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자갈돌
‘춘 마곡 추 갑사’라는 말이 있다. 봄에는 마곡사가 가을에는 갑사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봄 마곡사를 찾았다. 문우들과 함께한 문학기행 덕분에 ‘춘 마곡’을 제대로 느껴보겠다는 기대는 처음부터 접어야 했다. 예쁘고 아름답다는 길,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오르는 길을 감상하는 것부터 헛된 바람이 되었다. 관광버스가 절 앞까지 바로 왔다. 시간 절약과 나이 든 회원 배려 때문이다.
사찰의 마당과 길에 자갈돌이 깔려 있다. 오래전 김천 직지사를 찾았을 때 마당과 길에 비로 쓴 흔적이 뚜렷한 것을 봤다. 깨끗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당비로 쓴 자국이 어릴 때 곡식을 거두어 타작하기 위해 마당을 쓸던 선친을 생각나게 했다. 요즈음 대부분 사찰에서는 마당이나 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했거나 보도블럭을 깔아 놓았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 보기도 좋고 관리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절 마당과 길에 깔린 자갈돌의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우리 것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마당과 길에 깔린 자갈돌에는 잔작돌도 보인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극락교로 가는 길가에 작은 자연석과 자갈로 쌓아 만든 탑이 무수히 많다. 탑 모양이나 크기가 전문 기술자가 쌓은 솜씨가 아니다. 나처럼 마곡사를 찾은 관광객이나 사찰에 기도 온 평신도가 갑자기 발원할 일이 생각나 정성을 모은 것이다. 소원 탑이다. 탑의 완성도가 문제 될 것 없다. 내 눈에도 정성이 보이는데 부처님 눈에는 더욱 잘 보이지 싶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들의 기도에 하늘이 감동하지 않겠나. 갑자기 마당과 길에 흩어져 있는 자갈돌과 탑을 쌓는 데 사용된 자갈돌이 다르게 보인다.
자갈돌,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크기가 작은 돌이다. 마곡사에서 만난 돌에는 자갈보다 좀 큰 것으로 극락교 아래 흐르는 계곡의 제방에 있는 돌과 계곡 바닥에 징검다리가 된 돌,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의 기단석이나 주춧돌이 있다. 정교하게 가공한 돌로는 5층 석탑으로 쓰인 돌도 보인다. 생물이 아닌 무생물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돌이다. 나의 오늘 화두는 돌이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생각할 줄도 모르는 돌이 누구와 만나 어떤 곳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엄청난 의미를 주고 있다.
대웅보전 앞 담장 위에 얹어 놓은 기와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나란히 앉아 있다. 기와 위에 누군가 마당의 자갈돌로 쌓아 놓은 돌탑이 눈길을 끈다. 담장 옆에도 작은 자갈돌 돌탑이 있다. 옹기종기 앉아 있는 탑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가지런히 놓인 기와에 비해 질서가 없다. 한 사람이 쌓은 것 같지는 않다. 높은 것은 돌이 일곱, 여덟 개씩 포개져 있고, 낮은 것은 두서너 개다.
처녀·총각 둘이 자갈돌로 탑을 쌓고 있다. 저들은 무엇을 발원하며 저렇게 정성스럽게 공을 들이고 있을까? 아뿔싸! 처녀가 들고 있는 마지막 돌을 얹는데 돌탑이 ‘달그락’ 소리 내며 무너진다. 앞에 있는 총각이 더 안타까워한다. 둘은 말없이 한참 서로 쳐다보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까르르 함께 웃는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풋풋하다.
둘은 다시 자갈돌을 주워 탑을 쌓는다. 그렇다. 담장 기와 위의 돌탑은 한 번에 쌓은 것도 있지만 저들처럼 여러 번 정성을 다해 이루어진 것이 더 많겠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가정이라도 이룬다면 삶의 여정에도 한 번에 이루어지는 일보다 여러 번 정성을 다해야 이루어지는 일이 더 많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 옆에 다가가 탑 위에 작은 자갈돌 하나 얹었다.
누군가 행복은 스스로 찾는 것이라 했다. 마곡사 경내에 흩어져 있는 자갈돌에서 행복을 찾아본다. 따뜻한 봄빛을 받으며 흐르는 계곡물 바닥에도 조약돌이 반짝인다. 절 마당에는 봄 마곡사를 찾아온 관광객의 발길에 차이는 자갈돌이 무심하다. 대웅보전 앞 담장 위에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앙증맞게 쌓은 탑의 자갈돌에 정성이 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을 연출하는 조약돌 하나 주어 주머니에 넣었다.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조약돌을 본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교감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다고 하찮게 여긴 조약돌이 내 마음을 빤히 보고 있는 듯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요구에 순응하는 조약돌에서 사랑을 배운다. 나만의 세계를 가꾸기 위해서는 나와 관계를 맺는 모든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줄 알아야겠다. 절 앞을 흐르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에 밤낮없이 마음을 헹구는 조약돌을 생각한다. 속세에 멍든 내 마음도 계곡물이 씻어 가는 듯하다.♡
(2019)