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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 정종수

작성자전상준|작성시간26.06.08|조회수19 목록 댓글 0

<대구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맏 이

정종수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추었다. 서너 사람이 내리지만 밝은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복되는 일상과 기다림에 지친 표정이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멀리 창가에서 한 여인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기둥 쪽 의자에 힘없이 기대앉은 남자의 시선은 맞은편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다.

 

  손을 흔들던 여인은 맏이의 아내다. 막내인 나와 여덟 살 때 형수로 만났으니 53년의 세월이다. 스물네 살 청년과 사랑에 빠진 아가씨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스무 살 처녀였다. 한 집안의 맏딸이던 그녀는 친정의 반대를 뒤로하고 가난뱅이 맏이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랑에 빠진 신혼이라 한들 어찌 꿈같은 행복만을 생각했겠냐 마는 예상 못 한 고난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콩알 같은 막내의 눈망울이 마음에 걸려 눌려 앉은 세월이 평생이 되었다. 그을음 떨어지는 정지에서 보리쌀 삶아내는 무쇠솥 눈물은 그녀가 처음 맛본 삶의 쓴맛이었다.

 

  맏이에게는 한 명의 누나와 세 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군 복무 중에 콩밭 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이승을 떠났다. 남편을 보내고 일 년 후 지아비를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맏이는 가끔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식의 불효를 한탄한다. 그럴 때마다 인고의 삶을 살다 간 모친의 주름진 얼굴을 생각하며 가슴에 맺힌 한을 눈물로 솟아낸다. 졸지에 가장이 된 맏이는 밀려오는 무게에 어깨가 짓이겨질 지경이었다. 물려받은 것은 몇 뙈기 안되는 논밭과 화전이 고작이고 철없는 동생과 비어 있는 곳간뿐이었다.

 

  멋모르고 시집온 가냘픈 여인의 남편이었으나 애정의 감정이 곡기를 해결할 순 없었다. 없는 집의 농사일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었다. 아내의 솜털 같던 손과 얼굴은 거칠게 변해갔다. 논밭의 쟁의 질은 남의 소를 빌려야 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막내가 쟁의를 끌어야 했다. 비료 살 돈은 매번 이웃에 꾸어야 했으니 가을 수확은 빚 청산의 과정이었다. 독립된 머슴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궁핍한 삶은 다람쥐 쳇바퀴 같이 돌고 돌았다. 이웃에게 배워가며 지은 농사가 풍성한 수확을 보장할 리 만무했다. 그런 중에도 도시에 나가 공부하는 동생의 학비는 빼먹지 않고 보냈다. 막내의 지게 짐을 벗겨주고 싶었지만, 부족한 일손에 아픔 마음 숨겨야 하는 것도 맏이의 고통이었다.

 

  맏이가 도시로 나온 것은 애지중지 뒷바라지했던 둘째 동생이 황망히 세상 저편으로 떠난 직후였다. 어려운 살림에 겨우 학업을 마치고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 맏이의 기쁨과 보람은 여느 부모 못지않았다. 그랬던 동생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급성폐렴이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스물넷 청춘에 부모님 곁으로 홀연히 가버렸다. 마른하늘 날벼락이었다. 맏이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깨를 벗어났던 한 짐이 가슴을 찌르는 송곳이 되어 돌아왔다. 실의와 절망에 빠져 며칠 밤을 통곡 속에 보냈다. 삶의 기운을 잃어버린 맏이는 고향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몇 안 되는 전답을 정리해서 큰 도시로 나왔다. 비산동에 구멍가게 달린 셋방을 얻어 식솔과 세간살이를 옮겼다. 지게 지고 논밭 갈던 흙 묻은 손은 운전대를 잡았다. 군에서 수송병 경력이 도시에서 밥벌이 수단이 되었다. 궁핍한 살림은 여전했지만, 한낮 땡볕 아래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맏이의 아내는 구멍가겐들 못할 게 없었다. 바쁜 중에도 부부애는 두터워 자식이 세 명이 되었다. 막내까지 네 명의 자식인 셈이다. 맏이의 책무라고 생각했던지 셋 자식이 딸이었음에 아들 바람은 버리지 않았다. 결국, 막둥이로 남아를 얻었으니 맏이의 책무를 다한 듯 아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맏이는 일과를 마치고 손발을 씻으면 마지막 헹군 물로 양말을 빨았다. 식구들도 똑같이 하도록 가르쳤다. 비누를 비누통에 눕혀 놓으면 비누가 불어난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가부장적 경상도 남편이지만 방 청소는 식솔이 하도록 했다. 한 발 더 뛰기 위해 몸을 움츠린 개구리의 심정으로 성실과 절약 만이 삶의 무기라 여겼다. 식솔들은 엄격한 자린고비의 생활이 무섭고 싫었다. 그러나 모두가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려는 애정이었고, 부족한 생활비에 대한 미안함의 행위였다.

 

  맏이의 무덤덤함과 철저한 자기관리는 막내에게 아버지 같은 근엄함과 사랑으로 존재했다. 대구로 이사하고 며칠이 지난 겨울이었다. 막내가 기거하는 골방으로 연탄가스가 스며들었다. 정신이 혼미하고 가슴이 답답하여 마당에 있는 공동수도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다음 기억은 없다. 막내를 업고 맏이는 정신없이 골목을 내달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맏이의 한마디는둘째를 데리고 갔으면 되었지 막내마저 데려가려 하느냐?”라는 울부짖음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그것은 무던한 맏이의 책임감이며 사랑이었다. 그때를 연상하면 막내의 가슴은 지금도 아프게 조여 온다.

 

  맏이와 막내는 서로 말이 없다. 꼭 필요한 말만 한다. 정치적 성향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환갑 먹은 막내가 한 번씩은 들이밀 때도 있지만 대부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맏이를 바라보는 감정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가장이 되어 갖은 시련을 이겨냈다. 동생들과 자식들을 밥솥 들려 내보냈으니 삶의 황혼기에 누려야 할 생의 희락은 넘쳐나는데 덜컥 찾아든 병환이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맏이는 어머니에게 콩팥병을, 아버지에게 고혈압을 물려받았다. 그 바람에 혈액투석과 두 번의 뇌출혈을 겪었으니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어눌한 말과 불안한 몸짓은 막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마음만 넉넉한 막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바깥바람 좋아하는 두 사람을 내 차에 태우는 것이 고작이다. “고맙다 수고했다라는 맏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그렇게 애잔할 수 없다. 꼿꼿하던 젊은 날의 몸부림은 이제 옛이야기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그의 어깨 위에는 여전히 무거운 짐이 얹혀있다. “내 떠나면 이 여인은 누가 챙기냐라고 걱정한다. 당신과 같이 콩팥병을 앓고 있는 막내가 독거 하고 있으니 애처로움은 맏이의 몫이다. 수년 전, 막내의 큰아들이 공무원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전화했다. 어눌한 말은 예상했지만,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후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그의 울먹임은 고생했다. 수고했다두 마디였다. 맏이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막내도 목젖을 넘어오는 먹먹함을 겨우 삼켜내고 고맙습니다라고만 했다. 더 이상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막내의 어깨에서 내려진 무게는 보살펴 주지 못한 맏이의 심적 무게였을 것이다.

 

  가끔은 막내가 맏이의 집에 갈 때가 있다. 용무가 있기도 하지만, 형수의 손맛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길들어진 손맛이니 나이가 들어서도 입안에서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집안에서 느껴지는 맏이의 이미지는 여전하다. 어떤 기류에도 흔들이지 않으려던 강직함은 많이 사라졌다. 세상 기류에 융합하려는 듯 불어 드는 바람결에 어느 정도는 휘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뿌리만은 여전히 단단히 박혀있다. 예전의 불호령은 아니어도 짜증 내는 한마디에 긴장감이 감돈다.

 

  맏이가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12층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손을 흔드는 형수와 고개를 끄덕이는 맏이는 이제 집으로 간다. 잘 가라 손짓하는 막내의 얼굴에 웃음이 묻어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웃음을 거둔 막내는 병실로 들어가 4시간을 보내야 한다. 기계의 도움으로 몸속 독성을 걸러내는 혈액투석을 한다. 맏이와 막내는 주일에 세 번을 똑같은 방법으로 재회한다. 막내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는 형수는 여전히 어머니 갈음이다. 마음은 헤아리나 값을 모른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녀의 손에 환하게 웃고 있는 카네이션이 들렸다. 이제 곧 어버이날이다. 막내는 병원에 오기 전에 꽃집에 들렀다.

(수필문예24, 2025.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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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 대구수필문예대학 35기 수료

  · 2024년 《수필미학》 등단

  · 수필문예회, 수필미학작가회 회원

  · jsjeng10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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