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읽기 모임(5.27) 8회 후기 4- 산지 박괘, 큰 열매는 먹히지 않는다.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19.06.20|조회수172 목록 댓글 0


활기찬 삶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는 산지박괘가 나왔는데, 이 괘가 참 쉽지가 않다. 1,2,3 효가 동하였다.

 매우 깊은 철학을 요구하는 괘이다. 박괘의 의미에 대해서 일단 아래 말을 들어보자.


 박剝 괘에 대해서 <서괘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비란 꾸미는 것이니, 어떤 것이든 꾸민 뒤에 형통하게 되면 꾸민 것의 효과는 다하므로, 박괘로 받았다." 사물은 꾸미고 장식하면 매우 형통하게 되지만, 형통함이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반대로 전환되므로, 꾸미는 것이 끝나면 꾸밈이 퇴색되어 없어지니 소멸이다. 괘의 모습은 다섯개의 음효와 하나의 양효로 이루어졌는데, 음이 아래에서부터 생겨나 점차로 자라서 극성한 형세로 발전하여 여러 음이 양을 없애버리므로 소멸이다. 두 괘의 형체로 말하면 간괘가 상징하는 산이 곤괘가 상징하는 땅에 붙어 있다. 산은 원래 땅 위에 솟아 있는 것인데, 오히려 땅에 붙어 있으니, 산이 무너져 내린 모습이다.(488쪽)


- 주역을 해설하는 사람들이 서괘전을 앞에 두고 설명하는 이유도 무언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운과 에너지의 흐름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박괘라고 하는 괘의 에너지, 우주의 에너지는 어떤 흐름에서 어떤 흐름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인지를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박괘 앞은 산화 비괘(22)이고, 박괘(23) 다음은 지뢰복괘(24)이다. 한참 꾸민 다음에 꾸밈이 다해서 소멸로 갔다가, 이 시기를 거치면 다시 회복하는 기운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괘를 뽑은 사람은 지금 자신 삶의 에너지가 꾸밈에서 소멸에서 다시 회복으로 가는 우주의 에너지 중심에 있다는 상상력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좋고 나쁜 선악은 없다. 에너지의 흐름일 뿐이다. 에너지의 흐름을 파도처럼 타는 삶의 지혜와 놀이 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산지박괘의 상상력은 무언가가 소멸해가는, 깍아내리는 에너지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아래로부터 음음음음음양이다.

음이 다섯개이고, 맨 위에 까치밥처럼 양이 하나 달랑 붙어 있다. 계절로치면 더운 여름에서 점점 음이 기세를 부리는 가을로 접어들어 겨울 쪽으로 가는 것이다.

 

 단전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자.


 때에 따라서 적절하게 멈추는 것은 박괘의 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군자가 자라남과 줄어듦, 가득 참과 텅 빔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 대해서 정이천 선생은 "이치에는 줄어들어 없어지는 경우도, 번성하여 자라나는 경우도, 가득 차는 경우도 있고, 텅 비는 경우도 있으니, 그것에 순행하면 길하고, 그것에 역행하면 흉하다. 군자가 때를 따라서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도록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바로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490쪽)


- 하늘 에너지의 길, 인간 삶의 길도 다 그렇다. 가득 차기도 하고 텅 비기도 한다. 이 점을 친 사람은 활기찬 삶을 추구하고 싶다고 하였고, 점을 쳤다. 그런데 이 괘가 나왔다. 활기찬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을 가진 사람에게 깍아내리고 텅 비고 하는 삶의 과정에 직면하게 하였으니 이것이야 말로 매우 역설적인 괘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번 이 점을 친 사람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활기찬 삶이란 그 어떤 과정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조건이 좋을 때는 활기차게 살고, 조건이 안 좋을 때는 우울하게 산다면, 이건 환경에 따라서 일희 일비하는 삶이 되고 말 것이다.

 진짜 실력이 있고, 진짜 주역 공부룰 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산지 박괘와 같은 에너지가 도는 시대에, 삶의 순간에도 활기차게 살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평상심을 기르고, 오히려 이러한 때에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주어진 삶의 순간을 파도타듯 넘나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산지박괘의 때에는 당연히 "깍아내리는 때이니 함부로 나아가면 이롭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니 섣불리 무얼 얻을려고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황이 이렇게 무언가 에너지가 다운 되는 쪽으로 갈 때, 그럼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우울하게 있으란 말이냐, 이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무언가를 해야 한다. 하는데, 그 하는 행동이 그야말로 무위에 해당하는 쪽으로 나의 내면을 스스로 즐기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이롭지 않다고 한다면,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으면 된다. 무언가 내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베풀거나 아니면 최소한 나의 내공을 기르는 준비기로 생각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까치밥의 시대이기 때문에, 내 자신을 저 맨 꼭대기에 붙어 있는 양의 감나무 열매로 한번 투사해도 좋을 것이다. 이 어둠으로 가는 시대에, 까치밥 하나의 상상력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만큼 나는 지금 절실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점을 친 사람은 무언가 절망은 아니다. 오히려 활기찬 삶을 추구하고 싶다. 그러니 얼마나 역설인가. 그러나 얼마나 이 역설이 철학적인가. 까치밥의 저 절체 절명의 순간에도 내 삶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이런 순간을 통과할 때 엄청난 공부가 될 것이다. 수련이 되는 것이고, 오히려 이럴 때 크게 성장한다.


 아래 문장도 참 좋다.

 박괘의 형상을 보면 내괘가 곤삼절 땅으로서 순한 덕이 있고 외괘가 간상련 산으로서 그치는 덕이 있습니다. 이렇게 순해서 그치는 박괘의 형상을 보고 군자는 사라지고 불어나고 가득차고 비워지는 천도의 운행을 숭상합니다.

 본래 천도는 사라지면 다시 불어나고 불어나면 또 사라지며, 채워지면 다시 비워지고 비워지면 또 채우면서 끊임없는 운행을 합니다. 밤이 되었다가 낮이 되고 낮이 되면 다시 밤이 되며,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소식영허(消息盈虛)의 이치입니다.

 대개 음이 양을 깍아 올라오는 것을 소(消), 양이 음을 밀고 올라오는 것은 식(息), 전부 음이 되어 다 빈 것을 허(虛), 전부 양이 되어 다 찬 것을 영(盈)이라고 합니다.

 군자가 소식영허하는 천행을 숭상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또한 군자인 것이죠. 소인이 아무리 세상을 어지럽게 하지만 군자는 역정을 내거나 반감을 사거나 하지 않습니다. 천도운행을 숭상하는 군자는 일단 마음을 순하게 가지고 자기가 그칠 때를 알아 반드시 그치기 때문에 아무 탈이 없죠. 음으로 혼탁한 상을 가지고 있는 산지박괘는 음이 양을 다 깎아먹고 소인이 군자를 해쳐서 사회가 모두 혼란스러운 상입니다. 이 형상을 군자가 순지(順止)의 덕으로 관망하고 있는 것(順而止之 觀象也)입니다. (대산주역강의1.557~558쪽)


- 이 박괘의 시대에 점을 친 사람은 다시 활기차게 살고 싶다고 하였다. 순하게 그쳐서 차고 비고 하는 때의 흐름을 관망하며 즐겁게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명상의 힘과 순한 마음이 있지 않고는 이러한 때에 휩쓸리고 불안하게 죄충우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전에서 말했다. 산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괘의 모습이니, 윗사람은 그것을 본받아 아래를 두텁게 하고 집을 안정시킨다.


-정이천은 "위가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아래부터 시작되니, 아래가 깍이면 위가 위태롭다"(491쪽)고 말한다. 당연한 이치다.

이렇게 무언가 아래로부터 깎아내리는 과정에 있으니, 당연히 아래를 돌봐야 한다. 내 삶의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내면으로 내려가고, 아랫사람을 더 잘 살펴 봐야 한다.


 산지 박괘의 때 무언가 깍아 내리는 때의 상상력 또한 여섯 가지의 변수가 있다. 이 여섯 가지 변수를 다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첫 효부터 보자.


 초구효는 침상을 깎되 다리로부터 하니, 올바름을 없애서 흉하다.


 침대를 깍는 샹징성을 가져왔다. 이런 상상력이 흥미롭다. 무언가를  깍아 내리는데, 나중에는 몸을  깍아내리는 데 까지 나아간다. 깍아낸다는 상상력에 주목을 해야 한다. 매우 흥미로운 상상력이다.

초육은 "음이 양을 깍아나가는 데 좋은 침대, 평상 맨 밑의 다리를 깍아내는 것입니다. (剝牀以足) 반듯하고 바르게 서 있던 것이 쓰러지므로 바른 것이 멸하는 상태가 되어 흉합니다."(대산주역강의. 559쪽)


 완전히 비워지기 직전의 때다. 음력 구월의 열매가 다 떨어지는 때인 것이다. 이런 시기에 활기차게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때의 추위로 가는 계절에 활기참이란 내면의 정신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침상 아래로부터 점점 위로 깍아올라가는데, 육이 효를 보자.


 육이는 상을 깍되 언저리까지 깍게 되니 바른 것을 없앰이라 흉하도다.

 "초육이 발이라면 육이는 언저리가 되어 평상의 언저리까지 깍는 것입니다. 평상의 발을 깍아 온전하지 못한데다 언저리까지 깍게 되면 평상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몸이 다치게 되죠. 변(辨)은 나눌 변이지만, 여기서는 판대기 변, 언저리 변 입니다."(대산주역강의1 560쪽)

 

 점을 치다보면 이런 괘를 자주 만난다. 나도 이런 괘를 아주 많이 만나보았다. 그런데 이런 괘가 나올 때, 이 괘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오히려 내 삶은 훨씬 풍요롭게 내 삶에 직면해서 깊이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더 기이한 것은 내 삶이 오히려 새로운 변화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위기는 기회란 식으로, 이런 괘가 나올 때는 삶의 변화를 맞이하는 중요한 때임을 알 수가 있다. 이런 때 잘 보내면 새로운 삶의 때를 맞이하는 것이다. 점을 치는 사람은 이걸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점을 칠 때 어려운 괘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은 없어지는 것이다. 그 어떤 괘라도 나에게 해가 되는 건 없다.


 육이효에 대한 상전의 말씀은 더욱 안타깝다.

 상전에서 말했다. 침상을 깍아 침상의 뼈대까지 이른 것은 함께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 하고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없는 때가 가장 힘든 때이기도 하다.  "깍아 없애버리는 때에 도와주는 동지가 없다면 어떻게 스스로 보존할 수 있겠는가? 함께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은 깍아 없애버리는 형세가 성대하지 않을 때, 함께 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니, 사람들에게 보여준 뜻이 깊다.(정이천, 주역 494쪽)


-깍아 내리는 때에는 나아가면 흉하다고 하였다. 이런 때에 함께 해 주는 사람을 억지로 찾아 나아가려 한다면 이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역시 이것 또한 힘들지 않을까도 싶다. 이런 깍아내리는 때일수록 그래서 순하게 머물줄(順止)을 알아야 한다. 사실 산지 박괘는 내괘인 땅의 바탕이 순하다. 산은 이 순한 땅을 바탕에 두고 머물러 있는 것이다. 순하게 머물러 있으면, 순하게 붙어 있으면 오히려 고통은 덜 할 수 있다. 때는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순하게 머물러 있을 줄 알아야 한다. 강하게 나가면 안된다. 

 순하게 머물러야 하는데, 점을 친 사람은 1,2,3 효가 동하였다. 여섯개 가운데 세 개가 동하였다. 그러니 순하게 머물러 있기가 쉽지 않은 때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육삼은 깎음에 허물이 없느니라.


 세 번째 경우는 깎아내리는 때인데도 허물이 없다. 이런 때도 있다.


 정이천의 해설에서 "육삼효의 행위는 선하다고 말할 만 한데, 길하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대답하겠다. 여러 음효가 양효를 깍아 없애고 여러 소인이 군자에게 피해를 주니, 육삼효가 정도를 따르려고 해도 그 세력이 고립되어 미약하고, 호응하는 사람이 정치적 지위가 없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러한 때에는 화를 면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길하겠는가? 그 마땅한 의리는 허물이 없는 행동을 취할 뿐이다. 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은 선한 행동을 권면하려는 것이다."(494~495쪽)


-깍아 내리는 때에는 욕심을 취하면 안된다. 그러니까 무엇을 가지려 하지 말고, 오히려 내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래야 허물이 없어진다. 나를 비우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비우는 때를 맞이했으니 내 몸도 또한 같이 우주의 기운과 맞추어 비우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비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활기찬 삶이다. 비움을 즐기는 삶 또한 매우 즐거울 수가 있다. 오히려 내가 비움을 즐길 때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비움의 때를 통과하다보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육사는 상을  깍되 살까지 이르니 흉하다.


 이제는 깍아내리는 정도가 점점 위로 올라가서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의 몸까지 깍아내는 것이다. 육사가 가장 힘든 때이다.


육오효는 물고기를 꿰듯이 하여 궁인이 총애를 받듯이 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육오효는 여러 음효가 순종하여 질서를 이루기를 마치 물고기를 꿰듯이 할 수 있지만, 도리어 위의 양효인 상구효에게 총애를 얻기를 궁인들처럼 한다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다음은 여섯번째 깎아내리는 때의 상상력이다. 이 상구효에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장이 나온다.

   상구효는 큰 과실은 먹지 아니함이니(碩果不食),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집을 없앤다.


 석과 불식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天無盡殺之理라. 하늘은 전부 다 죽이는 이치가 없습니다. 씨를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고 인정이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고, 아무리 난리가 나 세상이 뒤집혀도 살아 남은 사람이 있어 씨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즉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석과불식이라고 한 것입니다.

 양의 선함은 상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존재합니다. 상구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지뢰복괘의 초구가 없으므로 상구는 극한 자리에서 살아 남는 것, 극한 자리에서 회복하기 위해서 남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 먹어치우고서도 씨 하나를 남긴 것입니다. 그렇기에 군자는 수레를 얻는 반면 소인은 오히려 집을 깎아 없애네요. 소인의 경우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나와서 깍아먹고 박려가 되고 군자의 경우는 자기 집을 깍는 것이 아니고 수레를 얻어서 오히려 제 집을 깎아 집이 없어진 소인을 구제하는 것이죠.(대산 주역. 565~566쪽)


큰 열매는 먹지 않는다고 해도 좋고, 먹히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큰 열매는 하여튼 먹히지 않는 것이다. 씨로 남아 다시 회복의 기운을 가져온다. 산지 박괘의 때를 만났을 때는 늘 저 상구효의 석과불식의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언제곤 즐겁고 활기차게 살 수가 있을 것이다.

답은 석과불식에 있다. 내 삶 속에서 큰 열매를 찾아야 한다. 그걸 부여잡고 믿고 친구로 삼고 즐겨야 한다.

점을 친 사람은 내 삶에 석과불식, 먹히지 않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어떻게든 찾아야 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의 놀이고, 그 놀이 과정을 즐기다 보면 활기찬 삶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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