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누름돌
차홍희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오후 무렵에 점점 잦아들더니 또 시작이다. 창밖을 내다보는 내 마음이 조급하다. 가방을 서둘러 챙겨 퇴근길을 나선다. 가야대로는 내게 길을 내어주듯 막힘이 없다. 멀리 가야산 자락은 연두빛이 뭉글뭉글 부풀어 오르고 있다. 강변의 버드나무는 이미 가지를 늘어뜨린 채 하늘거린다. 봄은 서둘러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목적지에 도착하니 비가 그친다.
이제 비도 멎고 바람도 없다. 늦은 오후라 걱정을 했는데 옅은 구름 사이로 밝은 기운이 축제장을 덮고 있어 마음이 조금 놓인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를 탔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 멀리 주차해야 하나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두어 정거장 거리에서 내렸다. 축제장 분위기는 조용한 편이다. 나는 잰걸음으로 목적지를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 마음에 두었던 체험 장소를 모두 다 방문해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마감 시간이 코앞이다. 땀도 나고 목도 마르고 애가 탄다. 다급하여 안내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도 모른다고 한다. 미리 온라인으로 본 내용은 안내 지도에도 없다. 그러니 그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운영 본부를 찾았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이대로 포기하고 그냥 돌아서야 하나 싶었다. 가슴 한쪽 서운함을 위로할 요량으로 대표 전화번호를 찾았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깍’ 상대방 목소리가 들렸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삼키면서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뜻밖이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위치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이미 마감했지만, 안내인 한 분을 그곳에 보내겠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순간 때아닌 한줄기 소나기를 맞은 듯 모든 것이 맑아진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언짢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들은 데로 그곳을 향해 다시 큰길을 건너 오르막으로 걸었다. 드디어 저만치 고분군이 보인다.
며칠 전 저녁 무렵,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전히 우울한 목소리가 저 너머 들렸다. 그녀와 나는 2년 전에 처음 만났다. 근무지가 같은 지역이라 친하게 지냈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고 내게 자주 하소연했다. 그러다 나는 새 부임지로 이동하게 되었고 분주한 직장생활 했다. 종종 그녀의 일이 마음에 걸려 궁금했다.
‘아직도 그대로구나’ 그날도 병원에 다녀왔다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누구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더라도 그녀에게는 걸림돌이 되었다. 가슴을 짓눌러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너무나 곧은 성격을 지닌 그녀에게는 모든 게 녹록지 않다. 공감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뚜렷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는 내가 애타기만 하다.
어린 시절 한옥에는 가가호호 장독대가 있었다. 마당 한쪽에 얕은 돌계단을 오르면 여러 개의 장독이 햇빛에 반질거렸던 생각이 난다. 거기에 돌이 몇 개 있었다. 엄마는 그 돌로 김치를 꾸욱 눌러놓곤 했다. 누름돌이다. 누름돌은 반들반들 잘 깎인 돌로 김치가 수북한 독 위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로 숨을 죽여 김치맛이 잘 나게 해주는 돌이다. 시골 마을의 장독대에는 누름돌이 집집마다 몇 개씩 가지고 있었다. 김치는 숨이 죽어야 맛이 들고 엄마는 자신을 희생해야 가족이 편안하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커다란 누름돌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산 것 같다. 자신을 억누르고 희생과 사랑으로 그 아픈 시절을 견디어 냈던 어머니의 누름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뒷산의 바위를 가져와 마른 가슴에 눌렀어도 맺혔던 한은 또다시 부풀어 올랐겠지.
얼마 전 애완 돌멩이 이야기를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반려동물이나 반려 식물은 흔한 이야기로 접했으나 돌멩이는 낯설다. 어느 싱글 연예인이 돌멩이에 말을 거는 장면을 보고 의아해했었는데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도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거나 집에 잘 보관해 두면서 힘들 때 꺼내어 말을 걸고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생명이 없는 물체를 마치 살아있는 동식물을 다루듯이 자리를 마련해 두고 꾸미고 보살피고 한다.
그곳에 도착했다. 안내인이 내놓은 바구니에 반들반들하고 올망졸망한 조약돌이 가득하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한 개 골라라 한다. 나는 잿빛이 감도는 바탕에 하얀 무늬가 드문드문 있는 것을 고르고 하트를 몇 개 그려 마무리했다. 늦게 찾아왔다고 덤으로 두 개를 더 얻었다.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옅은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노을이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비치는 석양의 그늘이 산 아랫마을까지 늘어선다.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는다. 연이어 고분군의 모습들이 야간 조명등으로 더 밝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는 되돌아가지 않고 고분군길을 걷기로 했다. 초저녁 산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걸어도 될까. 잠시 머뭇거리다 그대로 걸었다. 주머니 속의 돌멩이를 만지작거렸다. 대가야의 이름 모를 부족장들의 봉분을 하나하나씩 지나오면서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고뇌에 잠시 숙연해졌다. 얼마쯤 내려오니 조형물 앞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맞은 편에는 꽃등을 들고 관람객들이 고분길을 걸어오고 있다. 내심 반갑고 편안하게 걸음을 옮겼다.
돌멩이 사랑은 오늘날만이 아니다. 옛사람들도 강가에서 돌을 던져 소원을 빌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애정을 품었었다. 어머니는 조약돌 대신 누름돌을 가슴에 품고 희생을 감내하며 세월을 견뎌냈다. 그 단단한 어머니의 누름돌이 요즘은 애완 돌멩이가 되어 우리의 아픔을 누르고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내 주머니 속에 있는 돌멩이를 후배에게 주고 싶다. 그녀의 누름돌이 되어 더 이상 병마와 싸우지 않고 어려움을 잘 헤치고 나갔으면 좋겠다.
끝없는 반복의 시간 속에서 숙성되듯 기나긴 세월 속에서 어머니는 돌을 가슴에 누르고 또 눌러야 했다.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가 되고 며느리가 되어 묵은 맛을 만들어야 했다. 할머니가 되고서야 누름돌을 내려놓았을까? 알 수 없다. 문득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평온했다. 요즘 내게 그런 누름돌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말 한마디에도 쉽게 서운하고 실망하여 깨어진 감정들을 지그시 눌러주는 그런 돌이면 더 좋겠다.
(《수필문예》 제24집, 2025. 수필문예회)
-----------------------------------------------------
지은이 프로필
· 대구수필문예대학 22기 수료
· 수필문예회 회원
· chh89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