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읽기 모임 8회(5.27) 후기 7 - 택산 함괘, 감응과 사랑의 철학

작성자이야기밥|작성시간19.06.23|조회수11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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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의 수업을 더 늘려야 하느냐는 점에서는 택산 함괘가 나왔다.

함괘, 그야말로 서로 감응하는 세계이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괘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그렇다 아니다의 결론 이전에 정말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느냐, 즐기고 있느냐가 먼저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만나고 안 만나고의 횟수는 중요하지가 않다.근본을 물었다. 점친 사람에게.

아이들이 정말 좋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몸가는 데로 마구 해도 좋을 것이다. 더 이상 좋은 관계는 없을테니.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서로 감응을 느끼고 사랑을 나누는 택산 함괘의 철학을 주역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


함괘에 대해서 서괘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늘과 땅이 있고 난 뒤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고 난 뒤에 남자와 여자가 있고, 남자와 여자가 있고 난 뒤에 남편과 아내가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고 난 뒤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난 뒤에 군주와 신하가 있고, 군주와 신하가 있고 난 뒤에 위와 아래가 있고, 위와 아래가 있고 난 뒤에 예의와 의리가 바로 잡힌다." 하늘과 땅은 만물의 뿌리이고 남편과 아내는 인륜의 시작이니, 역의 상권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와 땅을 상징하는 곤괘로 시작하고 하권은 남자와 여자가 교감하는 것을 상징하는 함괘로 시작해서 관계의 지속을 상징하는 항괘로 이었다. 하늘과 땅은 근본이 되는 두 가지이므로 건괘와 곤괘 두 괘로 나누어 하늘과 땅의 도리가 되고, 남자와 여자는 교류하여 합하여 남편과 아내를 이루므로 함괘와 항괘는 모두 두 가지 괘의 형체가 합하여 부부의 의리가 된다. 함이란 교감한다는 뜻이니 기쁨을 주로 하고, 항이란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뜻이니 올바름을 근본으로 한다. 631~632쪽


 - 하권의 시작이 함괘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과 땅이 생긴 후에, 세상이 돌아가는 가장 근본이 되는 에너지는 서로 느끼는 것, 감응하는 것이다. 느낌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함께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감 感 이란 말을 쓰지 않고 함 咸 이란 말을 쓴 것이다. 함께 느낀다는 함께의 의미가 들어있다.

 

 감응하는 것은 형통하니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고,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감응하는 것, 서로가 서로를 느끼고 감응한다는 것은 형통한 것이다. 그렇다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의식이 아주 성한 사람들이 많은데,이들은 가만히 보면 느낌이 불감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많다.이들은 무서운 사람이다. 논리는 강해서 말을 잘하고 따지기는 잘해서 똑똑해 보이는데,왠지 무서운 사람이 있다. 느낌이 부족한 사람인 것이다. 남성만이 아니고, 여성들 가운데서도 역시 이런 사람이 요즘은 많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감응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게 참 중요하다. 세상의 근본 에너지는 감응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감응한다는 것, 사랑을 느끼는 것의 근본 철학은 어떤 것인지 아래 말을 보자.이 말이 참 좋다. 성폭력이니 무엇이니 하는 아주 나쁜 경우를 요즘 많이 본다. 그러나 이 말을 들어보면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를 알게 될것이다. 폭력과는 정 반대의 철학이 여기에 들어 있다. 감응은 이런 경지인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라.


 단전에서 말했다. 함괘는 감응하는 것이다. 유함이 올라가고 강함이 내려와, 두 기운이 서로 자극하고 반응하여 서로 함께하고 멈추면서 기뻐한다. 냠자가 여자에게 내려가니, 그래서 "형통하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고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고 했다.


 - 유함이 올라가고 강함이 내려오는 경지, 그게 진정한 감응의 경지이다. 강함이 위로 올라가서 지 혼자 좋다고 황홀해 하는 그런, 라이히의 말을 빌리면 찌르는 섹스를 하는 일방의 경지가 아니다.

 유함이 올라가고, 여자가 올라가야 한다. 강함이 내려가고 남자가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진다.

 꼭 남자와 여자로만 봐서는 안된다. 강한 권력을 가진 경우가 내려와야 하고, 유함이 위로 올라가게 해야 한다. 이래야 감응의 경지, 사랑의 에너지가 흐르는 것이다. 유함은 무조건 좋고, 강함은 무조건 나쁜 그런 경지가 아니다. 사랑의 때를 맞이할 때는 이런 에너지가 흐른다는 것이다.

 강한 사람이 위에 올라가 힘을 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때는 사랑의 때는 아니다. 도적을 맞고 위기를 탈출할 때 강함이 쓰임이 있다고 해도, 나중에 결국 돌아올 자리는 감응과 사랑의 때이니,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힘든 경지이다.


 상전에서 말했다. 산 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함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마음을 텅 비워 타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이 말도 흥미롭다. 


연못의 성질은 촉촉이 아래로 스며들어 적시고, 흙을 성질은 촉촉한 물기를 받아들이니, 연못이 산 위에 있어 점차로 산을 촉촉이 적셔서 통하게 하는 것은 두 가지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통하는 것이다. 군자는 산과 연못이 기운을 소통하는 모습을 관찰하여 그 마음을 텅 비워 사람을 받아들인다. 사람이 마음을 텅 비우면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고, 마음이 꽉 차면 받아들일 수가 없다.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은 내가 없는 것이다. 마음 속에 사사로운 주인이 없으면, 감응하여 통하지 못할 것이 없다. 계산하여 수용하고, 합치할 것을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감응이 있으면 반드시 소통하는 성인의 도리가 아니다.


-느낀다는 것은 머리가 작동하기 이전에 스며드는 것이다. 의식의 계산을 비운 경지에서 스며드는 것이다. 몸의 감각이 오히려 의식을 더 앞서고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불쾌하면 스며들 수가 없다. 감각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 감각이 무디고 마비된 사람은 위험하다.스스로 몸을 지키기가 힘들다. 아이들을 많이 뛰어 놀게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놀면서 스스로 몸의 감각을 키워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자들의 감각을 느끼는 예민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반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점을 친 사람은 아이들을 사랑의 감정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2

 사랑에는 여섯 가지의 변수가 있다.

택산함괘의 효의 배치는 음음양양양음이다.

 

 초육효는 염지발가락에서 감동한다.


 몸이 사랑을 느끼는데, 일단 저 아래 엄지발가락부터 느껴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비유를 썼다. 주역의 비유는 매우 직접적이며 원시적이다. 이래서 오히려 더 흥미롭다. 그런데 그 비유가 참으로 시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다.


 택산함괘는 감응하는 괘이다. 어느 자리든지 제대로 응하지 않는 자리는 없다.

 초효도 구사효와 음양이 서로 응한다.


 감동을 하긴 하는데, 아직 맨 아랫자리 시작의 자리라, 그 뜻이 깊지가 않아서 엄지발가락 정도에 미세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런 수준에서 다음 두 번째 감동하는 경우를 보자.

이번에는 느낌이 장딴지 까지 올라왔다. 꽤 많이 올라왔다.


 육이효는 장딴지에서 감동하면 흉하고, 그 자리에 있으면 길하다.


 사랑을 하는 방식에서 이 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다 그 사람의 기질대로 사랑을 하고 느끼게 마련인데, 도대체 장단지에서 감동하면 흉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런 해석에 대해서 요즘 여성들은 달리 해석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냥 참고로 비유로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재해석해서 들어보기 바란다.


 객: 초육은 위치가 가장 아래이므로 엄지발가락을 비유 형상으로 삼았고, 육이는 하체의 가운데 자리에 있으므로 장딴지를 비유 형상으로 삼았군요.

 주: 걸음을 걸을 때는 장딴지 근육이 가장 먼저 움직이므로 장딴지는 서둘러 움직임을 상징합니다. 육이는 하체에 있으면서 상체의 구오와 상응하는데, 이는 남녀가 서로 감응할 때 여자가 조급하여 무모하게 돌진하는 형상을 비유합니다. 실제로 여자가 그렇게 성급하게 구애를 한다면 여성 특유의 고아함과 단정함을 잃을 수 밖에 없으며, 향후의 발전 전망도 긍정적이지 못할 것은 뻔합니다. 그런데 육이는 다행히도 유순하고 중정한 덕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므로 편안하고 상서로울 수 있습니다. '편안히 거처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전쟁을 할 때 편안히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멀리서 달려와 지친 적군을 기다려서 싸워이기며, 철저한 수비를 공격 수단으로 삼은 전략으로, 남녀 관계에서 여자가 구사할 만한 전략이라고 하겠습니다. 효사에서 편안히 거처하면 상서로움(居吉) 을 강조하고, 상전에서 순종하면 해롭지 않다(順不害)고 한 의미가 심장합니다. 남녀 사이에 두 마음이 서로 통한다면 여자는 잠시 편안히 거처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그러면 분명 남자가 안달하여 간절히 구애하며 물러나지 않을 것인데, 그때 그에게 순종, 순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453~454쪽


 3

 자, 그럼 사랑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보자.

점저 감응하는 몸의 위치가 올라간다.


구삼효는 넓적다리에서 감동한다. 따르는 것만 고집하니, 가면 부끄럽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주: 넓적다리는 혼자서는 걸을 수 없으며 반드시 발과 종아리를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를 '다른 사람을 따르는 데 집착(執其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삼은 하체의 상위에 있으니 인체의 '넓적다리'에 해당하고, 또 양강한 효로서 양의 자리에 있어 성격이 조급하고 움직이기를 좋아합니다. 그가 초육과 육이 두 효를 보고 감응하여 움직이고, 또한 그들을 따라 움직임을 점차 더 해 가면서 홀로 편안히 거처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 자신과 상응하는 상육과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구삼이 상육을 좇는 것은그저 다른 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일뿐, 무슨 진정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상육 또한 진정으로 그에게 보답할 리가 없으며, 몇 마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림으로써 구삼을 수치스럽게 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효사에서 '나아가면 치욕을 당한다(往吝)'고 했지요. 주역. 쑹잉퀘이. 455쪽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진정성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본다. 여러 사람들을 자꾸 따라 가긴 하지만, 결국은 깊은 소통은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감응하고, 감동을 주고 받는다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도, 서로 감응을 하고 즐기고 할 때도 자기 중심은 있어야 할 것이다.

 점을 친 사람은 이 자기 중심이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구사효는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여, 후회가 없어진다. 왕래하기를 끊임없이 하면, 친구만이 너의 생각을 따른다.


 비록 이 구사효에 신체 부위가 나오지는 않지만, 점점 올라가서 구사효쯤 되면 심장의 위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래 말을 보자.


 구사효는 중간에 있으면서 높은 위치에 자리하여 심장의 위치에 해당하므로 감응의 주체가 되니, 감응의 도리를 말했다.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지니, 감응하는 데에 정도로 하지 않으면 후회가 있다. (642쪽)


 이 말씀도 좋다.


 계산하고 사려하는 사사로운 마음으로 타인을 감동시키면 감동하는 것이 협소하다. 세상의 이치는 하나이니 길은 비록 다르지만 돌아가는 곳은 동일하고, 사려하는 것이 백가지이지만 그것이 이르는 결과는 하나이니, 모든 사물에는 만 가지 차이가 있고 어떤 상황에도 만 가지 변화가 있지만, 하나로 통일하면 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뜻을 올바르게 하면 온 세상에 감동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다. 643쪽

 감 感이란 감동하는 것으로 감동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있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모두 감동을 받으니, 감동을 받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있고, 그 반응은 다시 타인을 감동하게 만들고, 감동하면 다시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있으니, 그러므로 끊임이 없다. 644쪽.


 감응은 반응을 불러온다. 매우 역동적인 개념이다. 에너지의 순환이다. 감응은 그래서 동적이다. 사랑은 매우 동적인 개념인 것이다.


 그럼 다섯번째 감응의 변수는 어떤가 보자.


 구오효는 그 등살에 감동하니, 후회는 없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객: 등은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인체에서 반응이 가장 무딘 부위인데, 무슨 감응이 있을 리 있습니까?

주: 구오는 양강으로서 존위에 있으면서 몹시 거만하여 육이의 손짓에 냉담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둔감한 등을 비유 형상으로 삼은 것이죠.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반응이 굼뜨거나 모르는 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흉하지는 않겠지만 상서로움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회한이 없고 화를 초래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러니까 존위에 있는 이는 단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성인이 인심을 감화시켜 천하가 태평해진다'는 큰 포부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구오의 뜻은 천박하면서도 편협하다고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상전에서도 뜻이 천박하다(志末)고 평가한 것입니다. 457쪽


여섯번째 변수는

 상육효는 광대뼈와 뺨과 혀에 감동한다.


 혀와 입에서 감응한다는 말은 상육이 습관적으로 빈말을 늘어 놓으며 감언이설로 환심을 사서 상응하는 구삼을 감동시키려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쑹 잉퀘이. 458쪽)


 그런데 이러한 해설들에서는 조금 의문도 든다. 엄지발가락, 장딴지, 넓적다리, 심장, 광대벼와 뺨과 혀로 상징되는 신체 부위에서의 감동은 무언가 사랑이 점점 깊어가는 느낌을 준다.

 성과 사랑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의미를 이 주역의 택산함괘는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도덕적인 관점이 아니라, 좀더 내밀하고 풍부한 에로스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서 택산함괘의 상징 변수들을 재해석해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건 일단 숙제로 하자. 나도 잘 정리가 되지 않으니...... 더 공부해 보면 좋겠다.


 4

 이렇게 사랑의 여섯 가지 변수를 놓고 볼 때,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감응과 사랑의 괘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좋은 의미는 거의 없다. 왜 이렇게 본 것일까.


 주: 함괘의 육효는 신체 각 부위의 감응에 빗대어 상황별로 감정 교류의 장단 득실을 밝혔는데, 마음이 감응으로 은유한 구사효만이 정도를 지켜 상서로울 수 있고 나머지 효는 모두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초육은 엄지발가락에서 감응하여 길흉을 아직 단정할 수 없고, 육이는 종아리에서 감응하여 조급하게 움직이면 흉하며, 구삼은 넓적다리에서 감응하여 덮어놓고 다른 사람을 따르다 보면 치욕을 당하게 되고, 구오는 등에서 감응하여 우둔하면서도 냉담하며, 상육은 입으로 감응하여 부질없이 빈말에 의탁합니다. 결론적으로 '함괘'는 남녀간의 교감은 물론이고 어떤 관계에서든 사람과 사람의 감정교류는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하며 정도를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458~459쪽


 점을 친 사람이 물었던 수업을 더 늘려야 하는 문제는 결국은 진정성있는 마음을 먼저 돌아보면 좋겠다. 내가 진정으로 재미가 있다면 할 것이고, 재미가  떨어진다면 물어야 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수업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감응할 수 있을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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