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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굴뚝의 하얀 연기/ 조갑식

작성자전상준|작성시간26.06.14|조회수20 목록 댓글 0

<대구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두 굴뚝의 하얀 연기

 

  조 갑 식 

  계절의 여왕 오월. 가톨릭 신자에게는 성모 성월이며, 불자들에게는 석가탄신일이 있는 달이다. 산과 들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넘실거렸고, 간간이 내린 봄비는 나무와 흙의 향기를 더욱 짙게 했다. 그 숲길을 지나며, 나는 한동안 렌즈로만 바라보았던 세상을 이제는 마음의 눈으로 담아보고 싶었다. 카메라 심화과정을 마친 뒤, 오대산으로 향하는 산행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상원사. 지난해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던 때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번 방문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이었다.

 

  대구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한 버스는 정오 무렵,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등산객들은 각자의 배낭을 메고 비로봉을 향해 떠났고, 나는 문화탐방 조에 속해 천천히 경내로 들어섰다. 초파일이 지난 평일, 절집은 놀랄 만큼 고요했다. 기와지붕은 비에 젖어 윤기를 머금고 있었고, 나무와 돌, 흙의 냄새가 짙은 숨결로 다가왔다. 바람은 낮게 불고, 참새 몇 마리가 기왓장 사이를 오가며 재잘댔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반가운 듯,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고요함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었다. 수많은 기도와 침묵이 쌓여 빚어낸 깊이였다. 자연은 그저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품어주고 있었다. 불전 앞 5층 석탑으로 오르는 길. 문득 공양간 뒤편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소박한 굴뚝. 그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는 점심을 준비하는 불기운이었다. 밥 짓는 냄새가 오솔길을 따라 퍼졌고, 그 향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 장면은 셔터에 담기보다 마음에 오래 새기고 싶은 풍경이었다. 연기 속엔 따뜻함이, 소박함이,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간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또 하나의 굴뚝이 떠올랐다. 지구 반대편 로마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성당 위로 솟은, 전 세계가 지켜보던 그 굴뚝. 음력 사월 초파일이 사흘 지난 날, 그곳에서도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었다.

 

  제267대 교황 선출을 알리는 하얀 연기. TV 생중계를 통해 그 장면을 마주한 나는 저절로 두 손을 모았다. ‘레오 14라는 즉위명이 화면 하단에 떠오르고, 내 가슴 깊은 곳에서 기도가 흘러나왔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바티칸 광장. 그곳에서 터져 나온 환호, 교차하는 침묵과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 순간, ‘믿음이라는 말의 무게와 의미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교황 선출은 단지 종교적 의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전 세계 신자들에게 믿음의 중심을 되묻고, 방향을 다시 정립하게 하는 신호이다. 믿음의 연기는 그렇게 하늘을 향해 올랐고, 세계를 감싸 안았다. 나는 다시 상원사의 굴뚝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 없이 피어오르는 그 작은 연기는, 바티칸의 연기만큼이나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두 양철 굴뚝의 크기와 쓰임은 전혀 다르지만, 피워 올리는 메시지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바티칸의 연기는 하느님의 뜻을 상징한다. 희망이고, 방향이며, 믿음의 중심을 향한 이정표이다. 상원사의 연기는 사람의 일상을 상징한다. 밥 냄새와 불기운, 조용한 나눔과 평화의 시간. 공양간의 연기는 그렇게 사람의 삶을 데우고 있었다. 하나는 하늘을 향한 기도, 다른 하나는 땅 위의 위로. 둘은 전혀 다른 곳에서 피어오르지만, 결국 하나의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를 바라보고, 기대고, 기다리는 존재라는 것. 기도와 밥 냄새, 신성과 인간성 사이. 우리는 그 경계를 오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흔들리면서도, 그러나 끊임없이 버텨내며. 하얀 연기는 이내 사라졌지만, 그 향기와 온기는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셔터를 누르며 카메라에 담았지만, 어쩌면 그 장면은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내 안에 새겨졌다.

 

  신앙의 불빛, 삶의 따스함은 연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것은 기도 속에도 있고, 밥 짓는 향기 속에도 있으며, 매일의 작고 조용한 선택 안에 살아 숨 쉰다.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었다. 구름처럼 가볍고, 밥 냄새처럼 무거운 그것을 담기 위해. 그리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엔 아직 꺼지지 않은 굴뚝이 있다. 그리고 그 굴뚝은 오늘도 누군가를, 조용히 살리고 있다.

 (수필문예24, 2025.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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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 대구수필문예대학 28기 수료

   · 수필문예회 회원

   · eyeplu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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