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부조리극 인물들이 함께 하는 --김미월

작성자요술펜|작성시간10.05.06|조회수246 목록 댓글 1

사실, 김미월의 '서울 동굴 가이드' 소설집 전체 작품 속 인물들이 모두 나를 사로잡았다.

특히 '가을 팬터마임'의 여자 주인공의 정면에서 슬쩍 비껴선 시선이 주는 감동,

또 '(주)해피데이' 에서 현재상태에서 바꾸고자 노력하는 과거의 잘못 등. 

다음 번엔 다른 작품을 다루게 되겠지만 오늘은 '소풍'을 꼼꼼히 뒤적여 보고 싶다.

소설집 전체에서 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골방'과 '소풍'이다.

 

'지지리 못생기고 몸집도 왜소한 데다 나이 스물셋에 벌써 밥숟가락 놓을 때가 다 됐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사는 '나'는 나와 동갑이지만 세 살의 지능을 가진 '병식'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무료 하숙을 하고 있다.

'병식'은 나와 반대로 '바둑돌처럼 새까만 눈동자에 우뚝한 콧대와 섬세한 윤곽의 입술선과 턱에서 목까지 이르는 선은 남자인 나도 만져보고 싶을 만큼 미끈한, 실로 완벽한 외모'를 가졌다. 침을 질질 흘리고 욕구를 말로 표현할 수 없어 폭력적이 된다든가, 하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때와 달리 이번 소풍엔 이혼한 병식 엄마의 애인이 동행을 한다.

1박 2일의 예정으로 온 강릉으로의 소풍. '줄거리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오래된 동화책을 읽는 기분'으로 나는 얼떨결에 고향을 찾게 되었다.

닭갈비를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병식은 토악질과 괴성으로 문제를 일으켜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모텔로 들어왔다.

나는 메일을 기다리고 있다. 컴퓨터에서 멀어질 수가 없는 나는 화면이 거의 뒤덮이도록 조류 이름의 폴더를 만든다. 강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지 않는 메일을 기다리며 폴더를 만드는 동안 메일이 도착한다. 그녀다. 가슴이 뛴다. 그러나 별명이 점순이인 그녀가 범우인 나에게 보내는 메일이 아니다. 유명 가수에게서 온 의례적인 팬레터일 뿐이다. 내가 기대하던 메일은 '범우야, 누나를 어떻게 찾아냈니?..... 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그러나  내가 받은 메일은 '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저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였다. 이건 아니었다. 병식과 거리로 나와 옛날에 알던 거리를 돌아다닌다.

홍등가 '황금마차'에 살았던 점순이누나와 근처 쪽방에서 엄마와 살았던 나. 나는 엄마가 일하러 가고 없는 사이 누나와 매음굴의 어른들을 흉내내며 놀았다. 열 살짜리 음부에 있던 세 개의 점. 엄마보다 더 좋아했던 누나. 막상 엄마가 죽었다는 소문에 누나는 거짓말을 해주었다. 너네 엄마는 소풍 갔다고. 그럼 왜 편지를 부치지 않냐고 물으며 엄마를 찾는 나를 위해 누나는 갱지에 편지를 써 담벼락에 붙였다. 범우야, 엄마는 잘 있다 범우야 엄마는 ...... 그런 누나였다.

거리에서 여자들을 보고 온 병식은 성욕을 참지 못해 벽에 머리 찧기를 멈추지 못한다. 지퍼 틈을 비집고 커다랗게 부풀어 있는 그것을 나는 어떻게 해준다. '기분이 아주 더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꾸는 꿈 속에는 아직 소년인 내가 어린 점순이누나가 벽보로 붙인 엄마의 편지를 찾아다닌다. 

여덟 살 소년이 놓쳐버린 엄마와 누나.

 

'나'는 그냥 거미를 죽이는 것에는 아무렇지 않으나 다리 하나 없는 거미나 병식처럼 '부족한 것'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다.

병식엄마의 애인을 향한 본능이 귀엽게 보이고, 약자인 병식의 편을 들어 병식을 깔아뭉갠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

그래도 내가 원하는 것은 여덟 적의 '그 공간'일 뿐이다.

나는 누구일까. 이 글을 쓰고 나니 더욱 의혹이 짙어진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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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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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브라 | 작성시간 10.05.07 읽어봐야겠네요. 재밌을 거 같아요. 병식의 성욕부분에선 '식물들의 사생활'도 잠시 떠 오르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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