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남은 하반기 운의 방향에 대해 물었을 때 화택규괘가 나왔다. 1.2.6 효가 동하였다.
여섯 개 가운데 반이 동하였다. 대개 이렇게 반이 동하면 난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많이
동하는 것이다. 동한다는 건 움직임이 심하다는 것이다. 무언가 마음의 안정을 취할 필요도 있겠지만, 이것보다는
삶의 변수가 많으니, 이런 저런 변화에 직면을 해야만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 만사가 다 나의 내면 중심에 촛점을 맞추느냐, 아니면 밖에 촛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흔들림의 정도가 다르게 작동한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타자에 중심을 맞추면 타자가 흔들리는 데로 나도 따라서 춤추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삶은 얼마 가지를 못한다. 어지럽고 늘 불안한 것이다. 나의 중심이 없으니 늘 촛점이 흐릿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촛점을 나의 내면 무게 중심으로 가져와야 한다. 명상이 필요하다. 하나의 중심을 잡고 거기에 몰입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어떤 점을 쳤을 때, 3개는 물론이고, 4개까지 동하는 경우를 경험하였다. 나는 이렇게 동할 때는 점괘가 어떻든지 간에 무조건 명상에 돌입한다. 명상이라는 것이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꾸만 한 호흡이라도 쉬었다 가면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듯이 가만히 눈을 감고 단 몇 초라도, 단 몇 분이라도 앉아 있으면, 흙탕물이 가라앉고 맑은 물이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은 경지를 느낄 수가 있다. 누구나 명상을 한다고 하면 느끼는 경험이다. 대단한 수련을 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경지가 아니다.
나는 명상이나 이런 저런 마음 수련을 무슨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경계한다. 누구나 일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생활의 지혜이고, 호흡이고 놀이이고 정신의 휴식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해 보고 있는 주역 점의 세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슨 대단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주역이라고 하는 책을 읽는 데 약간의 이 책 나름의 규칙이 있고 용어가 있다. 이런 저런 용어들이 조금 걸리는데, 이런 수고로움은 잠깐 거치면 된다. 아무 것도 아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다 터득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메뉴얼이라 생각해도 좋겠다. 별것 아닌 것이다.
주역점의 세계도 결국은 내 삶을 직면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한 것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접근하는 지식의 세계나 전문인의 무슨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강조하고 싶다.
2
화택규괘는 나도 좋아하는 괘이다. 인생은 대립의 철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의 본질은 대립에 있는 것이다. 문학의 본질 또한 대립에 있다. 이항대립의 철학이 신화의 본질이다. 대립하니까 어긋나는 것이고, 문학에서 스토리는 다 이 어긋나는 대립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무슨 점을 쳤을 때 화택규괘가 나오면 작가의 자리에서 봤을 때는 좋게 본다. 드디어 내가 진정으로 어긋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때가 온 것이다.
몸의 에너지가 무언가 대립의 철학으로 갈 때, 나의 욕망을 제대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세상을 대립의 관점에서 보고, 타자를 명확하게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있으면 상대가 있는 것이고, 나의 욕망이 있으면 타자의 욕망도 있는 것이다. 타자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서로 어긋나고 대립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 보지 말고, 차이로 볼 수 있는 경지까지 밀고 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타자를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사랑에 대한 분명하고도 넓은 정의가 필요하다. 관점의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 또한 필요한데, 이 정도로만 하자.
3
괘의 모습은 화택규이니, 위는 불이고, 아래는 연못이다. 이 설명이 참 좋다.
"위로 불을 상징하는 이괘가 있고 아래로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가 있으니, 불꽃은 불타오르고 연못의 물은 땅을 적시며 내려가서, 두 형체가 서로 어긋나는 것이 분열의 뜻이다. 또 중년 여자(둘째 딸)와 소녀(막내 딸)가 함께 살지만 각각 시집가는 곳이 달라서 그 뜻이 함께 가지 않는 것이니, 또한 분열이다."(750쪽)
- 불은 위로 오르고, 연못의 물은 아래로 내려가서 분열인 것이다. 방향이 다르다. 이괘는 중년의 여성괘이고, 택괘는 어린 소녀의 괘인데, 이 둘이 함께 있는데 서로 흐르는 방향, 가는 방향이 다르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한다.
분열은 작은 일에는 길하다.
사실 이 화택규괘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분열의 때인데, 왜 이걸 길하다고 보느냐이다. 물론 작은 일에 길하다고 하였다. 그래도 길하다는 여기에 방점이 있다. 크고 작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세상 만사가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작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에너지의 방향을 먼저 봐야 한다. 길한 쪽으로 작동을 하는 분열인 것이다. 이것이 대단한 철학이다. 앞에서도 분열의 의미, 어긋남의 의미에 대해서 내가 잠깐 내 나름대로 말해 보았다. 이런 의미를 포함해서 왜 분열을 길하다고 표현 한 것인지, 이걸 좀더 보자.
화택규괘는 불과 연못의 만남인데, 이 괘의 구성, 자질 구조가 좋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자질 구조가 좋은가?
단전의 말씀을 한번 보자.
기뻐하고 밝음에 붙으며, 유함이 나아가 위로 가서 중을 얻어 강함에 호응한다. 그래서 작은 일에 길한 것이다.
화택규괘에서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는 기쁨을 의미하고, 불을 상징하는 이괘는 붙어 의지함을 의미한다. 기뻐하고 순종하며 밝은 지혜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괘가 위에 있을 때는 <단전>에서 유약한 자리의 사람이 존귀한 자리에 있는 점을 드러내려고, "유함이 나아가 위로 갔다"고 말하니, 진괘와 정괘가 이것이다. (752쪽)
-왜 이렇게 말하나. 화택규괘는 아래로부터 양양음양음양의 순서로 음양이 배치되어 있다.
다섯번째 효가 음인데, 이 자리가 군주의 자리이다. 음은 유약한 자리의 사람인데, 그런데 이 사람이 존귀한 군주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악한 음이 나아가 위로 갔다, 즉 존귀한 자리로 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분열되고 괴리되는 때에 육오효는 유약한 자질로 존귀한 지위에 자리했고, 기뻐하면서 순종하며 현명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선함을 가지고 있고, 또 중도를 얻어 강한 사람에게 호응한다. 그래서 세상의 분열을 화합하여 세상의 큰 일을 이룰 수는 없지만 또한 작은 일은 이룰 수 있으니, 이것이 작은 일에는 길한 것이다. 752쪽
-점을 친 사람은 이걸 주목해야 한다. 분열의 때에는 결국 선한 사람에 호응할 줄 알아야 한다. 군주는 분열의 때일수록 그런 사람, 자질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항분열의 대립이 있을 때, 세상을 매개해 내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지금 분열의 때에서 흔들리는데, 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줄 사람에게 호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외부의 어떤 존재와 결합을 하더라도 제대로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대립과 분열의 때에는 판단이 흐리게 될 수 밖에 없다.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하여튼 핵심의 하나는 불괘가 위에 있다. 무언가에 붙어 의지하는 밝은 지혜가 필요한 싯점이다.
이 화택규괘가 쉽지 않은 것은
어떤 사람은 묻는다. "육오효는 밝은 지혜로 강한 사람에 호응하는데, 큰 길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렇게 답하겠다. 육오효는 음유한 자질이고, 구이효와 호응하지만 분열의 때에 서로 함께하는 도가 깊고 견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구이효는 반드시 골목에서 군주를 만나고, 육오효는 살을 깊이 깨물듯이 하면 허물이 없다. 세상이 분열되는 때에 반드시 군주와 신하가 강양하며 중정을 지키고, 지극한 진실과 정성으로 협력한 후에야 분열된 상황을 화합시킬 수 있다. (753쪽)
- 분열의 때에는 대놓고 누구를 만나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군주를 만나도 골목에서 만나고, 군주는 살을 깊이 깨물듯이 해야 허물이 없는 것이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당연하다. 분열의 때에는 진심으로 살을 깨물듯이 명상을 해서 진짜 마음이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 지점을 밀고 나가야 한다.
단전의 말씀을 더 들어보자.
하늘과 땅은 분열되어 있지만 그 일은 동일하고,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 나지만, 그 뜻은 통하며, 만물은 다양하지만 그 일은 같은 종류이니, 분열의 때와 작용은 크도다!
사물의 이치와 동일함을 추론하여 분열의 때와 작용을 밝혔으니, 이는 성인이 분열을 화합시키는 방도다. 동일함이 동일하다는 점을 보는 것은 세속의 앎이다. 성인은 사물의 이치가 본래 동일함을 분명하게 아니, 그래서 세상을 동화시키고 만 가지 종류를 화합시킨다.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만물을 가지고 밝혔으니,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그 형체는 분열되어 있지만 양기는 내려오고 음기는 올라가 서로 화합하여 변화하고 양육하는 일을 이루니 동일하고, 남자와 여자는 질적으로는 차이가 나서 대립하지만 서로를 구하는 뜻은 통하고, 생물들은 만 가지로 다양하여 대립하지만 그러나 천지의 조화를 얻고 음양의 기운을 품수 받았으니, 서로 같은 부류다.
만물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본래 같으므로, 세상이 크고 여러 생명체가 많아서, 차이가 나도 다양하지만, 성인은 그것을 동일화시킬 수 있으니, 분열의 때에 처하여, 분열을 화합하는 능력에 있어서, 그 하는 일이 지극히 크기 때문에 크도다라고 했다. 753~754쪽
나는 이 문장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 하나의 핵심을 동일한 곳 속에 차이가 내재하고, 차이 속에 동일한 것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우주 만물의 작용의 대 원칙인 것이다. 다른 것 같이 분열되어 다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만, 내면의 속성에는 그 존재들이 동일한 무엇인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로 통하는 동일한 지점이 있는 것이다. 다름과 차이와 대립이 뒤집어 보면 하나로 통하는 동일한 모습을 내재하고 있다.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이 지점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대립의 철학이 왜 크고, 또한 왜 길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일에 길한, 이 小事吉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작은 일에 길한 것이 좋은 것이다. 일상의 자잔한 일들이 다 작은 일인 것이다. 무슨 큰 일은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4.
이말 또한 참 좋다.
<상전>에서 말했다. 위는 불이 있고 아래에 연못이 있는 것이 규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세속에 동화하면서도 다르다.
-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君子以同而異, 세속에 동화하면서도 다르다는 말이 참 좋다.
정이천 선생의 말을 또 들어보자.
성현의 처세는 인간의 이치인 상도에는 크게 동화되지 않음이 없지만, 세속에서 동의하는 것에 대해서 때때로 홀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니, 떳떳한 도리에서는 같고, 세속의 잘못에 대해서는 다른 것이다.
세속과 크게 동화되지 못하는 자는 상도를 혼란하게 하고 이치를 깨뜨리는 사람이고, 홀로 다른 의견을 가지지 못하는 자는 세속을 따라서 잘못된 것을 답습하는 사람이니, 중요한 점은 세속과 동화하면서도 잘못에 대해 이견을 드러낼 수 있는 데 있을 뿐이다. <중용>에서 "화합하면서도 과도하게 휩쓸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754~755쪽)
-화이불류 和而不流, 화이부동 和而不同 다 비슷한 말이다. 대립의 철학에서 매우 기본적인 핵심의 뿌리라 생각해도 좋겠다.
5
그렇다면 이 대립의 시기에, 대립의 철학도 여섯 가지의 변수가 있다.
초구효는 후회가 없어지니, 말을 잃어 쫓아가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온다.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만나면, 허물이 없다.
점을 친 사람도 이 괘가 동하였다. 이 괘에서 초구효의 의미가 백미이고 잘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초구는 구사와 음양응이 되지 않았습니다.(초구도 양이고, 네 번째 구사도 양이다. 양과 음이 만나면 응하였다고 하는데 양과 양끼리 만았으니 응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음양응은 되지 않았지만 자리가 응합니다.( 초구는 네 번째 구사와 서로 응하는 자리이다) 초구는 양으로서 현명한데 구사도 양으로서 현명하네요. 초구가 구사와 만나서 어긋난 규의 상황을 해결해야 합니다. 초구는 백성의 자리이고 구사는 대신의 자리인데 정치를 하는 대신 구사와 나라의 정치를 돕는 백성이 서로 만나야 합니다. 그런 논리를 떠나서 말해도 만약 점을 해서 규의 초구가 나왔으면 어느 남자를 찾아야 한다거나 어느 친구를 만나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어긋나 있는 규의 때이므로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구사에게 가려면 말을 타고 가야 만나는데 타고 갈 말을 잃어버렸어요. 현재는 규이기 때문에 타고 갈 말을 잃어버렸으니 당장은 꼭 만나야 할 구사를 만날 수 없는 것이죠(喪馬)
그러나 잃어버린 이 말을 쫒아가 찾을 필요가 없고 쫒지 않아도 잃어버린 말이 스스로 나한테 회복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이 말을 타고 구사를 찾아가는 것이죠. 지금은 가지 못하지만 시기가 조금만 지나면 갈 때가 오는 것이니 현재는 말을 잃어버렸으니 쫒지 않아도 그 말이 스스로 돌아옵니다.(勿逐自復)
그런데 문제는 악한 사람(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봐야만 허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음은 악이요 양은 선입니다. 여기에 악한 사람(미워하는 사람)은 초구가 구사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지키고 서 있는 육삼(화택규괘에서 양양음양음양 할때, 세 번째 음효)을 말하는 것이죠. 이 사람을 꼭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점을 쳐서 이 자리가 나왔으면 누구를 꼭 만나야 하는데 내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을 지나치지 않고는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는 점괘가 되는 것이죠.(대산 주역강의2. 134쪽)
-여기에 묘미가 있다. 분열의 때가 이제 시작하려는 그런 시기에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오히려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언가가 강하게 대립되어 나간다 생각할 때, 저 멀리에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중간에 어떤 사람이 끼어 있어서 그 사람하고 만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할 때, 어려운 사람을 먼저 만나야 하는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소통하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한다.
분열의 때에는 멋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분열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 만사가 결국은 사랑이란 걸 알아야 한다.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면, 저 쪽에서도 안다. 사랑이란 내어주는 것이고, 내가 갖지 않는 것이다. 나를 비워내면 낼수록 상대도 무장해제가 되는 것이다.
<상전>에서 말했다.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만나는 것은 허물을 피하기 위함이다.
화합을 구하려는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를 거부하고 절교한다면, 많은 사람이 군자와 원수가 되어 재앙과 허물이 이를 것이다. 757쪽
6
대립과 분열의 때에 한 가지는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두 번째 경우를 보자.
구이효는 골목에서 군주를 만나면 허물이 없다.
-아 이 말도 참 묘미가 있다. 대립의 때이므로 대 놓고 대로에서 만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무슨 음흉한 마음 때문에 골목에서 만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를 잘 읽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구이효도 양이고, 육오효는 음이다. 서로 응하는 자리이면서 음양응이 잘 된다. 그러니 궁합이 잘 맞는 관계이다. 그러나 분열의 때이므로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구이효와 육오효는 올바른 호응관계이지만, 당연히 완곡하고 곡진한 방도로 서로 상대의 진실한 뜻을 구한다. 구이효는 강중한 덕으로 아래 위치에 자리하여 위로 육오효의 군주와 호응하니, 군주와 도가 합치하면 자신의 뜻을 행하여 분멸의 상황을 해결하는 공로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분열과 괴리의 때에 처해 군주와의 교류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구이효는 마땅히 군주의 뜻을 완곡하고 곡진한 방도로 구해서 서로 만나기를 요구하여 서로 뜻이 합치하기를 바라야 하므로, "군주를 골목에서 만나다"라고 했다. 반드시 뜻이 합치한 후에야 허물이 없으니 군주와 신하가 분열되고 괴리되면 그 허물은 막대하다......
분열의 때일수록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만나는 방식에서 신중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뜻을 굽히고 도를 굽히면서 비굴하게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 아닌 것이다. 758~759쪽
점을 친 사람은 구이효도 동하였다. 역시 조심스럽게 만나는 쪽으로 간다.
다음 세 번째 분열의 때의 경우의 수다.
한번은 만나야 하고, 두 번째는 조심스럽게 만나야 하는데
세 번째 변수가 흥미롭다.
육삼효는 수레가 뒤로 끌리고 소가 앞이 가로막히며 그 사람이 머리를 깍고 코를 베니, 시작은 없지만 마침은 있다.
-희한하게도 주역에서는 분열의 때인데도 결과는 다 좋게 나온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이게 묘미이다. 분열의 의미를 결코 나쁘게만 보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도 중간에는 머리를 깍이고, 코를 베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받고, 부상을 입지만, 그래서 시작은 없이 혼미히자만 나중에 마침은 있다고 하였다. 나중에 마침이 있는 것은 저 꼭대기 상구효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결과는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그러면 네 번째 변수는 어떤가.
구사효는 분열의 때에 홀로 외롭다. 훌륭한 남편을 만나 서로 믿음을 가지고 교제하니,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다.
구사효는 분열의 때에 편안하지 않은 위치에 자리했고, 호응하는 사람이 없으며 두 음효 사이에 있으니, 분열의 때에 외롭게 처신하는 자다. 강양한 덕으로 대립과 분열의 때를 당하여 고립하여 함께 하는 자가 없으니, 반드시 뜻이 통하는 부류의 사람을 서로 구하여 화합해야 한다. 그래서 "훌륭한 남편을 만나다"고 했다. '부夫'란 양한 성질을 타고난 '원 元'이란 좋음의 뜻이니, 훌륭한 남편이라 할 수 있다. 초구효는 분열의 시초에 구사효와 덕을 함께하여, 분열의 후회를 없애서 분열의 상황을 가장 잘 대처하는 자다. 그래서 지목하여 '훌륭한 남편'이라고 했으니 흘륭한 사대부와 같다. 763쪽
다섯번째 경우는 이렇다.
육오효는 후회가 없어지니, 같은 당파의 동지가 살을 깊이 깨물듯이 하면, 아디를 간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육오효는 음유한 자질로 대립과 분열의 때를 당하여 존귀한 지위에 자리하니 후회가 있을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지만, 아래로 구이효의 양걍한 현자가 있어 그와 함께 호응을 이루어 도움을 받기 때문에 후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765쪽
역시 분열의 때이니 사람을 만나야 한다. 현자를 만나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 여섯 번째의 변수를 보자.
점을 친 사람도 여기가 동하였다.
상구효는 대립하고 외로워서, 돼지가 진흙을 뒤집어 쓴 것과 수레에 귀신이 가득히 실려 있는 것을 본다. 먼저 활줄을 당기다가 나중에는 활줄을 풀어놓는데, 이는 도적이 아니라 혼인하는 것이니, 가서 비를 만나면 길하다.
상구는 지금 분열이 극심한 때를 맞이해서 무얼 봐도 의심을 하게 되는 경지에 있다. 그래서 저 아래 육삼이 자신에게 화합하자고 친구하자고 오는데도, 그걸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이다. 자기에게 오는 사람이 돼지가 진흙을 뒤집어 쓴 것처럼 이상하게 보이고, 수레가 귀신이 가득히 실려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활과 화살을 가지고 쏠까 말까 하다가 나중에는 그 활을 내려놓고 서로 만난다는 것이다. 비(雨)를 만난다는 의미에 대해 아래 말을 들어보자.
상구가 가서 육삼을 만나는 것을 비를 만난다고 했습니다. 주역에 양이 음을 만나는 것을 우우(遇雨)로 표현했습니다. 남자가 여자한테 장가들때 남자가 여자 짐에 가서 행례를 치르고 첫날밤을 자는 것을 우우하고 합니다. 음은 비인데, 비를 만나는 것은 음을 만나는 것이요, 하늘이 땅을 만나는 것입니다. 즉 상구가 가서 이 육삼음의 비를 만나면 마는 즉시 길하죠. (대산주역강의2.144쪽)
점을 친 사람은 역시 이 상구가 동하였다.
전체적으로 우리는 분열과 대립의 깊은 철학을 여기에서 배울 수가 있다. 무언가 힘들고 대립되어 있을 때, 우리는 이 화택규괘를 찾아서 여러번 읽어보고 명상하고 사유를 해 보면 좋을 것이다.
내가 지금 어느 효의 자리에 서 있는 지를 제대로 봐야 한다.
그러나 섣불리 나에게 이익을 가져오려고 사람을 가볍게 만나고 해서는 곤란하다. 만사 다 사랑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야 한다. 특히나 대립과 분열의 때에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만나는 과정부터가 조심스러워야 하고 진심으로 만나야 한다. 비굴해서도 물론 안 될 것이다. 참으로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나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야 소통이 시작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