 때, 이때 허물이 생기는 것이다.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그걸 잘 관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화천대유 괘 다음에 지산 겸괘로 받았다는 말이 참 기가 막힐 정도로 무언가 아하가 온다.


  군자는 자신을 낮추고 감출수록 오히려 더욱 빛이 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무언가 온전한 내면의 빛이 있어서, 그 빛이 흘러 나오는 경지를 말하는데, 이게 어디 쉽겠는가?  군자는 스스로 온전하니 스스로 끝마침이 있는 것이다. 사실 점을 쳤을 때 군자가 나오는 괘가 나오면 아주 힘든 걸 상징한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군자의 삶을 살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산 겸괘, 즉 군자의 삶에 비유하는 괘의 말씀이 나오면 점을 친 사람은 더욱 나를 돌아봐야 한다.


 어찌되었든 동양의 우주관에서 가득차는 건 좋은 것이 아니다. 기운이 지나친 것이다. 이럴 때는 귀신이 가득 찬 것을 해쳐서 겸손한 쪽에 복을 준다. 기운을 덜어내 주는 것이다. 겸손한 자는 차고 넘치지 않는다. 이건 가만히 보면 사람의 도(人道)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도는 가득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人道, 惡盈而好謙)


 상전에서 하는 아래 말도 귀담아 들어보면 좋겠다.


 상전에서 말했다. 땅 속에 산이 있는 것이 겸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많은 것을 취하여 적은 것에 더해주며, 사물을 저울질하여 고르게 분배를 시행한다. 349쪽


 겸손한 자는 자신이 가득차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덜어 주는 것이다. 사물을 잘 저울질 하여 고르게 분배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겸손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런 괘가 나오면 무언가 덜어낼 것이 없나 생각해보고, 무언가 가득차 오르는 것이 없나 생각해 봐야 한다.


 점을 친 사람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지산 겸괘가 나왔다. 겸손의 때에 가족의 의미는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가.

6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다.

 지산겸괘의 효의 순서는 음음양음음음이다.


 먼저 초육효를 보자.

 초육효는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니 큰 강을 건너도 길하다.

 보통 사람은 겸손하고 겸손하면 이것이 지나치게 겸손하여 안 좋게 비출 수도 있는데, 군자의 때에는 다르다.

겸손하고 겸손한 겸겸군자의 덕은 지극한 평온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다. 살다 보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고 또 겸손한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실제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하여튼 어딘가 있을 것이다.


 점을 친 사람은 이 첫 효가 동하였다. 그러니 더욱 이 첫 효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겸겸 군자의 길이 무엇인가? 사람은 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이익이 되는 방향이 과연 눈앞의 이익이냐, 좀더 스케일 크게 생각해서 나중에 나에게 더 크게 돌아오는 이익이냐의 판단일 뿐이다. 이 판단은 또한 당장은 아무도 내릴 수가 없다. 각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욕망의 차이를 인정하는 수 밖에.

 땅 속에 산이 들어 있는데, 이 산의 첫 효가 동해서 불로 변한다면, 땅 속에서 불이 숨어 들어있는 경우가 된다. 이 불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 갇혀 있는 밝은 문명의 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불이 자신에게 조금 더 세상에 대한 깊은 사유의 씨앗이 되고, 문명의 씨앗이되고, 밝음의 씨앗이 되는 불로 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깊은 사유가 필요한 싯점이다. 겸겸 군자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하여튼 겸손의 때에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서 겸손하고 겸손한 사람이 취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넘어가자.


2

자, 이번에 두 번째 경우의 수이다.

겸손한 모습도 조금 모습이 다르다.

 

육이효는 소리를 내는 겸손이니, 올바르고 길하다. (鳴謙, 貞吉)

 소리 내는 겸손은 또 무언가? 명겸이란 말이 참 상징적이다.

"겸손한 덕이 마음에 쌓인 것이다. 겸손한 덕이 마음 속에 충만하게 쌓이니 겉으로 발현되어 목소리와 안색에 드러나므로, 소리를 내는 겸손이라고 했다." 352쪽

 정이천의 이런 해석에 더해서 왕필은 명겸을, 명성이 밖으로 전해졌다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이런 의미도 좋다.

그러나 하여튼 명성이 밖으로 전해진다는 건, 무언가 드러나 숨어 있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군자의 모습도, 그냥 초야에 묻히듯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저 사람은 역시 군자야' 하고 군자의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 명성으로 알려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알려지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명성으로 드러난다는 것, 이것 또한 매우 힘든 일이다. 인간 존재가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살려고 하는 욕심이 있고 욕망이 있는데, 이 욕망이 늘 중용의 도를 향해 가면 좋겠지만 이게 어디 쉬운가. 나를 비우고 나누어야 하는데 이게 어디 쉬운가?

가족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스케일을 더 크게 잡는다면 가족의 범위를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도 중요하고, 군자 정도의 스케일이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어찌보면 가족의 범주로 포용할 정도의 에너지도 큰 사람일테니, 쉽지가 않은 것이다.

 지산 겸괘는 짜잔하게 해석하면 안된다. 스케일을 아주 크게 봐야 한다. 우주적인 균형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때가 그렇다는 것이다.

 

3

 이번에는 세 변째 겸손의 모습이다.

구삼효는 공로가 있는데도 겸손한 사람이니, 군자가 끝마침을 이루어서, 길하다.

 

 공을 이루었는데도 그 공을 이룬 자리에 머물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많은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 허물이 아닌 공을 이룬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대개는 오히려 허물을 만들어 내는데, 공을 이룬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나눔의 의미가 상당히 클 것이다. 덜어내는 쪽으로 작동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꽉 차서 그걸 덜어내는 데 그 덜어내는 방향이 공을 이루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그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눈을 좀 크게 떠야 할 것이다. 이게 무얼까? 그러고 나서도 겸손하라고 하는 것이다.


4

네 번째 겸손의 모습은 "두루 겸손을 베푸는 데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경우이다.

네 번째 음효는 위로는 다섯번째 군주를 모시고, 아래는 공을 이룬 세 번째 양강한 양에게 자신을 낮추고 양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위로 아래로 두루 겸손을 베풀어야 하니, 이것이 어찌 쉽겠는가?

 

 아, 저 두려 겸손의 경지가  또한 쉽지가 않다. 가족의 의미를 물었는데, 자꾸만 겸손을 베풀고, 주위 사람들에게 두루 겸손해지라고 하니, 이것 또한 힘든 일이다. 이 네 번째의 경우는 군주의 밑 자리이니 권력이나 힘도 꽤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위를 보면 군주가 있고, 아래를 보면 아주 막강한 공을 이룬 강한자가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런 때 가운데 끼어 있는 육사 음효의 삶은 두루 자신을 비우고 양보를 하라는 것이다. 자신은 어떤 통로가 되라는 말일 것이다. 내가 통로가 되어서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매개항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아, 가족에게 점을 친 사람은 어떤 통로가 되라는 말인가? 도대체 가족이란 개념은 무엇인지? 만약에 점을 친 사람이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홀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족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가족을 부양하는 희생의 자리에 서는 경우도 많다. 가족을 위해서 평생을 봉사하다가, 자신의 행복은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테니 지산 겸괘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방향으로 해석을 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쉽지 않은 일이다.

점을 친 본인이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하여튼 지금 무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허물없이 잘 정리해 가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어떤 질문을 저 괘는 분명 던지는 것 같다.


5

 그 다음에 다섯번째 겸손의 경우이다. 육오효는 부유하지 않아도 이웃을 얻으나,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이로우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357쪽


 보통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 쪽으로 모인다. 주역도 이걸 제대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부유함이란 군중이 모이는 것이니, 오직 재물이 사람을 모을 수가 있다. 그러나 육오효는 존귀한 군주의 지위로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아랫사람을 대하여 군중이 모여드니, 부유하지 않아도 이웃들을 가질 수 있다"(357쪽)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런 군주의 자리는 "오로지 겸손과 유순함을 숭상할 수 만은 없으니 반드시 위엄과 무력으로 상호 조절해야만 한다. 그런 뒤에야 세상을 품고 복종시킬  수 있으므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어려운 말이다.

 정치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저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6

 마지막 여섯번째 겸손의 경우를 보자.


 상육효는 소리를 내는 겸손이니, 군대를 출동하여 읍극을 징벌하는 것이 이롭다.


 육이효에서도 소리내는 겸손이 나왔다. 상육도 같은 겸손의 수준인데, 하나가 다르다. 군대를 출동하여 읍극을 징벌하라고 하는데, 여기서 읍극이란 자신의 '사적인 소유의 영역'을 말한단다. '사사로운 것을 스스로 다스린다'는 의미라고 한다. 359쪽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았을 때, 가족과의 자잔한 갈등 속에 있을 때, 지산 겸괘가 나왔다면, 어떤 메시지를 이 괘는 전하는 것일까? 무언가 스케일을 조금 크게 잡아서, 가진 것을 나누고 주고 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군주는 강온의 경계를 넘나들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강하게 나올 때는 물론 나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경계를 말한다. 눈 앞의 이익이 아닌, 조금 더 큰 방향으로의 사유의 전환도 필요할 것이다. 가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의 의미는, 가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하고 물은 이 질문에 대해서 주역점은 지산 겸괘를 내 놓았다. 겸괘와 마주치게 한 것이다.

겸괘와 마주쳐서 많은 사유를 해 보기 바란다.


일단 지산 겸괘에 대한 이야기만 여기까지 해 보자. 나머지 괘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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